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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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1 · 04 · 28

152. 서른 즈음에

Editor 신나우

<서른 즈음에-X의 이야기>

복학생 X는 오늘도 홀로 신촌 거리를 걷는다. 머리로 의식하지 않아도 발걸음이 알아서 제 갈 길을 간다. 약속 시간은 30분 정도가 남았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거리를 뚫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걸음을 옮긴다. X의 마음속 신촌이 현실의 신촌과 동일한 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신촌역을 나와 거리를 걸으며 바쁘게 사방으로 시선을 옮긴다. 익숙한 풍경이라는 생각에 마스크로 가려진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왠지 모를 흐뭇함과 안도감이 마음속에 들어와 소리 없이 앉는다. 그러나 잠시 후, 자신감 있게 거리를 활보하던 X는 명령 체계가 고장난 로봇청소기 마냥 두 바퀴를 빙그르 돌다가 제 자리에 멈췄다. 입력된 정보와 눈앞에 보이는 정보가 다름을 인지한 X는 휴대폰을 꺼내어 다급하게 검색을 시작한다. X가 알던 신촌의 이정표 역할을 했던 맥주 가게 이름 아래에는 ‘폐업’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지만, X는 두 눈을 의심한다.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대형 맥줏집이 문을 닫았다는 현실의 충격과 슬픔을 뒤로하고, 약속 장소인 신촌역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돌아오는 길에도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지만, X에게 반갑게 손 흔들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X는 신촌 거리를 지나면 수없이 친구를 마주쳤던 2-3년 전 신촌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잠기고, 왠지 모를 서러움에 홀로 침전하는 기분이었다.

약속 시간이 되어 Y와 Z가 도착하고, 이들은 추억이 가득 담긴 ‘서른 즈음에’를 찾았다. 이 술집은 흔히들 아는 밥집 고삼이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계단을 올라오는 순간 익숙한 간판이 X와 친구 일행을 반긴다. ‘서른즈음에’라는 상호 아래 적힌 한 줄이 두 팔 벌려 X를 부둥켜안아주는 느낌이 든다. 

“그 서러움을 안고 그대가 왔다.”

 ‘서른 즈음에’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간판.

 

간판을 지나 문을 여는 순간, X는 30분간 느꼈던 ‘낯선 신촌’이 아닌 마음속 잠들어 있던 신촌을 느꼈다. 본인이 알던 신촌의 ‘구수함’이 코 끝을 스쳤고, 정처 없이 방황하던 마음에 안정감이 느껴졌다. 항상 앉는 통유리 창문 앞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뿌옇게 김이 서린 통 유리창에는 마치 X의 설움이 담긴 눈물이 맺힌 듯, 빗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들어가서 보면 구석 자리에 큰 유리창이 있다. 이과생의 낙서 흔적도 보인다.

 

‘서른 즈음에’는 지난해 20주년을 맞이한 역사가 깊은 술집이다. 신촌 골목에서 20여 년 자리를 지켜온 만큼 단골손님들도 적잖이 방문하는 듯하다. 맥주, 칵테일과 위스키 등 다양한 주종을 제공하지만, 역시 ‘데드락’이 대표 메뉴라 할 수 있겠다. 데드락은 데낄라+레드락 생맥주+레몬이며, 맛도 딱 그 세 가지가 섞인 맛이다. (최소한 에디터가 느끼기엔 그랬다.) 평소 접하는 맥주보다는 탄산이 좀 약하지만, 데낄라가 들어가면서 술의 도수는 올라가며 전체적으로 데낄라 향이 나는 맥주랄까? 아무튼 묘한 매력의 맛을 가진 술인 것은 분명하다. 좀 더 달달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데드락 허니’도 준비되어 있다. 이 두 가지 다 내키지 않는 분들은 그냥 ‘레드락’을 시켜도 아주 시원하게 즐길 수 있다. 주변 지인 중에는 ‘서른 즈음에’를 레드락 맛집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다.


영롱한 자태의 ‘서른 즈음에’의 자랑, 데드락.  

