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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2025 · 06 · 27

<신촌문예> 6월호, 해

Editor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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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다시 돌아온,
신촌문예잔치가 제공하는 북-큐레이션 서-비스입니다.

 

new! 2025

신촌문예

6월호

<해>


잘 지내고 있나요? 어느덧 6월입니다.

늦은 저녁 산책길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이제껏 지지 않은 해를 보고서는 여름이 왔음을 실감했어요. 벌써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갔나 봅니다. 다들 어떤 여름을 보내고 있는지 묻고 싶은 저녁이네요.

6월은 무더운 햇볕으로 만물을 무성하게 할 수 있지만, 잘못하면 장마철에 습기가 차서 만물을 썩게 할 수도 있다고 하더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6월을 지나가며 어떤 날은 뜨겁게 내리쬐는 햇발에 온몸이 다 타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다가도, 또 다른 날에는 물기 가득한 세상에서 모두가 싱거워지는 순간을 감각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이 계절에는 어떤 문장을 읽으면 좋을까, 오래 고민했습니다.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을 닮은 시도, 여름 바다의 축축함을 머금은 소설도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리하여 6월의 주제는 가 되었습니다. 우리네 세상에는 여러 해가 존재하니까요. 같은 발음으로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우리의 파훼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해(日)와 해(海)와 해(年)를 담은 글을 소개합니다. 활자 너머로 함께 여름을 나누고 싶었던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길 바라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환한 여름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6월의 를 마음껏 즐겨주시길!

 

함께 할 에디터

 

세계

어린 시절에는 책장에 먼지가 쌓인 우장춘 위인전과 내일은 실험왕이 있었고, 매번 돌려가며 뻔한 독후감을 방학 숙제로 제출했다.

그리고 네자리 번호판에 2가 2번이나 고정되는 시점이 왔을 때가 돼서야, 문자가 글이 되고 그것이 문학으로 춤추게 된다는 것을 뭔가 눈치챈 듯하다.

내가 아무리 넘어져도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는 검은 색 글자는 늘 가만히 기다려주니까.

언제나 책장 한 끝에 차곡차곡 누군가를 지켜주는 집의 벽돌이 되어서.

 

 

 

라미

소비자학과 전공답게 책 소비를 즐긴다. 침대 옆에 수북이 쌓인 책을 보며 흡족해하는 편.

자기 전 작은 등을 켜두고 독서하는 고요한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소설과 시집 등 가리지 않고 읽는다. 자칭 ‘지대넓얕’ 독서러. 지적 대화를 위해 넓고 얕게 읽는 중이다. (현재 n권 병렬 독서 중이라고…)

언젠가 원하는 문학을 모두 섭렵하는 날을 꿈꾸며. 그래도 책, 사랑하시죠?

 

 

혜성

문학이 좋아서 국문과를 선택했다.

어릴 적 늘 도서관 최다대출상을 받을 만큼 책을 달고 살던 시절도 있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뒤로 책과 점점 멀어지는 중이라고.

호불호의 기준이 확실한 탓에 독서 편식이 심한 편이다.

비문학보다는 문학을 좋아하며, 그중에서도 한국 현대소설이 주 종목.

여유를 갖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문학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기계화되지 않은 존재들로 살아간다는 말을 굳게 믿으며 꾸준히 읽는다.

 

 

영원

책을 읽는 행위보다 책을 사는 행위를 즐긴다고 늘 말한다.

표지, 제목, 문장 하나를 보고 충동적으로 집어 드는 편이고, 그런 선택이 종종 꽤 괜찮은 콘텐츠가 된다.

그렇게 모은 책으로 무한 병렬 독서를 진행한다.

책에 과몰입하는 사람보다는, 책 주변을 오래 맴도는 사람에 가깝다. 그 대신, 가장 빠르게 반하고 가장 오래 기억한다.

마음에 남는 구절들을 오래 씹으며 살아간다.

