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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9 · 05 · 01

111. 딸기골 돌담길

Editor 리코더

[골목 신촌] 02. 딸기골 돌담길

 

 

  신촌은 많고 많은 길들로 이루어져있다. 사람과 상점이 가득 몰려있는 대로도 있는가 하면 자동차 한 대도 들어오지 못하는 작은 골목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곳곳에 존재한다. [골목 신촌]의 목적은  신촌 구석 구석에 숨겨진 크고 작은 골목들을 탐사하고 그 매력을 파헤쳐보는 것이다.

 

 

   지난 골목 신촌의 첫번째 이야기, ‘창천교회 뒷 골목’에 이어 두번째로 우리가 함께 가볼 곳은 ‘딸기골 돌담길’이다. 이번 골목은 해질녘 노을보다도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의 흙냄새와 더 어울리는 곳이고, 하루를 정리하는 무거운 마음보다 소란스러운 머리를 환기하기 좋은 공간이다.

  ‘딸기골 돌담길’은 창천교회 뒷 골목보다도 인적이 드물고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공개하기에 앞서 보물 상자를 꺼내보이듯 꽤나 망설여졌다. 그런데 사진을 남기기 위해 오랜만에 방문한 이 골목은 세브란스 병원 증축과 여타 건물 건축을 위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공간을 잃는 것은 생각만해도 아찔한 일이다. 그래서 ‘딸기골 돌담길’이 조금이라도 원래의 모습일 때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기꺼이 이 골목을 소개하려 한다.

 

   이대 후문 그리고 세브란스 병원 사이에는 큰 대로가 존재한다. 차량 통행이 아주 많고 초, 중, 고등학교도 있어 인구 이동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래서일까, 대로 너머 연대동문길에는 길을 찾거나 친구를 만나는데 기준점이 될 만한 맛집과 유명 가게들이 많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오늘 우리가 골목을 찾는데 필요한 곳은 그 중에서도 ‘딸기골’이다. 그렇기에 골목의 이름도 ‘딸기골’에서부터 시작된 돌담길이라는 의미로 ‘딸기골 돌담길’이라 에디터 나름대로 붙여본 것이다.

   골목길로 갈 수 있는 간단한 루트는 다음과 같다. 파리바게뜨 신촌연대점을 끼고 돌아 조금 언덕을 오르다보면 정면에 딸기골이라는 식당과 그 건너 돌담길이 보일 것이다. 이젠 돌담길을 따라 조금 걸어보자. 신촌에 돌담길이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사람들 기억 속의 전형적인 ‘신촌’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신촌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것 같아 즐거운 기분이 들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 에디터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질적인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돌담을 찬찬히 살펴보며 대략 열 다섯 보정도를 나아가면 이윽고 돌담이 끊기고 돌계단이 등장할 것이다.

  여러분, 딸기골 돌담길에 무사히 도착한 것을 환영한다!

 

 

   분명 지나치기 쉬운 계단이다. 인지하기 어려운 공간이고. 누군가는 ‘이 계단을 왜 올라가?’라고까지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그리고 이 에디터는 누구인가? 우리는 골목 매니아다. 협소한 계단과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신비로움을 탐닉하는 우리는 분명 이 골목을 무시할 수 없다. 이유 없이 존재하는 길은 없다. 또 어떤 작은 생명들과 예술과 인기척과 냄새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조금은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할 것이다. ‘이 작은 길은 또 무얼 위해 나있나’를 적어도 우리와 같은 매니아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 모두 약간의 담대함을 가지고 이 계단을 올라가보자. 필요하다면 옆의 손잡이를 잡고 올라도 좋다. 또는 계단 옆에 넘실대는 잎사귀 하나 하나를 살펴보아도 괜찮다. 스무개 남짓의 길지 않은 이 계단은 언제까지고 여러분을 기다려 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수업을 위해 뛰어 가는 그 계단이 아니기에, 출근 시간 사람에 끌려 내려가는 저 계단이 아니기에 무얼 해도 좋다. 계단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번째 구역을 다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또 다른 작은 길이 나있고 그 끝엔 파란 대문이 보일 것이다.

 

 

 

   사진을 찍을 당시는 4월 중순께 비가 오는 바람에 아직은 조금 쌀쌀했지만 봄은 봄이라는 듯, 이름 모를 노란 꽃이 담장 너머로 흐드러져있다. 아름답다. 이 순수한 물질들, 꽃과 담장과 대문을 어느 누가 신촌 한복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다시 고개를 돌려 올라오던 방향대로 걸으면 흡사 달동네처럼 어지러이 엉켜있는 전선들과 나뭇가지들을 볼 수 있다. 귀여운 포인트는 ‘아무리 달라도 명백히 여긴 신촌이야!’라고 외치는 것 같은 저 변압기의 알림판이다. 사진엔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신촌동’이라고 똑똑히 적혀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타나는 다양한 색감들. 누가 수신인인지 알 수 없는 빨간 우편함과 언제 그렸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푸른 벽화가 골목의 끝을 알린다. 물론 이 골목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색을 고르라하면 단연 우거진 초록빛이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붉고 파란 작은 요소들이 아름다운 변주를 더한다.

 

 

   이쯤에서 뒤를 돌아보자. 가지런히 쌓인 벽, 간판 없는 구멍 가게, 여름이 채 오지 않았음에도 벌써 푸른 녹음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언뜻 이곳이 신촌인가 싶기도 하다.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새 신촌을 발견했다. 다수가 알던 신촌에서 한참을 벗어난 새로운 신촌을! 딸기골 돌담길에선 붐비는 인파와 네온으로부터 자유를 만끽하며 조금은 트인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길을 따라 끝까지 걷다보면 어느새 세브란스 병원 내부에 들어와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세브란스 병원으로 빠르게 올 수 있는 지름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길을 걸어본 누군가라면 이 쏜살같은 경험은 오랫동안 돌아볼 추억이자 향기로 남을 것이다.

   인기 많고 트렌디한 상점이 없어도 이 작은 길, 그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함과 사랑스러움이 고마운 마음까지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일상이 그러하 듯 다시 소음에 익숙해지고 화려한 불빛에 눈이 멀 때, 딸기골 근방의 뒷골목은 언제나 여러분에게 안식처로 머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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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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