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 공작
부족함마저 품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건만, 나는 도저히 나를 품을 수 없었다.
혹시 아는가. 신촌에는 괴물이 한 마리 산다. 거칠다 못해 각진 피부, 360도로 돌아가는 눈동자, 차라리 더 굽었으면 동정이라도 받았을 어정쩡한 허리에 거추장스러운 꼬리마저 가진.
그럼에도 그는 신촌의 그 어떤 사람보다 신사다. 성인조차 성스럽지 못할 등굣길에서도 눈곱 하나, 눈물 하나 없는 커다란 눈을 비비기보다는 굽은 허리를 더 굽혀가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남긴다. 우연히 지옥 같은 퇴근 시간 지하철을 타게 될 때는 또 어떠한가. 커다란 꼬리를 한껏 말아 1인분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지도 않으며, 혹여나 분홍빛이 어울리지 않은 가벼운 이가 엉덩이를 무겁게 붙이고 있다면 그 매서운 눈을 쓱 들이밀어 공포의 무게감을 알려주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것일 뿐, 그가 신촌의 신사라는 다소 이질적인 호칭을 얻은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는 태초부터 신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년 새롭게 이주하는 이들과 그들을 맞이해야 하는 이들. 거기에 그들의 발걸음을 어떻게든 멈춰 세우려는 수많은 간판까지. 신촌(新村)은 그 이름답게 신선함의 격전지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렇기에 신촌은 일정하지 않았다. 색과 형태, 그것들이 어우러져 흘러나오는 음률의 세기와 진폭까지. 그 어느 것도 동일하거나 머물러 있지 않았기에 신촌은 신선했다.

하지만 본래 가장 밝은 빛이 비치는 곳에 가장 어두운 그림자 드리우는 법. 처음 맛보는 새로움에 취한 신촌의 사람들은 어느새 그들이 마주하는 새로움이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든 세상 빛을 보면 그때부터는 중고인 것이니까. 물론, 신촌의 신선함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다. 수십 개의 중고인이 생겨나도, 수백 개의 신인류가 밀려 들어오는 곳이니까. 사그라든 것은 정작 신촌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신촌인들은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신선함에 그만 질려버린 것이다.
뭐든 반복되면 무뎌지는 법. 학기마다 되풀이되는 어색한 이들과의 설레는 인사도, 거리를 환하게 밝힌 간판들에 몸을 맡기고는 도통 찝찝했던 기분을 풀어보려 한없이 따랐던 술잔에도 예외는 없었다.
처음에는 그토록 새로웠던 것이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렸고, 일상이란 참 피곤한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지치게 했던 것은 한없이 선명한 타인의 빛이었다. 가지각색으로 뿜어대는 빛들은 도통 조화란 것을 몰랐고,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전원 스위치를 누를 이는 당연하게도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그놈의 빛과 공존해 내야만 했다. 4년이란 시간은 길었고, 심지어 모두가 4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신촌인들이 선택한 것은 ‘절제’였다. 최선을 다해 빛나기보다는 최선을 위해 빛나는 삶. 이것은 신촌인들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적어도 신촌의 신사가 등장하기 전까진.
신촌의 신사, 우리의 그이는 어느 곳에서나 배색(配色)이었다.
그는 도통 신선할 줄을 몰랐다. 그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의 색에 가장 어울리는, 그보다 편할 수 없는 색으로 자신의 피부를 칠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신선하지 않아서 그 누구보다 신선했다.
이러한 그를 모든 신촌인들은 하염없이 사랑했다. 아니, 어쩌면 그의 옆에서만큼은 온 힘을 다해 빛나도 되는 자신을 사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우리의 괴물 신사는 신촌에서 가장 밝은 생명체였다. 전쟁이라도 난 듯 앞다투어 빛을 쏟아내는 신촌인들에 둘러싸인 탓에.
그러나 신촌인들은 그만 자신의 빛에 눈이 멀어 보지 못했다.
신사가 피부색을 바꿀 때마다, 피부를 칼로 도려내 그 상처에 펜촉을 밀어 넣고 있었다는 것을.
어쩌면 그래서 그가 그토록 술병을 쥐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취하면 적어도 밀어 넣은 색소를 꾸역꾸역 밀고 나오는 진물에 잠겨 숨을 헐떡대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에도 신촌의 신사는 계속해서 살을 베었다. 괴물로 비치지 않았던 것은 그의 일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그는 도저히 이러한 삶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사실 그도 꽤 사랑받고 싶었다.
하지만, 미치도록 햇살이 따가워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며 걸어가던 아직 무더운 개강 첫 주, 그는 결국 흑백의 피사체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입구에서 주운 그놈의 빌어먹을 깃털 하나 때문에.
아직 남아있는 전공 수업마저 내팽개친 채, 다급히 방문을 닫고 들어온 그는 앞다리를 벌벌 떨어가며 강의실 문 앞에서 주운 깃털 하나를 응시했다. 턱턱 막혀 오는 숨통을 트고자 양다리로 입을 벌리며 억지로 숨을 내뱉은 그는 화장실 거울 앞으로 달려가 몇 번이고 자신의 피부색을 바꿨다.
