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신촌 2막
1. 오후 6시, 18시에 대한 고찰
18시. 대부분 직장인도 퇴근을 하고(사실 직장인이 아니라서 잘 모른다), 대학생들의 수업도 거의 끝나 저녁을 먹거나 교외 활동을 할 시각이다, 아마도. 그러니까 내게 오후 6시는 하루의 제 2막을 여는 시간으로 인식되어 있다는 것이다.
18이라니, 숫자부터 참 발음하기 뭐하지 않나. 곧 스물여덟을 바라보는 내 나이만큼이나 쉽지 않은 숫자다. 18이나 28이나, 둘 다 발음을 조심하게 되는 숫자다. 처음 신촌에 도착해, 인생은 약간 정신을 놓고 살아야 즐겁다는 뭔가 잘못된 지론을 가지고 마냥 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정말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뒤에서 미는 세월의 손길에 밀리고 밀려 이제는 인생의 다음 막으로 건너가는 건널목 코앞에 섰다는 것이다. 마치 하루를 아무리 느리게 가게 하고 싶어도, 겨울의 오후 6시가 되면 해가 지고 하루가 저물어가는 것처럼.
어느 날 오후 6시에, 이제는 등 떠밀려 떠나게 된 학교의 정문 앞 횡단보도에 서서 건너편 신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이 시각, 이 건널목이 내 인생의 분기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강제로 떠나게 된 신촌의 6시. 20대 후반, 인생의 분기점에 서서 문득 신촌이 만들어준 인연들을 되돌아보는 글이 쓰고 싶어졌다.
2. A와 D 사이의 대통주
A와 D를 처음 만난 지 어느새 만으로 3년이 넘었다. 동아리 회장단과 부원 관계로 만나 나름 파릇파릇한 신입 동생들과 선배의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그냥 학교를 떠나지 못한 고학번 셋이 되었다. 분명 셋이 만나 나누는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해봐야 오늘은 동아리 연습을 마친 후 방탈출 카페에 갈 것인지, 빙수를 먹을 것인지 정도였는데 요즘은 만나면 진로 고민으로 바쁘다. 대학원이니, 취직이니. 대화 주제가 ‘오늘 뭐할래?’에서 ‘뭐 먹고 살지’가 돼버린 것이다.

셋 다 각자의 일정으로 바쁜 탓에 꽤나 오랜만에 함께 저녁을 먹게 됐다. 역시나 시각은 하루 일과가 대충 마무리되는, 혹은 하루 일과의 중간 정리를 하는-랩실은 퇴근이 없어요(🥕)- 오후 6시. 메뉴는 산란기 연어마냥 다시 한 번 (자칭) 마음의 고향인 대명꼬~기다. (꼬와 기 사이의 물결이 포인트다)

분명 처음의 목적은 단백질 보충이었다. 정말이다.
단백질 보충을 이유로 고른 가게지만, 사실 정말 단백질 보충이 목표였다면 다른 집도 많을 것이다. 고기는 대통주를 위한 핑계에 불과하지 않나, 싶었다면 정답이다.

영롱하지 않니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랬다. 그렇지만 대명꼬~기에서는 고기와 친구들 사이의 대통주라 할 수 있다. 판다가 아닌 탓에 대나무를 먹어본 적이 없어 대나무 맛은 모르지만, 아마 대나무맛 술이지 않을까 싶다. 진로 고민보다 더 진지하게 메뉴를 고민하고-된장삼겹살과 냉면, 도시락을 시켰다-, 사장님을 힘차게 불러본다.
사장님, 여기 대통주 한 병이요!
죽심(竹心). 대나무의 마음이라. 곧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뜻이지 않을까? 오늘 만남의 취지와도 걸맞는 유익한 이름이다. 마치 지금 우리를 위해 마련된 술인 것 같다. 그렇다면 한 병 더 마셔도 되지 않을까. 이 글이 아무말처럼 느껴진다면 정답이다. 왜냐하면 이 셋은 애초에 모이면 아무말이나 하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이날도 아무말이나 하다 헤어진 탓에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는 바가 없다…

