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문예> 10월호, 딴짓
2025년 다시 돌아온,
신촌문예는 잔치가 제공하는 북 큐레이션 서-비스입니다.
new! 2025
신촌문예
10월호
<딴짓>
으아아아아아!!!!!! 공부하기 싫어!!!!!!!!! 아무것도 하기 싫어!!!!!!!
완연히 못나지는 10월의 어느 안멋진 시험날입니다. 시험은 왜 늘 날씨가 좋은 때에만 치는 것 같은지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가을 하늘 아래 누워 있고 싶은 중간고사 기간입니다. 그렇지만 정신을 차려야지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두달 전 수강신청에 실패한 나를 살려주기 위해서라도… 자 다시 교재를 봅시다. 아 근데 진짜 너무 하기 싫은데 오분만 놀까요? 오분, 오분 정도면 뭐 괜찮잖아요. 그런데 이번엔 핸드폰 말고 책은 어떠세요? 원래 시험기간 땐 전공책 빼곤 다 재밌잖아요.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더라도, 지금 읽는 건 조금 다를 거예요. 저희가 추천하니까요.
10월, 이번 신촌문예 주제는 ‘딴짓’입니다. 여러분의 ‘딴짓’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어줄 책을 엄선합니다. 머리를 싸매면서 읽어야 하는 복잡한 스토리라인 대신, 간단하게 간식처럼 꺼내먹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하는데요. 앗, 벌써 시험이 끝났다구요? 그럼 일단 사 놓으세요. 방금 본건 그저 ‘중간’고사잖아요.
함께 할 에디터
이연
평소에는 남은 페이지 수를 의식하며 읽지만,
어느 순간 몇 페이지에 있는지 잊을 정도로 책에 빠져드는 순간을 사랑한다.
어릴 때부터 책의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읽는 습관이 있어 독서 속도가 느리다.
또 그만큼 깊게 몰입해 현실로 돌아오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책장을 넘기는 작은 노력만으로
여러 간접 경험을 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책을 읽는 것이기도 하다.
폴
언론홍보영상학부 재학생이지만 소설 같은 현실보다는
아예 소설 속 활자에 몰두하는 경향이 짙은 스물셋.
천부적 집돌이로 평생을 살아오며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던 중, 우연히 마주한 독서의 매력에 빠져버린 탓에 아직 그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책을 사랑한다고 스스로 자신 있게 떠벌리면서도 정작 손에 가득 들고 있는 것은
지극한 편식의 결과물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요즘은 다방면에 시선을 두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초록
책 읽는 일은 산책과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거닐다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한 사람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빙빙 맴돈다.
말들을 꼭꼭 씹어보고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려본다.
문장이 그리는 이미지를 상상하고 머리 꼭대기 공기 다발 위에 수채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버릇 때문에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다.
다독가라 할 순 없지만 애독가라 할 순 있겠다.
형태가 단순한 듯 보여도 꼭꼭 씹어 삼켜야 하는 시집 읽기를 좋아한다.
팬지
글을 쓰지만 읽는 데는 게으른 편. 다만 그만큼 한권 한권을 묵직하게 읽어낸다 자부한다.
경영학과 학생으로서 읽는 글들이 전부 비문학이라는 생각에,
세상 소심한 것들을 사무라치게 사랑하고, 아파하는 문학을 사랑한다.
주의력 결핍인가 난독증인가 싶을 정도로 산만한 독서 스타일을 가지지만서도,
마음에 꽂히는 한 문장을 며칠이고 머리속에서 굴려 읽기도 한다.
책이 구겨지는 것을 아주 싫어하며,
건조하고 냄새나지 않는 손으로 흰색 빳빳한 종이를 쓸어 넘기는 일에 희열을 느낀다.
