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 박시현, 에디터 물망초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잔치에서 플레이스 팀 에디터 ‘물망초’로 활동하고 있는 박시현입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다니고 있어요.
잔꾼명이 되게 특이한 것 같아요.
물망초가 제 탄생화거든요. 저는 제 탄생화를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데, 그래서 잔꾼명을 지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어감도 예쁘고, 꽃말도 ‘나를 잊지 말아요’잖아요. 여러모로 저를 잘 나타내는 단어라고 생각했어요.
잔꾼 한 줄 소개에도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적혀있던데요.
맞아요. 이게 물망초라는 꽃의 꽃말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제 삶의 가치관과도 굉장히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는 한때라도 인연을 맺고 친분을 쌓았던 사람들이 저를 잊고 사는 게 참 싫거든요. “그 사람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언젠가 한 번쯤은 나와 보낸 시간을 돌아봐줬으면 좋겠다”라는 같은 생각을 평소에도 항상 하는 편이라 그렇게 지었어요. 어쩌면 저를 거쳐 간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마음으로 건네는 당부 같은 말이랄까요.

잔치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셨나요?
대학에 입학해서 1학년을 마치고, 2학년부터는 밴드 활동 말고 다른 색다른 걸 하나쯤 꼭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보고, 인맥도 넓히고, 무언가 같이 만들어가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그래서 학과 홍보방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단체들을 찾아봤는데, 갑자기 시선을 확 사로잡는 모집 글이 있는거예요. 그게 잔치였어요.
처음부터 플레이스 팀이 1지망이었나요?
네. 지원서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플레이스 팀에 눈길이 갔어요.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글을 쓰는 팀이잖아요. 마침 저도 새내기 생활을 마치고 신촌에서의 본격적인 일상을 시작하려던 시점이었으니까, ‘활동을 하면서 나부터가 새롭고 좋은 장소들을 많이 알아갈 수 있겠다’라는 기대감에 지원했어요. 사실 마감 당일 새벽에 급하게 써서 제출했는데, 감사하게도 붙어서 이렇게 활동하고 있네요. 좋은 공간들을 정말 많이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잔치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고, 주변 친구들이 제 글을 보고 “역시 잔치가 쓰는 장소 소개글은 다르다”라고 칭찬해 줄 때마다 아주 뿌듯하고 보람찹니다.
그렇다면 2지망은 아트 팀이었던 거고요.
네. 플레이스, 아트, 피플 이렇게 지망했죠. 피플 팀 같은 경우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불쑥 다가가 인터뷰를 진행할 자신이 도저히 안 서더라고요. 게다가 요즘에는 워낙 길거리 포교나 사이비 관련 이슈가 민감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이상한 오해를 받을 소지도 있을 것 같아서 조금 두렵기도 했고요.
이제 돌아오는 학기부터는 운영진으로 새롭게 합류하시잖아요. 못다 한 에디터 활동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있다면요.
당연히 아쉬운 마음이 크죠. 제가 한 학기 동안 잔치에서 발행한 글이 웹진 두 편이랑 종이 잡지 한 편이 전부거든요. 이제야 겨우 웹 매거진 특유의 문체나 레이아웃 스타일을 조금 감 잡았는데, 운영진 역할을 맡게 되면 아무래도 개인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줄어들 테니까요. 사실 저번에 갑자기 운영진 인수인계 단체방에 초대되어서 깜짝 놀라 여쭤봤는데, 제대로 초대된 게 맞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를 믿고 좋게 평가해 주신 덕분이니까 감사하면서도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렇다면 운영진 하면서도 틈틈이 글을 쓰실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저는 지지합니다.
아쉽긴 하지만, (웃음) 운영 업무도 성실히 해내야 하니까요. 대신 개인적으로 글을 써서 꾸준히 블로그에 올려 보려고 합니다.