대통주와 함께 하는 하루, 조은날이 맞다.
예전에 마시던 술이 스스로가 성인임을 입증하기 위해 마시던 치기어린 음주였다면, 지금은 여전히 풋내가 나지만 각자 나름의 고충을 마셔 없애버리기 위한 음주라 할 수 있다. 내일따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셋이 만나 대통주 여섯 병을 비우던 우리는 어느새 20대 중후반이 되어, 두 명의 군필 아저씨와 한 명의 (강제) 졸업예정자가 되어 고작 두 병을 비우는 게 다다. A의 입버릇처럼, [이건 뭔가 잘못됐다].
가끔 만나 술을 마시게 되면 더이상 밤을 새지 못하고, 오후 6시 이후의 삶을 살러 가는 그들을 보며 ‘녀석들, 약해졌군.. 아니, 약해진 건 나인가.’ 라는, 다소 소년만화 같은 감상이나 떠올리는 나이가 돼버린 것이다.
우리는 각자 인생의 건널목을 건너고 있는 중이다.
3. 아무때나 가는 아무
Y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처음 만난 당시 그녀의 오버워치 티어-마스터랬다-와 인생 2회차 같던 그녀의 술자리 텐션이다. 술을 마실 때면 아주 그냥 야무지게 밤샐 것을 대비해 휴대폰과 카드만 가져와서, 그것마저 목에 걸어 분실을 방지하던 소위 ‘짬바’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당시 그 누구도 그녀가 20살 파릇파릇한 아가 새내기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말하자면, 실제로는 오전 9시에 해당하지만 오후 9시 같은 친구였다.
예전의 그녀와 함께한 기억이 대체로 오후 9시였다면, 요즘은 오후 6시쯤 되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도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냐면, 과잠의 소매가 빳빳하지 않고 무두질 한 가죽마냥 부드러워진 정도다.

분명 사진을 찍을 때쯤엔 오후 6시에 노을이 졌는데, 지금은 어둡기만 하다(난 억울해)
오후 6시쯤 학교 수업들이 대부분 끝이 나고, 저녁을 먹을 시간이면 또다시 진지한 메뉴 고민이 시작된다. 그리고 마땅히 가고 싶은 위시리스트가 없다면 그 고민의 종착지는 대부분 아무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아무때나 간다.
6시에 여는 아무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메뉴를 정할 때면 그녀와 나 사이에는 첨예한 대립각이 선다. 마파두부밥이 되고 싶었던 무언가(…이름이 길어서 풀네임이 생각나지 않는다)를 고를 때의 취향 차이 탓이다. 물론 정말 싸우지는 않는다. 다만 서로를 이해할 수없을 뿐. 나는 비건이 아니지만 비건마파두부밥(후략)을 선호하고, Y는 일반마파두부밥(후략)을 선호한다. 고기보다 두부와 버섯을 선호하는 내가 그녀에게는 외계인 비슷한 존재인 듯하다.

햄이 아니다. 버섯이다.
메뉴를 고르고 나면 음료를 고르는데, 예전에는 ‘알콜 조금 들어가면 보고서가 더 잘 써져~’ 같은 헛소리를 하며 당연스레 맥주를 시키곤 했다. 꽤 자주, 어쩌면 많이 자주 들락거렸던 가게라 그런가 예전과 달리 라임탄산수를 주문하자 사장님이 놀라신다. 사장님, 왜 놀라시는 건데요. 저희도 이제 술 대신 탄산수를 마시는 나이(?)가 됐다구요.
사장님의 서비스 불 – 활활 잘도 타오른다 내 고민도 같이 타버려라
저녁 메뉴를 고른 후, 최근 옷장 정리 현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패션도 많이 바뀌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전만 해도, 나름 나나 그녀나 굽이 없는 신발은 신고 나가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특히나 Y는 새내기 특유의 통통 튀는 발랄한 색감의 옷을 즐겨 입고, 언제나 화장도 빼먹지 않는 친구였다. 그런데 어느새 둘 다 고학번 특유의 칙칙한-Y는 차분한 색이라고 정정했다- 옷을 입고, 과잠과 모자를 즐겨 착용하는 사람들이 돼버렸다.
최근 들어 예전에 입었던 새내기의 패기가 가득 담긴 옷들을 정리한다던 Y는 정리 중인 옷들 사진을 보여주며 외쳤다.
나를 말렸어야지!
자기가 정말 이런 걸 입고 다녔던 거냐며 보여준 노란 땡땡이 블라우스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만 우리가 이제 패기 넘치고 마냥 밝던 오후 12시의 사람들이 아니라, 조금은 어둡고 진지해진(아마도) 오후 6시의 사람들이 되었을 뿐이다. 더이상 술을 죽자고 마시고, 술을 마시면 당연히 밤을 샌다고 생각하는 청춘들이 아닐 뿐이다.
4. 5:59pm의 나와 6:01pm의 J
또 아무다. 어쩔 수 없다. 내 영혼의 1/3이 대명꼬~기에 있다면, 1/3은 아무에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1/3은… 내 자취방에 있다.
J의 늦은 생일파티를 했다. 오후 6시가 돼서야 카톡 알림을 보고 상대의 생일을 알아차려 축하 메세지를 보내는 것 같은 시간 감각의 축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6시…에 만나려 했으나, KTX보다는 조금 부정확한 아무의 오픈 시각에 맞춰 여유롭게 6시 반에 만났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는 아무만의 감성이 있다

아무역은 언제나 10시 15분 전이다. 술 마시기 제일 좋은 시간이라 그런가…
J는 나보다 인생의 템포가 한 박자 빠른 친구라 할 수 있다. 여전히 학교를 벗어나지 못해 원혼에 가까운 나와 달리 일찌감치 취업에 성공해 어엿한 직장인이다. 내가 오후5:59의 삶을 살고 있다면, J의 인생 지점은 오후 6:01다.

