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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5 · 03 · 26

459. 어떤 용기는 아주 조용하고, 어떤 힘은 아주 침착합니다

Editor 이연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앞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다니고 있는 최영환이라고 합니다.

 

본 공연에 배우로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항상 연극을 하고 무대에 올라보고 싶다고 생각해왔어요. 배우의 경우에는, 물론 다른 스태프들도 다 고생하시는 건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공연 전까지 정말 거기에 올인하고 시간을 많이 써야 해요. 그러다보니 시간이 안 맞을 때가 많았어서 그동안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거든요. 이번 공연은 시간도 잘 맞고, 제가 그 시간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상황이라 이번 기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또 워낙 뜻깊고 의미 있는 공연이라 더 망설임 없이 지원했던 것 같아요.

 

 

 

 

주연인 윤동주 시인 역할을 연기하시게 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처음에 캐스팅이 발표되었을 때 일단 너무 영광이었죠. 주연인데다 이렇게 호흡이 긴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오는 기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부담도 되었어요. 왜냐하면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분이고, 이미 윤동주 시인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제가 잘 이해하고 해석한 다음 알맞게 소화를 해서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좀 고민이 있기는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역을 맡음으로써 그분의 일생을 탐구하고 공부하게 되었고, 그걸 소화해 가는 과정 자체는 굉장히 뜻깊고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는 공연에서 윤동주 본인을 연기하시는 게 정말 부담스럽고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혹시 윤동주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셨던 부분이 있을까요?

이번 공연에서 제가 제일 신경 썼던 건, ‘시인 윤동주’ 하면 딱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에만 갇히지 않으려고 했던 거였어요. 시인 윤동주의 고뇌와 시대에 맞서는 용기, 그런 무겁고 어둡고 강인한 모습만을 보여주기보다는 그에 앞서 저와 나이가 비슷한 청년이자 개인이었고, 한 인간이었던 윤동주의 일생 자체를 그냥 진솔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는 데 제일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고초를 겪기 이전의 상황과 일상이 어떠했는지, 또 연희전문학교에서의 생활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그런 식으로 청년으로서의 윤동주의 삶을 온전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표현하고자 특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확실히 당시 윤동주 시인 나이의 또래인 분이 연기를 하시니까 저도 공연을 보면서 말씀하신 부분이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표현해내기 위해 무척이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 것 같고요. 그렇게 몰입하는 과정에서, 윤동주와 자신이 닮았다고 느끼는 점이 있으실까요?

아, 대답을 잘해야 될 것 같은데요… (웃음) 닮았다기보다는 닮고 싶은 부분이 훨씬 더 많은 분이라서요.

윤동주의 친구인 송몽규와 비교해 봤을 때 저와 윤동주 시인의 비슷한 부분이 좀 드러나는 것 같아요. 몽규라는 인물이 행동파였다면 동주는 더… 뭐랄까요? 펜을 가지고 싸우는 느낌이거든요. 저도 행동을 크게 하고 일을 막 추진하고 그런 편이 아니라서 그런 점이 비슷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서서 행동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말과 글로써 더 차분하게, 더 침착하게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지키고 표현하려 한다는 점에서요. 사실 비슷한 건지 비슷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웃음)

특히나 닮고 싶었던 부분이 있는데, 제가 분석한 캐릭터로서 윤동주의 가장 큰 특징은 외유내강형 인물이라는 점인 것 같아요. 속으로는 뿌리 깊은 확고한 신념과 뜻을 강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걸 강인한 방식으로 투박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게 아니라 가장 부드럽고 온화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인물이거든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가지면서 자신의 강인한 신념을 부드럽게 표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기도 하고요. 윤동주 시인의 그런 부분을 가장 닮고 싶습니다.

