475. 이윤서, 에디터 낭만이
浪漫
낭만:
1. 명사,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2. 명사,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

자기소개 한 번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22살, 이화여자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윤서입니다. 인천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고요. ‘행복한 굿쟁이’입니다.
‘행복한 굿쟁이’가 뭐에요?
제가 엄청 좋아하는 말이에요. 대학에서 풍물패 활동을 하면서 장구를 쳤는데, 장구를 칠 때는 다른 고민들이 사라지고 장구에만 집중하게 돼요. 그게 제게는 일종의 치유였어요. 작년 여름에 사부님이 “행복한 굿쟁이가 되자”라고 말씀하신 게 있는데,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았어요. 무언가 하나 집중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삶이 제가 지향하는 모습이라서 행복한 굿쟁이라고 해봤어요.
풍물을 특별히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동아리를 찾다가 어쩌다 보니 들어가게 됐죠. 그런데 풍물이라는 게 꽹과리, 장구, 북, 소고 네 가지 악기가 둥글둥글 원을 그리며 함께 연주하는데, 그 안에서 생기는 소속감, 협동의 안정감 같은 게 있어요. 그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또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도 너무 좋아서 더욱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잔치’ 에디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사실 별 생각은 없었고, 그냥 글을 한 번 제대로 써보고 싶었어요.
갑자기요?
완전 갑자기는 아니고요, 작년 겨울에 인문대 창작 공모전에서 째깐한 상을 하나 받았거든요. 그 전에는 블로그에 혼자 이상한 글들을 끄적이곤 했는데, 처음으로 칭찬을 받고 나니까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계속 글을 쓰면 또 칭찬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잔치’에 지원하게 됐어요.
그러면 칭찬 받으려고 글 쓰는 거에요?
처음엔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졌어요. 이제는 저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글을 쓰는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진다’는 건 어떤 의미에요?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잖아요.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같은 걸 곱씹게 되고요. 제가 풍물에 대한 글을 쓴 것도, 제가 왜 풍물을 좋아하고 재밌어했는지를 스스로 되돌아보는 과정이었어요. 그러니까 내 머릿속에 흘러가는 생각들, 구석에 박혀 있던 기억들을 다시 꺼내 보고 만져보는 거죠.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 그게 제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예요.

아트팀 에디터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처음부터 아트팀에 가고 싶었나요?
아니요. 원래는 플레이스팀이 1지망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아트팀으로 배정됐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트팀이 된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왜요?
아트팀은 자유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잖아요. 내 생각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는 게 진짜 큰 매력인것 같아요. 완전 권력이죠, 권력.
진짜 권력이다. 부럽네요.
그러면 ‘잔치’ 외에도 글을 따로 쓰시나요?
네, 블로그에도 글을 올리고 있고, 지금도 작은 공모전도 하나 준비하고 있어요. 예전에 상 받았던 공모전인데, 그때는 소설을 냈고 이번에는 수필이나 다른 형식으로 써보려고요.
소설로 상을 받은 거였어요? 어떤 내용이에요?
그건, 비밀입니다.
네? 왜요? 잔치는 비밀 같은 거 없는데요.
그래요? 너무 개인적인 글이라서… 전에 좋아했던 친구를 생각하면서 썼던 이야기에요. 지난번 팀글 쓸 때도 잠깐 등장했어요. 거의 1년쯤 된 이야기인데, 사실 제대로 된 연애도 아니였어서. 그치만 제 첫사랑이었어요. 그런 감정은 처음이라, 글로 써보고 싶었어요.
뭐가 그리도 좋았어요?
뭐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내가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사실 왜 그 사람한테 내가 끌렸는지를 굳이 따져보자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냥 끌렸으니까 사랑한 거라고 생각해요.
첫사랑이라… 설레네요.

이제 첫 글 <내 자취방은 달빛도 닿지 않는 곳>에서는 ‘자취’를 주제로 글을 쓰셨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일단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고요. 또 저는 집이라는 공간이 내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준다고 느껴요. 집이 깨끗하면 기분도 좋고, 반대로 너무 어수선하거나 곰팡이라도 피어 있으면 하루가 우울해지잖아요. 자취를 처음 시작했을 땐 진짜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미워도 내가 살아야 하는 공간이니까, 사랑하려고 노력했어요. 곰팡이도 닦고, 정리도 하고. 그게 나를 돌보는 느낌이었어요. 자취방도 결국 내 삶의 궤적 중 하나니까요.
결국 미워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거네요.
맞아요. 그리고 내가 이 집에서 열심히 살면, 다음 세입자도 그 흔적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음 세입자는 모르는 사람 아닌가요?
그래도 확률적으로 대학생일테니까…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사랑이 담긴 집을 넘겨주고 싶어요.
지금은 집에 만족하시나요 ?
아직은 완벽히 만족하진 않아요…

자취의 장점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어른이 되는 예행연습이요. 전입신고하고, 공과금도 내고, 집주인과 마찰도 빚어보고, 어릴 때는 해보지 못한 으른의 일들을 하나씩 배우게 되거든요. 아플 때도 혼자니까 스스로를 챙기는 법을 배우는 것도 그렇고요. 진짜 ‘어른이 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외롭지는 않아요?
엄청 외롭죠. 본가에 있을 땐 언니도 있고 동생도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니까. 슬픈 날이면 안기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어서 더 슬퍼요.
보통은 누구한테 안기셨죠?
엄마나 동생이요. 동생은 제가 안아주는 쪽이지만요.
곰인형 같은 걸 하나 사보는 거 어때요.
습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럼 외로움을 견디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나요?
딱히 방법은 없어요. 그냥 평생 안고 가야 할 감정 같아요. 그래도 집에만 있기보다는 나와서 뭘 하면 좀 나아지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카페에 간다든가, 아니면 학교 가서 소고 치기!
글의 마지막 문장이 ‘더럽고, 좁고, 냄새나는 이 공간에 사랑을 조금이라도 채워 넘겨주겠노라 다짐한다.’인데,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음… 하나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약간 ‘존재의 각인’이랄까?
?
그러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존재가 내 세계에 들어오면서 내 세상이 바뀌잖아요. 예를 들면 KFC 할아버지 목의 리본이, 한 번 졸라맨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계속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그 순간 내 세상이 바뀌어 버리는 거죠.
싫어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렇긴 하죠. 그치만 괜히 애와 증이 같이 다니는 게 아니라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건 막 그렇게 단순한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심오하네요.

