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 신촌 한식 24시
수업은 9시인데 신촌에는 6시에 도착했다.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지하철을 잘못 탔을 수도 있고, 전날 신촌에서 밤을 새웠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 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느냐이다. 신촌에 너무 일찍 도착한 사람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카페를 찾아보니 대부분 아직 꿈나라에 있고, 그렇다고 학교에 가서 세 시간 동안 시간을 때울 자신도 없다. 그렇다면 밥이나 먹자. 놀랍게도 신촌에는 이 시간에 밥을 먹을 수 있는 소중한 곳이 있다. 새벽 5시 20분부터 문을 여는 밥집, “아침점심한식부페”다.
신촌경찰서 맞은편, 제법 넓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 건물이 보인다. 건물 2층엔 꽤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크게 ‘아침점심한식부페’가 쓰여 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 계단에는 ‘한식부페 2층’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이른 아침이라 한산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조금 다르다. 일반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부터, 전날에 밤을 새우고 아침을 먹으러 온 것 같은 대학생 몇 명,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다들 각자의 밥과 반찬을 넉넉하게 담은 접시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하루에 참전할 준비를 한다. 이곳의 하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다.

요금은 선불입니다
장부에 싸인하시는 분들
회사와 어느팀인지 꼭
말씀해주세요 (예, 목수. 토목. 철근
₩ 10,000 원 등등)
입구에는 조금 특별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장부에 이름을 적는 사람은 회사와 소속 팀을 함께 적어달라는 내용이다. 이름만 적고 가는 일반적인 식당 장부와는 조금 다르다. ‘목수, 토목, 철근’이라는 예시를 읽고 나면 이곳이 누구의 아침을 책임지고 있는지 금방 알 것 같다. 안내문 뒤를 보니 장부도 한두 권이 아니다. 이곳에서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해 온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까.
카운터에서 남자 사장님께 계산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접시를 들고 음식을 담기 시작한 순간, 부엌에 계시던 여자 사장님이 말을 건네셨다. “후라이 구워줄게. 조금만 기다려.” 손님이 오면 그 자리에서 하나씩 구워주시는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짧게 인사를 건네고 다시 음식을 담았다. 뷔페에 차려진 음식만으로도 충분한데, 따로 달걀프라이까지 구워주신다니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날 준비된 음식은 콩나물무침을 비롯한 몇 가지 반찬과 소불고기, 생선구이였다. 아주 특별하거나 화려한 메뉴는 아니다. 오히려 어디서 한 번쯤 본 것 같은 익숙한 반찬들이다. 그런데 접시에 하나씩 담아놓고 보니 이야기가 달라진다. 간이 세거나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매일 밥상에 올라올 법한 반찬들이 대부분이라서일까. 거창한 한 끼보다는, 아침에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가까운 느낌이다.
접시에 반찬을 하나씩 담다가, 생선구이는 그냥 지나쳤다. 그러자 주변을 살피던 남자 사장님이 다가와 “생선도 있어요. 생선도 먹어요.”하고 알려주셨다.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워 웃으며 “하나를 다 못 먹을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하니 사장님도 웃으셨다. 별것 아닌 몇 마디였는데,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런 순간들이 좋았다. 음식을 먹으러 온 손님과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주인이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받는 모습. 여느 뷔페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순서대로 오이냉국, 소고기뭇국, 잔치국수.
밥과 반찬을 다 담았으니 이제 국 차례. 그런데 국이 하나가 아니다. 무려 세 가지나 준비되어 있었다. 소면을 넣어 잔치국수처럼 먹을 수 있는 육수부터 소고기뭇국, 오이냉국까지 종류도 제각각이다.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으니 남자 사장님이 또 다가오셨다. 뚜껑을 하나씩 열어 보여주시며 이건 냉국이고, 이건 소고기가 들어간 뭇국이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러더니 맛있는 건 꼭 먹어봐야 한다며 이것도 담고 저것도 담으라고 추천해 주신다. 덕분에 국 하나 고르는 일도 꽤 즐거운 일이 됐다.

접시에 김치가 두 종류인 이유.
하나는 원래 담겨 있던 김치, 다른 하나는 여자 사장님이 방금 담근 겉절이다. 반찬 코너의 김치통에서 김치를 덜고 있는 와중에, 여자 사장님께서 “방금 김치를 담갔으니 새 김치 먹고 싶으면 이것도 덜어가라”라고 알려주셔서 한 접시에 김치만 두 종류.
국까지 담고 자리에 앉으니 남자 사장님께서 달걀프라이가 완성됐다며 프라이팬째로 들고 가까이 오셨다.
“헉! 밥 위에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따끈따끈한 프라이부터 짜장밥, 오이소박이, 두 가지 김치, 소불고기, 콩나물무침, 시금치, 양상추와 양배추샐러드, 그리고 잔치국수까지 맛있는 한 끼 식사가 완성됐다.
한 숟갈 크게 떠서 한입 먹어보니 제법 맛있다. 자극적이거나 화려한 맛은 아니지만, 반찬 하나하나 간이 과하지 않고 밥과 함께 먹기 좋다. 특히 따뜻한 밥에 갓 담근 겉절이를 올려 먹으니, 손이 자꾸만 간다. 잔치국수 국물까지 벌컥벌컥 마시고 나면 아침부터 밥 한 공기를 금세 비우게 된다. 음식은 사실 우리가 익숙하게 먹어 온 평범한 한식이다. 그렇지만 밥 한 숟갈에 반찬을 하나씩 올려 먹다 보면 어느새 접시가 비어 있다. 이 정도로 든든한 한 끼를 만원에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만족스럽다.
그런데 이곳에서 좋았던 건 음식만은 아니었다. 생선을 지나치려 하니 “생선도 있어요” 하며 알려주시고, 국 앞에서 고민하고 있으면 뚜껑을 하나씩 열어 보여주시며 “이것도 먹어봐요” 하고 권해주신다. 방금 담근 겉절이까지 먹어보라며 챙겨주셨다. 특별할 것 없는 한 끼가 특별하게 느껴진 건 아마 그런 순간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음식을 많이 주어서가 아니라, 밥을 먹으러 온 사람을 한 번 더 살피는 마음이 있어서. 그래서 이곳을 나설 때는 밥을 먹었다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챙김을 받고 왔다는 기분이 더 오래 남았다.

음식물 남기시면 환경부담금 3000원 입니다 T.T
아침 일찍 신촌에 도착했거나, 꼭 아침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차려준 밥 한 끼가 그리운 날. 그런 날이라면 이곳에 한 번 들러보길 권한다. 메뉴가 특별해서라기보다, 밥을 먹는 동안 한 번쯤 말을 걸어주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혼자 밥을 먹어도 혼자 먹는 기분이 덜한 곳. 사장님들이 이것저것 먹어보라고 권해주실 테니 마음껏 골라 담아도 좋다. 다만 욕심내서 담았다면 끝까지 책임질 것. 챙겨주신 마음까지 맛있게 받아먹고, 접시는 깨끗하게 비워두고 가자. 남기지 말고 먹기! 이곳에서의 마지막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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