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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2 · 06 · 29

180. 플플릭스(PLFLIX): 신촌 아카이브

Editor 소한

 

 

 

 

플플릭스(PLFLIX)

99%일치 2022 ⓬ 0시간 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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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프레임 안에 든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 안에 든다는 것. 네 명의 에디터가 신촌이 담긴 프레임 속 공간을 직접 찾아 나선다. 낭만과 투지, 우주와 별, 충돌이 스며들어 있는 누군가의 청춘을 찾아 떠나는 아름답고도 험난한 여정. 우리와 함께 떠나볼래? 

함께 벌입시다, 잔치! 

 

2022 화제작

홍, 소한, 파인, 해안 연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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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캠퍼스

 

엽기적인 그녀 外 5작품
에디터 홍

 

 익숙한 공간일수록 소중함을 잃고는 한다.  원래 풍경이라는 게 의미를 가질 때 장소성을 띠게 되는지라, 그냥 공간으로만 존재하는 것과 누군가의 ‘장소’가 되는 순간은 다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는 어떤 이들이 ‘장소’로 만들어놓은 신촌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어느 감독의 눈에는 미치도록 아름다웠을 이 신촌이라는 따분하고도 시끄러운 장소에 대해.

 

 

 그러니까, 당장 종강을 하자마자 계절 개강을 해서 장마를 뚫고 매일 등교해야하는 나의 상황에도 연대는 내게 장소로 존재한다. 내 몇 년의 추억, 기억, 가치가 들어있기에. 웹드라마,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내게는 유정선배* 따위 없고, 나도 홍설*이 아닌데, 내 주변에는 죄다 상철선배*아니면 손민수*뿐인데, 이상하게 드라마 속 연대는 아름답다.  

*대학배경 유명 웹툰 <치즈 인 더 트랩> 속 주인공들

 

  신촌….. 그게 뭔데 이렇게 청춘의 메카로 불리는 걸까. 유독 초록빛의 풀이 많은 것도, 옛 유럽풍의 건물이 아름다운 것도 이 학교가 이렇게 수많은 배경이 되는 것에 완벽한 답이라고 말해주지는 않는다. 젊은 사람들의 영혼이 빨린 곳이라 그런지, 혹은 그 사람들의 피, 땀, 눈물이 죄다 들어있어서 그런지 신촌은, 연대는 유독 싱그럽다. 그래, 흔히 말하는 캠퍼스의 낭만. 그런 것들.

 

 

 그래서 사진 몇 장을 뽑아들고는 캠퍼스로 향했다. 남의 프레임에 비친 이 낭만들을 찾아보러. 

 

<엽기적인 그녀(2001)>, 빌링슬리관

그 유명한 S#하이힐

 

 

 그럼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클리셰로 시작하자. 캠퍼스를 한 바퀴 빙 돌고도 이 벤치를 찾지 못해 결국 <엽기적인 그녀> 패러디물을 찍었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빌링슬리관 있잖아, 그 언론대학원 쪽

 무슨 소리야.. 거길 지금 세 번을 들렀는데

 올라가야지

응?

올라가라고…. 장난쳐?

 

 아, 그러니까 빌링슬리관 앞으로 올라가 오른쪽을 쳐다보면 저 벤치가 있는데, 멍청하게도 정확히 건물 밖만 빙빙 돈 에디터 덕분에 사진을 들어올릴 때엔 이미 파들파들 떠는 수전증만이 남았다는 후문.

 어쨌든, 벤치를 보자마자 견우야~ 하는 전지현 배우의 목소리가 귀에 생생했다. 21세기 소녀치고는 <엽기적인 그녀>를 이렇게나 자세히 알고 있는 게 수상하다면….. 비밀이다. 사실 인생 2회차일수도

 이 장면 덕분에 당시 대학가에는 하이힐과 운동화를 바꿔 신는 데이트 문화가 있었다고까지 한다. 아직까지 <엽기적인 그녀>를 안 본 사람이 있다면 강력히 추천한다. 느끼지도 않은 2000년대의 청춘과 낭만, 그리고 사랑을 느낄 수 있을테니까. 누구에게나 아린 낭만은 있으니까.

