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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문예> 11월호, 불조심

Editor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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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다시 돌아온,
신촌문예잔치가 제공하는 북 큐레이션 서-비스입니다.

 

new! 2025

신촌문예

11월호

<불조심>


11월, 가을이라기엔 한 박자 느리고 겨울이라기엔 반 박자 빠른 시간. 잔치는 이제 막 난방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한 방 안에서 책장을 넘겨봅니다. 창밖에는 바스락 거리는 단풍이 도보를 물들였네요. 사그락 페이지 소리와 달큰한 감귤 내음이 솔솔…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고 맙니다. 저런! 책장이 난로의 열기에 노릇해지고 있지는 않은가요?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는데요? 맞아요. 바야흐로 불조심의 달입니다. 위험한 건 찬바람이 아니라 무심코 열을 올린 전기 난로와 가스레인지죠!

마음도 마찬가지랍니다. 짓궂은 외부의 소란보다 위험한 건 달아오른 마음이지요. 적절한 온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때로는 불타는 그것에 몸을 던져보는 것도 재미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떤 책은, 독자의 마음을 들끓게 만들어 이야기 속으로 퐁당 빠지게 만들고 말아요.

그래서 11월의 신촌문예는 ‘불조심’을 주제로 준비했습니다. 에디터들이 준비한 저마다의 책에서는 무엇이 불타고 있는지 찾아볼까요? 활활 타는 장작은 번개탄 같은 사랑이기도 했다가, 빛나는 절간이었다가, 지옥의 형상이나 칼같은 문장으로 변모하기도 할 겁니다. 조심하세요. 무엇이든 한 번 빠지면 나도 몰래 불구덩이로 걸어 가고 있을지 모르니까. 낙엽같이 버석해진 마음에 불을 지필 에디터의 큐레이션을 만나 보아요. 

 

함께 할 에디터

 

 

낭만이

모두가 ‘동시대’ 문학을 읽을 때, 고고하게 이미 죽은 지 한-참 된 작가들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미술사학 교양 수업에서 들었던 “젊을 때 고전을 읽어두어야 해”라는 말 때문일지도.

고전이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비주

결국 삶과 사랑은 문학이 있어야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공대생. 숫자보다 글자가 좋다.

세상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 책을 읽는다.

좋아하는 것도 하고싶은 것도 많아 걱정이 태산이지만, 하나를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하겠다는 사무라이 정신으로 살아간다.

 

 

정향

민화보다는 만화에 더 관심이 많은 동양화과 재학생.

어릴 적부터 인터넷과 그것이 조달하는 일본 미디어에 중독된 탓에 독서 취향도 일문학에, 그중에서도 날것의 소재로 강한 자극을 주는 이야기에 편중되어 있다. 

국내 문학과 일본 문학에서 각각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김사과와 무라카미 류.

 

 

 

빈정

지적 허영, 빌린 책 산책시키기… 모두 본인을 위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잡식 인문대생.

내면을 파고들다 못해 꿰뚫리는 문장을 좋아한다.

선호 장르는 고전 문학과 평론집. 잘 쓰인 문장을 삼키고 싶은 마음에 필사를 시작했다.

적절한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지만, 늘 어렵다. 

읽은 책은 왓챠피디아에 기록하는 편.

 

 

 

11월의 서가

궁금한 책을 눌러 바로 확인해보세요!

낭만이 비주  ⛩️정향 빈정

 

 

낭만이’s Pick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내용 없음)

사랑은 자기 파괴적인 감정

어떤 감정은 너무나 뜨거워서, 그 열기에 휩싸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한 마리 나방처럼 불에 타죽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 불꽃에 이끌리고 마는 것이 인간 본성일지도 모른다. 사랑과 증오가 함께 뒤엉킨 불같은 사랑. 1847년 발표 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는데, 그 횟수만 10차례 정도이다. 오랜 시간 고전-명작으로 사랑받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미친 도파민을 자랑하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애증 서사를 살펴보자.