 

메뉴판을 보면 친절하게 데드락을 100% 즐길 수 있도록 안내가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데드락이 나오면, 메뉴판 안내문을 보고 한 단계 한 단계 차분히 따라 해보도록 하자. 절대로 바로 데낄라잔을 넣거나 레몬을 짜서 넣는 누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반드시 적혀있는 대로 먼저 레드락 생 두 모금을 들이켜고 나서, 레몬과 데낄라 잔을 넣어야 한다. 데낄라 잔을 넣을 때도 잔 벽면에 대고 조심스럽게 떨구는 스킬이 요구된다는 점, 기억해보도록 하자. 데드락을 주문할 때는 발음이 비슷한 레드락과 구분 짓기 위해, “D 락”이라고 말한다. 이런 꿀팁을  센스 있게 적어주신 사장님의 재치가 돋보인다. 대표 메뉴가 아니라 해도, 에디터가 마셔본 바로는 다양한 칵테일이나 위스키 등도 잘하는 주류 맛집이었다.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서른 즈음에’ 감성의 메뉴판.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우측 상단에 데드락 즐기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벽면에 가득한 청춘들의 낙서. 메모지나 영수증 뒷면을 활용해서 남긴 메시지도 많다.

 

정신없이 주문을 하고 보니, 벽면을 가득 채운 낙서가 눈에 들어온다. 낙서와 메모로 빼곡한 양쪽 벽면이 이 가게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X와 친구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2년 전 그들이 벽면에 남긴 낙서를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이 한창 ‘마음속 신촌’에 대한 옛날이야기에 열을 올릴 때쯤, 오감을 자극하는 안주가 등장했다. 이곳의 대표 안주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주류와 비교했을 때는 좀 더 논쟁거리이긴 하다. 주류는 데드락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반면, 안주는 여러 의견으로 나뉘는 편이다. 노가리파, 먹태파, 소세지파, 육포와 치즈파,…등 다양하다. 무엇이 대표 메뉴이든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눈앞에 노가리 접시가 놓이자마자 Y가 선제공격을 감행하고, X와 Z는 재빠르게 노가리 흡입 전쟁에 참전한다. 10개 남짓 나온 노가리가 없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노가리는 땅콩과 함께 한 접시에 담겨 나오며, 별도의 소스와 함께 제공된다. 매콤한 소스 하나와 특제 소스 하나가 있는데, 에디터 생각으로는 이 특제 소스가 이 집 최고 비법이다. 간장과 마요네즈를 섞은 것으로 추정되는 단순한 조합인데, 이 소스가 고소한 노가리의 맛을 배가시킨다. 잘못하면 살짝 텁텁해질 수 있는 노가리의 맛을 마요네즈의 부드러움이 잡아주며, 감칠맛을 더해준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노가리. 아래쪽에 보이는 특제 소스에 듬뿍 찍어야 맛있다. 소스 리필도 가능하다.

 

노가리를 전쟁통에 먹어 치우고 나니,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모듬소세지가 눈에 들어온다. 앞서 노가리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소세지는 덜컥 겁에 질렸다. 소세지 옆자리를 차지한 감자튀김도 두려움에 떠는 건 마찬가지다. 테이블로 나오기 전에 사장님의 케찹 공격을 당하고 나온데다가, 접시에 꽉 차게 담겨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다. 이런 모듬소세지를 향해 인간들의 무자비한 포크질이 시작됐다. X, Y, Z는 하나같이 다 정예 요원들이었다. 노가리 접시를 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듬소세지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에디터 픽인 모듬소세지는 누가 뭐래도 이 집 최고가 안주이다. 먹태와 함께 무려 13,000원의 가격을 자랑한다. 가격이 저렴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상당수의 지지자들을 확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노가리와 모듬소세지 말고도, 육포와 치즈, 반건 오징어 등도 사랑받는 안주 메뉴이니 맛보길 추천한다.

 

육즙 가득해보이는 모듬소세지. 감자튀김과 함께 담겨 나온다.

