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 첫
- 첫 타르트
조금 이르게 찾아온, 코끝이 빨개지도록 찬 바람이 불던 그날 나는 무턱대고 문을 나섰더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기력한 날이었다. 시험 하나를 남겨둔 중간고사 주간 토요일. 바로 전 날까지 연달아 시험을 보느라 뒤집혀버린 밤낮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채 밝아오는 아침 햇살에 말려지는 건어물처럼 침대에 널부러져 있었다. 어렴풋이 잠들었다 깨길 반복하며 정신이 들 때마다 평소 버릇처럼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동향인 창문을 통해 내리쬐는 낮의 햇볕이 휴대폰에 반사되어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굳이 들여다본 SNS에는 네 글이 올라와 있었다. 평소처럼 예쁘게 차려 입은 네가 웬일인지 직접 만든 것 같은 타르트를 나눔한다는 글이었다. 네가 만든 ‘첫’ 타르트라니. 첫눈, 첫인상, 첫만남, 첫사랑, 수많은 설레는 단어들에 붙는 ‘첫’이라는 글자. 언제나처럼 ‘첫’이라는 짧은 그 한 단어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난 너의 (내 기준에서) 특별한 사건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신촌이라는 너의 말에 침대에 널부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워 옷을 껴입고 며칠 만에 집을 나섰다.
갑작스럽게 성큼 다가온 추위였다. 10월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이른 겨울 바람을 한껏 들이키며 걸음을 재촉해 너를 만나러 갔다. 잰 걸음으로 뛰다시피 향한 빨잠 앞에서 만난 너를 본 순간, 마치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세상을 호령하는 바이러스가 아직 존재하지 않고, 네가 아직 학교에 남아 있고, 언제든 만나고 싶을 때면 ‘수업 마치고 밥 먹을래?’라는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던 그때로.
너는 내 손이 시릴까 걱정하며 타르트를 건넸다. 반으로 정갈하게 잘려진 샤인머스켓이 올려진 타르트였다. 꽤나 오랜만에 봐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우리는 금방 헤어졌다. 나는 다시 우리 집으로, 너는 남자친구에게로. 마치 너의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가듯, 우리는 서로의 길을 갔다.

타르트를 조심스레 손에 받친 채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던 길
혹여나 타르트가 망가질까 조심스레 손에 든 채로, 어서 타르트를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지. 참 재주가 많은 너는 타르트도 정갈하고 예쁘게 만들었더라. 아마도 박력분, 버터, 계란, 설탕, 소금, 블루베리잼, 크림, 샤인머스켓… 그런 소소하지만 소소하지 않은 여러 가지 재료와 함께, 그 어떤 재료보다 중요할 정성과 애정.
지나치지 않게 딱 적당한 단맛을 가진 타르트가 어째 혀끝이 아릴 정도로 달게 느껴졌다. 그건 처음 만든 타르트를, 즐거움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하던 너의 사랑스러움 때문이었을까, 추운 날씨에 집을 나선 나를 걱정하고 반기던 너의 따뜻함 때문이었을까.
- 첫 친구
작년, 일년 하고도 반 전. 신촌을 한가득 메워 괜스레 마음을 울렁이게 하던 분홍빛 물결이 질 무렵, 나는 너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이 벚꽃들이 질 무렵, 우리는 절교했다
당시의 나에게 참 버겁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던 내 마음,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에 대한 낯섦, 적응할 틈도 없이 갑작스레 휘몰아치는 일들과 수많은 낯선 얼굴들. 그 중에서도 너와의 관계는 내게 참 큰 골칫거리였다. 돌이켜 보면 사실 그때 나를 힘들게 하던 많은 일들 중 네가 큰 비중을 차지했을 지언정, 나를 울적하게 만들던 그 모든 것들이 네게서 비롯한 것은 아니었을텐데. 그때는 모든 것이 네 탓 같았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다른 친구들에 대한 불평, 동아리에 대한 불만, 네가 듣던 수업의 이상한 교수님, 네 외모에 대한 불만족, 그 외의 수많은 개인적인 고민거리와 불평불만들. 서로의 부정적인 마음을 털어놓고 들어줄 정도로 가까웠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어둡고 무거운, 혹은 한없이 가볍지만 불쾌한 너의 수많은 말들은 내 어깨에 계속해서 짐을 얹어주는 기분이었고 나는 곧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꺼내는 서두에 불안해지고, 너와 둘만의 만남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넌 그걸 귀신 같이 알아차렸고, 불평거리는 더 늘어났을 뿐이다.
