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마리아 칼라스 – 아름다운 구멍가게

연세대학교 서문에서부터 시작되는 오밀조밀한 자취∙하숙촌. 흔히 ‘서문 상권’이라 불리는 곳에서 조금 더 걷다가 성산로17길 안으로 들어가면, 가게들은 자취를 쏙 감추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하숙집들이 나온다. 곧이어 오르막길이 나오고 이 작은 언덕의 봉우리에 도달하면 왼쪽에 café Maria Callas라 쓰인 거친 소재의 간판을 건 카페가 보인다. 아마 이 근방을 자주 오가던 사람이 아니라면 엉뚱한 곳에 카페가 있는 걸 보고 고개를 갸우뚱할 지도 모른다(본인 얘기임). 마치 부제목처럼 옆에 쓰인 ‘아름다운 구멍가게’ 간판도, 선명한 푸른색 대문과 밖인지 안인지 애매한 테라스도 상당히 흥미로워 보였다. 그렇게 ‘이런 곳에 카페가 있었다니’는 곧 ‘아 이건 플레이스 각이야’가 되었고,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은은한 조명을 담은 카페 마리아 칼라스 – 아름다운 구멍가게(이하 마리아 칼라스)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마리아 칼라스와 아름다운 구멍가게의 관계>
같은 곳에서 편의점(아구멍)과 카페(마리아 칼라스)를 겸해서 운영 중이다. 학생들 같은 경우 커피 마실 때 소소한 간식거리도 함께 마련하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한다.

카운터 앞에 있는 과자들.
덧) 참고로 카운터 왼쪽에 있는 악세사리들도 상품이다. 사장님이 직접 만드셔서 파는 거였다.
<마리아 칼라스와 옆 건물의 관계>

옆 건물에 붙은 ‘와이하우스’라 쓰인 간판은 카페 마리아 칼라스의 그것과 비슷하게 생겼다. 와이하우스는 사장님의 오랜 거처임과 동시에 학생들이 살고 있는 원룸으로 운영되고 있다.
<마리아 칼라스는 누구?>

마리아 칼라스는 클래식 오페라계의 전설적인 그리스계 성악가로,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활동했다.
성악을 하셨던 사장님이 좋아하시는 아티스트로, 노래 실력뿐만 아니라 풍부한 표현력의 소유자라고 설명해 주셨다. 한때는 레스토랑이었던 이 카페를 처음 열 때, 칼라스가 사장님에게 미적인 영감을 주었듯 손님들에게 이곳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어 그녀의 이름을 따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마리아 칼라스 음악을 많이 틀었는데, 오페라라는 장르 때문인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은 포기하고 분위기만 살리는 쪽으로 전향했다. 실제로 인터뷰 시작할 무렵에는 클래식이었는데 끝날 때쯤에는 트리오 구성의 스탠다드 재즈곡이 흐르고 있었다.
<옛 모습 – 건축가 김중업의 초창기 작품>
이 건물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건 불과 4년 전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줄곧 하얀색 건물이었는데,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 선생의 작품이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1961년에 지었다고 하는데, 그의 초창기 작품이라 하니 한국의 현대건축사에서도 꽤 의미있는 건축물이라 볼 수 있다. 또한 강석우, 이미숙 주연의1986년작 영화 「겨울 나그네」에서 촬영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2011년에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철거되고, 카페와 원룸으로 나뉘어 재탄생하게 되었다. 마리아 칼라스라는 카페의 이름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덧) 김중업 선생의 작품이던 시절에는 레스토랑으로 운영되었다. 마당에는 등나무꽃이 피어있고, 안으로 들어오면 창에서 햇볕이 쏟아지고 각종 퀼트로 만든 작품들과 새하얀 피아노가 있는 전시장이 있는 …

예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저작권 문제로 인해 퍼올 수 없음에 에디터는 통탄하고 또 통탄했다. 혼자만 보기 아까우니 팁을 알려주자면, 포털 사이트에 ‘신촌 마리아 칼라스’라고 검색하고 2011년 이전 게시물들을 찾아보자.
<메뉴, 가격, 쿠폰 제도>
인터뷰 도중 한 손님이 등장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여기서 먹을 거예요? 라는 사장님의 질문. 그렇다. 테이크아웃하면 가격이 내려간다.

