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역에 9번 출구를 뚫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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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열차는 다음 열차와의 간격 유지를 위해 잠시 정차 중에 있습니다.
승객들의 속이 타들어 가는 걸 알 턱이 없는 2호선 열차가 잠시 숨을 고른다. H는 전공 수업의 쪽글 과제 하나를 방금 막 제출한 참이다. 시청역에 멈춰 있는 열차와 20분 뒤면 시작하는 수업 사이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승객과 몸집만 한 짐을 들고 탄 승객 사이에 납작하게 껴버린 H는 미적미적 주머니에 손을 뻗어 핸드폰을 꺼낸다.
도착 예정 시간: 4시 20분
그는 50분 남짓한 수업에 20분이나 늦게 된 자신의 처지가 맘에 들지 않았다. 분명 여유롭게 나왔는데. 열차가 제때 오지 않았고 환승도 늦어진 탓이었다. 여유를 어림하는 것조차 어설픈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불평할 수 없었다. 불만을 늘어놓을수록 스스로를 미워하게 될 것을 알았기에.

열차는 느긋하게 신촌역에 다다랐고, 사람은 빽빽했다. 내리겠단 말을 꺼내려 입술을 떼기 바쁘게 쏟아져 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몸이 빨려 들어갔다. 파도에 휩쓸리는 것만 같은 와중에 이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꽤나 복잡해진 머릿속이 무색하게, 두 발은 컨베이어 벨트에 오른 듯 자연스레 3번 출구로 향했다. 그는 이 계단을 올라간 뒤에도 몇 십분은 더 걸어야 했고, 한창 수업 중인 강의실의 문을 열어야 했으며, 눈치 보며 가방을 내려둔 그곳에선 급하게 써내느라 조잡하기 짝이 없는 글을 소리 내 읽어야 했다. 왜 더 일찍 나오지 않았던 건지, 몇 시간 전의 자신이 원망스럽고 한심했다. 설렘에 못 이겨 늘 강의실에 일찍 도착하곤 했던, 한 페이지짜리 과제 하나에도 논문 몇 개를 참고하던 열정이 그리웠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유난히 가파르게 느껴졌다. 끝없이 이어진 계단 앞에 멈춰 선 H는 각각의 목적지를 향해 출구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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