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경의선 책거리
독서(讀書). ‘새해목표’에 매번 이름을 올리는 단골메뉴다. 에디터도 분명 올해 초 매달 한 권씩 책을 읽기로 다짐했더랬다. 물론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책 몇권 잡아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벌써 가을이다. 두 달만 지나면 올해는 끝이다. 뭐라도 읽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책장을 뒤져보지만 지난 무심했던 시간을 반영하듯 책장에는 무시무시한 전공책 뿐이다. 자괴감이 밀려온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했던가. 그동안 에디터는 마음의 양식에 써야할 돈마저 몸의 양식에 써버린게 분명하다. 몸에는 양식의 흔적이 남았지만, 마음에는 남지 않았다. 핸드폰에 먹킷리스트는 그득하지만, 읽킷리스트는 텅텅비었다. 먹거리를 추천해주는 어플은 눈에 띄는 곳에 있지만 좋은 책을 추천해주는 어플은 찾아본 적도 없다. 다시한번 자괴감이 밀려온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에디터가 읽을거리를 찾느라 고뇌하자 지인이 ‘경의선 책거리’를 소개해줬다. 신촌 인근에 책을 테마로 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 이제 먹거리가 아니라 책거리를 다닐 때다. 에디터는 이번에는 어떤 맛을 즐기게 될까 설레며 ‘경의선 책거리’를 방문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먹는 맛이 아니라 읽는 맛이다.

저분은 매일 저렇게 마음의 양식을 쌓고 있었다. 에디터가 양식을 배에 쌓을동안!
‘경의선 책거리’는 마포구가 경의선 홍대복합역사에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책 테마 거리다. 작년 10월 개장했으니 이제 꼭 한 살이 됐다. 경의선 부지는 선로가 지하로 들어가면서 오랫동안 방치됐다. 부지는 황폐해졌고 철도변은 낙후됐다. 그러던 중 최근 경의선 부지를 공원화 하는 사업(경의선 숲길 조성사업)이 서울시 곳곳에서 벌어졌다. 시민들에게 녹지공간도 제공하고 낙후된 도심도 재생하자는 취지였다. 새로 생긴 공원들은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최근 급부상한 ‘연트럴파크(연남동 경의선 숲길의 별칭)’가 대표적인 예다. 마포구는 이 경의선 부지 중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와우교에 이르는 약 250여 미터의 공간을 책 테마 거리 ‘경의선 책거리’로 조성했다.
책과 철도. 쉽게 연결고리를 생각해내기 힘든 조합이다. 실마리는 경의선 책거리가 위치한 마포구에 있었다. 마포구는 우리나라에서 출판사가 가장 많이 밀집한 자치구다. 파주 출판단지로 많은 업체들이 옮겨가버려 예전만 못하지만 아직 약 3,600여개의 출판사와 인쇄소가 성업하고 있다. 우리나라 출판 산업의 최전선이다. 마포구에서는 이러한 지역의 특성을 경의선 부지에 반영했다. 조성은 마포구에서 했지만 운영은 한국출판협회가 맡았다. 책이 테마인 만큼 책과 관련한 다양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 출판사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확대해서 보세요!
읽는 맛을 찾아 떠난 에디터는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 도착했다. 경의선 책거리 입구다. 맨 처음 운영사무실이 보인다. 책거리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자전거 보관 시설도 있다. 와우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잘 정돈된 산책로와 녹지공간이 펼쳐진다. 언뜻 보면 책거리라기보다 그냥 공원에 가깝다. 그런데 조금 걷다보면 다른 공원과 다른 시설물이 눈에 들어온다. 화물컨테이너 크기만한 회색의 긴 부스같은 것들이 산책로 곳곳에 설치돼있다. 이 부스들은 경의선 책거리에서 운영하는 도서문화공간이다. 테마에 따라 총 10가지 ‘산책공간’으로 나뉜다. 예를 들면 ‘아동산책’은 아동도서를 테마로, ‘문학산책’은 문학을 테마로 꾸며진 산책공간이다.
책거리라 해서 서점과 출판사가 즐비한 골목을 상상했었는데 사뭇 다른 그림에 에디터는 당황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투박한 회색에 기다란 형체를 가진 산책공간이었다. 왜 저런 모양인가 해서 알아보니 ‘하수도’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철도부지에 책을 테마로 하는데 하수도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옛 경의선 부지에 만든 책거리이니 차라리 열차 객실을 가져와 리모델링해서 도서문화공간으로 활용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걸 열차 객실로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것 같다고 나만 생각해?
정작 들어가보니 내부는 하수도와 달리 깔끔하다. 각 산책공간은 그 테마에 맞게 꾸며져 있다. ‘문학산책’은 깔끔한 블랙톤이다. 문학산책에 전시된 문학전집 표지의 검은색과 어울린다. 지역별, 시기별 각종 문학도서가 총 망라돼있다. ‘아동산책’은 발랄한 색감이 주를 이룬다. 각종 장난감과 인형이 책과 함께 전시돼있다. 다른곳 과 달리 책이 쌓여있기보다 삽화가 잘 보이게 띄엄 띄엄 배치돼있다. 어린이들이 더 쉽게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배려인듯 하다. ‘여행산책’에서는 세계 각지의 랜드마크 장식품과 함께 다양한 여행도서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라면 전 세계 배낭여행 계획도 거뜬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각 산책공간은 전문 출판사가 전담 운영중이라고 한다. ‘문학산책’은 각종 문학전집을 발간하는 ‘문학동네’가, 아동산책은 아동도서 전문 출판사 ‘보리 출판사’가 담당하고 있다. 누구든 자유롭게 방문해 책을 읽을 수 있다. 항상 출판사 직원이 상주하고 있는데, 책에 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도 있고 간단한 책 추천도 받을 수 있다. 책을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현장 구입도 가능하다.