프랜차이즈에서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얼마에 파는지 떠올려 보면, 유독 아메리카노 가격이 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테이크아웃 시 2500원에 투샷으로 제공되니 돈 없는 학생들에겐 양과 질 그리고 지갑사정까지 고려한 최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테이크아웃의 경우 마일리지는 적립이 안 된다. 마일리지는 종이 쿠폰에 사장님 친필 글씨를 모으는 형태인데, ‘아,름,다,운,구,멍,가,게,쿠,폰’을 한 번에 한 글자씩 10자를 채우면 아무 음료나 한 잔 무료로 제공된다. 단, 쿠폰의 유효기간은 발급일 기준으로 1년. 매일 오는 단골 친구들은 한 달에 쿠폰 두 장씩도 해치운다고 하니 딱히 유효기간 걱정은 없을 것 같다.

쿠폰은 생일별로 구분해서 카운터 앞에 보관해 둔다. 들고 다니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배려한 것. 생일대로 정리한 건 그저 가나다순보다 편해서일 뿐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쿠폰을 만들 때 이름과 생일을 같이 알려준다는 게 사장님 인터뷰에서 언급하셨던 ‘친한 친구같은 손님들’을 떠올려줘서, 어쩐지 카페와 손님 사이에 더 친밀감을 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름.)
<이건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 뭐가 맛있어요?>
.. 라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물어봤다. 새로운 카페를 개척할 때 가장 궁금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이 음료의 맛 아니겠는가!
사장님께서는 자체 개발 메뉴인 로얄 허니 밀크티와 연유라떼를 추천해 주셨다. (이 둘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함)
그리고 유기농 그린티 라떼를 언급하시면서, 말차가 들어가서 일반 프랜차이즈의 녹차라떼보다 쌉싸름한 맛이 강해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라고 하셨다.

….. 그리고 몇분 뒤 필자의 테이블엔 그린티라떼가 놓여 있었다.
시중에서 맛본 녹차라떼는 녹차보다는 우유맛이 지나치게 강하고 결정적으로 너무 달다. 그런 점에서 말차 향이 최대한 살아나 진한 마리아칼라스의 그린티라떼는, 본인 입맛에는 매우 호였다. 다만 지극히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평가니 주문할 때는 이 점 참고하시길.
<미술관 같은 카페>

트렌드를 따라 가는 게 싫은 사장님. 커피도 원두마다 추출법마다 맛과 향이 다르지만, 커피를 마시는 분위기에 따라서도 그 풍미가 달라진다. 카페라는 장소가 주는 분위기 또한 중요한데, 마리아 칼라스에서 학생들이 평소에 잘 느끼지 못하는 클래식한 감성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

‘옛날에 그런 곳도 있었지’ 하면서 추억에 젖게 되는 그런 곳.
<오래 함께.>
마리아 하우스는 하숙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어쩐지 생뚱맞게 자리잡은 것 같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참으로 탁월한 위치선정이라 할 수 있다. 요즘엔 학생들이 꽤 오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다양한 사람들이 오기보다는 단골층이 두터운 편이다. 오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오기에 친한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한 커플은 마리아칼라스에 열심히 출석도장 찍다가 어느 날 결혼 소식을 들고 찾아왔다고. (낭만적이다..!)