한 학기 동안 쓴 글 중에 특별히 애착이 가거나 아쉬운 마음이 남는 글이 있다면요.
스스로 돌아보기에 “이건 걸작이야”라고 자부할 만한 글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종이잡지 글은 나름 괜찮게 뽑아졌어요. 반면 아쉬운 글이라고 하면, 잔치에 들어와서 처음 썼던 ‘크레페 숲’ 웹진이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아요.
첫 번째 글은 항상 아쉬움을 남기는 법이죠.
제가 평소에 기록용 블로그에 일상을 가볍게 일기처럼 쓰는 습관을 갖고 있다 보니까, 글을 쓸 때 자꾸만 ‘블로그 체’가 튀어나와서 스트레스를 받았거든요. 일기장처럼 ‘~를 했다’, ‘~를 다녀왔다’ 하는 식으로 문장이 흘러가더라고요. 그래서 첫 웹진 글을 다시 읽어보면 여전히 그런 일기식 어조가 묻어나요. 그리고 제가 사진에 정말 약하거든요. 공간을 예쁘게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서 찍어 놓고도 괜히 눈치 보고 그랬던 기억도 나네요.
제가 사전 조사를 하면서 인스타랑 신촌문예를 다 구경했는데, 노래 듣는 걸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신다면 “제 취미는 바로 이겁니다”하고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건 딱히 없는 것 같지만, ‘심심할 때 하는 것’ 정도로 범위를 한정한다면 ‘노래’라고 말할 수 있어요.
직접 부르는 것과 귀로 듣는 것 모두 포함인가요?
둘 다 아주 좋아하죠.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일단 가수 ‘원위’의 굉장한 팬이고요.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서 우연히 접했는데, 그때 처음 들은 노래에 완전 꽂힌 거예요. 그게 제가 이번 신촌문예에 소개한 ‘한 여름 밤 유성우’라는 곡이거든요. 그때부터 빠져서 콘서트랑 페스티벌도 다녀오고 그랬죠.

페스티벌도 많이 가시나 봐요. 페스티벌에 진심인 잔꾼들 참 많잖아요. 저도 가끔 가는데, 갈 때마다 잔꾼들이 있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페스티벌을 자주는 안 가요. 제 성향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웃음) 워낙 저질 체력이라 그런 것들을 다 일일이 찾아가는 게 너무 힘들고, 그래서 1년에 한두 번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아요.
올해도 계획이 있으신가요?
지금 관심 가는 건 9월 말에 하나 있기는 해요. 비록 원위가 나오지는 않지만, 제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라인업에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고민 중이에요.
지난 신촌문예에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추천해 주신 게 인상깊었어요. 요즘 새롭게 읽고 계신 책이나, 잔치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국문과라서 뭔가 잘 말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드는데요. (웃음) 제가 5월 신촌문예에 ‘「싯다르타」를 소개하면서 “요즘 마음 수양 중이다”라고 적어 두었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읽고 있어요.

아무래도 마음 수양이 짧은 시간에 되는 건 아니죠.
그렇죠. 아무튼 지금도 읽고 있고요. 짤막하게 말해보자면, 보통 제목만 보면 주인공이 처음부터 엄청나게 건실하고, 올곧고, 검소한 성인의 삶을 살아갈 것 같다고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책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방황하는 ‘과정’이 나와요. 인간적인 나태함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즐기거나 하는 장면들이 가감 없이 나와서,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거예요.
요즘 「싯다르타」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종합 1위를 지키고 있잖아요. 제가 사실 이 책을 읽으려다가 1등이라길래 잠시 보류 중이거든요.
일종의 홍대병 같은 건가요?
순위가 좀 내려가면 그때 혼자 읽으려고요. 근데 잘 안 내려가네요… 그나저나, 국문과의 평소 독서 취향도 궁금해요.
저의 경우에는 책을 읽을 때 가급적 다양하게 읽으려고 하는 노력하는 편이에요. 사실 저도 국문과치고 책을 많이 읽는 편은 결코 아니라서 “어떤 취향이 있다”라고 확실하게 말은 못 하겠지만요. 시, 소설, 비문학 이런 식으로 굵직하게 장르가 나뉜다면, 비문학은 고등학생 때 학종 채우려고 읽은 걸 제외하면 거의 손 댄 적이 없고요. (웃음) 시는 평소에 좋아하니까 종종 펼쳐보고 영감도 얻고 해요. 그런데 사실 요즘 현대 시가 워낙 어렵잖아요.

동감합니다. 요즘 시가 정말 난해하기는 하죠.
솔직히 직관적으로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돈 주고 시집을 사도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잘 안 읽게 된 것 같고요. 그래서 요즘은 책을 사면 거의 항상 소설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처럼 영상 콘텐츠를 볼 때는 제가 ‘로맨스’ 장르를 굉장히 추구하는 편이라, 거의 그런 것들만 보고요.
적극 추천할 만한 로맨스 영화가 있다면요.
누군가 제게 인생 최고의 영화를 딱 하나만 꼽으라고 질문하신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늘 같은 대답을 해요. ‘노트북’이에요. 다들 아시다시피 이 영화가 고전 로맨스 영화계의 전설적인 명작이잖아요. 저는 평소 첫사랑, 순애와 같은 키워드를 정말 좋아하고 운명을 믿는 편이거든요. ‘노트북’은 첫사랑, 순애, 운명 이 셋을 서사에 모두 담아낸 영화라서 진짜 좋아합니다. 책으로도 읽었어요.