 

6월의 서가

궁금한 책을 눌러 바로 확인해보세요!

🌍세계  😶라미  💫혜성  ♾️영원

 

세계’s Pick

『여름 상설 공연』, 박은지

☀️이번 여름이 아무리 엉망진창이어도 꼭 살아 있자는 다짐을 해

여름이 고이 푸르기만 할 수 있음을 장담할 수 있을까? 영원히 기쁨 안에만 내리 잠겨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쨍쨍하게 불타오르는 햇빛과, 산소와의 결합을 차단하는 무딘 장마가 함께 공존하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6월은 그렇다. 그렇기에 젊음은 심장의 알맞은 형태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불타오른 흰 재를 손에 쥐며 그저 성실하게 살아남아 보겠다고 다짐한다.

작고 뜨거운 옥탑방 초록 페인트를 녹아 내리게 하는 해를 보며 시인은 말한다. 초록이 발에 달라붙는다고. 하지만 날 붙잡는 것이 좋다고. 그 덕분에 사랑할 수 있으므로. 이 시집은 죽음과 꿈, 그리고 삶의 비극적 조각들을 여름과 함께 길어 올려 꺼내 보인다. 여름이라는 시점을 좌우로 확장해 언제든 찾아 만날 수 있는 상설의 것으로 돌려 놓는다.

벅찬 정열의 언어보다, 수없이 마주치는 고민을 쥔 채로 초록이 녹으면 그 자리엔 무엇이 남을지 고민한다. 그리고 나무가 해를 따라 붉어지며 맞는 계절을 기다린다. 창문을 숨기고 모든 불이 꺼지면, 무덤에도 새싹이 자라난다. 라일락 향기를 품은 채 그렇게 여름이 다가온다.

 

그렇게 불타고도 남은 게 있다니
미래는 정말 멋지다
너의 말을 들으니 걸어 볼 마음이 생겼다
키들키들 웃으며 타고 남은 재를 서로의 얼굴에 묻혔다
손과 얼굴이 모두 검게 변했다 발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모두 비슷한 색을 갖고 있었다

너의 눈동자만 들여다 보았다

― 박은지, 「눈을 뜰 수 있다면」 부분

선생님은 혼자일 때도 의자를 비워 두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빈 의자에 나무 바람 햇볕
여유가 없어도 만날 수 있는 것들을 초대해 보았다
방에선 나무가 곧잘 죽었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오래되었다
햇볕이 닿기엔 너무 작은 창문
그래도 나는 창을 열었다
더 많은 미래가
생각지도 못할 곳에서 다가온다 생각하면 마음이 부풀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 박은지, 「의자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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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s Pick

『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축

🍎사과나무 해의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배신, 성장, 술, 몽상, 전쟁

이 작품은 폴란드의 가상 마을 ‘태고’를 중심으로 작품을 이루는 각기 다른 존재들의 시간을 넘나들며 삶의 경계를 탐구하는 장편소설이다. 두 번의 세계 대전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겪는 시대적 혼돈을 꼭꼭 씹어낸다. 문학은 세상의 관념을 모조리 비틀어 새로운 프리즘을 선사해 내는 이상한 존재임을 알게 하는 작품이다.

어느 한 인물만의 시점으로만 이야기는 전개되지 않는다. 태고의 시간답게, 태고를 감싸 바라보는 여자, 상속자, 군인, 신, 게임, 익사자 물까마귀, 버섯균 등의 시간을 뜨거운 태양을 장작 삼아 요리해 담아낸다. 이 지점에서 전쟁이 남겨진다. 전쟁이라는 죽음의 현장에서 마침내 태양이 지평선의 구속에서 벗어날 때, 군인들의 시체에서 영혼들이 꿈틀거리며 흘러나온다. 게노베파 몸 안에서 암세포처럼, 곰팡이처럼 사람들이 죽는 영상이 축축한 음기 속에서 자라난다. 햇볕에 친화적이지 않아 태양으로부터 아무런 힘도 흡수하지 않는 버섯균처럼 자라난다. 지금도 여전히 전쟁은 일어난다. 단단한 총부리는 내리쬐는 하늘을 향하며 시간을 도려낸다. 전쟁은 더 이상의 호흡을 멈추게 한다.