고아로 리버풀을 떠돌던 히스클리프가 언쇼 가에 들어오게 되면서 언쇼 가와 린튼 가 사이 2대에 걸친 애증이 시작된다. 히스클리프를 아끼던 언쇼 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캐서린의 오빠 힌들리에 의해 학대받기 시작한 그를 구하기 위해 캐서린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낸다. 에드거 린튼과 결혼해 린튼 가의 재산으로 히스클리프를 지켜내겠다는 것.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사이의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캐서린을 향한 증오와 복수심, 그리고 사랑은 두 가문을 2대에 걸쳐 붕괴시킨다. 그 둘의 불같은 사랑을 동경하며 ‘나도 이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 하다가도… 역시, 이 정도의 도파민은 책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이내 마음을 접어본다.

“당신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었어. 당신 혈관에는 분명 얼음물이 흐를 거야. 하지만 내 피는 끓고 있다고요. 당신이 그렇게 냉정하게구니까 피가 끓어올라 미칠 것 같아.” p. 231

“널 용서하는 것도, 네 두 눈을 바라보는 것도, 그 여윈 손을 만지는 것도 모두 괴로워. 내게 다시 키스해줘! 하지만 네 눈을 보이지는 말아줘! 네가 내게 한 짓은 용서할게. 나는 나를 죽인 너를 사랑해. 하지만 널 죽이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어. 절대로!”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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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s Pick

『맥베스』, 윌리엄 세익스피어

(내용 없음)

‍♀️ 그를 지옥 불로 인도한 것은 운명일까, 자유의지일까

한 인간이 욕망에 눈멀어 지옥 불에 서서히 타들어 가는 줄거리도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클리셰이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는 그 클리셰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절대군주가 된다는 예언을 듣고 혹하지 않을 인간이 어디 있을까? 어느 ‘추하고도 아름다운 날(So foul and fair a day)’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는 세 명의 마녀에게서 친구 뱅코와 함께 예언을 듣게 된다. 그 예언은 맥베스가 장차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를 것이며, 뱅코의 후손들 또한 왕이 된다는 것. 그러나 예언은 그저 결과만을 알려줄 뿐,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은 알려주지 않는다. 맥베스가 택한 과정은 살인이었다. 찬탈을 위해 선왕인 덩컨을 죽인 맥베스는 예언대로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왕관은 그 무게만큼이나 많은 피를 필요로 하는 법. 맥베스는 뱅코와 뱅코의 아들, 그리고 맥더프 일가에게까지 칼을 휘두르게 된다.

권력을 위해 모두를 말살시켜 버리겠다는 맥베스의 행동을 본다면, 피도 눈물도 없는 비범인 일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살인의 죄책감과 또 다른 예언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결국엔 스스로 파멸하고 마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일 뿐. 예언이 실현되는 과정에는 모두 살인이라는 ‘의지’가 작용한다. 과연 맥베스를 지옥 불로 인도한 것은 운명일지, 자유의지일지.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말이 있듯, 우리 몸을 태우고 있는 이 불이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지핀 불이 아닐지 생각해 보자.

 

맥베스: 네놈은 헛수고를 하고 있다. 네놈의 날카로운 칼은 공기만을 벨 뿐, 내 몸에 상처를 입힐 수는 없을 것이다. 네놈의 칼로는 베기 쉬운 놈들이나 베어라. 나는 마력의 보호를 받는 생명을 지녔으니 여자가 낳은 자에게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맥더프: 네놈의 마력이라는 것도 쓸데없는 것. 네가 줄곧 섬겨 온 그 악령에게 물어봐라. 맥더프는 달이 차기 전에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나온 사람이라고 알려 줄 테니.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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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s Pick

『아기부처』, 한강

(내용 없음)

