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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2 · 03 · 30

171. 텐동미세기

Editor 소한

귀신같이 꼭 들어맞는 법칙들이 있다. 지각 위기일 때면 신호에 걸리게 되어있다든가, 새 신발을 신은 날에 비가 내린다든가, 새빨간 국물이 튄 그 옷은 꼭 흰색이게 되어있다든가 하는 사소해서 더 열받는 머피의 법칙. 이 모든 짓궂은 일들의 시작은 ‘~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가 아닐까. ‘하필이면’이라는 부사와 잘 어울리는 모든 사건들의 도입부이자, 저 대사를 뱉는 순간 피하고 싶었던 바로 ‘그 일’의 주인공이 된다는 뻔한 복선 말이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왜 이런 진리는 꼭 일이 터지고 나서야 떠오르는 걸까.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고열과 극심한 인후통으로 꼬박 닷새를 앓아누운 다음, 후유증으로 후각을 완전히 상실한 비운의 에디터. 그게 바로 내가 됐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절망하고 있을 수는 없다. 베토벤도 청각을 상실했지만 진동에 집중하여 불후의 명곡을 작곡했고, 이연복 셰프도 후각을 잃었지만 섬세한 미각으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내지 않는가! 무엇보다 마감날이 쫓아오고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전광판이 있는 바로 그 곳

 

거장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고 하찮은 나지만, 오늘의 음식이라면 비슷한 전화위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텐동은 오감을 모두 사용해서 먹는 음식이니까! 다양한 튀김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비주얼과 바삭한 튀김 옷, 재료의 가짓수만큼 다채로운 식감들, 그리고 씹을 때 입속에서 울리는 경쾌한 소리까지. 벌써 군침이 싹- 돈다. 소개는 이쯤하고 굴다리 앞, 연세로 첫 번째 골목에 있는 텐동미세기로 들어가보자.  

 


흐리멍덩한 날씨 덕분에 더 아늑해 보이는 내부

 

점심시간을 넘긴 애매한 시간에 방문했더니 꽤 한산했다. 텐동미세기의 좌석들은 모두 ㄷ자 바형식으로, 혼밥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달그락거리는 식사 소리만 이따금 들릴 듯한  모습이지만, 조성모의 다짐이 신나게 흘러나오고 있다. 빠라바빠빠 빠바~ 빠라바빠빠 빠바~  어딘가 이질적인 것 같으면서도 일식집과 묘하게 어울리는 그 시절 명곡들과 함께 내적댄스가 가득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메뉴판, 근데 이제 화려한 양재샤넬체를 곁들인

 

주문은 키오스크로 하면 된다. 여러 메뉴가 있지만, 에디터의 원픽은 가성비가 넘치는 ‘에비텐동’이다. 믹스텐동은 새우튀김이 한 개라서 왠지 아쉽고, 장어가 들어가 있는  미세기텐동은 비교적 가격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새우튀김 두 개에 그 중간 어디쯤의 가격을 가진 에비텐동이 왠지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뱃가죽과 등가죽이 상봉할 것 같이 허기진 날이나 유난히 고된 하루를 보낸 날에는 무려 장어가 들어있는 미세기 텐동이 적당하다고 본다. 모듬 텐동은 이번 학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나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먹어보리라 다짐했다. 상황에 맞게 적절한 메뉴를 선택하고 나면 탄산음료도 꼭 추가한다. 평소 생맥주를 사랑하는 에디터지만, 텐동은 왠지 달짝지근하고 청량한 탄산음료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메뉴를 주문할 때 잊지 말고 추가하자. 먹다가 일어나기 귀찮으니까. 계란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밥과 함께 비벼 먹을 온천계란도 잊지 말자!

 


눈이 즐거운 비주얼

 

드디어 기다리던 에비텐동이 나왔다. 보기만 해도 바삭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은 화려한 비주얼이다. 무엇보다 새우튀김이 두 개다. 새우튀김으로 시작한 식사를 새우튀김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꽤나 푼푼해진다. 정석대로라면 밥 위에 튀김을 절반 정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옆에 있는 앞접시에 옮겨둔 다음 밥과 튀김을 함께 먹으면 된다.    

 


앞에서부터 맛살튀김-단호박튀김-새우튀김-오뎅튀김.

그리고 맑고 칼칼한 국

 

에디터는 튀김을 앞접시에 모두 담아두고 식사를 시작하는 것을 선호한다. 튀김을 김이 모락모락나는 밥 위에 올려두면 금세 눅눅해져 버릴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젓가락으로 튀김을 하나하나 옮기며 어떤 순서로 먹을지 고민하는 순간을 즐기기 위함이기도 하다. 물론 시작과 끝은 정해져 있지만. 과정을 설명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현기증으로 쓰러지기 전에 얼른 먹도록 하자.

