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고향
“우리는 그런거 안합니다.”
에디터의 인터뷰 요청에 단번에 돌아온 말이다. 의외였다. 취재를 다소 부담스러워 하실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부담 이상의 단호함이 느껴졌다. 한참을 설득하고 나서야 허락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에 다룰 곳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고향’이다.
‘고향’은 신촌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고깃집이다. 창서초등학교 뒤쪽 두 번째 골목 맨 끝자락에 있다. 말 그대로 신촌의 변두리. 워낙 구석이라 알고 찾아가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에디터는 사장님과 어떻게 인터뷰를 꾸려나가야 하나 고민하며 ‘고향’의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집에 있을법한 낡은 화분들 사이, 고향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낡은 나무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가자 인상 좋은 사장님께서 에디터를 맞아주셨다. 아직 손님 없는 시간대라며 직접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워주셨다. 전화에서 느껴진 단호함과 사뭇 다른 분위기에 에디터는 당황했다. 알고 보니 에디터의 전화를 방송 촬영 요청으로 오해하고 거절하셨다고 한다. “뭐 찍고 하는 거 몇 번 해봤는데, 번거롭기만 하고 전부 가식 같드라고.” 원래 TV에 나오는 식당이나 인터넷 맛집은 믿지 않으신다는 사장님. 한 두 번 촬영제의에 응한 적도 있었지만, 왠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고 하셨다. 그 뒤로는 촬영이나, 블로그 포스팅 제안 등은 일절 거절하신다. “내가 우리 학생이라고 하니까, 앉아서 이래 이야기 하는 거지요.” 사장님께서는 꼭 취재해보고 싶다는 부탁보다, ‘고향’을 자주 가는 학생이라는 에디터의 말에 마음이 동해 인터뷰에 응하셨단다. “우리 학생들은 내가 언제든지 환영하지.”라며 불판이 잘 달궈졌나 확인하시는 사장님. 걱정과 달리 훈훈하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사실 인터뷰라기 보다 삼촌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며 인생냄새 나는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가까웠다. 뭔가 소주 한 잔이 땡기는 느낌. 마침 ‘고향’은 ‘타먹는 소주’로 유명하다. 소주를 시키면 석류와 매실 원액이 함께 나온다. 술 한잔 따르고 취향에 맞게 원액을 타먹는 것이다. 에디터는 소화에 좋다는 매실액을 선택했다. 사장님 이야기 한 잔에 매실소주 한 잔을 함께 넘기며 인터뷰가 진행됐다.

어딜 가든 직접 고기를 굽는 에디터지만 이 날만큼은 사장님께 집게를 양보했다.

‘고향’의 트레이드 마크. 사실 ‘고향’이 과일소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장사라는게 다 정이지요. 정 때문에 하는거시고 정 없으면 못해요.”
한 시간 정도 이어진 인터뷰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정’이다. 사장님께서는 오래된 민속주점을 2010년도에 인수해서 ‘고향’을 시작하셨다. 민속 주점 특유의 정감 있는 분위기가 좋아 크게 바꾸지 않았고 가게 이름도 이에 어울리게 ‘고향’으로 지으셨다. 장사 시작하기 전에는 한 달에 식대만 300여만원을 써가며 신촌 일대의 고깃집은 다 다녀보셨단다. 시장조사를 철저히 하신 셈이다. “하나같이 그 싸구려 냉동 고기만 팔드라고, 맛대가리도 없는 것을.”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신 사장님께서는 보다 질 좋은 고기를 팔아보기로 결심하신다. 당시 일반적인 고기집 보다 조금 비싼 가격으로 시작하게 됐지만 정도를 지키고 장사를 하면 충분히 승산 있으리라 생각하셨다고 한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구석진 위치임에도 입소문을 타고 하나 둘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었다. 지금은 비록 경기가 좋지 않아 예전만 못하지만, 전성기에는 문 밖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손님이 늘었다고 자만하지 않았다. 손님으로 아무리 붐벼도 조카한테 한 상 차려준다는 마음으로 고기 한 점 더, 술 한병 더 내줬다. 그렇게 단골이 늘어났다. 당시 생긴 단골들이 아직까지 ‘고향’을 지키는 기둥이다. 정을 주는 장사로 시작했고 그 정 덕분에 버티는 장사인 셈이다. 최근 경기가 나빠 단골들아 아니었으면 진작 문을 닫았을 거라는 사장님의 말을 증명하듯 인터뷰 중에만 단골 5팀이 ‘고향’을 찾았다. 사장님께서는 하나같이 “어서 오세요”가 아니라 “어이구 왔어.”로 손님을 맞았다.

