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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2025 · 12 · 02

★ 제1회 물건 비하인드 창작대회 ★

Editor 왕 잔치

‘인간의 시야각’. 그러니까 고개를 애써 돌리지 않고서 지각할 수 있는 시야의 범위는 대략 수평으로 180도, 수직으로 120도 정도다. 약속 시간에 늦을세라 뒤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친구가 내 눈앞에 나타나기도 전에 미리 알아챌 수 있는 것도 다 넓은 시야각 덕분이다.

이렇게 넓은 시야를 통해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가지 정보를 받아들인다. 인간의 한쪽 눈이 인식하는 정보가 초당 ‘10억 비트* 이상’이라는 연구도 있을 정도니, 이 정도면 더 보탤 말이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작 우리의 뇌가 처리하는 정보는 초당 ‘10비트 남짓’이라는 사실이다.

*비트(bit): 정보를 표현하는 가장 작은 단위.

위의 설명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거대한 필터가 장착된 더 거대한 정수기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겠다. 위에서는 폭포수처럼 막대한 양의 물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필터를 거쳐서 떨어지는 물의 양은 극히 미미한 정수기 말이다. 콸콸,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각 정보에 비해 뇌에서 처리되는 정보는 기실 한 방울의 낙숫물과도 같은 기묘한 현상. 이제부터 여기에 주목해 보겠다.

 

거대한 정수기(위 그림은 Gemini를 통해 생성되었음)

 

자, 일단 먼저 눈을 감아보자.(앞에서 실컷 시각 정보에 대해 떠들어 놓고서 갑자기 냅다 눈을 감으라니, 어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 정 그렇다면 마음의 눈이라도 감아보도록 하자.)

당신은 지금 신촌 한복판에 서 있다. 빨간 잠망경, 창천교회, 신촌 굴다리…아무렴 어디라도 좋다.

지금부터 한 걸음씩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어보자.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멈추지 말고 또 한 걸음…

수평으로 180도, 수직으로 120도에 달하는 당신의 시야각과 축복받은 시신경은 지금도 수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신촌의 한가운데에서 빨간 잠망경이 뿜어내는 새빨간 존재감은 순식간에 망막을 통과해 시신경을 거쳐 대뇌 피질로 전달된다. (당신이 빨간 잠망경을 상상한 바로 그 순간에도 당신의 오감은 약 ‘1조 비트’에 달하는 정보를 수집했을 것이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옷차림, 머리 스타일…

네온사인, 먹음직스러운 호떡,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보도블럭의 색, 길가에 돋아난 풀포기, 철이 지나 떨어진 은행 알맹이…

 

이처럼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시신경을 관통하지만 정작 우리가 눈치채는 것들은 많아야 두 세가지 뿐이다. 그야 우리는 ‘거대한 정수기’와도 같기 때문이다. 폭포수를 들이부어도 필터를 거치면 한 방울씩 똑, 똑 떨어지는 감질나는 정수기.

 

그렇다면 대체 그 한 방울은 무엇일까?

거대한 정보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뇌가 필사적으로 붙든 하나의 조각은 무엇일까?

광막한 신촌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연유로 그 미미한 조각만을 주목하게 되었을까?

 

이제부터 신촌의 ‘작은’ 조각들에 얽힌 ‘더 자그마한’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자, 냉큼 따라오시라.

 

왕 잔치
AUTHOR PROFILE
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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