“제가 학교 다닐 때 꼭 가던 카페가 있는데, 그게 아직까지 생각이 나요. 우리 손님들한테도 여기가 그런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커피 자체가 사람들을 끌어당기기보다는, 소통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사장님. 약간은 어둑해서 더 포근한 느낌을 주는 지하 카페. 곳곳에 놓인 앤틱한 소품들. 음료를 주문하고 카운터 앞에 진열된 쿠폰들 중 자기 것을 찾아 뒤적이는, 친구 같은 오랜 단골들.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 마리아 칼라스 특유의 그윽한 분위기를 낸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성악가의 음악세계를 그대로 공간으로 옮겨 담은 카페. 오랜 친구들에게 이따금씩 떠오르는, 학교 다닐 꼭 가던 추억의 장소가 되고 싶은 카페. 이 두 가지가 마리아 칼라스가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낯익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기억을 남기고, 이 공간을 오롯이 향유한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예술과 소통의 공간. 이곳은 미술관 같은 카페가 아니라, 카페의 형태를 한 미술관이다.

부록. 공부하는 잔치 에디터
사실 카페 이름으로 떡하니 있는 마리아 칼라스가 유명한 성악가인 줄은 몰랐다. 예전에 김중업 선생의 건축물이 있었다는 건 예상치도 못한 전개였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건축에서나 성악에서나 지독한 문외한이다(변명하자면 전공이 전기전자공학이다..). 무엇을 탐구하든 배경지식이 있으면 한결 수월하고 재밌는 법! 그래서 어쩌다 보니 필자는 한국의 현대 건축사와 20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를 발톱만큼 공부하게 되었다.
<20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타고난 음악적 기질이 뛰어나 어머니가 세 살 때부터 성악 트레이닝을 시켰다. 선천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굉장한 노력파에 완벽주의자였는데, 학창시절 커리큘럼에 있는 과목들을 가능한 한 많이 청강했다고 함. 음악 전반에 걸친 지식을 모두 습득하려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최고의 소프라노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 여러 장르의 오페라를 공연한 경력이 있지만 이탈리아의 오페라를 주로 했다. 성악적 측면뿐만 아니라 연극적으로도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음악적 여파 외에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에 영화나 전기 등 2차 창작물이 많이 만들어졌다. 사적으로는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재클린 케네디의 재혼 상대인 그 오나시스 맞다!)의 연인이었다고 사장님이 설명해 주셨다.
-대표곡-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자니 스키키>의 대표곡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 마리아 칼라스가 데뷔할 당시 푸치니를 위시한 베리스모 오페라가 대세였다고 한다.
벨칸토 오페라를 대표하는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달콤한 목소리(Il dolce suono)’. 오페라 아리아 중 가장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는 곡이다. 마리아 칼라스는 당시 등한시되던 벨칸토 오페라를 20세기에 부활시켜 음악사적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
마리아 칼라스의 삶과 그녀의 음악을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은 구글링해보자.
<가장 한국적인 현대건축가, 김중업>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과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마친 후 귀국하여 본격적으로 건축가로서 작업했다. 이후 유럽과 미국으로 진출하기도 하는 등 국내외로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다.

그의 전기 대표작으로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있다. 콘크리트로 지붕 처마선을 직선과 곡선으로 처리한 형태와 단아한 전체구성 및 공간처리는 한국의 얼과 프랑스다운 우아함이 잘 어우러진 건물로서 한국 현대건축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2013년에 건축전문잡지인 월간 SPACE가 건축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해방 이후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물 2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밖에 서강대학교 본관, 종로2가의 3∙1로 빌딩, 한국외환은행 본점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훨씬 더 많은 작품들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은 (역시 이번에도)구글링을 통해 그의 건축 인생을 살펴보는 것을 권한다.
Reference:
Wikipedia: Maria Callas (https://en.wikipedia.org/wiki/Maria_Callas)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중업 항목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0580)
이관석, 「기획 : 르 코르뷔지에가 한국건축에 미친 영향」, 『교수신문』, 2003.7.3,(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340)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성산로17길 20
(지번: 서대문구 연희동 340-16)
영업시간: 9:00 AM ~ 11:00 PM (일요일은 오후 1시에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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