다만 손을 자주 씻어 손이 늘 촉촉하다. 어쩌라는 건지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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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 🍂폴 🌱초록 👖팬지
- 🍵 『별 거 없습니다, 후루꾸입니다』, 후루꾸
- 🍵 『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 🍂 『서른 살의 강』, 은희경 외 9인
- 🍂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 🌱 『감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박승열
- 🌱 『사랑에 관하여』, 안톤 체호프
- 👖 『흰』, 한강
- 👖 『구관조 씻기기』, 황인찬

▸『별 거 없습니다, 후루꾸입니다』, 후루꾸
🍠 지금 내게 필요한 말은, 어려운 책이 아니라 누군가의 블로그에 있었다.
‘별거 없다’는 표현이 작가 본인과 글을 겸손하게 낮춘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글을 읽다보면, ‘(원래 인생 그까이꺼) 별거 없습니다.’라고 건네는 말이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작가는 덤덤한 말투로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 속에서 얻은 성찰을 유쾌하게 전한다. 원래 블로그에 쓰인 글을 엮어 만들어진 책이라 딴짓하며 한두 장 가볍게 넘기기에 적합하지만, 드문드문 섞여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의 생각들은, 그걸 읽는 잠깐의 짧은 시간보다 더 오래 남는다.
어쩌면 삶이란 깊은 고민과 생각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별거 없는’ 무언가이고, 그렇기에 더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 아닐까.
사실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트랙 위를 뛰는 걸 보며 그걸 쫓아 뛰려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맞죠?) 우리는 비교하고 미워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맞죠? 맞죠? 맞죠?) p. 169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존재들이 계속 나올 겁니다. 틀려놓고 당당하게 소리치는 사람들이요. 거기에 하나하나 휘둘릴 필요는 없어요. 그냥 본인 생각대로 사세요. 알겠죠? p. 171

▸『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 잠시 딴짓하다보면 어느새 영화의 다음 내용을 들을 시간이 된다.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된 동성애자 몰리나와 사상범 발렌틴은 함께 감옥에 갇힌다. 감옥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몰리나는 발렌틴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줄거리를 들려준다. 그러다 잘 시간이 되면 이야기는 잠시 끊겼다가, 다음 날 계속된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지만 내일 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발렌틴처럼, 공부하다 잠깐의 쉬는 시간 동안 이들의 이야기를 엿듣던 나도 뒷 내용을 상상하며 다시 해야 할 일로 돌아간다. 이야기 사이의 모든 호흡과 공백에는 두 사람 간 대화의 생생함이 들어있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또 다음 영화가 시작됨에 따라, 두 사람의 관계도 점점 달라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모든 치부를 받아내고, 내 목숨까지도 기꺼이 걸어줄 수 있는 것.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몰리나는 행동으로 직접 보여준다.
사랑은 바로 그런 거야. 사랑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아름답게 하지. p. 163

▸『서른 살의 강』, 은희경 외 9인
💌 한없이 불안하기만 한 20대에게 보내는 전언- “어쩌면 괜찮아질지도 몰라”.
바야흐로 ‘조락’의 계절이다. 우수수 떨어지기 직전에서야 비로소 노란 물이 드는 은행잎의 향연 가운데서 한 해가 차츰 기울어간다. 일 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지나온 나날들을 한 번씩 되돌아보기 마련이다. 아무렴 고단했을 것이다. 이리저리 치이고 치여 쉴 틈 없었을 것이다. 분명 숨 가쁘게 살아왔건만, 그렇게 달려서 과연 남은 것이 무얼까 생각했을 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을 수도 있겠다. 그럴 때 밀려드는 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 무거운 후회다. 나름의 기대를 하고서 보낸 그동안의 시간이 그저 ‘딴짓’이었던 것만 같은 허무와 불안이다.
