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카페카페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득안대로 504 사서함 xx-xx호 제x교육연대 x중대 x소대 xxx번 훈련병 ooo (우) 33012
너의 국방부 메시지 스크린캡쳐를 보고 경탄해 마지않던 게 엊그제 같은데 너는 순식간에 떠났구나. 네가 몇 번의 낙방 끝에 붙은 건지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요새는 군대 가기가 참 어려워져서 말이야.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춥진 않니? 남들 전역할 때 입대하는 느낌이 어떠니?
난 오늘 계절학기 끝나고 나오는 길에 카페카페에 들렀어. 맨날 너 따라 가기만 했는데 자발적으로 오는 건 처음인 듯해. 니가 군대 가서 한동안 안 갔었거든.

피규어가 더 늘어난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이건 얼마 안 된 게 틀림없어!
일렬로 나열된 심슨은 perfect 그게 바로 인생의 진리지. 피규어 덕후인 네가 보면 환장할 것 같다. 나중에 너 자대배치 받고 나서 피규어 모으다가 선임한테 쳐 맞는 건 아닐지 걱정되네. 넌 좀…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니까.

30%나 할인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테이크아웃이 이득인데, 먹는 김에 눌러앉아서 과제나 할까 해서 자릿세 내고 앉기로 했음. 계절학기가 이렇게 빡셀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 근데 왜 나한테 말 안 해줬냐? 쿠폰이 없는 줄은 몰랐어. 어쩐지 니가 그렇게 많이 가는데 한 번도 쿠폰 도장 다 모았다는 말이 없더라. 아마도 테이크아웃 할인이 워낙 강력해서 그런 거겠지? 네가 입대하기 전까지 싸다고 빨아들인 청포도 주스를 모으면 족히 1 갤론은 될 테니, ‘10잔 모으면 무료 한 잔’ 같은 쿠폰이 발행되었다면 십중팔구 너 같은 고객 때문에 이 카페 망했을 거다.

지하로 갈까 2층으로 갈까 하다가, 시간이 좀 일러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길래 평소에 눈여겨보던 인기폭!발! 명당에 앉을 수 있었어. 왜 그 있잖아. 깜찍한 빨강 전등이 놓여있는 테라스 쪽 네모난 탁자 자리.

이제서야 고백하자면, 사실은 이전부터 네놈이 일관성 있게 매번 마스카포네치즈 티라미수만 고집해서 좀 짜증났어. 이게 베스트셀러인건 반박불가지만, 너는 어떻게 맨날 티라미수만 쳐먹고도 질리는 법이 없는지…… 그래서 오늘은 네 취향과 가장 멀 것 같은 레몬 치즈 케이크를 시켰어. 나는 커퓌 한 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이므로, 음료는 아이스 더치커피를 시켰지! 아이스는 500원 더 비싸지만 나 같은 아이스 음료 성애자들이 그런 거에 연연할 리가 없어.

부럽냐?
왜 네가 이걸 시도하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어. 안에 빵이 보들보들한 것이 포크로 쿡 찔렀을 때 스르르 잘리고, 레몬향이 살아 있어 입에 닿기도 전에 상큼하고 새콤한 향기가 코를 타고 전해진다. 난 원래 크림 많은 케이크는 느끼해서 되게 싫어하는데 이건 그런 감이 전혀 없고 딱 적당히 달고 적당히 담백하고 무엇보다 질감이 너무 좋아. 파이홀이 바삭한 케이크와 타르트를 선보인다면, 카페카페의 케익은 몽실몽실하고 보드라운 매력이 있는 것 같아. 물론 한 쪽이 더 우월하다는 말은 아니야. 사실 복잡하게 따질 거 없이, 그냥 둘 다 맛있어. 하지만 넌 파이홀 같이 갈 여자친구 같은 거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으니까 빨리 화제를 돌려야겠다!

맛도 맛이지만 오늘도 양이 정말 혜자야. 사실 난 아직까지도 왜 커피를 이만큼 주는지 잘 모르겠다. 무의식중에 뚜껑 열면 소중한 커피가 와르르 쏟아지는데.
아 그리고 조각케익 말고 홀케익으로도 살 수 있대! 물어보니까 가격대가 보통 4만~5만원 대라더라. 치즈 타르트가 참 크고 아름다워맛있어 보이던데. 생각해 보니 너 입대하기 전에 술자리에서 나한테 빌린 돈 한 4만원 정도 되지 않냐. 빚을 타르트로 갚는 건 어때 이 망할 놈아? 갚는다 갚는다 해놓고 나라의 부름에 응하는 건 무슨 매너니 이 근본 없는 채무자야?

나갈 때 보니까 니가 귀엽다고 했던 알바생이 카운터에 계셨어. 자리에 계실 때 남자친구 있으시냐고 물어봤어야 하는데 약속에 늦어서 부랴부랴 나가느라 깜빡했음. 다음 번에 또 가면 그때는 꼭 알아올게. 어차피 그분이 솔로라고 한들 너하고는 안 되겠지만… 뭐 물어보는 거야 입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다시 한 번 편지를 죽 읽어보니 카페카페 얘기밖에 없구나? 너 없이 오니까 감회가 새로워서 조잘조잘 떠들어 봤어. 생과일주스를 시키는 잉여 같은 네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혼자 커피 마시니까 허전하기는 개뿔, 커피 맛만 좋다. 어째 글이 카페 후기같긴 한데 난 이 정도면 매우 성의 있는 편지라고 생각해.
나는 이만 줄일게. 지금 시간도 너무 늦었고, 내일도 9시까지 학교 가야 돼서. 화가 난다. 왠지 나중에 마주치면 너한테 쳐맞을 것 같다… 피해다녀야겠다. 아무튼 잘 지내.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12길 19 (서대문구 대신동 91-7)
운영 시간: 11:00 ~ 24:00 연중무휴
문의: 02-393-5935
인스타그램 ID: caffecaffe214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