그런 상처를 비집고 태양의 광량은 무성한 풀잎들과 함께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이 안에서 맛볼 수 있는 건 저편의 다른 세상, 시간과 삶의 보이지 않는 크기와 질감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의 세상에서 벗어나, 신비한 감각이 또 다른 현실이 되는 차원을 선물한다. 사물을 거리낌 없이 내면에서부터 바라보는 것에 대한 동물의 시각을 일깨운다.

 

미시아의 그라인더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나무와 도자기, 놋쇠가 하나의 물체로 결합되어 만들어졌다. 나무와 도자기, 놋쇠는 ‘갈아낸다’는 관념을 물질로 형상화한 것이다. (…) 창조란 단지 시간을 뛰어넘어 영구히 존재하는 어떤 것을 상기시키는 행위일 뿐이다. 무(無)로부터 무엇인가를 창조할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p.52

교구신부의 목초지에서 꽃들은 끊임없이 기도한다. 마르가리타 성녀의 꽃과 로크 성인의 초롱꽃, 평범한 노란 민들레, 이 모든 꽃이 기도를 바친다. 기도를 지속하면서 민들레는 점점 물질적 속성을 잃어가고, 노란빛을 잃어가며, 선명함과 구체성을 잃어간다. 그리하여 6월이 되면 옅은 솜털로 변화한다. 그때 이들의 신실함에 감동한 신은 따뜻한 바람을 날려 보내어 민들레 솜털에 깃든 영혼을 하늘로 데려간다. p.59

게노베파의 몸 안에서 암세포나 곰팡이처럼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영상이 자라났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다는 뜻이다. 삶이란 결국 움직임이니까. 죽임을 당한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은 몸이다. 그리고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의 시작과 끝은 몸 안에 있다.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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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s Pick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거듭 넘어질 나를 위한 99번의 충실한 기록

살아내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 최진영. 그의 바다는 흔히 떠올리는 제주 바다처럼 시원하기보다 차갑고 고요하다. 작가가 매일 마주했던 것은 그런 바다였다.

작가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쓸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질문을 꼭꼭 씹어보다가, 끝내 바다에 던져버리는 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99편의 단상은 쓰는 일, 살아내는 일,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는 일에 대한 기록이다. 넘어졌을 때 불행에 의지하고 싶은 순간들, 그 어두운 마음을 딛고 다시 펜을 쥐는 사람의 이야기다.

저녁마다 남편인 다크니스와 함께 한림항의 방파제를 걸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거센 파도와 바람에 맞서, 해가 지는 곳을 향해 놓인 길이었다. 언젠가 이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길 없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길이 없다는 경고판을 보고도 계속 걸어가는 거라고, 그렇게 끝까지 걸어서 길은 없지만 무언가가 있음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겠다면서. 꼭 쓸거야, 쓰고있고, 완성할거라며 되뇌었다.

작가는 프로야구에서도 희망을 발견한다. ‘RIDE THE STORM’, 2025년 독수리들의 슬로건이다. 한화이글스에게 상승기류는 분명히 존재했다. 다시 하위권으로 떨어질 수 있고, 10연패를 거듭할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상승기류를 확인했으니 괜찮다. 지는 방법은 많고 이기는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이처럼 99개의 글은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스스로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직 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제주의 바다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작가가 쓰고 살아내는 하루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조용한 파도 속에서 이어지는 문장들은, 결국 바다 앞에 선 우리의 마음과도 닮아 있다. 길이 분명하지 않아도 멈추지 않고 마주하는 이들의 이야기. 최진영 작가의 다짐이자, 독자에게 건네는 담담한 위로이기도 하다.

