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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5 · 10 · 01

479. 이상한 나라의 우산들

Editor 아잰

비가 내리던 오후, 대현문화공원은 평소보다 훨씬 고요했다. 간간이 우산을 쓴 이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공원 한쪽, 짙은 초록색 우산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은 빗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원 전체가 텅 비어 있는 듯한데, 오직 그 자리만이 작은 방처럼 따뜻해 보였다.

 

저기… 비가 이렇게 오는데, 책이 젖지 않아요? 여기 앉아 계신 이유가 궁금해요.

사실 요즘 백수라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요. 비 오는 날은 이 벤치가 제 차지가 돼요. 빗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리면… 오히려 집중이 잘 돼요. 비 맞을까 걱정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죠.

그럼, 지금 쓰고 계신 우산은 오래 쓰신 건가요? 되게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데요.

아, 이거. 서점에 책을 보러 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졌는데, 사장님이 “이거, 가져가도 돼요” 하시더라고요. 맨날 새것만 봐서 그런가, 이건 빈티지하니 예쁘더라고요. 누군가의 흔적을 이어받은 느낌이랄까요.

이 우산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왜 그렇게 느끼시는 걸까요?

음… 제 상황이랑 맞물렸던 것 같아요. 이 우산이 마치 ‘네가 아직 우연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이걸 받은 날처럼 또 언젠가 행운이 올 것 같은 느낌?

만약 언젠가 이 우산을 잃게 된다면, 그땐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으신가요?

나름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이 우산도 결국 누군가가 흘리고 간 걸 제가 주운 거잖아요. 그렇다면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우산을 주워서 기뻐하지 않을까요? 잃는 것도 일종의 이어주기 같아요. 누군가의 시간을 잠시 지켜주다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네지는 것. 놓아줄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보내줄 것 같아요.

 

우산 아래 작은 공간은, 우연이 그녀에게 남긴 작은 선물이었다. 또 다른 이의 손에 닿게 되더라도, 그녀가 느꼈던 고요와 위로는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손끝에서 흘러 나간 공백 속에서야, 우리는 그것이 감싸주던 무게를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손에 쥐어진 순간— 그 유실의 상처는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봉합된다. 그날 그 벤치에서, 한 여인은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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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잰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2

  1. BBang
    BBang 2026.01.07 21:38

    앗 저도 우산을 실수로 버리고 왔는데 미안하네요 ㅠㅜ 의미 있는 우산이었는데….!
    그렇게 버려진 우산들로 공동 묘지 만들까 봐요!

  2. BBang
    BBang 2026.01.07 21:39

    앗 저도 우산을 실수로 버리고 왔는데 미안하네요 ㅠㅜ 의미 있는 우산이었는데….!
    그렇게 버려진 우산들로 공동 묘지 만들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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