 


간장에 톡-

 

새우튀김과 바삭함 그 자체인 김튀김, 거기에 향긋함까지 더한 깻잎튀김, 달짝지근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의 단호박튀김, 결이 살아있는 맛살튀김, 포슬포슬한 감자튀김, 쫄깃한 오뎅튀김과 물렁한 식감의 가지튀김까지! 평소 편식이 심해서 가지에는 손도 대지 않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마다하지 않는다. 미세기텐동의 바삭하고 고소한 튀김옷과 함께라면 못 먹을 음식이 없을 것만 같다. 부모님과 유치원 선생님들도 끝끝내 못 고친 편식을 스물두 살에 텐동으로 이렇게 쉽게 고칠 줄 누가 알았을까. 코요태의 노래가 흘러나올 무렵, 밥이 절반쯤 사라졌다. 

 


온천계란에 비빈 밥을 먹고도 부족해서 더 떠왔다. 돼지 맞다.

 

밥이 절반쯤 남았다면 밥을 비비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다. 터트린 온천계란에 밥을 야무지게 비벼서 먹으면 된다. 에디터는 계란을 좋아하지 않지만, 온천계란을 좋아하실 대부분의 독자님들께 소개하기 위해 한 끼 양보하기로 했다. 다 먹고도 밥이 부족하다면 후리가케와 간장이 마련된 셀프바에서 떠오면 된다. 직접 간을 조절해야 하므로 세심한 양 조절이 관건이다. 자신이 없다면 간장은 조금씩 넣는 편이 좋다. 거침없이 부었다가 짜서 후회한 적이 있다.  

 


소한 에디터는 매너 짱!

 

식사를 마쳤다면 빈 그릇을 선반 위에 올려놓는 센스를 발휘해서 ‘매너짱’이 될 기회를 놓치지 말자. 우리 인생에서 매너짱이 될 기회는 생각보다 적기 때문이다. 그릇이 너무 깨끗해서 의심할 독자분들께 하는 말이지만, 설거지까지 하지는 않았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배를 두들기며 가게를 나섰다. 가게를 나서는 길, 사장님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혼밥하러 온 에디터의 헛헛한 마음까지  채워준다.     

 


하늘에서 내린 맛, 텐동

 

미세기 텐동 골목을 매몰차게 벗어나는 대신, 입구에 놓인 나무 간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시간을 갖자. 텐동의 ‘텐’이 괜히 하늘 천(天) 자를 쓰는 게 아니다. 가게를 처음 방문해서 들어설 당시에는 저 나무 간판을 보며 조금 웃었지만, 이제는 가게를 나설 때 마다 인정하는 문구다.

배는 든든하게 채웠지만, 어딘가 아쉽다. 평소 같았다면 당연하게 콧속을 파고들었을 고소한 기름 냄새가 그리운 모양이다. 하지만 그리 서럽지만은 않다. 후각 상실이라는 잠깐의 균열은 곧 평범해서 더 감사한 삼시 세끼로 메워질 테니까. 얄궂지만, 안온함에 빛바랜 일상을 다시 빛내주는 건 이런 재수없는 나날이다. 이런 게 인생인가 보다. ‘하필이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는 날과 ‘내가 쟤보다는 낫지’에서 ‘쟤’를 맡게 되는 얄궂은 나날들, 최악과 최고, 차악과 차선의 하루들이 한데 뒤섞인 일상을 그저 한 그릇 뚝딱- 비워내는 것 말이다. 마치 텐동을 먹는 것처럼.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내심 씁쓸하고, 텐동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독자님들이 부럽다. 에디터의 부족한 표현력이 못내 답답하다면 에디터를 원망하는 대신 텐동미세기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백문(百聞)이 불여일(不如一)이다. 

 


Off the record 

 


제발 오늘만은 열어주세요 엉엉

 

 ‘하필이면’ 텐동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버텨낸 날에 가게가 닫혀있었다. 미세기텐동이 늘 이 자리에 있는 건 맞지만, 늘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에디터는 사장님의 개인적 사정으로 인한 임시휴업 앞에 억장이 와르르 무너졌다.

 


텐동미세기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13길 7

매일 11:30 – 21:00 

브레이크타임 15:00 – 17:00

02-332-2146

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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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

겨울을 사랑하는 재미지상주의자!

COMMENTS

댓글 3

  1. 두잇
    두잇 2022.03.31 14:40

    역시 플팀 새학기 첫글부터 너무 재밌는거아니냐며~ 한문장 한문장 다 맘에 든다며…매너짱 센스짱 소한님! 잘 읽었어요:D 이렇게 킵해놓은 신촌 식당이 하나 더 늘었다고 한다…(그리고 후각은 좀 돌아왔나요?)

    1. 소한
      소한 2022.04.04 12:11

      두잇님이 댓글까지 달아주시다니… 제가 참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네요…♥ 이번 학기 플팀, 더 야무진 글 많이 올라올테니 기대 많이 해주세요ㅎㅎ 텐동미세기 꼭 가보시길… (후각은 이제야 쪼금 돌아왔어요! 20%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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