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신촌 옛 집
오늘같이 코 끝, 손 끝이 시린 날에는 시골에 계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한 달에 한 번 시골에 내려가면 할머니는 우리 강아지 왔냐고 한 번 물으신 뒤에는, 항상 같은 질문을 하신다.
밥은 좀 먹었나?
할머니는 고추장찌개를 정말 잘하신다. 엄마와 고추장 찌개에 밥을 비벼 먹다가도, 같은 고추장을 나눠쓰는데 왜 맛이 다를까 한다. 쇳그릇을 착착 긁어 밥 한 톨까지 먹고 나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몇 달 전 먹은 찌개의 맛이 혀에 남아있다.
흠, 우리 엄마도 재현하지 못하는 맛이지만, 그 비슷한 맛이라도 찾을 수 없을까?
그래서 풍문을 듣고 찾아왔다. 신촌 ‘옛 집’.

옛 집의 위치는 신촌 장로 교회 건너 골목의 각 종 밴드 공연의 성지, 긱스 라이브홀 바로 앞이다.
코가 시리게 추운 12월의 첫 날. 친구들과 ‘옛 집’의 문을 열었다. JTBC 뉴스를 보며 누워 계시던 할머니. 이 식당이 좌식 뿐만 아니라, 와식도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을 주셨다.

7000원을 넘지 않는 찌개들.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메뉴를 살피었다. 옛 집의 진리라고 불리는 고추장 찌개부터 순두부찌개, 된장찌개까지. 신토불이 내음이 나는 메뉴를 모두 실물로 관찰하기 위해 많은 친구들을 동행해갔다.
메뉴를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에디터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아니, 에픽하이? 아니, GD? 태양? 아니, 인피니트 L(김명수)?
‘옛 집’이 신촌의 진리라고 불리는 이유에는 분명 그 맛도 있겠지만, YG 연습생들의 나와바리라는 유명세도 한 몫 한다. 합정동에 있는 YG 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이 곳까지는 꽤나 멀텐데 멀리서 찾아오는 그들이 참 대단하다 생각된다. GD나 다른 연예인들도 데뷔한 이후에 휘황찬란한 코스요리들을 먹고 다닐 수 있을텐데, 굳이 ‘옛 집’을 다시 찾는 것을 보면이 곳이 꽤나 중독적인 듯 하다.

돈가스의 해체 흔적이 조금 처참하다.
찌개가 나오고, 우리 앞에 깔린 것은 7첩반상이다. 반찬들도 집에서 쉽게 먹을 수 있지만, 일반 식당에서 보기 쉽지 않은 묵직한 반찬들. 찌개로 밥 한 그릇하고 반찬만으로도 한 그릇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다섯 명이서 밥을 다 먹고 도 반찬이 꽤 많이 남았다. 이제 주메뉴들(찌개들, 돈가스)의 공정한 평가를 위해, 입맛이 꽤나 예민한 친구들의 평가를 빌려본다.
첫 번째. 고추장 찌개(a.k.a. 옛 집의 진리, 2인분부터 6500원, 1인분 7000원)

‘옛 집’의 진리라는 고추장 찌개. 3인분인데, 꽉 찬다.
“가히 진리라 할 만 하다. 그 속을 꽉 채운 고기, 감자, 버섯, 호박, 두부. 속을 파도 파도, 계속 건더기들이 나온다. 고추장 찌개라고 썼지만, 고기가 거의 반근이 들어갔다. 고추장 고기 찌개라고 오해할 정도. 찌개도 꽉 찼고 다 먹은 배도 꽉 찬다. 할머니 앞에서 배부르다 하니, 배부르려고 돈 내는 거라 하신다. 이 또한 진리다. 걸쭉한 할머니의 사투리와 어울리는 손맛. 그리고 ‘짜야 맛있지.’라는 할머니 말씀.”
두 번째. 순두부 찌개(5500원)

순두부와 풀어진 날계란. 뭘 넣으신지 모르겠지만, 정말 고소하다.
“이걸 먹고 나면 신촌의 순두부찌개들은 순 거짓 두부찌개로 느껴질 것이다. 밥 한 그릇으로는 부족할 듯한 풍성한 두부들과 함께 적당하게 풀어진 달걀, 다양한 채소들은 순두부찌개의 정석을 보여준다. 참깨인지 모를 고소한 맛은 신촌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다. ”
세 번째. 돈가스(6000원)

불닭 아니다. 돈가스다.
“고추장찌개와 같이 ‘옛 집’에서 유명하다는 돈가스. 보통 돈가스가 유명한 집들은 그 고기나 치즈가 들어가서 유명한 것 같은데, 이 돈가스는 내용물이 특별하기 보다는, 그 달콤한 소스가 특별하다. 찌개와 사이드 메뉴로 같이 먹으면 입 안에서 대우주의 조화인 단짠이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다 맛있다. 그 중에서도 가히 고추장 찌개가 으뜸이라 할 만하다.
할머니는 같이 온 친구 중에 속이 안좋아 식사를 하지 않는 친구에게는 군고구마를 내어주셨다. 끼는 바지를 입어 속이 안좋은거라며, 다리 쫙 펴야 속이 풀린다던 할머니의 사투리가 듣기 좋았다.

새로운 마을(新村)에서 ‘옛(舊)’의 의미는 이 곳, ‘옛 집’에 있는 듯 하다.
할머니는 장사하신 지가 벌써 30년이 흘렀다 하신다. ‘옛 집’은 정말 그 이름대로 옛 집이 되어가는 중인 셈이다. 찌개를 먹기 전에는 벽에 붙은 유명 연예인들 싸인 아래에 적힌 ‘할머니,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라는 문구가 그저 덕담이려니 싶었다. 그런데 숟가락을 내려 놓으니, 어느새 에디터도 같이 마음 속으로 그 문구에 동의하고 있었다.
음식의 맛이 좋아 찾는 맛집들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그 맛만 보고 찾을 뿐, 그 맛을 만들어주는 이는 찾지 않는다. 그동안 에디터도 신촌에서 다닌 대부분의 플레이스들을 그렇게 대해왔다. 하지만 옛 집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두 번 밖에 안가본 곳인데 이상하게 자꾸 고추장 찌개랑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 옆에서 등 뜨시게 누워 귤 까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진다. 정들었는갑다.

할머니,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신촌 옛 집
영업 시간 : 할머니 마음대로~21:30
주소 : 서울 마포구 동교동 190-29
– 이 글을 읽을 당신이 ‘옛 집’에서 할머니의 손 맛을 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할머니가 손님이 많이 몰려들면 힘드실테니, 적당히 눈치 게임으로 한적할 때 찾아가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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