 

<클래식(2003)> 연희관

그 유명한 S#비피하기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2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도 로맨스하면 한 번씩 꼭 언급되는 빗 속의 난방. 그래, 에디터는 그냥 누구 하나 빨리 가서 우산 사 오면 안 되는 거냐며 불평불만을 해대는 그 장면. 그 유명한 <클래식>의 명장면을 찾기 위해 연희관으로 향했다. 언더우드관을 지나 빌링슬리관 옆에 있는 건물이 연희관이다. 연세대 건물 중에서도 유명한 건물이다. 물론 찌는 듯한 더위와 믿을 수 없는 습도에 차라리 물고기가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여기까지 올라온 에디터는 숨이나 헉헉 몰아쉬며 사진을 찍었지만, 어떤 연인들에게는 낭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의 방향이 아닌, 저 연인의 시선 방향으로 바라보면, 캠퍼스의 전경이 펼쳐지며 꽤나 낭만적이거든. 궁금하다면 직접 보러 가보자

 

제발… 가만히 좀… 있어… 이익…

 

 절대 바람 막아 줄 난방을 들고 머리 위로 씌워 줄 사람을 기대한 건 아니다. BGM이 흘러나오면서 같이 뛰어내려갈 사람을 기대한 것도 아니다. 절대

 

<응답하라 1994(2013)>, 언더우드관 앞

S#F와T의논쟁, 그리고 지구가 멸망했어… 

 

 

 아 이건 비밀인데….. 내가 신촌에 처음 오고 싶다고 공부를 시작한 건, 이 드라마 때문이었다. 열 다섯번은 족히 돌려봤을 이 드라마. 그래 응답하라 1994….. 난 캠퍼스가 죄다 이럴 줄 알았다. 여전히 내 마음은 어딘가에서는 칠봉이가, 어딘가에서는 쓰레기가 나올 거라는 로망을 버리지 못한 채 학교를 배회한다. 그래 그럼 내가 나정이어야 하는구나

 최근 유명했던 클립이 있다. 바로 F와 T의 논쟁

 

문을 닫으면 페인트 냄새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문을 열면 매연이 들어와 목이 막 아파 콜록콜록… 자기야 나 어떡해?

 

 너 괜찮아? 라고 먼저 물어볼 F형 인간인 에디터에게 이 논쟁이 상당히 흥미롭지만, 더 나가기엔 핀트를 벗어나는 것 같으니 독자들의 이후 토론에 맡기기로 한다. 각설, 이 논쟁이 바로 이 언더우드관 앞의 잔디관에서 이루어졌는데, 역대급 장면이 또 탄생한다. 

 

지구 상에 산 사람이라고는 니, 내, 윤진이 셋 뿐이다. 내가 윤진이가?

 

 바로 공중전화 씬 바로 직전의 대화. 나정이의 풋풋하고 아린 짝사랑의 첫사랑이 잘 느껴지는 장면인데, 이 푸른 잔디밭의 배경이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이루어지지 않은 짝사랑에도 잘만 어울린다. 이 캠퍼스라는 곳은. 

 

<청춘시대(2016)>, 백양로

S#불안한 청춘, 우리들의 시대

 

 

 그래, 청춘의 이야기가 담긴 캠퍼스엔 연인과 사랑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정’을 빼놓을 수가 없다. 불안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입체적으로 잘 드러냈다고 많은 사람들의 ‘인생드라마’로 언급되는 <청춘시대> 또한 연세대의 한 한곳을 빌렸다.  소심이. 젖살도 채 안 빠진 싱싱한 스무살 은재.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돼있을 줄 알았지만 고난의 연속이라는 은재를 지금 다시 보면 너무나도 나같다.  이 즈음이면 어른이 돼 있을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맞는 20대는 고난의 연속이다. 불안한 나의 청춘처럼, 이 캠퍼스들엔 불안한 청춘들이 가득하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 (2019)>, 언더우드관

S#내운명은내가만들어

 

모두들 같은 착각에 빠진다. 주인공은 당연히 자신일거라는. 자신의 삶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존재할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캠퍼스는 때로 고등학교 건물로도 바뀌어 촬영된다. 어쨌든 청춘… 그 언저리의 것이라는 건 같은 맥락이겠지만. 웹툰 속의 건물로 표현된다는 건, 그만큼 캠퍼스가 푸릇푸릇하고, 예쁘다는 뜻이겠지,하며 좀 더 찬찬히 건물을 뜯어보게 된다. 

