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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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1 · 05 · 03

POLTERGEISTS

Editor 뽀

 

 

POLTERGEISTS

 

*폴터가이스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찬장을 빠져나온 접시들, 갑자기 쏟아지는 소금통, 어느 순간 사라진 일기장, 보이지 않고 단지 느껴지기만 하는 누군가의 시선, 침대 밑에서 뻗어 나오는 미지의 손… 지극히 공포스러우면서도 항상 매료되곤 했던 어떤 것들에 대해. 

 

*집 안을 흔들고 물건을 날아다니게 하거나 가구 등을 부숴버리는 정령의 일종. 혹은 그런 현상 그 자체를 일컫는 말. 기묘한 소리만이 들리는 가벼운 것부터, 마치 지진처럼 집이 흔들리는 심한 것까지 있으며, 갑자기 불을 내거나 집안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도 있다_폴터가이스트 [Poltergeist] (환상동물사전, 2001. 7. 10., 구사노 다쿠미, 송현아)

 

삶에서 행복만큼이나 중요한 감정이 있다면 나는 공포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공포를 학습한 채로 태어난다. 독이 있는 것, 날카로운 것, 너무 뜨거운 것, 그리고 낯선 것에서 우리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멀어진다. 그러나 본능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공포를 두려워하는 한편 공포에 강하게 매혹되는 심리가 있는 듯 하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유명한 심령 스폿을 구경하고, 촬영하고, 영화를 만들고, 관람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기에,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런 의심이 짙어진다.

 

프롬 파티장을 불태우고 유유히 빠져나오는 캐리_새 영화리뷰 – 캐리 Carrie (1976) (djuna.kr)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호러 영화 <캐리(1976)>에서 프롬 파티장은 폴터가이스트 현상 때문에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학생들은 공중을 떠다니는 양동이와 저절로 터지는 조명, 쓰러지는 기둥 사이에서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이 요란한 폴터가이스트를 일으킨 장본인 캐리는 날아다니는 식칼 같은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2차 성징에서 공포를 느낀다. 일반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지 못했던 캐리는 역설적으로 초자연 현상보다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에 더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이처럼 어떤 공포는 무지에서 기인한다. 타인, 잘 모르는 공간, 새로운 물건,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생명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낯선 것들. 

 

 

낯선, 신촌

 

신촌은 내게 익숙한 만큼 낯설다. 가도 가도 모르는 공간들이 드러나는 것도, 상권이 휙휙 바뀌는 것도 한 몫 하지만, 무엇보다 내 곁을 지나쳐가는 인파가 일일이 낯설고 피곤하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들과의 거리감을 조성하는가? 무엇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 이 사람이 나와 철저히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하는가? 물론 인파의 대부분이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도 맞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도통 가늠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방향성이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움직이는 것만 같다. 나는 천천히 걷다가 문득 멈췄다가 갈 길을 잃은 바늘처럼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다시 걷기 시작하는 게 고작이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 목적지가 있는 걸까, 어떻게 망설임 없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건가.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움직이는 인파 틈에서, 나는 어쩐지 혼자 녹진한 늪에 발목이 시큰할만큼 붙잡힌 듯 하다. 출처 없는 무게감을 느낀다.

 

이건 아득한 내 삶을 축소해 놓은 레이스인가? 멀뚱하게 서 있는 나와 저마다 목표를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항상 나보다 저만치는 앞서가는 사람들. 도시 안으로 파묻히면 파묻힐수록 나는 나를 자꾸 잊어버리고 남들을 쫓다가 문득 뒤처져 있다는 사실만을 자각한다. 나는 나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고, 어디에도 드러내고 싶지가 않다. 사람들이 저마다 뱉어내는 각자 다른 숨이, 말이 순간순간마다 귓전을 때린다. 그러니까, 내 주변에서 정신없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일어나는 것만 같다. 나는 프롬 파티장에 갇힌 졸업생처럼 어디로든 도망쳐 보려고 하지만 도시의 설계는 촘촘하다. 아마 비명조차도 새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회칠된 듯한 하늘

 

이번 달 동안 두 번 찾아온 신촌 하늘에는 두번 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지극히 의도적으로, 하늘을 헤집어 놓은 듯 날이 흐리다. 출처도 모르는 채 부유하는 매연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다. 이렇게 음울한 날에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진다. 가득 찬 사람으로 안 그래도 좁게 느껴지는 거리에서 비구름이 나를 내리누르려고 하는 듯한 착각까지도 느껴진다.