영원히 타오르는 불은 존재할 수 없기에

차가운 불이란 성립할 수 있는가. 매우 뜨겁고 강렬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는 차가움을 자신의 무기로 두기도 한다. 아기 부처에서 주인공은 ‘차가운 불’ 같은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졌다고 할 수 있을까, 글에서 두 사람 사이의 뜨거운 감정은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서로의 결점을 알아차리고 매력을 느껴 연애하고 결혼에 이르렀으나, 결국 남자는 새로운 사람과 만남을 가진다. 그는 새롭게 불타는 감정에 이끌려 신선한 끌림을 주는 사람에게로 가지만 새로운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자의 흉터에 경악하고 다시 큰 상처를 내며, 철저하게 버린다. 내쳐진 남자는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 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과오를 질책할 수 있을까. 한 번 흉터가 생긴 사람은 영원한 불안에 시달릴 운명을 가진다. 수려한 외모의 아나운서로 인기 있는 남자는 어린 시절의 사고로 목 밑의 온몸에 흉터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평생의 콤플렉스로 자신을 괴롭게 한다.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있어서도, 흉터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을 지속적으로 불같이 사랑해 줄 사람만을 찾지만,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자신의 흉터를 받아들이지 못한 남성은 결국 붕괴한다. 돌아온 남자에게 아내는 그의 옷을 정리하고 터진 입술에 연고를 바른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은 세상에 없다. 자신의 흉터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온전한 나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 또한 없다. 하여 항상 불조심, 잠깐의 불씨라도 모든 감정은 유한하다. 모든 감정이 지나간 잿더미 위에서도 온전히 나를 위해 마음을 내어줄 사람은 존재할까.

 

마치 생시에 본 부조리한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듯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기침이 게워져 나오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고 뒤돌아서자, 내 검은 그림자가 어두운 거실 바닥을 지나 맞은편 벽까지 길게 구부러져 있었다. p.83

겨울부터 저 날카로운 솔잎들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같은 푸른색이지만 분명히 달랐다. 방금 나온 어린 싹 같은 연푸른빛이 생생하게 차올라 있었다.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 p.131

그는 뒤돌아보는 것을 싫어했다. 그를 후진시킬 수 있는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내면에는 불이 있었다. 모순되는 말 같지만 바로 그 불 때문에 그는 냉정할 수 있었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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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s Pick

『불꽃놀이』, 오정

(내용 없음)

불꽃을 머금은 투명한 물의 세계

작품에서 인물들은 대체로 삶의 중심에서 비켜나있지만 그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복잡하게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극복하려고 발버둥치는 여느 인물상과는 다르다. 주인공 영조와 관희는 아직 어린 학생이다. 할머니의 닭 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시내의 약국에서 일하며 외부 세계에 대한 특정한 성찰이나 비판의식 없이 매일의 일과를 수행한다. 이들의 삶은 매우 일상적이며 누군가의 실종이나, 갑작스러운 상실과 같은 변화를 겪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미성숙한 존재로서 글이 전개되는 동안 자신의 세계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자신도 모르는 새 마주하는 세계의 해상도를 높여나가는 과정에 있다. 달걀로 시작해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닭의 소재는 결말 부분의 처절한 죽음으로 완결된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죽은 사람들은 무덤에서 다시 일어서지 않으며 현재 삶에서의 상실은 어떤 방법으로도 복구할 수 없다. 영조는 닭을 죽이며 이 사실을 깨달았을까, 변화 없이 계속되는 외부 세계와 세밀하게 묘사된 닭의 죽음은 대조된다. 읽으면서 불꽃놀이의 이미지와 흩날리는 닭 털의 이미지가 겹쳐 보여 인상적이었는데, 함께 읽고 감상을 공유해달라. 같은 작가의 잘 알려진 소설인 중국인 거리에서 노란 해인초 냄새의 묘사가 큰 인상을 남겨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불꽃놀이 역시 읽는 내내 매캐하거나 탁한 도시의 공기 냄새를 느낄 수 있다. 밀도 높은 감각 묘사가 읽는 내내 온 신경을 지배한다. 큰 하이라이트 없이 충돌과 감정이 층층이 쌓이는 특유의 구조와 답답한 후각의 묘사는 조화롭다.  