현시점에서 이 책을 쓰는 데 힘을 보탠 9인의 작가들은 한국 문학의 ‘축’이요 엄연한 ‘기성 문인’으로 분류되지만, 책이 나왔을 때(1996년)까지만 해도 그들 역시 이제 막 ‘젊은 작가’의 태를 간신히 벗어난 시점이었을 테다. 소설가라고 해서 ‘서른의 고민’에서 예외였겠는가, 그들 역시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밤을 지새우고 가늠할 수 없는 미래를 걱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9편의 단편 속에서는 ‘강’처럼 깊고 너른 서른의 고민을 먼저 건너 온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당부하고 있다. 그것은 결코 ‘딴짓’이 아니었노라고. 잘못될 것 하나 없으니까, 너무 겁먹지 말라고. 나도 너만큼이나 외로웠던 적이 분명 있었노라고…
서른 살이 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느 나이나 마찬가지로 서른도 외로운 나이이다. p.38
스무 살 땐 누구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 식대로 살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검은색 트렁크를 들고 아주 멀리 떠나기만 하면 완전히 다른 생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서른 살에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먼 곳에도 같은 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p.81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 공상 속을 누비며 끝없이 불안해하는 우리 시대의 청춘에게.
책상 위에서 벌이는 내 최대한의 딴짓은 ‘멍때리기’다. 고상한 말로 하자면 ‘공상’ 정도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공상의 본질은 미처 가닿지 못한 세계에 상상으로나마 두 발을 디디거나, 아니면 이미 거쳐온 세계를 잘근잘근 반추하는 일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에 양발을 위태로이 걸쳐 놓은 듯한 모양새인 나의 공상은 그 끝이 항상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서른’. 이십 대를 한창 관통하고 있는 나에게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시점이자 ‘서른 즈음에(김광석)’에서와 같이 젊음 속에 자리한 하나의 모뉴먼트적인 지점으로만 가늠되는 단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은 결코 ‘서른’을 길가에 꽃잎이 즐비한 시절로 노래하지 않는다. 서른의 미래는 불안하고 지나온 과거는 혼란스러워 끝내 남는 것이라고는 마주한 현실의 고단함 뿐이다. 그러나 거침없는 이십 대의 생(生)이 돌풍처럼 지나가고 흔적처럼 남겨진 세월의 찌꺼기를 기꺼이 마주하는 시인의 자세는, 무람없이 그들을 대하고 또 말하는 시인의 표현은 외려 우리의 가슴 속에 긍정적인 생채기를 남긴다. 곪아 문드러진 부위에 일부러 상처를 내어 결국에는 낫게 하듯이, 시인은 우리네 삶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미처 터져 나오지 못하던 것들’을 시의 언어를 통해서 마치 대속하듯 분출시킨다.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리라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 p. 10-11

▸『감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박승열
🥔 일상의 껍질 벗겨내기
감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감자를 본다. 어라, 혹시 내가 감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감자가 나고 내가 감자인 게 아닐까? 감자에겐 촉촉한 뇌가 있고 나에게는 촉촉한 속만 있을 뿐인, 그런 세상에서 나는 나와 내 종족만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지성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트루먼 쇼 속 주인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시험 기간에는 이런 엉뚱한 상상마저 즐겁다. 고백하자면 사실 이런 내용이 전혀 아니다. 시인은 감자를 비롯해 오렌지, 커피, 탁자와 같은 일상의 사물들을 낯설게 뒤집어 놓음으로써 묻는다. 우리가 바라본다고 믿는 세계는 과연 실재인가, 아니면 우리가 부여한 의미의 껍질에 불과한가. 그의 시 속에서 사물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나를 향해 되돌아오는 시선이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일상적 사물의 안정된 자리가 흔들리고,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다가온다. 그런 균열 속에서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내가 속한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나를 규정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이처럼 그 의미를 곱씹다 보면 꽤나 심오한 주제 의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시라. 그리고 나의 존재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내가 살아갈 이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어라라, 벌써 시간은 훌쩍 흘러가 버렸고 투명한 창을 너머 저 – 멀리서 아득히 해가 밝아온다. 무엇이든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