하나 둘 들어온 단골들로 어느새 가게가 북적였다.
“신기하게, 외국애들이 정이 더 많어.”
단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누구냐는 에디터에 질문에 어떻게 한 명만 고르냐며 손사래 치시던 사장님께서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향’은 의외로 외국인들에게 명소다. 신촌 근처 학교에 다니는 외국인 학생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꽤 알려졌다고 한다. ‘고향’의 글로벌함은 벽을 빼곡히 채운 낙서에 드러난다. 여기저기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앤드류 하고 키아?
글로벌 명소답게 ‘고향’은 단골 외국인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여자친구와 매주 ‘고향’을 찾던 영국인이 있었는데 그 커플은 지금 결혼을 해서 영국에서 산다고 한다. 그 부부는 아직도 매년 휴가 때면 한국을 방문해서 짐도 풀지 않고 캐리어를 끌고 ‘고향’을 방문한다. 이대에서 독일어 강사로 활동하던 한 독일인의 경우 매년 독일에서 지인들에게 ‘고향’을 전파 중이다. 덕분에 여름이면 그의 친구들이 사진 한 장, 주소 한 줄 들고 몰려든다. “그래도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대만에서 온 여학생이지요.” 사장님께서는 그 학생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비도 오고 방학 시즌이라 손님이 없던 늦은 밤, 가이드북 한구석에 짧막하게 소개된 ‘고향’을 찾아 한 대만 여학생이 혼자 찾아왔었다. 고깃집이라 손님 한 명은 받지 않지만 도저히 내보낼 수 없어 한 상 크게 차려 줬다고 한다. “그 먼데서 찾아 와준 것도 고맙고, 타지에서 혼자 밥 먹는 것도 짠하드라고.” 사장님 추천에 따라 부위별 고기에 찌개, 냉면까지 싹 비운 그 학생의 만족한 표정을 사장님께서는 잊으실 수 없다고 한다.
“내가 고집이 세가지고, 잘 못 바꾸것어”
한결 같은 고기 맛을 유지하는 비결을 알려 줄 수 있냐는 에디터의 질문에 사장님께서는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것이지요.”라고 응수하셨다. 맛의 비결은 다름아닌 ‘고집’이라는 것. 사장님께서는 ‘고향’을 여신 첫 날부터 지금까지 생고기를 직접 숙성시켜 손님에게 낸다고 한다. 빨리 많이 팔기 위해 냉동 고기를 쓰지 않는 것이다. 손이 많이 가더라도 얼굴 다 아는 단골들에게 아무거나 먹일 수는 없다는 고집이다.
사장님의 고집은 고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똑같은 고기를 먹어도 어디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다 다르지요, 어떻게 굽는지, 뭐랑 같이 먹는지, 어떻게 서비스해주는지 이게 다 중요한 거라.” 사장님의 유별난 철학은 ‘고향’ 곳곳에 드러난다. 직원을 쓰지 않아 일손이 부족할 텐데도 숯불을 고집하신다. 가스버너로 굽는 고기에는 향이 없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고향’은 특이하게 김치를 세 종류나 제공한다. 일반김치와 구워먹기 좋은 삭은김치, 마지막으로 보쌈김치다. 손님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게 먹으라는 배려다. 밥을 먹을 때 김치가 필요한 손님은 일반김치를 먹고, 구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손님은 삭은김치를 구워먹고, 고기의 텁텁함을 잡고 싶은 손님은 보쌈김치를 먹으면 된다. 김장철마다 직접 김치를 담그시는 것은 물론, 보쌈김치의 경우 매주 3일에 걸쳐 직접 만드신다. 무채를 썰어 말린 후, 그 무말랭이를 말린 북어, 홍합, 오징어와 함께 장에 담근다. 사장님의 고향인 전라도의 방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통 전라도 보쌈김치처럼 젓갈 맛이 강하지도 않다. 사장님께서 학생들 입맛에 맞게 조금 달짝지근한 맛으로 개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향’의 보쌈김치는 다른 곳에서는 절대 맛 볼 수 없는 ‘고향’만의 맛이다. 매번 김장을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 텐데도 “다른 데서 사서 하래도 내가 못 먹것더라.”며 꿋꿋이 원래의 모습을 지켜 오고 계신다.