두 번째 글 <복을 빌어주는 마음으로>에서는 ‘지신밟기’를 주제로 하셨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지신밟기라는 행사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처음 들어봤어요.
그렇죠? 근데 지신밟기가 복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고, 또 동아리 1학년 친구들의 첫 무대이기도 해서 ‘시작’이라는 느낌이 아주 강하거든요. 1학기에 쓰기에 잘 어울리는 주제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글을 읽으면서 지신밟기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좋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이 특히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풍물 계속 하는거죠?
이제는 풍물패를 졸업해서 정기적으로 하진 않을 것 같아요. 가끔 재미로는 할 수도 있겠지만요. 예전엔 풍물이 제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제 일상 속에 풍물이 있는 정도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풍물은 우연히 시작했다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삶에 깊게 들어올 줄 알았나요?
아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해요. 근데 가만 보면 완전한 우연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외할아버지가 농악을 하셨거든요. 심지어 거기서 장구를 치셨어요. 그래서 장구 DNA가 제 안에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풍물은, 어쩌면 제가 해야 할 일이었는지도요.
우연과 운명의 차이는 뭘까요?
음 우연은 스쳐지나가는 거. 운명은 뒤돌아보게 되는 거. 결국 우연을 붙잡아야 운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멋있네요. 역시 아트팀.

그럼 이제 에디터 이윤서가 아니라, 사람 이윤서에 대해서도 조금 궁금해지네요. 본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고민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이것저것 사소한 것까지 다 고민하거든요. MBTI가 N이라 그런 걸지도…?
가장 최근에 했던 고민은?
진로요. 3학년이 되다 보니 주변 친구들이 교환학생을 가거나 인턴을 하거나 시험을 준비하더라고요. 다들 각자의 길을 가는 느낌인데, 저만 멈춰 있는 것 같아 불안했어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민이죠. 아직 어리잖아요.
맞아요. 근데 어느새 후배도 두 학번이나 생겼고, 주변에서는 ‘이제 고학년이네, 곧 졸업이네’ 이런 말들이 들리니까 괜히 더 초조해져요. 여대라서 그런 분위기가 더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칼졸업하실 생각이신가요?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요즘엔 휴학을 할까 고민 중이에요. 진로를 조금 더 진지하게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휴학 추천입니다.

그럼 진로를 떠나서, 본인의 꿈은 뭐예요?
일단은 적당히 돈을 벌어야겠죠. 그 후에는 서점을 차리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장사에 대한 로망도 있었고, 책도 좋아하거든요. 조용한 동네에 작은 서점을 운영해보고 싶어요.
어떤 책을 들여놓고 싶으세요?
중국 문학이요. 제가 중문과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한국에는 소개되지 않은 좋은 중국 책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런 책들을 모아서 소개하고 추천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중국 작가가 있다면요?
장아이링이요. 장아이링 소설에는 뭐랄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개인의 나약함이 잘 드러나 있어요. 또 인간의 욕망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능력도 뛰어나고요. 이제 보통 중국 작가하면 가장 유명한 게 루쉰인데, 루쉰이 사회 전반의 계몽이나 변혁을 이야기한다면 장아이링은 개인에게 집중해요. 저는 개인에 집중하는 게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장아이링은 처음 듣는데,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에디터명이 ‘낭만이’인 이유는 뭔가요?
그냥, 귀엽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풍물패에 들어간 뒤부터 이 단어가 더 마음에 와닿았어요. 낭만이 한자로는 ‘물결 랑(浪)’과 ‘흩어질 만(漫)’인데, 사실 이게 로망을 음차한 말이거든요? 그런데도 한자의 의미가 얼추 맞고, 한자 그 자체도 멋있어서 좋아요.
낭만이란 뭘까요?
흘러가는 것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거요. 이를테면 눈이 오는 겨울 풍경에 ‘낭만적이다’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장면이 특별해지잖아요. 글쓰기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순간에 의미를 붙잡는 것.
결국 의미를 붙잡아야만 가치가 생긴다는 말이네요. 동의합니다.
에디터 소개글에 보면 ‘달의 뒷면을 보는 연습’이라는 문장이 있던데, 어떤 뜻인가요?
예전엔 인간관계에서 항상 ‘앞면’만 보려 했어요. 밝고 드러난 부분만. 그런데 달도 뒷면이 있잖아요. 빛이 닿지 않는, 울퉁불퉁한 그 면.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누군가의 뒷면까지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누군가의 뒷면이 나 때문에 더 울퉁불퉁해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상대방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뒷면일 수도 있잖아요?
맞아요. 그렇다고 무조건 들추자는 건 아니에요. 다만 사람은 앞면만으로 완전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싶었어요. 저 자신도 그렇고요. 그래서 누군가 제 뒷면을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본인의 좌우명이 뭐죠
음… 없기는 한데, 만약에 만든다면
사랑을 많이 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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