 

<안나라수마나라 (2022)>, 연희관

 

 

막간을 이용해 아까 들렀던 연희관을 한 번 더 데려온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로 오픈된 <안나라수마나라>의 티저 예고편에도 나온 연희관은, 꾸준히 촬영 장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넷플릭스라니! 이제 우리도 ‘국제적’이 될 수도.

 

#에필로그

 

 

 심지어 저번달에는 산책을 하러 캠퍼스를 들렀다가 웹드라마 촬영 현장을 보기도 했다. 물론 촬영 소식을 전혀 전해듣지 못한 에디터는 죄다 2019로 써있는 판넬과 ‘연희대학교’라는 말 때문에 이 세상이 거대한 사기를 치는 줄 알았다.

  종종 ‘연희대’로 바뀌어 잘만 쓰이는 이 캠퍼스가 왜 이렇게 촬영 프레임으로 많이 담기는지 쓰다보니 알 것도 같다. 

 아린 첫사랑, 시린 짝사랑, 그리고 싱그러운 청춘, 불안한 청춘까지. 

 이 캠퍼스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기에 너무나도 낭만적이다.

 너무나도 적합하게.

 


부엉이 돈가스 신촌점

 

<로맨스는 별책부록>
에디터 소한

 

 뻔해서 더 좋은 것들이 있다. 착한 주인공이 복을 받게 되는 동화라든가, 과정은 달라도 결국에는 이루어지는 럭비부 주장과 치어리더의 사랑, 다이어트 중 맞닥뜨린 내가 아는 그 맛 같은 것들. 나에겐 돈가스가 바로 그런 음식이고, 로맨틱 코미디가 그런 장르이다.

 

돈가스 좋아하세요?

 

 어쨌든, 오늘의 플레이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등장한 부엉이 돈가스 신촌점으로 가보자. 큰 길 사이로 보이는 동화같은 단층 건물, 간판을 능소화로 장식한 가게는 벌써부터 꽤나 ‘로코’스럽다. 이 곳에서 차은호(이종석)가 주인공 강단이(이나영)의 바람 핀 전남편(오의식)을 찾아가 두들겨 패는 사이다 장면이 촬영되었다.

 

드라마 속에서는 백일몽 돈가스로 둔갑했다!

 

부엉이 돈가스에서 사이다 장전 중인 이종석

 

  자리에 앉으면 사장님께서 메뉴판을 내어주신다. 두툼한 메뉴판 속 음식들은 꽤나 화려하다. 볼케이노 돈가스, 스노우 치즈 돈가스, 프렌치 크림 돈가스, 사칠리아 토마토 돈가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돈가스가 있는 줄은 몰랐다. 게다가 명란 크림 파스타, 오징어 토마토 파스타 등등 파스타도 있고, 샐러드도 몇가지 있다. 하지만, 그 가게의 참맛은 그 가게의 이름이 들어간 기본 메뉴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내 선택은 부엉이 돈가스와 사이다 한 캔! 참고로 부엉이 돈가스의 가격은 8500원이다.

 

경양식의 정석

 

  돈가스를 먹기에 앞서, 토핑이 귀여운 스프가 나온다. 대부분의 경양식집 스프는 너무 걸쭉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곳은 점도가 적당하고 맛이 깔끔해서 만족스러웠다. 