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멀어지는 와중에도 너는 내게 끊임없이 불평 불만, 너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쏟아냈다. 그 중 다수는 너와 내 공통된 주변인들에 대한 것들이었지. 너는 그들을 참 싫어했다. 이유도 다양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냐는 나의 질문에 너는 답했다.
그 애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싫어.
말하고 있는데 내 눈 앞에서 휴대폰을 쓰는 게 싫어.
못생겨서 싫어.
그냥 싫어.
내가 쟤를 싫어하는데 너는 왜 쟤랑 친하게 지내?
참 우습지. 매일 같이 얼굴 보고 사는 친구들에 대한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당시의 나는 무언가 오해가 있었을 거라 생각하고 그 오해들을 풀면 다들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했었다. 너는 그저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인데. 너는 아마 내가 모르는 다른 이들에게, 나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들을 했을 것이다.
너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생각과 불평 불만, 힘들었던 점들을 다 나열하자면 삼 일 밤을 새도 모자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분명 너에게 지치다 못해 질려 버렸다. 네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당장 다음날 너를 수업에서 만날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로 속이 울렁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나는 너와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의 해묵은 감정을 풀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실패했고, 너는 나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아니, 차라리 말로 들었다면 덜 비참했을 것이다. 너는 다만 조용히 내 SNS 계정을 차단하고 보란 듯이 수많은 게시글들을 올려,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네 소식을 듣도록 했을 뿐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나는 마음 속으로 너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너와는 첫 번째였던 그 해 신촌은, 내게 그렇게나 엉망진창이었다.

돌이켜 보면 한때 우리는 서로 이런 사진을 찍어줄 정도로 친했더라
이 수많은 불평불만 끝에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그럼에도 가끔 네 생각이 난다는 말이 아닐까. 너와 나의 관계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럴 생각도 없음에도. 시간이 지나 격했던 감정이 흐릿해진 탓일까. 수많은 나의 ‘첫’들 중 너는 첫 대학 친구들 중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각별했다. 첫 대학 생활과 첫 기숙사 생활, 첫 동아리 활동, 첫 상경, 다른 지역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과의 첫만남. 수많은 나의 처음들을 함께 한 너는 나에게 각별했고, 나는 버릇처럼 너를 ‘형제 같은 친구’라고 소개했다.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해 싫어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에도 힘이 든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보다 더. 나는 내 온 힘을 다해 너를 아끼고 좋아했고, 그보다 더 크게 너를 증오하고 미워했다. 그렇기에 평생 네가 미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세상에는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더라. 정말 좋아하지만 가끔은 미운 구석이 있는 사람과 정말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는 사람이 있더라. 그게 너였다.
나는 어쩌면 4년 전 너와 나,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쫄보 새내기 셋이 첫 공연을 무사히 끝낸 걸 축하한답시고 기숙사 앞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던 그날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작 그 맥주 한 캔이 뭐라고, 기숙사 문 앞에 앉아 벌점을 받으면 어떡하냐고 호들갑을 떨며 축배를 들던 내 첫 일탈의 기억 속에.
- 첫 동아리
Nobody cares, just dance.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그냥 춤 춰! 언젠가 단체 패딩에 새겼던 그 말처럼, 우리는 정말 우리의 춤을 추는 것에만 집중했었다.

