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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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1 · 03 · 24

149. 도토리 칼국수

Editor 냠

신촌 떠돌이 인생도 어느덧 4년 차. 이 시간 동안 내가 얻은 것은 나이와 혼밥할 장소를 찾는 능력, 그리고 딱 종이 한 겹 정도만큼 알고 있는 전공 지식 정도다. 별거 없어 보이지만 그게 맞다. 별거 없다. 그래도 뭐든 꾸준히 하다 보면 얻어가는 게 있나 보다. 고독한 미식가까진 아니더라도, 몇 년간의 혼밥 경력을 통해 고독한 혼밥러로 성장하며 얻은 나름의 지혜가 있다.

그건 바로 내게 칼국수는 실패하지 않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다른 메뉴들은 양이 너무 적거나 혹은 많아서, 아니면 너무 짜서 고통스럽거나 느끼함에 먹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칼국수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사천 원짜리든, 팔천 원짜리든 항상 먹을 만했다. 이런 이유에서 내게 칼국수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음식이다. ‘모든 건 결국 변한다’는 말만이 아이러니하게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지만, 칼국수는 거의 언제나 먹을 만하다는 사실만은(적어도 나에겐 사실이다)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서 누군가 슬플 때 힙합을 추듯이, 나는 실패 없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을 때면 칼국수를 먹는다. 

칼국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두 문단에 걸쳐서 써버렸다. 이 정도면 칼국수를 향한 진심이 잘 담겼으리라고 믿는다. 별로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왕 쓴 거 좀 더 말하자면, 나는 칼국수 중에서도 얼큰한 국물을 직접 냄비에 끓여 먹는 칼국수를 특히 좋아한다(등X칼국수 같은…). 이런 내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는 신촌의 한 칼국수 집이 있다. 이번 글의 주인공, 도토리 칼국수다. 간판을 보면 ‘버섯매운 도토리 칼국수’(근데 안 맵다)가 진짜 이름인 것 같지만 아무도 이렇게 안 부르고 있다. 심지어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아무튼 들어가 보자. 

 

진하게 느껴지는 K-식당 갬성

 

현 상황도 상황이고 방문 당시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전보다 사람은 좀 적었지만 여전히 정다운 모습이었다. 전에 친구와 왔었을 때는 여기저기 사람들로 가득 차서 시끌벅적했었는데. 사람이 한창 많을 시간대가 지난 때에만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전에 왔을 때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정성 들여 전문 업체를 통해 만든 것 같지만 어딘가 투박한 메뉴판, 도토리의 효능이 줄줄이 적혀있는 홍보판,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빨강 의자, 뉴스를 틀어놓은 티비까지. 정말 완벽한 ‘K-식당 갬성’이다. 동네 근처 백반집이나 국밥집에서 느껴질 법한 그런 감성이 풍겨 나오는 인테리어다. 화려하거나 세련되진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마음이 푸근해진다.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앉아있는 사람들이 활기를 띠며 칼국수를 먹고 있든, 그보다 좀 더 한적하고 고요한 모습이든 도토리칼국수는 언제나 친근한 매력이 있다. 각잡고 완벽하게 꾸며놓은 모양새는 아니지만 진짜 현실의 복작함이 묻어있다. 가족끼리 외식하는 모습, 조잘조잘 들리는 대화 소리, 애매하게 항아리처럼 생긴 김치 그릇, 새하얗고 오돌토돌한 티슈, 멍하니 보게 되는 티비 화면까지. 이 모든 게 어우러져 공간에 흐른다. 이곳에서의 기억들도 같이 섞여 있다. 천천히 그 모든 것들을 느껴보았다. 이 세상엔 멋지고 세련된 곳들이 정말 많지만, 그래도 내 일상을 따끈하게 채웠던 건 혼자서도 맘 편히 올 수 있는 이곳이었다.  