조이와 하조와 나는 오렌지의 꿈속에 들어와 있었다 오렌지의 꿈속에서는 오렌지가 주인공이었다 반쯤 찌그러진 오렌지와 껍질이 다 벗겨진 오렌지와 한 조각만 덩그러니 남은 오렌지가 서로를 감각하고 있었고 조이와 하조와 나는 그 사이에 사물로 배치되어 있었다 마치 조이와 하조와 나의 꿈속에서 오렌지들이 사물로 배치되듯이
― 박승열, 「오렌지의 꿈」 부분
전국의 동물어 번역기가 압수된 지 일 년이 지난 날, 나는 멀리서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었다 번역 체계에 대해서는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십대 때 어학원에서 그것을 배우긴 했지만 지식은 통 써먹을 일이 없었다 나는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까마귀 우는 소리가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나와는 다른 종의 생물이 가지는 생경함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된 것이다
― 박승열, 「당신의 언어는 안전합니까」 부분

뚱뚱이와 홀쭉이 / 피고인 / 애수 / 카시탄카 / 검은 수사 / 로트실트의 바이올린 / 상자 속 사나이 / 구스베리 / 사랑에 관하여 / 귀여운 여인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수록▸『사랑에 관하여』, 안톤 체호프
🍓 잠깐의 틈에도 스며드는 삶, 사랑
딴짓하기에는 아무래도 단편집 읽기가 제격이다. 우리의 위대한 거장, 체홉의 단편 선집은 그중에서도 으뜸인 선택일 것이다.
체홉의 단편들은 길지 않다. 그러나 그 짧은 호흡 안에 삶의 아이러니와 인간의 마음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험 공부에 지쳐 무심코 펼쳤다가, 금세 인물들의 허술한 대화나 일상의 풍경 속에 빨려 들어간다. 「뚱뚱이와 홀쭉이」의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에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애수」에서 마부의 쓸쓸한 독백을 마주하면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그는 삶을 거창하게 꾸미지 않는다. 사랑도, 불행도, 기쁨도 모두 일상적인 장면 속에 스며들어 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나른한 만남처럼, 우연히 다가온 사건이 불현듯 전부가 되어버리는 순간들을 그는 놀라울 만큼 담담하게 그려낸다. 바로 그 담백함 덕분에,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 삶의 단면을 슬며시 발견한다.
이 네모난 친구는 책상 위에 올려두고, 틈틈이 한 편씩 꺼내 읽기에 그만이다. 몇 페이지 읽고 덮어도 좋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러 편 이어 달려도 괜찮다. 체홉의 인물들은 우리처럼 허술하고 불완전해서, 언제 다시 만나도 낯설지 않을 테니까!
여인은 웃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두 사람 모두 모르는 사람처럼 말없이 먹기만 하다가 식사 후 나란히 걸어가면서, 어딜 가든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는 한가한 사람들의 농담 섞인 가벼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거닐면서 바다 색이 이상한 것에 대해서 말했는데, 바닷물은 부드럽고 따뜻한 라일락색이었고, 달의 금빛 줄기가 수면에 드리웠다. 무더운 낮이 지나면 얼마나 후텁지근해지는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구로프는 자신이 모스크바 사람이고 인문학을 전공했지만,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사설 오페라에서 노래를 불러 볼까 준비한 적도 있었지만 그만두었고, 모스크바에 집이 두 채가 있다고 말했다······.
―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부분

▸『흰』, 한강
🥼 흰, 깨끗한 것, 고귀한 것, 조용한 것, 기적같은 것, 생명같은 것, 죽음같은 것, 그리고…
소설, 산문이라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는 이 글의 장르에 대해, 책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을 빌려 다시 설명한다.
