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Where are we

신촌 술집의 화려한 간판들 사이 어쩌면 가장 돋보이는 건, 하얀 배경에 담백하게 쓰인 한 줄
신촌만큼이나 사람이 많고 혼잡한 곳이 있을까. 특히 밤이면 더 시끄러워지고 밝아지면서 혼자인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든다. 이런 곳에서 가끔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단순히 같이 마실 사람이 없어서 라기보다는, 혼자서 편하게 감정을 정리하고 싶을 때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 찾아 가는 신촌의 한 혼술바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것처럼 화려한 간판들 속에서 담담한 하얀 간판을 가진 ‘혼자가 편한 날, WHERE ARE WE’
고등학생까지 19년간 만난 사람보다 성인이 되어서 2년 6개월간 만난 사람이 더 많았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던걸까, 갑작스럽게 파도처럼 밀려 온 사람들 사이에서 온종일 허우적거렸다. 똑바로 헤엄 치려다가도 가라앉았고 급하게 잡은 튜브는 내가 너무 세게 눌렀던 걸까, 금세 바람이 빠졌다.

계단을 오르다 받은 질문 ‘What matters most to you, and why’
계단을 올라 가장 눈에 띄는 건 간판과 닮은 문구 한 줄, 너에게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은. 나에게 가장 의미있고 중요한 거. 생각을 정리하려고 왔다가 되려 질문을 받아버렸다. 애써 무시하며 여러 종류의 맥주병이 놓여있는 곳을 지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둡고 차분한 내부가 보인다. 바 앞에 있는 자리와 신촌 거리를 볼 수 있는 창가 자리는 혼자 앉기 부담스럽지 않은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어디에 앉으면 좋을까 잠시 고민을 하다 예쁜 와인병에 이끌려 창가 자리로 향했다. 앉고 나니 다른 테이블을 모두 등진 자리, 혼술을 하기에 완벽한 자리다.
사람들은 나에게 친화력이 좋다고 말했다. 맞다. 난 어릴 때부터 사람이 좋았다. 그래서 막 성인이 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좋아보여서 이리저리 다니며 내 SNS를 채웠다. 쉬운 만남은 쉬운 이별이었다. 그렇게 재밌게 하루를 보냈는데 일주일 후 모르는 사람처럼 인사도 없이 지나갔다. 지금 서로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니는 사이는 몇이나 될까. 카카오톡을 먼저 보낼 수 있는 사람은, 페이스북 친구 중에 만나서 먼저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은.

’대화는 조용히’ 입은 꾹 닫고 있지만 머릿속은 시끄러운 나는 여기에 적격인 손님인가.
자리를 골라 앉으면 웰컴 푸드와 메뉴판을 가져다 주시는데 메뉴들보다 먼저 소개되어 있는 건 이용 가이드. 혼술을 즐기는 손님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다양한 나라의 병맥주도 팔고 와인이나 위스키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무엇보다 ‘혼술 Food’라고 적혀있는 안주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과 함께 눈길을 끈다. 뭘 마실까 고민을 하다가 시킨 건 레드 와인 한 잔과 모듬 치즈 플레이트. 참고로 개인적인 취향의 추천메뉴는 블루문, 히타치노 네스트, 와인 글라스, 모듬 치즈 플레이트. 분명히 분위기에 취해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다보면 첫 주문에서 끝낼 수 없을거다.
처음에는 술자리가 좋아서 술을 마셨다. 사람과 술이 있는 밤은 시덥지 않은 얘기도 세상에서 제일 웃긴 얘기로 만들었다. 하지만 잔을 마주칠 때 일렁이는 술은 최면이라도 걸듯 그 순간뿐이었다. 다음 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날 때보다 안 날 때가 더 많았지만 처음 본 우리를 10년지기 친구처럼 만들어주는 그 순간에 홀려 몇 번이고 잔을 부딪쳤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한 잔으로는 부족한 날이라는 생각
주문한 레드 와인과 1인용 모듬 치즈 플레이트가 나왔다. 사람이 많은 신촌 거리를 바라보며 한 모금 마시고 또 한 조각 먹는다. 고추가 들어간 맵싹한 치즈부터 혀에 닿는 순간 단 맛으로 휘감아 버리는 과일 치즈까지 각기 다른 맛이 나는 치즈는 입맛을 돋구고 술을 부른다.
언제부터였더라.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건, 다음 날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들의 이름도 기억 못하는 술자리를 싫어하게 된 건. 아마 그 날이었던 것 같다. 전공 시험이 일주일이 미뤄져 뒤늦은 자유를 만끽하며 사람과 술이 고팠을 때, 몇 번이나 들여다 본 카카오톡 채팅방에, 몇 번이나 들은 통화연결음에, 또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에, 그렇게 서서히 최면에 깨서 가라앉았다.

Individualism in Conformism
술을 마시며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면 액자와 화면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올라오는 계단의 액자부터 메뉴판 뒷 장에서도 작품을 볼 수 있고, 특히 큰 테이블 앞 모니터에는 작품들이 슬라이드쇼를 통해 연이어 나온다. 모두 에드워드 호퍼의 사람들의 고독에 대한 작품이다. 그는 항상 작품 안에 많은 단서를 남기고 작품을 보는 관객에게 서술을 맡긴다고 한다. 그의 작품처럼 여기가 어떤 곳 인지는 각자의 서술에 달려있다.
혼술이 고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독할까. 처음 전공 시험이 끝나고 여기에 왔을 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혼자서 술을 마시면서 나에게 감정을 정리 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걸 느꼈다. 수 많은 만남들에 대한 감정 정리. 내가 최근들어 이런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나. 어쩌면 처음이 아닐까. 혼자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일을 하게 해주는 곳을 하게 해주는 곳. 나에게 여기는 그런 곳이다. Where Are We? Only For Me

문을 나서 다시 만난 질문
적당히 취한 것 같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마셔야겠다. 다른 사람과 상황의 분위기에 따라 끝나는 시간이 정해지는 것에 비해 온전히 시작과 끝을 내가 정할 수 있는 것도 혼술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딱 기분 좋을 때 끝을 낼 수 있는 것. 계산을 하기 전에 창가로 신촌을 한 번 더 들여다 본다. 들어올 때보다 어두워진 하늘에 더 화려해진 모습.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아까 애써 무시했던 질문 ‘What matters most to you, and why 너에게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은’, 답은 이 순간.
_’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던 순간과 혼자가 아니지만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에서 -반대과정이론, 안녕하신가영’

*O : 잔치는 2018년 신촌의 봄·여름을 SHOW라는 주제로 기록합니다. 매월 SHOW중 하나의 알파벳을 메인 테마로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드릴 예정인데요. 5월엔 ‘O’가 팀별로 다.르.다! Match ‘O’ you want……………….and CLICK

Where are we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11길 24
영업시간: 평일 19:00~24:00 월,화,수,목 / 주말 18:00~02:00 금,토,일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ar.whereare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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