 

강 쪽에서 또다시 불꽃이 오르고 외침이, 탄식이, 흐느낌이, 정욕과 혼란으로 가득 찬 어둠을 찢으며 흩어졌다. p. 194

세상 어딘가에서 나무와 함께 나이 먹어갈,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감나무가 별반 쓸모없고 집을 한층 음습하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자는 그것을 베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계사쪽에서 죽어가는 닭의 비명이 들려왔다. 대낮부터 족제비가 닭을 물어갈 리는 없다. 필시 늙은 수탉의 짓거리이리라.  p. 163

보아라. 이게 인간이다. 열어젖히고 훼손된 무덤 앞에서 생몰 연대와 행적을 적은 지석(識石)과 함께 남은, 두 눈에 흙을 담고 누운 백골들을 가리키며 할아버지는 말했었다. 삶을 사는 것과 삶을 아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p.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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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향’s Pick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내용 없음)

⛩️ 잿더미의 형태로 완결짓는 소멸의 아름다움

본 소설은 1950년, 교토의 한 젊은 승려가 일본의 기념비적 사찰인 금각사를 불태운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해당 사건의 범인을 모티브로 하는 화자이자 주인공은 어릴 적부터 금각사를 절대적 미의 기준으로 둠과 동시에 자신의 손에서 불타야 할 것으로 규정한다. 가질 수 없는 동경이자 열망의 대상을 직접 훼손하고, 그를 통해 소멸이라는 주관적인 미학을 덧씌우며 소유욕을 해소하고자 한다. 

화자는 방화를 저지르기 직전까지는 반달리즘이 주는 효능감에 도취된 모습을 보이다가도, 그 후에는 재가 되어 싸늘하게 식은 금각사처럼 차분히 식은 채 어딘가 초연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방황을 끝마치고 정적인 성장을 이뤄낸 듯한 모습은,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의 범인이 범행 이후 자살 시도를 했던 것과는 대조된다. 

방황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소마이 신지의 영화『태풍 클럽(1985)』에서도, 일련의 사건들이 지나간 후 금각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해당 작품과 『태풍 클럽』이 같은 미학을 공유함을 암시한다. 이처럼 근현대 일본 창작물에서 유한성을 가진 미에 대한 메타포로 사용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참고삼아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할수록 나는 유쾌해졌다. 지금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몰락과 종결은 그리 멀지 않았다. p.204

그들은 자기들 곁에서 태연한 얼굴을 한 미래의 범인이 화롯불에 손을 쬐고 있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p.205

나는 담배를 피웠다. 한바탕 일을 끝마치고 한 대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듯이 살아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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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향’s Pick

『미나』, 김사과

(내용 없음)

가질 수 없는 사랑을 향한 증오의 불길

수정은 미나를 열망한다. 미나의 취향, 미나의 부모님이 가진 인문학적 감수성, 그 밖에도 미나는 가졌지만 수정은 가지지 못한 모든 것들을 열망한다. 해소할 수 없는 열망은 곧 증오로 번진다.

김사과는 중산층이 느끼는 계급적 열등감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의식주나 생존과는 직결되지 않지만 열망하고자 하면 콤플렉스가 되는 부분들. 하지만 겨우 그런 것들로 비참함을 토로하기에는 배부른 소리가 되는 것들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지는 작품마다 다르지만, 『미나』에서는 콤플렉스를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것을 택하기보다는 열망하는 대상을 향해 칼을 쥐고 내달리는 것을 택한다. 

