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 이상한 나라의 우산들

화창한 날 유플렉스 앞, 파란색 우산을 쓴 남자 고등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우산 쓴 거 보니까 비 오나…? 하고 깜짝 놀랐어요.
아… 아뇨. 그게… 사실 지금 누굴 기다리는 중인데요. 약간 ‘드라마 첫 장면’처럼 보이고 싶어서… (민망하게 웃음) 뭔가 이런 거 있잖아요. 여자 주인공이 ‘왜 우산을 쓰고 있어요?’ 하고 물어보면, ‘비가 올 것 같아서요’ 하고 대답하면서 씩 웃는, 그런. 근데 아직 아무도 안 와요. 그냥 더워요. 머리도 땀나고요. 근데 이거 이제 못 접겠어요. 접는 순간… 판타지가 무너질 것 같아서요.
비가 내리지 않는 날, 우산은 원래 무용지물일 것이다. 쓸모없는 도구가 허공에 펼쳐질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인간의 마음을 본다. 불안과 자존심, 혹은 작은 연극의 막으로 변모한다.

빨간 잠망경 앞, 햇살이 쏟아지는 길 위에서 한 청년이 검은 우산을 펼쳐서 들고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으나, 그의 마음에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근데… 오늘은 비가 전혀 안 오는데, 우산은 왜 쓰고 계세요? 진짜 궁금해서요.
(피식 웃으며) 아, 네. 맞아요. 이게 다 이유가 있어요. 오늘 소개팅이 있었거든요. 근데 급하게 나오느라 대충 빗질만 하고 나온 거예요. 제가 은근히 머리 모양에 민감한 편이라서, 특히 앞머리 산발되면 그날 하루 자신감이 싹 사라져요. 그래서 현관에 있던 이 우산이 눈에 들어왔을 때, 거의 반사적으로 집어 들었죠. ‘그냥 머리 위를 가려주면 되겠다’ 싶어서요. 일종의 ‘가림막’이랄까요.
그러면 지금 이 우산은 머리 보호용인 거네요?
네, 근데 사실 ‘자존심 보호용’에 가까워요. 중요한 자리 앞두면 사소한 게 크게 느껴지잖아요. 저한테는 심리적인 방패가 되어준 거예요.
얇은 방패 안에서 자기 자신을 숨기고 또 드러낸다. 사소한 물건 하나에 담긴 마음의 무게. 우리 모두 각자의 우산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쓸모없음’을 쓸모 있게 만든다. 가벼움 속에서 무거움을 지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 사물을 사랑하고, 사물에 기대어 살아가는 방식 아닐까.
앗 저도 우산을 실수로 버리고 왔는데 미안하네요 ㅠㅜ 의미 있는 우산이었는데….!
그렇게 버려진 우산들로 공동 묘지 만들까 봐요!
앗 저도 우산을 실수로 버리고 왔는데 미안하네요 ㅠㅜ 의미 있는 우산이었는데….!
그렇게 버려진 우산들로 공동 묘지 만들까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