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문예> 9월호, 균형
2025년 다시 돌아온,
신촌문예는 잔치가 제공하는 북 큐레이션 서-비스입니다.
new! 2025
신촌문예
9월호
<균형>
동적 평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계시는 여러분은 어쩌면, 유입을 간신히 소화하고 내보내는, 동적 평형 상태에 던져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어긋나면 계가 내부로 붕괴하거나 비가역적 팽창이 일어나버리는, 아슬아슬한 상태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9월을 맞아 잔치꾼들이 각자 두 권의 책을 준비했습니다. 팽창의 걱정으로 지쳐 있는 분께는 잠시 압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책을, 붕괴의 두려움에 움츠러든 분께는 따뜻한 온기를 더해줄 책을 드리려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순간에도 기울기를 깨닫고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균형이니까요.
함께 할 에디터
이도
자칭 통합인재랍시고 독일어문학과 화공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잡종 대학생.
정신머리가 없어 언제나 과분하게 즐거운 대상을 좇는다.
그에 따라 독서와 영상 취향은 흡인력이 굉장하거나 냉소적 유머가 산재된 그것에 편중된 편.
그래도 언젠가는 고상한 취향을 품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정향
민화보다는 만화에 더 관심이 많은 동양화과 재학생.
어릴 적부터 인터넷과 그것이 조달하는 일본 미디어에 중독된 탓에 독서 취향도 일문학에, 그중에서도 날것의 소재로 강한 자극을 주는 이야기에 편중되어 있다.
국내 문학과 일본 문학에서 각각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김사과와 무라카미 류.
채러
여전히 책과 영상을 오가며 보고 싶은 것을 골라보는 미디어학도이다. 지난 신촌문예보다는 독서 분야에 있어서 살짝 성장했다. 문학을 너무 좋아하게 된 나머지 결국 우주공강을 무릅쓰고 문학 교양 수업을 신청했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모아서 두고두고 곱씹어 보는 독서 습관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책 속 숨겨진 의도에 대해 토론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필립
소설가를 지망하지만, 여전히 소설 편식을 멈추지 않는 23살 서강대학생. 소설가라 함은, 작가이면서 문학 자체의 열렬한 팬이어야 하건만 철없이 좋아하는 일부 장르 문학의 책의 표지만을 펴는 편식쟁이. 그것도 비용을 핑계로 전자책으로. 하지만 그만큼 해당 장르인 좀비, 미스터리, 스릴러에는 약소하게나마 내놓을 것들이 있는 편이기에 한 번 믿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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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정향 🍒채러 🧟필립
- 🦊 『고양이 요람』, 커트 보네거트
-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레스트 카터
- 🥡 『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 🥡 『을』, 박솔뫼
- 🍒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조해주
- 🍒 『셋 세고 촛불 불기』, 김화진 외
- 🧟 『난쟁이가 사는 저택』, 황태환
- 🧟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고양이 요람』, 커트 보네거트
📚 종말적 모두까기. 종교, 과학, 국가의 모순을 냉소적 유머로 비틀다.
최초의 원자폭탄이 떨어진, 전쟁 후 세계를 배경으로 일인칭화자 존은 책을 집필하기 위해 원자폭탄 개발자와 그의 자녀들을 찾아 헤맨다. 그는 일련의 과정에서 카리브해의 가난한 섬, 산 로렌조, 그리고 ‘보코논주의’라는 위안의 종교를 차례로 발견하게 되는데, 이 기묘한 관계의 열쇠는 바로 ‘ICE-9’이라는 결빙 물질이자 대량 살상 무기. 그렇지만 결국 이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며 인류는 절멸로 치닫는다.
400페이지에 걸쳐 허무맹랑하면서도 논리정연한 블랙코미디가 연속되며, 인간이 “없음”에 이름을 붙여 진실처럼 떠받드는 습관을 조롱한다. 보코논의 격언, ‘그랜팔룬’(허울뿐인 소속감), 발바닥 맞대기 의식 ‘보코마루’ 같은 장치들은 결국 “고양이도, 요람도 없는” 실뜨기*를 들춰내는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냉소는 파괴를 위한 독설이 아니라, 도를 넘어 팽창한 의미의 거품, 즉 압력을 꺼뜨리는 바늘이다. 철기둥 같은 믿음에서 거리를 두는 것이야말로 일상의 균형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실뜨기 놀이는 서구권 국가들에서 ‘고양이 요람’으로 불린다.
유익한 종교가 어떻게 거짓말에 기초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책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대도 할 수 없지. p. 20
그는 자신의 부업을 이렇게 적었다. ‘살아 있기.’ 그는 자신의 본업을 이렇게 적었다. ‘죽어 있기.’ p. 166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레스트 카터
🌳 자연과 배려, 소박한 자립이 체온을 되돌리는 성장기, 냉소의 반대편에서 온기를 더해 균형을 완성하는 책.