시작은 깃털 상단의 청록색이었다. 난생처음 마주하는 색이었던 만큼 그는 손에 잡힌 초록색과 하얀색 색소통을 몇 번이고 붓고 나서야 간신히 색을 빚어낼 수 있었다. 그러자 깃털 전체를 감싸고 있던 푸른색이 눈에 밟혔다. 아니, 하얀색이, 또 주황색이, 어쩌면 그 전체가. 밟혔다. 도통 공존하지 않던 색들 탓에 그는 몇 번이고 베인 상처를 펜으로 짓눌러가며 색소 전부를 밀어 넣었다. 너무 빈번하게, 그리고 깊게 벤 탓에 진물이 아닌 고름마저 흘러나왔지만, 그는 여의치 않았다. 그저 베고, 또 쑤셨다.
색소와 고름이 마구 뒤엉켜 어느덧 피부가 새까맣게 타버리고 나서야 그는 고개를 들어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상을 마주했다. 거칠다 못해 각진 피부, 360도로 돌아가는 눈동자, 차라리 더 굽었으면 동정이라도 받았을 어정쩡한 허리에 거추장스러운 꼬리를 가진. 영락없는, 괴물.
괴물은 그만 모든 색소 통을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토록 처절히 모았던 색들이 눈물에 점차 씻겨 내려감에도 그는 계속 울었다. 어느덧 울다 지쳐 잠이 들어버린 우리 그이는 과연 알고 있을까.
희망이란 착각은 그 높이만큼이나 가파른 곳에 있다는 것을.
신촌의 괴물은 침대에 똬리를 틀었다. 해와 달이 지났고, 분명 그의 눈은 마냥 감겨있지 않았으나, 꼬리는 여전히 말려 있었다. 몇 차례 연락이 오기도 했건만, 그는 너무나 두려웠다. 빛으로 가려지지 않을 자신의 몰골을 바라보는 신촌인들의 눈동자가 말이다.
재차 해와 달이 지고,
그는 마침내 거리로 나아갔다.
어느새 거리에는 그가 상상조차 하지 못할 화려한 색의 깃털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혹시 이거 버리시는 건가요?”
“당연하지? 요즘 이놈의 깃털 때문에 난리도 아니야. 허구한 날 휘날리고, 참 골치 아파 죽겠어.”
“그럼… 제가 좀 챙겨가도 될까요?”
“어? 학생이 이거 챙겨서 뭐 하게.” “…”
“그래, 뭐. 어차피 다 버려야 하는 건데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혹시 아는가. 신촌에는 괴물이 한 마리 산다. 거친 흑백 피부와 그 틈새에 박혀 있는 형형색색의 깃털들, 어느새 더 굽어버려 이제는 동정을 사고도 남을 허리와 푸석푸석하게 말라비틀어진 꼬리까지.
“어디야?”
다행히 사람들은 아직 그를 찾았다. 아무렴, 신촌의 신사는 어디 쉽게 찾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이는 옅은 신음과 잔뜩 뻣뻣해진 허리를 펴며 전화기에 꼬리를 뻗었다.
“집이지.”
“뭔 소리야. 우리 지금 10분 뒤에 종강 총회인 거 몰라?”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됐나.”
“야, 이 새끼야. 술이 아무리 좋아도 날짜는 좀 세어 가면서 쳐먹든가 해야지. 나이 먹을 대로 쳐먹고 그게 뭐 하는 짓이냐. 됐고, 빨리 정신 차리고 튀어 와.”
“나 몸이 안 좋아서 못 갈듯. 그냥 너희끼리 놀아.”
“지랄. 내가 보고 싶어서 부르겠냐. 후배들이 보고 싶다잖아.”
“선배! 오시는 거 맞죠?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이따 꼭 뵐게요!”
“뭐야?”
“아, 너 이번에 들어온 공작 알지. 이놈 보통 싹싹한 게 아니더라. 벌써 새내기 환영회에 얼굴 비춘 우리 동기들이랑 전부 안면 텄어. 너 빼고, 새끼야. 그러니까 빨리 튀어와. 알겠어?”
“어, 어. 갈게.”
나갈 채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잠그자 문득 어느새 기억조차 사라진 자신의 집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린 찬란한 빛들의 향연이었던 그의 모습, 사람 하나 없는 집임에도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현판까지. 이 모든 것들을 찬찬히 쓸고 내려오던 그의 시선은 한 곳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것은 수많은 깃털들이자, 수틀린 미련들이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져보겠다고 발버둥 치던 지난 순간들이, 그럼에도 계속해서 무너졌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창문에 붙어 있었다. 피부를 도려내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무언가를 꽂을 만큼 깊이 파내는 법은 몰랐기에, 그는 그저 평소보다 많은 살을 도려냈다. 접착제는 필요 없었다. 그의 피부는 온통 끈적거리는 고름으로 뒤덮여 있었기에.
그렇다. 나는 도저히 나를 품을 수 없었기에, 나를 덮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 미련은 나를 모조리 덮어내고도 덮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 둘 미련들이 창문에 자리를 잡았다. 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토록 나를 숨 막히게 하던 것은, 그토록 나를 짓누르던 것은, 무엇보다 나를 부정하게 한 것은 내가 그토록 염원했던 이 알록달록한 미련들이라는 것을.
“나 오늘 못 갈 것 같다. 다음에 보자.”
혹시 아는가. 신촌에는 괴물이 한 마리 살았다. 몇 명을 잡아먹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짙은 피비린내가 배 있던 거친 피부, 도통 햇빛을 보지 못했는지 어느새 흔적만 남고 퇴화해 버린 커다란 눈구멍, 그리고 마치 살인범의 시그니처와 같이 어딜 가든 남아있던 그의 불그스름한 깃털까지.
하지만 정작 실제로 괴물을 본 신촌인은 드물었다.
그저 그들만의 신사를 앗아간 그이를 원망했을 뿐.



글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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