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바퀴 위에서 우리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보드를 동경해 왔다. 고등학생 시절로 올라가 보자. 언젠가 지하철에서, 그러니까 맨 마지막 칸에서, 그래피티가 가득한 보드를 안고 있는 학생들을 본 적이 있다. 스크래치가 잔뜩 난 낡은 보드, 땀에 젖은 얼굴과 셔츠, 상처가 가득하고 심지어 피를 흘리기도 하는 흙묻은 무릎. 빛나는 기세의 소년들은 그 존재만으로 지하철 한 칸을 가득 메운다. 카바넬의 그림이었나. 고전 회화에서 번뜩이는 눈동자를 마침내 그때 발견했다. 그러나 보드는, 사회적 반항의 표상으로 분류되기도 하여 가끔은 길거리에 이 번뜩이는 문화를 막아놓는 거리 장치가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 경의·중앙선 신촌역 앞 광장은 보드와 잘 어울리는 장소로서 다행스럽게도 남아있다.
또 대학교 1학년 신입생 시절이다. 경의·중앙선과 함께하는 통학길에 바라본, 시끄러운 올드스쿨 힙합을 틀어놓고 보드를 타는 청년들은 근사해 보였다. 경탄하는 마음으로 먼발치에 서서 이들을 바라보다 지하철 시간이 다 되어 계단을 뛰어 올라간 적이 몇 번이었나. 하루는 학교에서 과제를 마치고 늦은 저녁 출발하는 길이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에서 경의·중앙선 신촌역으로 향하는 내리막길, 엄청 큰-정말이지 엄청 커다란-스피커를 한쪽 어깨에 올리고 붉은 후드티를 뒤집어쓴 채 보드를 타고 즐겁게 출동하는 청년을 본 적이 있다. 아! 그것은 정말이지 출동이었다.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로보카 폴리의 출동과 같은, 히어로 출동의 인상. 드르륵 검은 아스팔트에 바퀴가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쿵쿵 울리는 올드스쿨 힙합의 비트. 돌개바람이라던가 그런 종류의 바람이 일어났던 것 같기도 하다. 역시나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나는 그때도 신입생이었던가. 그렇지만 보드를 탔던 주변인들의 피를 보았다던가 뼈가 부러졌다거나 하는 이유로, 또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어려워 보였으니까. 부러운 대상이다만 실제로 도전해 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망설이기만 할 것인가. 미루기만 하다 공(空)하게 끝난 경험은 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 많고도 많았다. 일단 칼이라도 뽑아야 무라도 베지 않겠는가. 하여 지금, 신촌 생활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에, 마침내 그들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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