 

밤바다를 보는 것. 해변을 걷는 것 숲을 걷는 것. 바람이 거센 오름을 오르는 것. 영화관에서 개봉작을 보는 것. 그렇게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천천히 조금씩 하고 싶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커다란 박스에 담긴 다양한 초콜릿을 아껴가며 하나씩 꺼내먹듯,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바다 수영을 할 수도 있겠지. p.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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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s Pick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양안다

🌞나는 다음 장면을 알기 위해 예지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고

끝나지 않는 백야. 밤인데 낮이고, 현실인데 꿈이다. 또렷한 빛 속에서조차 너와 나는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다. 기대는 무너지고 축제는 끝난다.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는 절망감이 시집 전체를 감싸고 있다. 그럼에도, 양안다는 다음 장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해력-저항력-불가항력-예지력’으로 이어지는 소제목은 시인의 태도를 드러낸다. 불가항력의 비극을 감내하면서도 예지하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은 시인의 방식으로 희망을 건네는 일이다. 나아가, 양안다는 사람 사이의 연결을 믿는다. 생각은 흘러가고, 누군가는 그 생각을 같은 마음으로 받아낸다. 완전히 겹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서 공명하고 있는 것이다.

저항조차 무력한 세상 속에서 모든 장면을 껴안으며 걸어 나가는 이야기. 그런 의미에서 백야는 우리의 낮이 끝나지 않았음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 아닐까. 어둠 속에서도 다음을 꿈꾸는 이들에게 백야는 멈추지 않는 예지의 힘을 건네는 책이다.

 

윤, 너와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이 동시에 문을 닫고, 우리는 소수 그 자체가 되면서, 알지 못하던 규칙을 깨달은 듯이
너는 숫자를, 나는 언어를 어느 도형 위에 남기더라도

이 순간이 꿈일 거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겠지만

양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너와
우리가 모르는 모든 사람들이


– 양안다, 「양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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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s Pick

『새해 연습』, 김지연

🎉당신의 새해가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죽음 이후 줄곧 홀로 살아온 주인공 홍미가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과 함께 할머니가 18년간 써왔던 일기를 받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홍미는 빛바랜 문장 너머로 어렴풋이 느껴지는 할머니의 지난 삶 또한 여태껏 홀로 세상을 살아온 자신의 처지와 퍽 닮아 있음을 깨닫고, 오랜 시간 외로움 속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새해가 코 앞으로 다가오면 이번 해는 반드시 잘살아 보겠노라, 몇 년째 케케묵은 다짐을 하는 것은 비단 에디터만의 오랜 습관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새해가 다가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일기장을 사고, 첫 페이지에 시작을 닮은 문장을 적어 보고, 어떤 염원을 담아 거창한 새해 목표를 세워본 적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것이 비록 몇 달 내로 휘발될 열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할지라도, 중요한 건 우리는 매년 1월 1일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었다는 거다. 저마다의 기대와 불안,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고서 시작을 맞이한다. 게다가 ‘새해’라는 이름은 때때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를 두 손에 쥐어 주기도 하지 않았던가.

홍미의 삶을 읽는 동안 어쩌면 새해가 주는 용기는 우리가 지난해 거듭해 온 연습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절망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연습, 외로움을 견디는 연습, 상실 앞에서 너무 슬퍼하지 않는 연습. 그런 것들을 통해 홍미는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틀림없이 더욱 단단하게 자라서 새해를 맞이하겠지. 이 책은 그런 것들이 곪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나지막이 말하는 듯하다. 이 이야기를 읽는 당신의 새해가 안온했으면 좋겠다.