 

  돈가스는 나도 알고 독자님들도 아는 그 맛이다. 그러니까, 맛있는 맛. 촉촉하고 두툼한 고기와 적당히 달달하고 상큼한 소스. 부어진 소스 아래로 약간 남아있는 바삭함에 마음이 푼푼해진다. 부엉이 돈가스는 구성이 꽤나 훌륭한 편인데, 감자튀김과 두가지 샐러드 모두 맛있다. 기대 이상이었던 건 유자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 상큼한 드레싱이 튀긴 음식과 잘 어울린다. 스프, 돈가스, 감자튀김, 샐러드 모두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맛이다. 친숙해서 더 소중한 그런 맛.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 맛’이라는 건 생각보다 ‘별 거’다. 우리 모두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기대치를 충족해줄 수 있는 맛이라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부엉이 돈가스’는   적당한 포만감과 만족감을 약속하는 곳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정해져있는 것처럼.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배경이 되는 출판사, ‘지지 말고 살라’는 뜻의 회사명 ‘겨루’는 사실 없는 순우리말이다. ‘겨루’의 뜻은 허구지만, 돈가스의 일본어 표기인 豚かつ(돈카츠)에서 ‘카츠’가 ‘승리’를 뜻하는 勝つ와 발음이 같은 것은 사실이다. 조별과제 무임승차자와 알바중 맞닥뜨린 진상들에게 나를 대신해 ‘사이다’를 날려줄 차은호를 가질 수는 없어도, 이종석이 ‘다녀간’ 부엉이 돈가스에서 돈가스와 함께먹는 사이다는 가질 수 있다. 그러니, 든든히 먹고 각자의 자리에서 승리하시기를!

 


신촌터널

 

 

<응답하라 1994>
에디터 파인

 

[이승환 – 화려하지 않은 고백]

 

지금 그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는 외롭지만 행복한 당신을 위해,

 

여러분, 이런 날이 기회입니다. 만약 지금 자기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혹시 그 사람을 짝사랑 하고 있다면 이 어둠을 틈타 실컷 그 사람 얼굴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자, 지금 우리가 누군가를 짝사랑한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짝사랑 중이라면 더 좋고!)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있을 기회를 어떻게든 만드는 거지.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기회를 틈타 함께 밥을 먹고, 핑계를 대며 함께 걸어.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둘 중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집까지 바래다 주겠지?
옛날엔 하숙집들이, 지금은 원룸이 즐비한 그 거리를 걸으며 노래를 듣는 거야.
딱 요즘같은 온도, 습도, 바람.. 생각만해도 몽글몽글, 멜랑꼴리한 그 감정을 느끼면서, 마치 내가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마주한 터널 옆 계단,


칠봉이와 쓰레기의 감정이 폭발하던 바로 그 장면, 그 장소.

 

응사*에서, 쓰레기와 칠봉이의 차이가 뭔지 알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줄임말


칠봉이는 모자 안에 나정이의 사진을 넣어두며 보았고, 쓰레기는 모자를 쓰고 나정이를 향한 마음을 감춰왔다는 거야. 칠봉이는 본인의 마음을 드러내는데 망설임이 없었던 거고, 쓰레기는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유하고 암시한 거지.

 

나는…비록 외사랑으로 끝났지만, 본인의 마음에 솔직하고, 그걸 용기있게 드러낸 칠봉이가 더 좋았어. 그래서 계속 응원했고. 결국 칠봉이는 여기, 이 신촌 터널 옆 계단에서 나정이에 대한 마음을 차근차근 정리하기로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지 말자. 솔직하되 홀로 하는 외사랑은 하지 말자.

 

이왕 사랑하는 거, 함께 사랑하는 게 좋지 않겠어?

 

 

설령 지금 이 사랑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2002년 계단에서의 충돌로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는 칠봉이처럼 우리에게도 그러한 새로운 충돌이 일어날 테니까.

 

 


공씨책방

 

<기적>
에디터 해안

 

오래된 책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헌책방 특유의 분위기는 좋아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애타게 찾던 보물들이 좌르륵 놓여 있는 곳, 그런 곳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다.

특히 요즘같이 비가 오고 꿉꿉하고 습한 날에 책방에 가면 종이가 물을 한껏 머금은 채 풍기는 내음을 맡을 수 있어서 좋다. 뭐, 소중히 보관되어야 할 책들에게는 약간 미안한 날씨이긴 해도 말이다. 