 

도토리가 이렇게 몸에 좋습니다 여러분

 

오랜만에 티비로 뉴스를 보며 메뉴를 기다린다. 내가 시킨 메뉴는 도토리 칼국수다. 가게 이름이 그건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등심샤브 도토리 칼국수도 있고 돼지고기 김치찌개도 판다. 참고로 등심샤브 칼국수는 미나리와 소고기가 더 듬뿍 들어가있다(비싼 만큼 더 맛있다). 김치찌개는 안 먹어봐서 잘 모르겠다… 가장 저렴한 도토리 칼국수를 시켰지만 혼자여서 1인 메뉴로 시키니, 기존 가격에서 2천 원 더 비싼 9천 원이었다. 슬프지만 고독한 혼밥러는 이 정도 난관에 굴하지 않는 법이다. 사실 난관이라고 하기엔 과자 하나 안 먹으면 되는 값이긴 하다. 그래도 2천 원도 소중한 돈이니 부를 친구가 있다면 같이 가서 먹도록 하자.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듯이 역시 음식은 N빵이 이득이다.

 

감동적인 만남

 

드디어 기다리던 칼국수가 나왔다. 주문하자마자 금방 나왔지만 버섯 익을 동안 기다리는 게 힘들었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비주얼도 그렇고 구성도 그렇고 샤브샤브 칼국수 하면 떠오르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칼국수 집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도토리 칼국수는 좀 더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다. 얼큰하지만 자극적이지는 않다. 그리고 면발이 도토리 색이다. 도토리로 직접 면을 뽑아 만든다는데 도토리 맛이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색깔 있는 음식이 몸에 좋다고 하니까 일반 칼국수 면발보다 몸에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쫄깃한 도토리 면발뿐만 아니라 육수가 100% 채소 육수라는 점도 도토리 칼국수만의 특징이다. 여러 이유로 고기를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몸에 좋은 채소가 많이 들어갔다며 웃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대파, 양파, 가시오가피 등이 들어갔다고 한다. 무슨 채소를 하나 더 말씀하셨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도 육식/채식을 선택할 수 있게 많은 노력을 하셨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선택지를 존중하는 곳이라는 점이 도토리 칼국수만의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심지어 맛있다. 

 

뉴스를 보면서 계속 먹다 보니 어느새 거의 다 먹어간다. 그럼 이제 끝이냐고? 그럴 리가. 아직 하이라이트가 남았다. 영양죽을 먹지 않았다면 도토리 칼국수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없다. 참고로 달걀이 들어가니 비건이라면 칼국수를 주문할 때 미리 빼달라고 말씀드리면 된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칼국수를 다 먹어갈 때쯤에 남은 면발과 건더기들을 앞접시에 옮겨 놓은 뒤 영양죽을 넣고 저어주면 된다. 이때 필요한 건 인내심과 계속 국자를 휘저을 수 있는 완력이다. 영양죽 지금 넣으면 되나요 하고 사장님께 여쭤봤더니 이백 번 저어야 한다고, 그래야 맛있다며 사람 좋게 말씀하셨다. 달고나 커피도 안 만들어본 나에겐 큰 도전이었다. 휘휘 젓다 보니 왜 이백 번이란 구체적인 숫자가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젓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꾸덕함이 살아나는 게 눈에 보였다. 비빔밥도 제대로 안 비벼 먹는 인간이라 아마 이백 번 저으란 얘길 안 들었으면 대충 휘적이고 말았을 거다.

 

비주얼은 이래도 맛은 좋습니다

 

짠. 영양죽이 완성됐다. 한참 젓고 나니 전완근이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여기 올 때마다 계속 같은 팔로만 저었다가는 나중엔 그쪽 팔만 발달해버리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들었다. 다음에 오면 반대쪽 팔로 저어야겠다. 

한 입 떠먹은 영양죽은 고소하면서 부드럽고 꾸덕했다. 축축하기만 한 게 아니라 적당한 꾸덕함이다. 굳이 다른 음식에 비유하자면 잘 만들어진 리조또 같다. 하지만 리조또는 리조또고 영양죽은 영양죽이다. 영양죽엔 리조또와는 다른 한식 특유의 담백함과 깔끔함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영양죽에 있던 달걀이 퍼지면서 부드러움이 가미된다. 흔히 겉바속촉이 완벽한 식감의 표본으로 칭송받곤 하지만 도칼의 세계에서는 겉꾸속부가 진리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창 먹는데 어디선가 찬송가가 들린다. 여기가 극락인가.. 이건 아니고 앞 테이블에서 사장님 두 분이 찬송가를 들으며 버섯 손질을 하고계신 거였다. 한적한 틈을 타서 휴대폰으로 작게 틀어놓고 하시는 것 같았다. 노동요가 찬송가라니… 소리가 작아서 그런지 아련하게 들려온다. 어쩐지 성스럽다. 