 

무언가라도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걸 보고 싶어서 덥지도 않으면서 선풍기를 틀어놓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정지한 장면을 오래오래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모든 것이 정지해 있다는 기분이 든다. 시간은 빨리빨리 흘러서 나를 끝으로 데려다 놓아야 한다. p.15-16

올해를 부지런히 살아서 새해에는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이 늘 홍미의 목표였다. 그러니까 올해는 늘 새해를 위해 연습하는 해였다.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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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s Pick

『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거센 파도 위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대하여

『아홉번째 파도』는 동해안의 가상 도시 ‘척주’를 배경으로, 핵발전소 유치 논란과 과거 시멘트 회사 임원 자살 사건, 그리고 최근 벌어지는 의문의 죽음을 둘러싸고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든 문장이 소름 돋을 만큼 우리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꼭 세상 어딘가에 정말로 척주시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거센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사건들과 촘촘한 어망처럼 엮인 인물들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척주시를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무엇보다 나를 척주시에 묶어둔 것은 단연 사랑이다. 슬픈 사랑 이야기는 매번 눅눅한 여운을 남기니까. 게다가 바닷가의 비릿한 물 내음이 묻은 사랑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참 많은데. 우리는 사랑으로 아픔을 이겨낼 수 있을까, 무모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검은 바다의 거센 파도 위에서도 꿋꿋하게 사랑을 외치는 인물들을 보며 적어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저마다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아홉 번째 파도는 폭풍우가 몰아칠 때 가장 높고 위험한 파도를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아홉 번째 파도가 지나고 나면 바다는 다시 고요한 수면을 되찾는다 믿었다고. 살아가다 언젠가 아홉 번째 파도를 만났을 때, 그래서 검은 물결 속을 헤매게 되는 날이 온다면 자연스레 이들의 이야기가 생각날 것 같다. 만약 당신도 그런 순간에 마주하게 된다면, 누군가는 당신이 그 파도를 무사히 헤엄쳐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기를.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염원을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 담아낼 수 있다는 것도.

 

서상화가 약봉지를 만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른 모든 소리와 구별되는, 약봉지 구겨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송인화는 밤이 되면 칠흑같이 어두워질 방문 밖의 바다를 생각했다. 밤새 불어올 바람에 대해서도, 절벽 끝 같은 집에서 홀로 겪어야 하는 통증에 대해서도, 그때마다 노인이 퍼부은 저주가 가슴을 그었다. p. 72-73

바잔파도에 실린 빛들은 덩덦이 반짝거리는데도 테트라포드를 휘감는 물소리는 회오리처럼 거셌다. 송인화는 그 둘이 같은 바닷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p.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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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s Pick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세상이 무너진 뒤에도 끝내 남는 단어가 있다면

세상이 망했다.『해가 지는 곳으로』는 그런 망해버린 세상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고립된 세계 속, 도리는 동생 미소와 함께 도망치듯 떠난다. 그 길 위에서 도리는 지나를 만나 사랑한다.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은 남은 감정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서로를 살아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이 행위가 이 소설에서 가장 단단한 저항이 된다.

소설은 모든 것이 무너진 후에도 끝내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어떤 시스템도, 안전도, 언어도 신뢰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 끝에서 작가는 ‘사랑’이라고 대답한다. 사랑은 여전히 말해져야 하며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세상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고.

이 이야기는 두 여성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세계에 맞서는 방식을 보여준다. ‘너는 여기 있다’고 말하고, ‘나도 너와 함께 있다’고 손을 뻗는 그 행위가 온갖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가장 완강한 싸움이 된다. 우리가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이유에 대한 기록이다. 어쩌면 사랑이야말로 재난 이후의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언어일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해가 지는 곳’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곳은 끝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시 살아내기 위한 시작이 된다. 해는 매일 지지만, 다시 떠오른다는 사실처럼.