나와 사장님, 그리고 가게의 다른 손님 두세분이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초를 껐다. 셀럽에게도 협찬해주지 않는다는 그 유명한 D사의 보석 세트를 J에게 걸쳐줬다. 그런 J를 보고 있자니, 인생이 한 박자 차이가 나든 두 박자 차이가 나든 사람은 결국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 노는 것 같다. 수료생과 직장인이라는, 다소 어긋난 박자의 삶을 사는 둘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비건마파두부밥(후략)을 먹고, 접시가 비워지면 정해진 수순처럼 쥐포를 시킨다.
이날 대화의 결론은 이렇다.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이 많다. 그것도 너무 많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난제일 것이다. 오늘도 라임탄산수를 마실 생각이었는데, 듣다보니 너무 속이 타서 민스비어라는 메뉴를 시키고 말았다.

듣고 있자니 정말.. 아아, 무리예요
학교에 다닐 때는 운이 좋았는지 나와 안 맞는 사람이 몇 있었을지언정 이렇게 대놓고 이상한 사람은 잘 없었던 것 같은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지언정 차마 입 밖에 내놓지 않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거나, 자기 중심적으로 구는 사람이 세상에는 참 많았다. 심지어 어딜 가나 있었다.
저게 오후 6시 1분의 인생을 사는 사람의 모습인가. 나는 그런 사람들 틈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친구가 존경스러우면서도,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오후 6시가 조금 두려워졌다.
5. Dear Mr. H
(직접 만날 수 없는 마지막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게 부치는 편지로 갈음한다)
안녕하세요, H씨.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 20대의 2막에 서서, 오랜만에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최근에 숙제 하나를 해치웠거든요. 오랜 기간 가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가지 않던 서점이 있었는데, 신촌을 떠날 날을 앞두고 방문했어요. 오후 6시가 가까워져 어둑해진 골목 뒤, 홀로 빛을 발하는 작은 서점에 도착한 저는 오늘도 여상히 담배 연기가 피어 오를 당신의 하숙집을 떠올립니다.

유년의 저는 당신을 흠모했습니다. 당신의 매부리코와 날카롭게 빛나는 회색 눈, 깡마른 몸과 큰 키, 맹금류 같은 날카로운 외양, 처음 만난 사이에도 상대에 대해 알아내는 날카로운 눈썰미와 예술적인 바이올린 솜씨, 방대한 지식을. 실내 가운을 입고 의뢰인을 맞이하는, 상대를 깔보는 시선과 냉담한 말투, 벽에다 총을 쏘는 괴짜 같은 모습까지도요. 당신에 대한 책을 모두 어찌나 읽었던지, 어느 순간 문장 하나하나를 외워버린 저를 발견했습니다. L씨를 좋아했던 어머니와 당신을 좋아했던 저는 언제나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지요.
저는 당신을 따라 행동했어요. 지나가던 길에 떨어진 물건을 관찰하고, 그 주인에 대해 상상하고, 내 앞에 앉은 사람의 옷소매와 신발을 관찰하며 상대가 이전에 어디를 방문했을지 추측하곤 했습니다. 다행히 당신처럼 줄담배는 피우지 않았어요. 당신 덕에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 꽉 찬 세상을 보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아는 흥미로운 과정이 어느새 ‘학업’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숨통을 죄어올 때, 저는 당신을 떠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당신을 따라 주변 사람을, 주변 환경의 작은 요소들을 관찰하고 상상하던 즐거움을 잃고 다만, 이 세상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용이 있고, 요정이 있고, 마법이 있는 세상으로. 현실이 주는 흥미로움을 모두 잃고서요. 그리고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저는 당신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떠올린 당신에 대한 향수와 반가움으로 저는 책을 한 권 집어들었습니다. 다시 사소한 것들에서 새로운 정보를 도출해내는 과정의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요.
H씨, 제가 당신처럼 당당하게 저를 향한 악의에도 콧웃음치며, 당신의 마지막 선택처럼 가끔은 정의를 위해 제 한 몸 던지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오늘 건널목 앞에서 저는 지난 20대의 기억을 되돌아 보며 당신에게 묻습니다. 각자 베이커가와 신촌의 건널목에 선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나요? 이 건널목 너머에 제가 원하는 것이 있을지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이 어둠 너머 그 무엇도 알 수 없음에도, 이제는 용기를 내어 건널 때겠죠.
인생이 몇 막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아마 인생이 끝나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제 새롭지만 새롭지 못한 이 모순적인 新村이라는 동네를 떠나, 당장 앞에 닥친 제 인생의 2막을 향해 나아가려 합니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다시 한 번 당당히 당신의 앞에 설 날을 꿈꾸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하루의 2막이 시작되는 오후 6시에 서서,
당신을 흠모하던 과거의 팬으로부터
by. 김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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