고아 소년, ‘작은 나무’는 산골에서 인디언 혈통을 지닌 조부모의 손에 자라며 삶의 감각을 배운다. 자연을 읽고,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남을 사랑하는 법 말이다. 제도와 규칙이 강요되는 격변의 시기에도 산속은 고요하기만 하다. “잘 살기”보다 “곧게 살기”를 배우는 작은 나무는, 그렇게 늦추어진 삶의 속도 속에서 어른이 되어간다.
걸작이라고 할 수도 없겠고 특출난 깨달음을 준다고도 할 수도 없겠다. 하지만 피폐할 때 이 글을 찾게 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회의 비열함과 냉소에 지칠 때는 이 책을 통해 온기의 기술을 익히고, 팽창하여, 일상을 감싸안아 보는 것을 추천한다.
* 저자인 포레스트 카터는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임을 어필했지만 이는 모두 거짓말이었고, 그가 백인우월주의자이며 무려 KKK의 리더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러한 냉혈한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자, 그런데 너는 뭘 깨달았니?”
“음, 제 생각에는요, 기독교도와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할머니가 갑자기 웃기 시작하셨다. 내 말이 뭐가 그리 우스운지 알 수가 없었다.
(중략)
“작은 나무야,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제 입으로 자기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 떠벌리는 사람한테는 조심하겠다는 뜻이지?” p. 141

▸『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 무너지고 흐트러진 균형이더라도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면.
독신이자 샐러리맨인 가와이는 낭만과 생활이 공존하는, 자신 나름의 균형을 갖춘 삶을 구축하기 위해 어린 나이의 카페 종업원인 나오미를 연인이자 가정부로 맞이한다.
나오미는 그런 가와이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며 그가 가진 모든 균형을 망가뜨린다. 소시민적이고 성실한 삶을 살아온 가와이에게 향락적이고 낭비적인 삶을 부추기며, 그가 세운 모든 계획과 사회적 평판을 어그러트린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불행하거나 동정받을 만한 처사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낭만의 일부분으로 묘사된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어떤 가치보다 미를 우선함에 있다. 그것은 곧 세간의 기준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개인의 주관적 기호가 최우선시됨을 말한다. 그의 소설 속에선 아무리 세속적으로 수치스럽거나 굴욕적인 상황이더라도 당사자가 되는 인물은 나름대로의 행복을 음미한다. 「치인의 사랑」의 가와이 또한 처음에는 균형의 무너짐에 절망했으나 점차 깨닫게 된다. 무너졌다면 무너진 대로의 즐거움이 있음을.
이것으로 우리 부부의 기록은 끝이 납니다. 이것을 읽고는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웃어 주십시오. 교훈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좋은 본보기로 삼아 주십시오. 나 자신은 나오미에게 반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습니다. p. 394

▸『을』, 박솔뫼
🔺 끊임없는 침범과 이탈 속에서 고요히 유지되는 삼각형의 균형
「을」에서 비추는 모든 관계는 세 사람으로 구성된다. 맨 처음 나오는 세 사람은 민주와 민주를 독점하고 싶어 하는 을, 그리고 그 둘의 친구인 민하다. 그다음은 서로를 사랑하는 윤과 바원, 그리고 그 둘을 사랑하는 민주다. 그리고 그들 다음은…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삼각형들은 만화경의 연속되는 문양처럼 다닥다닥 붙은 채 끝없이 늘어진다.
「을」 속 모든 관계는 유동적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 간의 관계 또한 그렇다. 모두가 한 사람과 평생을 약속하는 대신 복수의 인물들 속에 일시적으로 뒤섞이고, 자기 집을 가지는 대신 일정 기간 호텔에 투숙한다. 어쩌면 그런 태도는 영구 소장의 소비 형식이 서서히 사라지고 기간제 구독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모든 것이 ‘시절인연’이 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균형감각일지도 모르겠다.
민주의 사려 깊음은 한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공평한 것이었다. 그 말을 달리하자면 민주의 무관심은 지극히 공평했다. p. 36
다만 그 긴장감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없었던 것이다.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던지는 것이고, 어디선가 날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얼떨결에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다시…… 그러다 그렇게 주고받던 감정들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사람이 칼을 든 것이었다. 그가 들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칼을 들었을 것이다. p. 120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조해주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횡설수설하지만, 사랑과 사랑 사이의 균형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할까? 가족, 연인, 친구… 우리는 많은 관계 속에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어쩌면 사랑은 불타오르는 형태만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불타오르지 않더라도 마음의 한 부분을 내어주고, 그들의 앞날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 때로는 부족했던 모습까지도 품어주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배워온 사랑이다.
사람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말로, 누군가는 행동으로, 누군가는 희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일까? 나만의 방식으로, 더 나아가 상대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 가는 것이 진정한 사랑.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하는 마음과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지 따듯한 단어들로 담아낸 책이다.