 

 

 

 

영환 님이 생각하시는 젊음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젊음의 모습이라… 글쎄요. 뭘까요? (웃음)

극에도 나오는데, 윤동주 시인의 시 중에 새로운 길에 관한 시가 있어요. 윤동주 시인이 대학에 처음 입학하면서 쓰셨던 시로 알고 있는데, 시를 잠깐 읊어드리자면,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라는 시가 있는데… (웃음)

 

젊음의 가장 큰 특징은, 내가 뭘 하든 그게 새로운 길일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싶어요. 아직 나에게는 가보지 않은 수많은 길들이 있고,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 그게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어주고 그래서 배움과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 시점이자, 그런 새로운 길을 조금은 부담 없이 걸어갈 수 있다는 게 바로 젊음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젊음이 지난 시점을 생각해보면, 이미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있으니까 거기서 크게 벗어나기엔 아무래도 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하지만 젊음의 시기에는 아직 나에게 새로운 길들이 많은 선택지로서 남아 있는 시기이고, 그렇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더 부담 없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또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영환 님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런 젊음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공연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젊음의 도전과 패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는 사실 이번이 첫 연극이었거든요. 이전에 제가 연극 무대에 올라본 적이 없었기도 하고 더구나 이번 공연이 일반적인 공연도 아니잖아요. 작품 자체로도 굉장히 의미 있는 공연이었을 뿐더러 학생들의 수준에서 준비하는 다른 많은 공연들에 비하면 규모도 굉장히 컸거든요. 학교 측으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고 진행한 공연이라 규모 면에서나 제 개인적인 도전의 면에서나, 저에게는 여러모로 이번 공연이 저만의 새로운 길이었어요.

 

연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거의 대부분 젊은이들이잖아요. 극 중 인물들에게서는 그런 젊음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젊음이란 건 많은 선택의 가능성이 있는 시기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런 수많은 선택지가 있을 때 내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를 극 중 인물들에게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여기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시대의 어려운 상황과 거기에서 오는 아픔과 어려움을 겪으며, 거기에 굴복하고 편승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노력하셨던 분들이거든요. 동주를 비롯해 몽규와 병욱이도 그렇고, 동주의 주변 인물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지들 가운데서도 굉장히 어렵고 힘든 길을 선택해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그런 분들의 선택과 걸어갔던 길 그리고 일생을 보면서, 편한 길을 선택하는 것보다 어렵고 힘든 길이더라도 내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용기 있게 할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많이 배웠고 또 용기와 위안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젊음이란 건 나에게 그런 수많은 새로운 길과 가능성이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서 확신을 찾고 내가 생각했을 때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런 과정까지가 젊음이라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그렇다기보다, 많은 선택지를 가진 것 자체가 젊음이라면 그 중에서 용기 있게 가야 할 길을 선택해 걸어갈 줄 아는 그 용기가 젊음에 필요한 무언가 같아요. 앞에 선택지가 놓인 모든 사람들에게는 가야 할 길, 올바른 길을 선택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정말 매일같이 모여서 연습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맞습니다. (웃음)

 

정말 너무 힘드셨을 것 같은데, 그렇게 힘든 과정에서도 즐거운 순간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준비하는 시간 동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저희 공연에 인원이 굉장히 많았는데, 배우 팀만 14명이었거든요. 저희 공연은 앙상블 극이라고 해서 한 배우가 하나의 인물만 맡는 게 아니라 적어도 2개, 많으면 대여섯 개까지도 맡아 이 역할도 했다가 저 역할도 했다가 하는 식이었어요. 그 중에서도 저희가 ‘작당모의 신’이라고 이름 붙인 장면이 있어요. 후반부에 일제가 조금씩 패망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동주와 몽규를 비롯한 친구들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를 함께 의논하고 계획하는 장면이에요. 거기에 같이 나오는 배우 중 한 친구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친일 지식인으로 다시 등장을 해요. 그래서 그 친구가 뒤에서 장면 전환할 때, 우스갯소리로 “나 이제 빨리 친일 하러 가야 돼. I have to 친일!” 이러면서 넘어간단 말이에요. (웃음) 재밌었던 기억이에요.