영화가 워낙 유명해서 몰랐는데, 책도 따로 있군요.
아마 책이 원작인 걸로 앍고 있어요. 책으로 읽으면 영화와는 또 다른 감정이 느껴져서 참 좋고, 저는 볼 때마다 항상 울어요.
안타깝게도 요즘 한국 소설계에서 ‘정통 로맨스’ 장르가 주류는 아니잖아요. 그럼 어떤 걸 읽는 편이신가요?
맞아요. 요새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보다는 디스토피아나 기괴한 로맨스가 많이 나오기도 하고… ‘구의 증명’처럼 막 신체 일부를 먹음으로써 영원히 함께한다거나… 진짜 옛날 감성의 한국판 로맨스는 잘 안 나오는 것 같긴 해요.
수많은 학과 중에서 국문과를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고등학교 때 국어 공부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뒤부터는 대학에 간다면 국문과에 가서 진지하게 국어 공부를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수시도 6장을 싹 다 국문과로 채웠거든요.
정말요? 대단한 결심이네요.
원래 학창 시절에는 장래희망으로 교사를 꿈꿔왔거든요. 그래서 국어교육과 진학도 생각했는데, 요즘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하고, 일단 공부나 좀 더 착실히 해 보자고 마음 먹었어요.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에는 만족하시나요?
아직 제가 제대로 전공 공부를 하지는 않아서. (웃음) 저번 학기에 ‘우리말 연구의 첫걸음’이라는 전공 강의를 수강했는데, 아직까지는 ‘학문적 배움’에 대한 걸 잘 못 느끼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다음 학기에는 과감히 휴학하고, 내년에 복학하면 그때 ‘음운론’이라던지 하는 과목들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해 보려 합니다.

저도 조강석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려다 실패했는데, 이번에 다시 시도해 봐야겠네요.
‘문학이란 무엇인가’ 말씀하시는 거죠? 교수님께서 워낙 유명하시기도 하고, 강의력도 좋으셔서 다들 많이 배워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전공 필수 과목이라 어차피 들어야 하기는 해요.
같이 들을 수도 있겠네요. 그나저나 다음 학기에 휴학을 계획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강의실에서 마주치면 인사할게요. 휴학을 결심한 이유는… ‘잔치 운영진’ 해야죠. (웃음) 그리고 제가 학과 학생회 활동도 하고 있고, 밴드 임원진도 하고 있어요. 저번 학기까지는 단순 부원이었을 뿐인데도 학점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할 거면 화끈하게 할 일 다 쳐내버리고 시작하려고요.
멋진 결단입니다. 밴드에서는 어떤 악기를 연주하세요?
제가 악기는 잘 안 하고요, 보컬을 맡고 있어요. 예전에 딱 한 번 기타를 친 적이 있었는데, 영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타는 안되겠다”하고 목소리로 정면 승부하고 있죠.

평소에도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노래방 엄청 가죠. 혼자 가는 것도 되게 좋아하고요. 약속이 3시인데 실수로 애매한 2시에 도착하게 됐다? 그러면 가까운 근처 노래방을 찾아서 혼자 몇 곡 부르고 오기도 하고요. 아니면 일정 다 끝나서 집에 가다가도 시간이 생각보다 이르면 코노 들렀다 가기도 하고 그렇죠.
무대에 서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떨림을 어떻게 극복하나요?
맞아요. 진짜 많이 떨리는데, 처음 한두 소절을 음이탈 없이 나름 나쁘지 않게 불러냈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무대를 즐기게 돼요. 그래서 항상 재밌게 공연을 하는 것 같아요. 나름 무대 체질을 좀 타고났달까…

물망초는 응달에서도 작지만 선명한 꽃을 피워낸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의 잔꾼 한 줄 소개에 적힌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문장을 되뇌어 본다. 기어이 행인의 시선을 붙잡고야 마는 푸른색 꽃처럼, 인연을 맺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나마 영영 남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학기에는 大-잔치의 운영진으로서 또 다른 책임감을 짊어질 물망초. 과감하게 휴학을 선택한 만큼, 자기만의 온전한 호흡을 찾아갈 여정을 응원한다.



운영진 화이팅!!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