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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6 · 01 · 14

490. 서재혁, 에디터 팬지

Editor 폴

*본 글에 수록된 대부분의 사진에 달린 캡션은 팬지가 직접단 것이다. 이 정도면 에디터와 팬지의 공동 작업으로 볼 수도 있겠다.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앞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학기의 신잔 팬지라고 하고요,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언제나 고민하는 중입니다. 사실 자기소개가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어쨌든 이번 학기에는 신잔으로, 그리고 다음 학기에는 구잔으로 인사드릴 예정입니다.

 

잔꾼명을 팬지라고 짓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팬지는 ‘팬티’와 ‘지갑’의 줄임말이에요. 제가 잔치를 지원할 때쯤 팬티 모양의 지갑을 샀거든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미국에 있는 개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판매하는 지갑을 직구 했어요. 그러다가 잔꾼명을 정하던 무렵, 친구에게 “닉네임 뭐 할까”하고 물었더니 “너는 팬티 지갑을 갖고 있으니까, 팬지라고 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생각을 해보니 제가 추구하는 삶이나 글의 방향이 어느 정도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면 나머지는 웃기고, 재미있게 가자는 편이거든요. 항상 유쾌한 요소를 잃지 말고 살자는 생각에서 팬지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잔꾼명 ‘팬지’는 ‘팬티 모양 지갑’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기능을 중시하신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실용주의자신가요?

일단은 기본적으로 팬티의 모양을 하고 있더라도 지갑의 기능을 하기에 이왕이면 좀 웃긴 모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물론 유쾌한 것을 지향하지만 ‘웃기기만 한 것’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평소에도 웃기면서도 그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것들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뭐든지 내실이 있어야 한다는 거군요. 잔꾼명을 짓는 과정 하나에 이렇게 많은 생각이 담겨있는 줄은 몰랐어요.

 

잔치에 들어오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잔치는 3년 정도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평소 무언가를 큐레이팅하는 서비스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항상 있었거든요. 장소를 찾아내고, 그곳을 취재해서 글로써 풀어내는 것이면 나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저야 뭐 글 쓰는 거, 먹는 거, 노는 거 좋아하니까 이런 것들을 한데 접목한 매거진이나 큐레이팅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던 편이죠. 그러다 군대를 전역하고 교환학생을 다녀오자마자 바로 지원하게 됐어요.

 

술을 뺀 나도 시체, 술을 넣은 나도 시체. 그렇다면 넣고 말죠. 안 그래요?

 

원래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하셨군요. 다른 곳에서 비슷한 활동에 참여하신 적도 있으신가요?

요즘은 좀 덜 하고 있지만, 원래 메일링 서비스를 이용한 뉴스레터를 하고 있었어요. ‘나의 서재’*라고, 제 본명인 ‘서재혁’에서 ‘서재’를 가져와서 언어유희 형식으로 이름을 붙였죠.

* https://maily.so/mylib

 

뉴스레터를 발행하기도 하시는군요.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궁금해요.

‘나의 서재’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만든 건데요, 저를 구독해 주시는 분에게 매주 에세이를 보내는 방식으로 시작했어요. 이런 걸 시작한 이유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이 다음 날이면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인데요, 가끔 제가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는 문장을 곱씹으면서 잠에 드는데, 자고 일어나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그 문장을 기억해 내려고 몇 날 며칠을 끙끙댔던 적이 있는데, 결국 아직도 기억이 안 나요. 그런 게 답답하고 스트레스여서 이런 서비스를 만들었죠.

 

어떻게 보면 나의 서재는 지나치기 쉬운 글들을 모아놓는 메모장과도 같은 거네요.

그렇죠. 또 저는 어떤 종류든지 의무감을 가져야 하는 편이라, 남에게 매주 하나를 보내줌으로써 스스로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됐어요.

 

메일링 서비스를 만든 다음에는 직접 홍보도 하셨나요?

매주 이야기를 제공한다는 콘셉트로 포스터를 만들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어요. 그다음 해에는 ‘나의 단어’라는 걸 하나 더 만들어서, 단어를 중심으로 많이 다뤘죠.

 

휘발되는 기억을 놓치기 싫어서 정기 간행물을 연재한다니, 정말 획기적인 발상이네요. 이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발생한 에피소드도 있는지 궁금해요.

