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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2 · 06 · 01

178. 글월

Editor 해안

편지를 받으실 어떤 분,

 

구름이 흩뿌려진 하늘

  오월의 청명한 날이었습니다. 숨가쁘게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한산한 길거리를 걷는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그 발걸음을 따라, 연희동 편지가게 ‘글월’로 향했습니다.

 

저는 이 간판을 찾으려고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답니다

  연희 삼거리에서 왼쪽 대각선으로 올라가다 보면,글월을 알려주는 작은 간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요. 그냥 길을 지나다닐 때는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구석에 놓여 있어서 저는 한참을 헤맸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는 ‘이곳에 진짜로 편지지를 파는 가게가 있다고?’ 하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내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4층까지 올라갔을 때, 살짝 열린 작은 철문 틈 사이로 내어진 화사한 빛을 보았습니다.

 

문 너머의 밝은 빛을 기대하며 조심스레 문을 열었어요.

  문에 자그마하게 적힌 ‘geulwoll’, 영업 중임을 알리는 나무 명패, 그리고 옆에 차분하게 놓인 파란 편지봉투가 이곳의 존재감을 뿜어냅니다. 파란 편지봉투가 달린 줄을 당기면 종이 울린다고 하는데, 차마 당겨보지는 못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은근히 소심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동화에 나올 법한 공간

  공간은 넓지 않았지만, 다정했습니다. 살구 빛 벽과 나무 서랍장이 주는 따뜻한 색의 조화는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이 장소를 완성시켜 준 것은 창밖의 풍경이었습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더 잘 보이는 하늘은, 이날따라 이상적이었습니다. 빨간 지붕 집, 회색 건물, 벽돌색 건물 위에 당당히 존재하는 시원한 하늘을 보니 어쩐지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창문 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도착한 이 장소에서 시간이 아주 잠깐 멈춘 것만 같았던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이곳을 방문한 날에는 창밖의 풍경이 어땠나요.

 

바람의 순기능. 풍경이 끊임없이 찰랑거렸습니다.

  제가 간 날에는, 가게 스태프 분께서 창문을 살짝 열어두어 그 틈새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습니다. 바람이 꽤 강했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내내 흔들리던 풍경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습니다.

 

마음을 전달할 도구들

  나무로 된 진열장에는 예쁜 편지지들과 각종 문구류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사고 싶은 것을 몇 가지 마음속에 담아두다가도, 요즘 손편지 쓰는 일이 거의 없어  망설여졌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사면 내킬 때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몇 장 쥐어들었습니다.

 

아파트를 꼭 닮은 편지지

  재미있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맞은편 아파트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편지지라는 설명을 읽고 고개를 들었는데, 눈 앞에 떡하니 서 있는 연화아파트가 이제서야 자신을 발견했냐고 다그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드르륵. 어떤 것이 나올까?

  제가 글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바로 서랍장입니다. 처음에는 유리면으로 된 쇼케이스에만 물건이 있는 줄 알았는데, 서랍을 열어보니 훨씬 다양한 것들이 숨어있었습니다. 서랍을 열 때마다 어떤 물건이 나올지 기대하며 거의 모든 서랍을 열고 닫아보았습니다.

 

오직 편지를 위한 공간

  이곳은 당신에게도 익숙할, 글월에서 편지를 쓰는 공간입니다. 스태프 분께 펜팔을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면, 이 자리로 안내해 줍니다. 책상 앞에 얇은 커튼까지 쳐져 있어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아주 고즈넉한 구석 자리입니다. 제가 고른 편지를 쓴 분도, 제 편지를 받으실 분도 모두 이 공간에 앉아서 편지를 썼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편지를 받으실 어떤 분,

  막상 펜을 꺼내들고 편지지를 쳐다보니 무슨 말을 적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참 동안이나 펜을 바꾸어 가며 끄적이기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만년필을 꺼내들었으나, 생각보다 마음대로 글씨가 나오지 않아 결국은 무난한 연필로 편지 작성을 이어나갔습니다.

  편지를 두서없이 적어서 조금은 후회되기도 합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 나가다 보니, 저에 대해 제대로 알려드리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1시간 가까이 공들여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쉬움이 남는 것을 보니 시간이 문제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이 편지를 받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꾹꾹 눌러담았어요.

  그래서 저는 끝에 ‘잔치’ 사이트를 남겼습니다. 평범한 편지를 읽고서 약간이나마 흥미가 생겼다면, 제 다른 글이라도 보러 와달라는 의미였습니다. 굳이 답장을 받지 않더라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에 대해 조금 더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언제나처럼 독자분들께 바치는 글입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독자분들 사이에 제 편지를 받으신 어떤 분이 계시길 바라 봅니다.

2022. 06. 01. 수요일

다시 한번 편지를 보냅니다.

 

추신.

  저 또한 당신이 제 편지를 골랐을 그곳에서 다른 사람의 편지를 골랐습니다.

 

  제가 받은 편지에는 사람 냄새가 묻어났습니다. 짧은 글이었지만 문장들 사이에서 공감가는 고민거리들과 따뜻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제 편지도 당신께 좋은 감정을 안겨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글월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10 403호

월~토 13:00 ~ 19:00 / 매주 일요일 정기휴무

(동절기, 하절기 영업 시간 다름, SNS 공지 확인)

http://geulwoll.kr

인스타그램: @geulwoll.kr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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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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