또 많은 배우들이 한 번에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동주가 일본 유학을 가기 위해 승선하는 장면이에요. 여러 인물들이 일렬로 쫙 서 있는 장면이라 등장하는 배우가 워낙 많다 보니 같이 호흡을 맞추고 동선을 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반대로 그랬기 때문에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각자 자기가 생각한 인물들의 행동을 연출했거든요.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었고,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 식으로 각자가 생각한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보는 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 분들끼리 맞춰가며 직접 만든 장면들이 있다는 걸 연출 님께 들었었어요. 그게 이런 장면들이었군요.

맞아요. 배우들끼리 직접 이런 장면을 만들어 가는 게 재밌었어요. 또 다른 친구들이 각자 준비해온 것들을 같이 호흡을 맞출 때 보잖아요. 연습하면서 되게 많이 웃었던 기억들이 있어서 그런 게 좀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라는 작품이 영환 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사실 앞서 말씀드렸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제게 의미 있는 공연이다, 이런 거는 뭐,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저는 이번 학기에 수료를 한 상태인데 극에서 다루는 윤동주 시인의 상황이 지금의 저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제 대사 중에 “이제 연전(연희전문학교)을 떠날 때가 되긴 했지.” 이런 게 있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나도 이제 대학을 떠날 때가 되긴 했어.” 이렇게 얘기를 하곤 했는데, (웃음) 그래서 저와 비슷한 시점에서 선택을 해야 했던 시인의 삶을 보고 동질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대학생활을 마무리 짓고 다음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드는 생각들이 있는데, 저와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하면서도 훨씬 더 용기 있고 멋있는 선택을 하신 시인에 대해 공감이 되면서 동시에 존경심을 많이 느끼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또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어떤 인물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그걸 무대에 올라서 공연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학교 다니면서 항상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좋은 기회를 얻어, 뜻깊은 공연에서 의미 있는 인물을 맡을 수 있게 돼서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다음에는 어떤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글쎄요. 세 달 동안 윤동주로 살아와서 아직은 막연하네요. (웃음)

제가 어디서 들었던 말인데, 배우는 무엇이든지 되어서 그 인물로 살아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제가 배우를 하고 싶었던 이유였어요. 그러니까, 내가 윤동주로 살아볼 수도 있고 그러다가 범죄자가 되어볼 수도 있고 혹은 노인이 돼볼 수도 있고 그런 식이에요. 이 짧은 인생에서 다양한 인물로서 살아가 볼 수 있다는 게 배우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공연처럼 배울 점이 많고 살아가면서 지침이 되고 방향성을 잡아줄 인물도 다시 연기해보고 싶고요. 또 반대로 제가 정말 가지 않을 것 같은 길을 가는 인물들도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이번에 연극을 하면서 느꼈던 게, 연기를 하다 보면 감정의 스펙트럼을 많이 넓힐 수가 있더라고요. 일상생활에서는 감정이 좋았다가 나빴다가의 변화가 한 이 정도(~) 의 진폭이라면, 연기를 할 때는 그 폭을 이만큼(W) 키워야 한다고 많이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게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다 보면 거기서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평소의 표현도 더 다양해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존경하고 배울 점이 많은 인물이나 저와 결이 비슷한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정말로 가지 않을 길을 가는, 저와는 정말 반대되는 모습의 인물을 연기하면서 저의 몰랐던 부분이나 전에 해보지 않았던 모습들을 발견하고 또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편하게 부탁드려요.

공연을 봐주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데, 저희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제가 병욱이에게 “그렇게 살아가야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라고 말해주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젊음의 시점에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고 한편으로는 망설여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당당하게 걸어갔던, 시인이기에 앞서 한 청년이었던 윤동주의 일생을 다룬 이번 공연이,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내기 위해 하루하루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위로가 되고 또 용기가 되어 주는 그런 공연으로 기억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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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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