 

“작은 천사가 깨끗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미소는 나 때문에 달릴 수 없다. 아버지의 부탁은 잘못됐다. 내게 미소를 부탁하는 대신 미소에게 부탁해야 했다. 언니가 손을 놓아도 계속 달려야 한다고. 손을 놓는 건 더 빨리 달리라는 신호라고.” p. 19

“나는 도리의 상처를 모르고 도리는 나의 상처를 모르고, 그러니까 서로를 지금 그대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p.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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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s Pick

『재와 물거품』, 김청귤

🌧재가 되고 물거품이 되어도, 사랑은 끝내 서로를 기억하며 영원에 닿는다

가부장의 구조 안에서 침묵으로 존재를 견디고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희생을 강요받던 여성들. 그 중 한 사람, 마리는 한 섬의 무녀로 살아간다. 그는 말없이 신을 모시고 마을을 위해 홀로 존재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였다. 누구도 그의 고독을 묻지 않았고 그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서 이름 없는 한 인어를 마주한다. 마리는 그에게 수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수아는 말 대신 눈빛과 몸짓으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마리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켜보고, 사랑하고, 욕망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의 관계를 경계하고 공동체는 이를 불길함으로 명명한다. 여성과 여성의 사랑은 말해지지 않아야 했고 인어와 무녀의 교감은 금기로 덮여야 했다. 작가는 무너진 경계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존재를 통해, 퀴어한 연대와 여성의 자기 서사를 서서히 펼쳐낸다.

 『재와 물거품』에서 바다는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나는 장소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그 바다는 존재들을 삼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되돌려준다. 불에 타 재가 된 몸도, 물거품이 되어 흩어진 마음도, 기억하는 누군가의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서로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마리와 수아의 이야기이다. 몇 번의 재회가 반복되는 동안 마리와 수아는 서로에게 더 나은 사람으로 나타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분명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물거품이었으며, 누구의 재를 품고 살아가고 있나요.

 

“눈물을 일일이 닦아 주는 손짓과 마주 바라보는 올곧은 시선에 기대어, 달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시간 내내.” p. 15

 “내일과 내일들이 모여서 영원이 되는 걸 텐데, 왜 마리는 내일도 사랑한다는 말은 들어 주면서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은 싫어하는 걸까.” 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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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인 여름 속에서도 탈 없이 살아남자고 약속!’ 큰 소리로 말합니다. 그리고 사과나무가 마음껏 자라나는 가 뜹니다. 이때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목적지는 어디인지 헤아릴 수조차 없게 6월은 복잡합니다. 태양은 가만히 있어도 늘 목덜미를 집어삼킬 것처럼 타오르기에, 누군가는 그곳에서 행선지를 잃고 혼란스러울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괜찮을지도 몰라요. 제주 의 묵묵한 다짐을 담아낸 노을 아래, 넘어져도 다시 펜대를 쥐고 걸어가겠노라고 적는 작가처럼. 더 이상 태양도 쓰러지지 않으려 꿋꿋이 제자리의 무게를 견뎌내는, 멈추지 않는 백야처럼. 그렇게 자그마한 용기는 싹을 냅니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새가 주는 첫 시작의 용기는 늘 특별하기만 합니다. 매번 새롭게 갱신될 새에 맞이하는 가능성의 힘을 우리는 믿습니다. 아홉번째 맞이하는 의 회오리 안에서도 구조될 가능성을 그리면요. 그건 점점 실체가 됩니다. 바다에선 사랑이 구명조끼가 되니까요. 

 더 이상 아무것도 신뢰할 수 없는, 가 지는 세상에서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내뱉는 것만이 유일하고도 가장 견고한 수호인 것처럼. 사랑이 농익어 가는 6월의 끝자락에 우리는 자리 잡고 있습니다. 너무도 뜨거운 태양에 모든 것이 희끄무레한 재와 물거품으로 전소해 버린, 그런 망망대에서 너와 나는 그 잔흔을 소중히 끌어안으며 살아간다 전합니다. 그렇게 감싸 쥔 건 사실 서로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무리 가만히 정지해도

는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와 줍니다.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환대한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우물쭈물하는 우리 사이에서 오직 만은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 6월의 를 집어삼킬 만한 속도의 를 당신과 보내서 참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신촌문예 6월호 속 선정된 책들을 만나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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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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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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