 

청록색의 존재감

 

신촌역에서 나와 대로변을 쭉 걷다 보면 청록색 간판에 적힌 ‘공씨책방’이라는 글씨가 책방 애호가들을 반긴다. 에디터 개인의 의견이지만, ‘서점’보다는 ‘책방’이라는 단어에서 한층 더 정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서점’은 정돈된 서가에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을 것만 같다면, ‘책방’은 좁고 어지러운 통로에 아직 정리되지 못한 책들이 쌓여 있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네모난 책들 뿐인데

 

공씨책방은 실제로 그러했다. 좁은 책장 사이를 지나려면 바닥에 탑처럼 쌓인 책에 이리저리 부딪혀야 했다. 마치 거대한 책 무더기 속을 파고 들어온 느낌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 한 권마다 그 안에 각각의 세계가 펼쳐져 있을 거라고. 널려 있는 책 중에서 무심코 한 권을 집어들면 그 책이 가진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그 책을 내려놓고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책을 집어들면 또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그렇다면 이 작은 책방에는 얼마나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인지. 이런 좁은 곳에서 끝을 볼 수 없는 넓은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니. 이것이 헌책방의 묘미 아닐까. 어지러운 공간 속에서 언제 만들어졌을지 모를 책 속의 세계를 질리도록 맛볼 수 있는 것 말이다.

 

 

공씨책방은 영화 ‘기적’의 촬영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이 열악해 철길을 이용하는 시골에 사는 ‘준경’과 그의 고등학교 친구인 ‘라희’는 책방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라희가 책을 읽고 있는 준경의 옆에 나란히 앉아 꿈에 대해 물어보고, 준경을 바라보며 자신의 꿈은 ‘뮤즈’라고 말하며 준경더러 천재 과학자가 되어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의 따뜻한 색감과 책방의 아늑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청춘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책방에 앉아 책을 읽는 준경을 바라보는 라희

 

우주에 관한 책만 읽는 준경에게, 로맨스 소설을 건네는 라희

 

“니는 우주가 그래 좋나?”

 

“좋지”

 

“뭐가 그래 좋은데?”

 

“별이 좋다”

 

“별이 뭐가 좋은데?”

 

“그런 게 있다”

 

책 한 권이 별 하나라면, 헌책방은 별을 가득 담고 있는 우주이려나. 책 한 권 속에는 또다른 우주가 있고… 그 우주에는 문장이라는 무수한 별이 또 빛나고 있겠지. 우주를 좋아하던 준경도 책방과 책에서 우주와 별을 발견했으려나.

 

 


별점 ⭐️⭐️⭐️⭐️⭐️

리뷰

우리는 늘상, 꽤나 자주, 별 의미 없던 공간이 의미를 가진 ‘장소’로, 무수한 장면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바뀌는 기적을 마주한다. 평소 무심히 지나치던 공간을 화면으로 마주했을 때, 그 장소가 하나의 장면이 되어 우리에게 한 프레임으로 남을 때. 공간은 그렇게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마음껏 몰입하자. 그곳에 서있는 순간만큼은 엽기적인 ‘그녀’가, 별책부록의 ‘은호’가, 응사의 ‘칠봉이’가, 기적의 ‘준경’이 되어 공간을 온전히, 또 다르게 느끼면 된다. 그 뿐이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추억과, 다른 만남과, 다른 사랑을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같은 시간 속 같은 공간에 기적적으로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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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사랑하는 재미지상주의자!

COMMENTS

댓글 3

  1. 챌라또
    챌라또 2022.06.29 18:31

    한줄평: 신촌을 걷다보면 가끔 아주 커다랗고 맥없는 비눗방울 안에 든 것 같은 상상을 하다, 누가 볼까 무서워서 금방 터뜨려버리고는 했는데 – 이번 플팀 글을 읽으니까 그 방울 안에서 좀 더 오래 즐겨도 되겠다는 이상한 위안이,,, 아이디어도 넘 좋고 글도 다 정말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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