 

이렇게 오랜만의 도토리 칼국수 방문기는 홀리하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대로 글을 끝낼 수는 없다. 에디터 이름도 냠인데 최선을 다해 먹방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사이드 메뉴를 안 먹었다면 그건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래서 다시 갔다.

도토리 칼국수에는 버섯야채만두, 도토리버섯전, 도토리묵무침이 사이드 메뉴로 있는데 나는 만두와 버섯전을 시켰다. 사이드 메뉴만 시키고 자리를 차지할 만큼의 패기는 없어서 얌전히 포장해갔다. 원래 밖에서 먹을까 했지만 너무 추워서 호다닥 집으로 향했다.  

 

배경은… 무시하세요….

 

한 시간 가까이 지났음에도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더 식으면 가슴 아프니까 얼른 젓가락을 들었다.   

우선 만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야채만두다. 개인적으로 폭신한 만두피보다 쫄깃한 만두피를 선호하는데, 이 만두는 윤기가 잘잘 흐르는 쫄깃 만두피여서 좋았다. 주로 후추로 간을 했는지 한 입 베어 물자 후추 향이 확 풍겨왔다. 건더기는 적당히 씹히는 맛이 있었다. 만두피도 그렇고 만두소도 그렇고 정성 들여 만든 듯한 맛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어딘가 허전했다. 되게 담백한 맛인데 그게 좀 밋밋하게 느껴진다. 보통 만두 하면 생각나는 진한 맛을 기대하고 먹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맛이 취향에 맞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만두보단 칼국수를 많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입 하실래예?

 

도토리 버섯전은 먹음직스러운 도토리 색에 기름기로 적당히 반들거리고 있었다. 약간 메밀전병 같은 색깔이다. 먹어보니 적당히 짭조름하게 간이 돼 있었고, 아주 말랑했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색감도 그렇고 위에 고명으로 얹힌 초록색 채소도 그렇고 정감 가게 생겼다. 막걸리 한잔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만 기름기가 좀 많은 편이어서 김치는 필수다. 뭐 원래 전이 다 그렇긴 하지만 혼자 한판을 다 먹기엔 좀 느끼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혼자 한 판을 먹을 일이 거의 없겠다 싶다. 그냥 내가 많이 먹은 거였다. 흠흠.. 아무튼 맛있는 저녁 식사였다. 덕분에 지루하고, 동시에 불안한 내 일상이 조금 더 따듯한 색으로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곰 인형의 색깔 같은 도토리 색으로. 

이게 예측 가능한 행복만이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닐까. 어딘가에서 한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어떤 예측도, 규칙도 찾을 수 없는 사진들의 연속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이 일정한 패턴이 보이는 사진들을 보았을 때 삶을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느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틈만 나면 새로운 걸 찾으면서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있기에 삶을 지탱하며 그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당연하게도 특별하고 멋진 일만 있을 수는 없다. 그 사실이 보통의 일상을 지루한 것으로, 혹은 스스로가 그저 정체된 듯한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예측 가능한 그 일상 속에는 어딘가 다정함과 특별함이 있다. 내게는 칼국수가 앞에서 말한 그런 다정함이나 계절의 순환 같은 것인가보다. 혼자 먹는 칼국수는 내게 예측 가능한 만큼의 편안함이자 일상을 안정감 있게 만들어주는, 평범하지만 그렇기에 그 무엇보다 특별한 것이니까. 특히 도토리 칼국수라면 더더욱. 

 

 


                    도토리칼국수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명물길 27-19

      연락처: 02-704-2588

      영업시간: 매일 10:00~22:00

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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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뭐 있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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