길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길을 사랑할 수 있을까
― 조해주, 「눈 깜빡할 사이」 부분
언제나 병은 오직 하나
생각의 끝에 내가 없으면 어쩌지
― 조해주, 「생각에게」 부분

축제의 친구들 /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 월드 발레 데이 / 위드걸스 / 껍질? / 바다의 기분 / 비트와 모모 / 0302♡ 수록▸『셋 세고 촛불 불기』, 김화진 외
🎂 균형을 찾은 날, 그날을 기념할 수 있기를
기념일이란 축하하거나 기릴 만한 일이 있을 때, 해마다 그 일이 있었던 날을 기억하는 날! 여기 8명의 작가들이 모여 각자가 생각한 기념일을 테마로 만든 소설집이 있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 생전 이루지 못했던 꿈이 이루어진 순간, 또 다른 세계의 나를 마주한 날… 8명의 작가들은 각자 살아온 궤적에 따라 자신만의 기념일을 정의한다.
기념일이란 균형을 찾은 날이자 이전의 내가 아닌 ‘오늘의 나’를 만나게 된 날이다.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치열하게 고민해 온 끝에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 오늘의 나.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을 들여다보며 당신도 당신만의 균형을 발견할 수 있기를, 그래서 이 책을 만난 오늘이 기념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껏 다져왔던 마음으로, 지나간 세계들을 생각하며 나는 조각난 피켓을 그러모아 맞추기 시작했다. 살아남는다는 건 어제로 가지 않는다는 뜻이야. 어떤 예감은 때로 결심에 가깝기 때문에.
― 서고운, 「위드걸스」 부분
하지만 지금은 일단 느긋하게 지내고 싶다. 달력이 무어라 말하든 3월 13일은 나와 세계 사이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테니까.
― 송섬, 「껍질」 부분

▸『난쟁이가 사는 저택』, 황태환
❔ 누구도 선할 수 없는 세상에서조차 약자의 욕망은 불쾌한 것일까.
부산행의 성공으로 좀비라는 소재가 한국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마이너’한 위치에 있는 ‘좀비 문학’의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는 책.
주인공 ‘성국’은 왜소증 장애를 가지고 있다. 거기다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아버지까지 모시고 있던 그에게 좀비가 창궐한 세상이란 너무나 가혹하기만 하다. 그러나 정작 가장 가혹했던 것은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였으니. 무너진 세상 속에서 여과 없이 분출되는 분노를 그는 작은 몸으로 온전히 견뎌냈고, 그 덕에 집단은 불안하게나마 평화의 균형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모종의 이유로 건물이 무너지자, 식량 배급을 위한 옥상 출입은 좁디좁은 쓰레기 배출구를 자유로이 오가는 성국의 전유물이 되며, 그의 인생에 최초로 선택지가 주어졌다. 꿇을 것인가. 혹은 꿇릴 것인가. 그의 욕망이 피어오르는 만큼 집단의 균형은, 무너진다.
여자에게 버림받고 화풀이하는 한심한 난쟁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다고 진실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이들에게 치부를 들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럴 바에야 악당이 되는 편이 나았다. p. 175
거짓말은 나를 전쟁터로 내몰지만, 나를 믿는 이들은 지옥으로 떨어트린다. p. 247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 누군가에 대한 멸시가 이토록 서슬 퍼런 저주가 되어 당신을 향할 줄은, 차마 몰랐겠지.
만약 당신이 표지부터 제목까지 모호한 것투성이인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그리고 더욱더 모호한 첫 페이지를 넘겼다면 당신은 이미 작가가 고이 펴놓은 치명적인 덫에 빠진 것이다.
장르 특성상 많은 것을 소개하는 것은 곧 이 책의 매력을 반감하는 일이기에 명심해야 할 것 몇 가지만 일러두고 물러나도록 하겠다.
첫째, 한 번에 읽을 것.
이 책은 형식이 다소 독특하다. 미스터리 잡지에서 원고료를 받고 작업을 담당하는 주인공 ‘세스지’와 그의 동료에 직접적인 대화뿐만 아니라 그들이 모은 자료들도 산발적으로 제시되기에 끊어 읽는다면 다소 난해해질 수 있다.
둘째, 지나갈 것.
형식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서술 방식 역시 독특하다. 분명 이해가 되지 않고 툭툭 걸리는 문장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넘어가시기를. 결말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것이다.
셋째, 끝까지 읽을 것.
여기서 말하는 끝이란, 단순한 본문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책의 마지막 페이지, 그리고 뒤표지까지 덮고 나서야 비로소 이 책은 완성된다. 그저 차분히, 그리고 끝까지 따라가라.
이 모든 규칙을 지키고 책을 덮는다면, 당신의 현실과 책이라는 가상 세계의 균형은 여실히 무너질 것이니.
여러분 정말 미안합니다. 그리고 찾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p. 314
그러면 우리는 10월에 또 만나요, 안녕!
토론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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