온 세상의 문학이 여기 한자리에! 책이 말 그대로 쌓여있다.
산책공간에 책만 진열돼있는것은 아니다. 공간산책은 강연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저자특강 등 출판협동조합 주최의 다양한 문화강연이 열린다. 창작산책은 체험공간이다. 주로 어린이와 가족단위의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도서 체험 행사가 열린다. 문화산책은 전시공간이다. 역시 도서를 테마로한 다양한 전시가 열린다. 각종 시화전이나 켈리그라피전, 도서사진전, 삽화전 등이 열린다. 이 공간들은 책거리 자체 프로그램은 물론 외부 프로그램 진행도 가능하다. 경의선 책거리 운영본부를 통해 대여하면 된다. 가격도 저렴하다.
*경의선 책거리 공간 대여 안내 : http://cafe.naver.com/gbookstreet/135
에디터가 방문했을때는 아쉽게도 공간,창작산책에서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문화산책에서는 ‘환경정의展 드러나다*’가 진행되고 있었다. 생태, 환경에 관한 다양한 도서와 함께 환경정의를 테마로 하는 사진, 영상 등이 전시되는 프로그램이다. 가볍게 구경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구경하던 에디터는 이곳에서 오늘의 읽는 맛을 찾았다. ‘조선의 생태환경사’라는 책이다. 사실 책들이 쌓여 있다시피 한 다른 산책공간에도 흥미로워 보이는 책은 많았지만 손길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을 딱 보자마자 눈길이 갔다. 마치 맛집 어플 뒤져보다가 딱 오늘은 여기다 싶은 느낌이랄까. 문화산책은 전시공간인지라 도서구입은 불가능했다. 에디터는 아쉬운대로 읽킷리스트에 ‘조선의 생태환경사’를 추가하며 구경을 마무리했다.
. *전시 안내 : www.eco.or.kr /기간 : 10.25 ~ 10.29

책거리에서는 언제 어디서 읽는 맛을 찾을지 모른다!
경의선 책거리에는 ‘312일 저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작은 문구가 따라다닌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주6일 매일 다른 테마로 도서문화행사를 하기 때문이다. 한 해에 월요일이 52~53일이니 매년 312일은 문화행사가 있는 셈이다. 이 행사들은 각 테마에 맞게 각 산책공간에서 진행된다. 지난 1년 동안 <제1차 트렁크 책축제>, <구텐베르크 유물 특별전>등 도서, 출판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다가오는 10월 27일 ~ 29일은(이번주말) 지난 1년의 성과를 정리하는 도서문화축제 <제1회 저자데이>가 열린다. 에디터가 방문했을때는 책거리 곳곳이 제1회 저자데이 준비로 분주했다. 저자데이에는 유명 작가들의 강연과 북 도슨트와 함께하는 책거리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있다고 한다.
*저자데이 프로그램 안내 : http://cafe.naver.com/gbookstreet/135

책 좀 읽어볼까 싶으신 분들은 이번 주말 책거리로!
산책공간을 뒤로하고 와우교 근처에 다다르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계단형 벤치가 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독특한 철제 구조물이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는 소녀 동상과, 그 옆으로 이어진 책장모양의 구조물이다. 책장의 책에 해당하는 철판에는 ‘무소유’, ‘총균쇠’ 등 한 눈에도 유명한 책 이름이 적혀있다. 이 구조물은 ‘시민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읽어야할 필독도서 100선’을 책장 형태로 표현한 구조물이다. 도서 목록은 경의선 조성 당시 시민들에게 어른이 될 때까지 꼭 읽어야 할 책을 추천받아 선정했다. 보통 추천도서 목록은 전문가들이 선정해주기 마련인데 시민들이 직접 선정했다고 하니 신선했다. 말 그대로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도서문화현장이다. 이 도서목록은 2년마다 새로 조사해 업데이트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 저거 다 못읽었는데 그럼 아직 어른이 아닌건가요!(빼액)
책거리는 와우교에 이르르면 끝난다. 와우교 아래에는 과거 철길의 흔적을 살려 간이 기차역을 만들어뒀다. 역명이 책거리역이다. 앞에 철길도 짧게나마 복원돼있다. 이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곳이 옛 기찻길임 실감난다. 책거리역 건너편은 인디밴드 1세대들이 음악을 하던 ‘땡땡거리’다. 와우교 철길건널목의 신호등 소리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음악을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근처에 살며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책거리 간이역을 가교로 해서 19세기의 산업시설과 90년대 언더음악과 2000년대 도서문화가 한 장소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복합문화단지다.

90년대와 2000년대 사이 책거리역
바야흐로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지만 사실 사람도 포동포동 살이 오르기 쉬운 계절이다. 배는 충분히 살찌웠다 싶은 사람이라면 이제 마음에 살을 찌워보자. 안하던 독서를 하려니 무슨 책을 읽을지 막막하다면 경의선 책거리를 방문하면 된다. 10가지 테마를 따라 산책하며 배의 양식은 덜어내고 마음의 양식을 채울 수 있을테니까.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35길 50-4
연락처 : 02-324-6200
영업시간 : 11:00 ~ 20:00 *월요일 휴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