 

미나의 특별한 재능이 수정의 가슴을 찌르고 그래서 수정은 숨을 쉴 수가 없다. 가지고 싶다고, 수정은 생각한다. 좀더 가지고 싶다. 가지고 싶다. 가지고 싶다. 가지고 싶다. 오직 그 문장이 수정의 머릿속에서 무한반복된다. 다른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룰 수 없는 목표는 분노로 바뀐다. p.34

나는 사람이 싫다. 멍청하니까. 멍청한 애들이 싫다. 왜 사람들은 죽고 싶어하지? 멍청해서 그렇다.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실용적이고 효율적이다. 나는 합리주의자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화가 난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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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정’s Pick

『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내용 없음)

불타는 헛간, 존재하지 않는 귤, 사라진 그녀

하루키 특유의 땅에서 5센치 쯤 떠다니는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단편선. 『반딧불이』,『헛간을 태우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춤추는 난쟁이』, 『세 가지의 독일 환상』, 『비 오는 날의 여자 #241⋅#242』까지 총 6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에디터가 단연 좋아하는 작품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의 원작이기도 한『헛간을 태우다』.  간략한 소개는 아래와 같다.

마리화나 연기가 자욱한 방에서 헛간을 태운다는 수수께끼의 취미를 밝히는 남자. ‘나’는 그가 불태운 헛간을 찾아 몇날 며칠을 달리지만 결국 실패한다. 사실 그는 ‘나’가 각별히 여기는 여자의 연인이다. 팬터마임을 공부하는 그녀는 언젠가 ‘나’의 앞에서 팬터마임을 선보인 적 있다. 그녀는 귤을 먹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귤은 존재하지 않았다. 팬터마임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 고로 그녀에게 존재 여부는 중요치 않다. 상상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전부다. 어쩌면 그녀의 연인, 남자가 불태우는 헛간도 마찬가지. 존재와 비존재가 교묘하게 뒤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설은 동시에 단순한 환상 서사를 벗어나 지극한 상실의 감각을 일깨운다. 첫 수록작『반딧불이』는 이후 장편『노르웨이의 숲』의 초안이 되기도 했으니 참고할 것! 여섯 편 각각 저마다의 개성으로 짧고 굵게 하루키의 정수가 느껴진다. 책이 두껍지 않으니 하루키 입문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그 상상 속의 귤을 하나 들고 천천히 껍질을 벗겨, 한 알씩 입에 넣고 씹다가 찌꺼기를 뱉어내고, 한 개를 다 먹으면 찌꺼기를 모아 껍질로 싸서 오른쪽 통에 넣는다. 그 동작을 끝없이 되풀이한다. p.53

저는 판단 같은 거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태워지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아시겠어요? 그곳에 있는 것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p.68

밤의 어둠 속에서, 이따금 나는 불에 타 허물어지는 헛간을 생각한다.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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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정’s Pick

『슬픔을 공부하는 슬』, 신형

(내용 없음)

♨️ 문장은 냉철하므로 뜨겁게 타오른다.

바야흐로 냉혈한의 시대. 사회의 슬픔은 쉽고 빠르게 잊혀지고, 우리는 쉬이 비겁한 사람이 된다. 신형철은 그런 세상에 문장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감정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 납작하게 표현하면 한없이 납작해지고, 복잡하게 표현하면 한없이 꼬이고 만다. 특히 슬픔은 그 안에 켜켜이 쌓은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기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감정에 휩싸인 분노, 혹은 밑도 끝도 없는 우울이 되고 마니까. 그러나 이 책 만큼은 깊은 언어로 정확한 슬픔에 다가간다. 그리고 보편적 인간성을 향한 소호로써의 슬픔은, 무엇보다 강한 불꽃으로 타오른다. 

식견이 부족한 에디터는 아직 좋은 문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노라면 좋은 문장 -나아가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에 다가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꾸미거나 감성과 울림에 기대지 않아도, 마음을 정확하게 써내려간 문장은 필연적으로 냉철하다. 그리고 그런 문장은 어떤 감정보다 진실되고 뜨겁다. 평론집이지만 작품을 읽지 않아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니 과감하게 펼쳐보자.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에 진저리 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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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우리는 11월에 또 만나요, 안녕!

 

참여한 잔꾼들

낭만이낭만이 비주비주 정향정향 빈정빈정
왕 잔치
AUTHOR PROFILE
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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