‘이 책의 끝에 붙일 ‘작가의 말’을 쓰지 않겠느냐고 편집자가 물었던 2016년 사월에,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이 책 전체가 작가의 말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장르는 ‘말’이다. 한두페이지의 짧은 말의 연속.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 소식 이후 새학기 교과서를 받듯이 작가님의 책을 주루루 주문했다. 하지만 결국 완벽하게 완독한 책은 처음 집어 든 ‘흰’ 뿐이다. 희다는 것은 무엇일까. 희다는 것에 대해서는 왜 쓰게 되었을까. 강보, 배내옷, 안개, 각설탕, 눈, 눈송이들, 불빛… 흰 것들을 제목삼아 쓰인 글을 통해 우리는 살갖에 스치는 온갖 흰 것들의 수많은 의미와 상태를 읽는다. 때론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의 신이 나오는 배경색 같기도 하고, 때론 그저 한없이 고요한 눈밭이 떠오르기도 한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 같기도 하고, 빨간 상처를 모조리 덮어 버리는 거즈 같기도 하다.
실제로 북유럽 나라에 옮겨 사는 동안 산책하면서 떠오른 이야기들이 다수 바탕이 된 만큼, 딴짓하는 셈 치고 하나씩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완독. 그리고 그거 아시는지, 이 책에는 도통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 스물 셋, 스물 여섯… 이유는 알 수 없다.
자신을 버린 적 있는 사람을 무람없이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가 삶을 다시 사랑하는 일은 그때마다 길고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버릴 테니까. 내가 가장 약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돌이킬 수 없이 서늘하게 등을 돌릴 테니까. 그걸 나는 투명하게 알고 있으니까. 그걸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p. 97

▸『구관조 씻기기』, 황인찬
💊 느껴진다는 점에서 비현실은 또한 하나의 현실일지도.
짬을 내어 읽는 글이라면, 시만큼 좋아 보이는 것도 없을 것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양의 글, 하지만 시는 아이스크림보단 사탕처럼 사라지지 않고 나다닌다. 그러니 짬이 나면 얼른 시 한편을 입에 넣고 남는 시간동안 오물대기를.
시집을 읽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목 시인 구관조 씻기기를 먼저 몇 번 읽는 것을 추천한다. 필자가 그렇게 읽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몇 번을 거듭해 읽다 보면 현실과 비현실의 묘한 경계에 서 있는 본인을 발견할 것이다. 그 경계에 자리를 잡고 다시 첫 장을 핀다면, 유사한 맥락의 신비로움을 더 기민하게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구관조 씻기기> 속 시들은 특정한 곳으로 강렬하게 전진하기 보다, 차분히 온방향으로 퍼지는, 혹은 채워지는 심상을 많이 가진다. 마치 남몰래 피어낸 향초가 퍼지고 퍼지다 마침내 뒤를 돌았을 땐 온 방이 보라색 연기로 가득 차 있는 기분. 때론 그것이 연기가 아니라 침묵이기도, 시간이기도, 죽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거 아시는지, 책 속 모든 시에는 마침표가 없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누군가의 병문안을 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 차가운 과일 통조림을 들고 병실에 들어섰다 공기청정기가 끝없이 정화시키는 것들로 좁은 실내가 꽉 찼다 // “당신 생각을 오래 했어요 오래전에 나는 아팠어요” / 나는 웃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 큰 웃음이, 갑작스러운 웃음이 끝없이 정화되면서 좁은 실내가 서서히 침묵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는데, // 맞은편에 있는 사람은 웃지 않았다 이걸 먹으라고, 죽지 않은 과일을 내미는 손이 있었다 // 백의의 남자 간호사가 문밖에서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것을 보았다 //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그가 물었는데, 죽은 것이 입에 가득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번식, p.61
가만보니, 이 날씨라도 좋아서 기분이 나은 것 같아요. 우리의 하기싫음을 달래 주듯이요. 어때요, 이 책들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까요? 사실 이 책들, 그냥 앉아서 여유롭게 보면 더 좋답니다. 시험이 끝났다면, 초록빛 갈색빛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잔디밭 앞 벤치에 앉아 책을 펼쳐 보세요. 가을은 그놈의 독서의 계절. 높은 하늘을 가진 온 거리가 당신의 책방입니다.
토론자 명단


[…] 서비스다. 황인찬 시인의 ‘구관조 씻기기’를 소개한 팬지의 글은 https://welcometozanchi.com/19634에서 볼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