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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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0 · 11 · 03

290. 너에 관한 이야기

Editor 숲

벌써 겨울이다. 너와 헤어진 계절이다. 나는 너와 선선한 가을에 만나 겨울에 헤어졌다. 잔치에서 활동하는 1년 동안 많은 고민 끝에 세 사람을 선정했으나 처음부터 마지막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네가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겨울에, 이곳에서 너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글이 너를 찾는 열쇠가 되기를 바라며.

 

 

  너를 처음 만난 날(©️ bicha_callitoon)

 

나와 너는 신촌의 세브란스 병원에서 만났다. 나는 갑작스럽게 좁아진 세상에 절망했고 너는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너에게 세상은 병원이 전부라 했다. 내가 그리워했던 모든 것들이 너에게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의 존재가 위안이었다. 나는 그렇게 이기적이었고, 내 몸은 그런 위안이라도 붙잡아야 할 만큼 절망적이었다.

너에겐 두 가지 모습이 있었다. 웃는 모습과 소리를 지르는 모습. 넌 자주 아팠고, 그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괜찮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긋방긋 웃곤 했다. 우린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너의 그러한 모습에 대해서는 끝까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너와 나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지켜야 하는 룰이 있었다. 이건 그 룰 중 하나였다. 대신 너도 내 이면을 지켜줬다. 그래서 너 앞에서만은 환자가 아니라 ‘나’일 수 있었다. 너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너와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bicha_callitoon)

 

너와 꽤 친해졌다. 조금씩 서로의 마음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너는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아주 많았다. 그중에서도 의상에 빠져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대부분을 환자복만 입고 살았을 텐데 의상 디자이너가 꿈이라니, 아이러니했다. 심지어 너의 의상 연습장은 아주 기괴했다. 이 옷을 입을 수는 있냐며 핀잔을 줬지만 그래도 네가 꼭 꿈을 이루기를 바랐다. 네가 정말 의상 디자이너가 된다면 언젠가는 나도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와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너는 대학생이 되면 키가 크고 잘생겼으며, 피부가 하얗고 어깨가 넓은 선배와 연애를 할 것이라 입버릇처럼 말했다. 너의 미래 남자친구는 외모뿐 아니라 성격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네게 말했던 것 같다. 너는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분과의 연애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의 끝은 늘 같았다. 대학생이 되면 더블데이트를 해보자. 메뉴는 봉골레와 까르보나라, 코스는 영화관과 쇼핑. 이 진부한 코스가 뭐라고 한참을 실랑이하며 계획했다. 나는 그 장소가 병원 근처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건강한 몸으로 거리를 걷다가 병원을 마주치면 비웃어주자. 너는 이런 내 말을 듣더니 깔깔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즐겁고 유쾌한 하루였다.

 

 

   너와 많은 이야기를 했던 그날 밤(©️ bicha_callitoon)

 

내가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나는 너와 헤어지는 것이 무척 서운했지만 너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좋은 일로 병원을 나가는 것이니 마지막 날에도 웃으며 인사하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떠나던 날,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너는 아무 말 없이 그런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그 품 안에서 나보다 너의 평안을 빌었다.

퇴원을 했다. 너의 바람과 달리 나는 완전히 낫지 못했고, 꿈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너를 볼 수 있어서 기뻤다. 그 병원에는 너처럼 이상한 옷을 그리는 친구도, 내게 먼저 다가오는 친구도 없었다. 네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당시 내게 있던 옷 중 제일 근사한 옷을 입고 너의 병실로 향했다. 그러나 네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나처럼 다른 병원으로 옮겼나, 아니면 퇴원을 한 것일까, 또 아니면..’ 우두커니 서 있는데 간호사분이 다가왔다. 왜였을까. 나는 그대로 도망쳤다. 네가 그렇게 싫어하던, 불안 앞에서 도망만 치는 내 습관이 너에게도 적용되었다. 이날은 아직도 많이 후회되고, 너에게 미안하다.

 

 

      너와 함께할 그날을 기다리며(©️ bicha_callitoon)

 

대학생이 되었다. 네가 좋아했던 예쁜 옷을 입고, 네가 궁금해했던 넓은 세상을 봤다. 네 말대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여전히 내 생활에는 많은 제약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었던 것들은 모두 해냈고 그 속에서 내 가능성을 봤다. 마침내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고, 그리하여 이 행복을 절대 놓치지 않을 테니 앞으로도 소소하지만 즐거운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너도 그렇게 살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우리의 신촌은 아팠지만, 그 안에는 꿈이 있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네가 직접 만든 옷을 입고 같이 신촌을 거닐자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옆에 너는 없다. 나는 지금도 신촌의 거리를 걸을 때면 제일 먼저 네가 생각나고, 너와 마주치는 상상을 한다. 사실 첫인사도, 할 이야기도 이미 정해두었다.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너는 너의 이야기인지 바로 알겠지.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내게 연락해주기를. 어색한 첫인사도, 지나치게 짧은 내용도, 심지어 원망도 괜찮아. 너의 연락을, 그리고 너와 함께할 그날을 기다릴게.

 

이메일 주소: rulim1204@naver.com

카톡 아이디: rulim1204

 

 

**일러스트 사용을 허락해주신 비차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숲
AUTHOR PROFILE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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