우리는 춤(舞)추는 댄서니까! 무(舞)아일체, 마치 춤과 내가 하나인 것처럼 (© ziczzang)
아무 생각 없이, 단지 지원 기간이 남았다는 이유로 지원했던 동아리에 4년이나 남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뭘 하는 동아리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지원했던 동아리의 워크샵 겸 오디션에 간 날, 첫인상은 ‘아, 이 동아리 정말 이상하다.’였다. 세상에. 아직 오디션 합격 여부도 안 나온 신입 부원들을 데리고 뒤풀이를 가는 동아리가 어디에 있담. 워크샵과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오디션 뒤, 같이 뒤풀이를 가자는 말에 동아리를 해본 적은 없지만 이게 뭔가 이상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정말 이상한 동아리야. 만들어진 지 20년이 된 동아리에 여전히 한 자리 기수 선배들이 심심찮게 나타나는 이 동아리는. 왜 여전히 동아리에 남아 있냐는 말에 다들 하나 같이 ‘사람 때문에’라고 답하는 이 동아리는. 분명 매년 다른 사람이 들어오고, 누군가 계속 들고 나는데도 어째서인지 한결 같은 동아리다. 어떻게 이렇게 결이 곱고 성격 좋은 사람들만 모아둔 건지,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모두를 한 곳으로 이끌어 모으기라도 한 듯.
뭣 모르던 새내기 시절,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따라 들어온 동아리에서 처음 춤을 접했다. 춤은 몸의 언어라고 했던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동아리 안에서만큼은 우리는 춤으로 소통했고, 마치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몸과 마음을 바쳐 춤을 췄다. 춤(舞)이라는 글자에 설렜고, 모든 무대는 소중했다. 무대에 서서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나는 비로소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연습실 바닥에 패딩을 깔고 자다가 밟혀서 누군가 내 발만 꺼내 놓기도 했지
농담 삼아 ‘우리는 댄서잖아’라는 말을 일삼으며, 정말 마치 춤만 추는 사람들처럼 서로가 대학생이라는 점도 망각하고는 한다. 다들 어찌 그리 동아리에 그 한 몸들 바치려고 하는 건지. 다친 몸을 이끌고 고통을 참아가며 하나의 무대를 완성하기 위해 열정을 쏟아붓던 우리들의 모습을 잊을 수 있을까. 그 차가운 겨울, 코끝을 스치던 찬 바람에 몸을 웅크리면서도 연습실을 향해 재촉하던 우리들의 발걸음.
단 3분의 무대를 위해 30시간을 쏟아부으며, 우리는 마치 스스로가 청춘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굴었다. 성인이 된 이후 같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그 추억이 너무 소중해서, 공연이 한참 전에 끝나고도 우리는 만날 때마다 그때의 추억을 곱씹는다. 한 친구가 말한 것처럼 분명 3분을 빛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은데, 더 빛나는 것은 그 3분을 위해 노력한 30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찰나의 순간이 영원하기를. 공연의 마지막 순간 나는 간절히 바랐다 (© 사진 동아리 인화-김선영)
첫 동아리, 첫 무대, 첫 공연, 첫 대동제, 첫 커튼콜, 수많은 ‘첫’들. 사랑하는 친구들과 미워했던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해준, 세상이라는 알을 깨고 나오게 한 나의 첫 동아리. 언젠가 누군가 팜플렛에 써넣은 말처럼, 공연은 순간이지만 그대들과 함께한 기억은 영원하길.
**흔쾌히 로고 사용을 허락해준 원작자 친구와 소재를 제공해준 양채련양, 이제는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그 친구, 마지막으로 공연의 설렘과 소중함을 다시 기억나게 해준 안현석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젠 김 안무가 말고 김 작가님이라고 불러야겠다ㅋㅋㅋ
부러워요.좋은 기억들이 평생 힘이 되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