 

어릴 적 읽었던 청소년 도서에서 유독 기억나는 구절이 하나 있다. 소설 속에서 화가인 엄마는 딸의 뺨을 부여잡고 울기 시작한다. “네가 물과 기름처럼 다른 애들과 떨어져 있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니.”라고 말하며, 물과 기름, 나는 이 말을 몇 번 곱씹어 본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다. (이윽고 딸도 엄마를 부둥켜안고 운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고 다른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물과 기름처럼’이라는 비유를 제외하고는 문장 자체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의 ‘그 부분’은 책에서 물과 기름처럼 떨어져 나와 유일하게 내게 흡수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자주 나와 다른 것들을 그렇게 비유하는 감상에 빠졌다. 물과 기름처럼 나는 너와 어울리지 못한다. 물과 기름처럼 나는 이 수업과 맞지 않는다. 나는 물 위로 떠오르는 기름처럼…신촌을 부유한다. 열심히 저었지만 섞이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끝없이 낯설어지는 곳. 

 

 

小島麻由美(Kojima Mayumi)_[愛のPoltergeist] 앨범 아트. 환희와 고통이 뒤섞인 표정의

 

그러나 공포가 매혹을 동반하듯이 낯선 만남은 설렘을 동반한다. 낯선 존재와 마주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 잔뜩 부풀려진 환상을 본다. 익숙한 존재에게서는 즉시 사그러드는 환상을. 폴터가이스트는 어쩌면 더없이 낭만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어떤 물리력도 인과관계도 없이 떠오르는 자유로운 물체에서 나는 염원하는 자유를 엿본다. 어떤 구속도 없는 감정의 과잉을 엿본다. 폴터가이스트의 제목을 달고 사랑을 노래하는 코지마 마유미의 가사는 그래서 제법 그럴듯하지 않은가? 마음이 고조되어 맥박이 빠르게 뛰는 사랑의 감각은 분명 익숙하지 않은 충격일 것이다. 낯설기 때문에 두렵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러운. 더욱이 그런 불가항력적인 사랑의 떨림은 문학에서 공중을 부유하는 일에 자주 빗대어져 왔으므로.

 

 

아껴 먹어야 하는 설렘의 맛

 

 

역설적이게도 나는 폴터가이스트 없는 신촌은 상상할 수 없다. 신촌의 폴터가이스트는 그 나름의 설렘을 동반하기에, 공포 영화를 자꾸 찾아보는 심리처럼 나는 신촌을 기웃거린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공기와 인파 속의 부담스러운 활기에도 매번 발걸음을 옮긴다. 마치 물 위로 꿋꿋하게 기름이 떠 있듯이… 그런데 물과 기름이 굳이 섞여야 할 필요가 있나, 물은 물의 효용이 있고 기름은 기름의 효용이 있는데. 함께한다는 것이 늘 본질을 합쳐야만 하는 일은 아닐 테다. 

 

나는 가로등의 빛과 어둠이 자아내는 경계를 사랑한다. 완벽하게 섞이지 않아도 물감이 번지듯이 일렁이는 그 테두리를, 서로의 경계를 과하게 침범하지 않으며 드러내는 빛깔을. 나에게는 낯선 신촌만의 환상이 가로등 빛처럼 일렁인다. 그렇다면 낯선 것들에 조금은 환상을 유지할 수 있어도 좋지 않은가, 싱어송라이터의 폴터가이스트처럼. 적당한 거리 속에서 공포에 매혹될 권리가 나에게는 있다. 

 

 

 

  

*Poltergeist의 가사 上がる上がる想いに心は/脈打って止められない 에서 발췌

뽀
AUTHOR PROFILE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3

  1. 30
    30 2021.05.04 13:37

    낯설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반가운 것들. 우리는 그런 것들을 갈구하게 되는 것 같아요. 흐릿하게 일렁이는 경계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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