바로 이 보쌈김치, 남도의 기술과 사장님의 철학이 절묘하게 조합된 ‘고향’의 맛이다.
‘고향’의 맛은 식사를 마치고 제철 과일과 함께 나오는 요구르트로 완성된다. 손님들의 식사가 마무리 될 즈음 사장님께서는 어김없이 과일과 요구르트를 내어 주신다. 에디터도 처음 왔을 때는 처음 보는 손님이니 다음에 또 오라고 챙겨 주시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올 때마다 요구르트가 어김없이 식탁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요구르트로 입안의 기름기를 잡으며 식사를 마무리하는 것. 이렇게 ‘고향’의 맛이 완성된다. “나도 사람이긴 사람인지라, 요새같이 힘들면 잡생각이 들긴 들어.” 요즘 같은 경기에 그렇게 하기 힘들지 않냐는 에디터의 걱정에 사장님께서 웃음 아닌 웃음으로 답하신다. 어려운 경기에 남들처럼 편한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생각을 ‘잡생각’이라며 떨쳐내시는 사장님. 사장님은 ‘고집’이라고 하시지만, 에디터는 ‘신념’이라고 하고 싶다.

요새는 방울토마토 시즌이다. 사장님의 고집이라고 쓰고 신념이라고 읽는다.
“잘 대접받고 갑니다.”
불판을 세번째로 갈아 주시던 와중에 맨 처음 왔던 단골들이 식사를 마쳤다. 그 손님은 조만간 또 오겠다며 사장님과 포옹을 하고는 가게를 나섰다. “참 저렇게 손님들이 만족하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 맛에 내가 또 장사를 하지요.” 라며 기억에 남는 손님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는 사장님. 몇 년 전 한 교수님께서 학생들과 함께 오신적이 있었다고 한다. 보통 ‘고향’은 젊은 학생들만 찾아오는데, 나이 지긋하신 교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는 교수님의 모습이 보기 좋아 정중히 한 상 차려드렸다고 한다. 잠시후 식사를 마친 교수님께서 계산을 하시고는 가게를 나서며 말씀하시기를 “잘 대접받고 갑니다”. 학생들이 흔히 하는 ‘잘 먹었습니다’보다 한 단계 격이 다른 인사다. “요새 학생들은 그런 표현을 몰라서 못 쓰지만은, 원래 어른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게 식당 주인한테는 최고의 찬사거든. 그날 하루 그렇게 마음이 따뜻할 수 없드라고.”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듣다 문득 가게를 돌아보니 손님들로 붐빈다. 더 이상 사모님 혼자 가게를 보시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가게를 나섰다. 몸도 마음도 배부른 인터뷰였다. 정겨운 고향의 문을 나서며 에디터도 한 마디 인삿말을 남겼다. “잘 대접받고 갑니다.”

“잘 대접받고 갑니다.”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7안길 52
연락처 02-326-3892
영업시간 연중무휴 14:00 ~ 03:0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