 

음식을 비우고 나면 본격적으로 대화가 무르익는다. 데드락 잔 부딪히는 소리와 대화 소리가 번갈아 가며 계속된다. 그들의 대화에 위로와 공감을 보내주는 이가 또 있으니, 바로 적당한 시끄러움과 적당한 잔잔함이 공존하는 음악 소리다. 이 술집의 또 하나의 큰 매력 포인트는 바로 사장님의 엄선된 명곡이 가득한 플레이리스트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대화의 내용이나 상황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와 감정을 고조시키곤 한다. 오죽하면 X는 사장님이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가 어울리는 음악을 트는 것이 분명하다며 습관적 의심을 할 정도이다. 아무튼 오늘도 무드에 어울리는 사장님의 선곡과 함께 X와 친구들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다.

 

 계산대 위치에 마련되어 있는 바 좌석. 그 앞쪽엔 수많은 음악 앨범이 가득 채워져 있다.

 

신촌을 떠나 있던 2년 동안, X에게 신촌은 한없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쌓았던 추억 가득한 마음의 고향이자 스스로의 흔적이 골목골목 묻어 있는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X가 2년 만에 돌아와 마주한 신촌은 2년간 고대하던 신촌이 아니라, ‘낯선 신촌’이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이고 동네인데 뭔가 이방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그렇게 낯설다는 느낌과 서럽다는 감정에 사로잡힌 나날을 보내던 X는, 가장 익숙한 신촌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자기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대화를 들어주던 Y와 Z도 크게 공감했고, X는 오늘도 ‘서른 즈음에’에서 위로와 용기를 찾게 되었다.

언젠가 친구들이 X에게 ‘서른 즈음에’가 어떤 의미를 가진 장소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어디를 갈지 정할 때마다 ‘서른 즈음에’를 습관적으로 내뱉던 X가 궁금해서 그랬을 것이다. X는 ‘서른 즈음에’를 따뜻한 다락방이라고 했다. 시원한 데드락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넘어가며 몸을 데우고, 친구들과의 대화가 또 다른 온기가 되어주는 곳이라서 따뜻하게 느껴진다. 찾아올 때마다 나눴던 이야기와 감정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어서 언제든 그 시절을 꺼내볼 수 있는 다락방처럼 다가오는 것 같다. 

X와 친구들이 이곳을 처음 찾았던 스무 살 때만 해도, ‘서른’은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성숙한 어른의 나이였다. 그러나 오랜만에 이곳을 다시 찾아서 바라보니, ‘서른 즈음에’라는 간판 속 ‘서른’이 결코 아주 먼 미래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故 김광석 님의 노래 ‘서른 즈음에’ 가사 중 이런 구절이 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이 노래가 발표되던 1994년은 지금보다 결혼을 더 빨리했던 시기였고, ‘서른’이라는 나이는 한 사람의 직업과 배우자까지도 많이 정해지는 때였다. 꿈이나 이상은 포기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며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관점을 달리해서 긍정적으로 본다면, 삶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안정감이 생긴다고도 볼 수 있겠다.

X와 친구들에게도 ‘서른 즈음에’는 그런 장소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오랜만에 마주한 ‘낯선 신촌’과 그 속의 현실은 불확실함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고,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불안했던 것일 수도 있다. 눈앞에 마주한 20대 중반의 불확실함과 두려움을 피해, ‘서른 즈음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잠시나마 ‘서른’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불안하고 외로운 현실에서 안정감을 찾아서,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술집을 찾았던 것이다. ‘서른 즈음에’는 X와 친구들에게 ‘낯선 신촌’이 아닌, 낯선 신촌 속에 존재하는 ‘마음속 신촌’이었다. 그리고 X의 이야기는 단지 에디터만의 이야기가 아닌, 불확실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X’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서른 즈음에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7안길 35

매일 18:00 – 01:30(현재 코로나 19로 인해 10시까지 영업 중) 

02-3141-3438 

                                                                                               

신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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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우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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