아, 하나 생각났어요. 한 번은 제 친구가 글을 읽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친구에게 그 글을 보여줬나 봐요. 그런데 옆에 있던 그 친구가 글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구독했대요. 그래서 올리는 글마다 댓글을 달아주시는데, 아직도 저는 그분이 누군지 몰라요. 그냥 친구에게 전해 들은 게 전부예요. 이렇게 뜻밖의 반가운 인연이 생기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스스로 삶의 궤적을 기록하는 일은 정말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평소에도 글 쓰는 일을 좋아하셨던 건가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글에서 처음 힘을 느꼈던 건 중학교 때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고 나서인 것 같고요. 시를 읽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전달하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 뒤로는 저도 그런 유형의 시를 많이 썼었는데, 나중에는 글도 더 읽고, 영화도 보면서 긴 글 위주로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시를 좋아하시는군요. 평소 좋아하는 시나 시인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도 요즘에는 예전만큼 글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에요. (웃음) 하지만 지금으로서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황인찬 시인인 것 같아요. 제가 신촌문예*에서도 한 번 소개했는데, 현실성과 비현실성 간의 묘한 줄타기가 인상적이거든요. 그리고 심상을 사용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어요. 깨끗한 것이 차오른다라는 표현도 그래요. 사실 깨끗해진다는 것은 지워지는 느낌이잖아요. 그런데 시인은 “차오른다”라는 표현을 써요. 이런 부분들에서 제가 기존에 다루지 못했던 심상이나 접근 방식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전반적으로 사랑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럴 때의 표현 방식도 굉장히 새로워서 좋았습니다.

*신촌문예는 잔치가 제공하는 북 큐레이션 서비스다. 황인찬 시인의 구관조 씻기기를 소개한 팬지의 글은 https://welcometozanchi.com/19634에서 볼 수 있다.

 

저도 황인찬 시인의 남아있는 나날이라는 시 중 나는 그냥 여기 있어 기다리는 것은 없지만이라는 구절에 꽂힌 적이 있었는데요, 팬지가 말한 시인의 매력과 특징이 정말 공감되네요.

아, 그리고 최근 한강 작가님의 ‘빛과 실’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나일 뿐이라면 나는 너를 만날 수 없지…. 너가 너일 뿐이라면 너는 나를 만날 수 없어라는 구절이 정말 좋았어요. 다른 사람의 삶을 내 것처럼 사랑하면서 그 삶에 얹힌 무게마저 서로의 것으로 만드는, 그래서 둘의 관계가 한층 더 두텁게 느껴지게끔 하는 표현이 놀라웠죠.

 

‘빛과 실, 한강, 문학과지성사, 2025’

인간관계는 내가 아닌 것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무너질 줄 아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기꺼이.

 

팬지가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저는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글에는 ‘목적성’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목적을 챙기는 이유는 글을 웃기게 쓰고 싶기 때문인데요, 저는 말장난이 됐던, 반전이 됐던 일단 웃기고 위트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일단 원하는 만큼의 ‘목적성’이 확보가 되면 본격적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애드리브나 드립을 잔뜩 넣는 편인 것 같아요. 목적성이 일단은 전체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정도의 뼈대가 되어 주니까요.

 

시켜라, 40분 전에 전화해서. 식혀라, 뜨거우면 더 맵다와 같이 팬지의 글에서는 센스있는 제목이 돋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목을 쓸 때 영감을 받는 일상의 지점이 있나요?

저는 글을 쓸 때 제목을 먼저 쓸 때도, 나중에 쓸 때도 있어요. 요즘은 마지막에 쓰는 것 같지만요. 제가 쓰고 싶은 웃기고 재밌는 얘기들을 잔뜩 써놓고 이것들을 센스있게 요약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데, 인터넷의 ‘제목학원’ 같은 콘텐츠도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 글을 보고 제목을 짓는다면 어떻게 귀엽게 지을 수 있을까.”, “어떤 제목을 지어야 사람들이 많이 볼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제목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아요.

 

팬지의 글에서는 기성 글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종류의 에너지가 보여요. 특히 이 자식, 아주 흑심을 숨기고 있었구만?!?’* 글에서는 예쁜 누나를 짝사랑하는 소년의 마음을 생동감 있게 풀어가며 흑심이라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고 가게를 소개한 점이 놀라워서 저도 여러 번 읽었는데요, 이런 에너지는 의도하신 건지, 아니면 재능인지 궁금해요,

저는 머릿속에서 무언가 연상되는 작용 자체가 빠른 편이라고 생각해요. 하나가 떠올랐을 때 다른 것들이 빨리빨리 연상되는 편이고요. 그리고 ‘에너지’라면… 제가 언어 유희나, 중의적인 문장들을 즐겨 쓰는 편인데 그래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

244. 이 자식, 아주 ‘흑심’을 숨기고 있었구만?!?

 

취향에 맞는 술집을 발견한 팬지의 모습.

 

푸른 굴뚝’* 글에서는 가상의 인물을 상정해서 글을 풀어가는데, 글 한 편을 쓰기 위해서 가상의 인스타 아이디까지 만드셨잖아요. 상당히 창의적인 작업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종류의 아이디어를 얻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스스로 ‘연상이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연상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른 것들을 연관 짓는 카테고리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푸른 굴뚝’ 글을 쓸 때도 글과 미디어를 연관 지어 보자고 생각했어요. 웹진의 매력은 글 안에 사진과 링크를 자유롭게 넣을 수 있다는 것이잖아요. 그 매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251. 푸른 굴뚝: 이 글은 여느 기억처럼 선명한 사진이 없습니다.

 

한 학기 동안 경험한 잔치에서의 활동은 어떠셨나요?

음… 일단 좋았던 점은 글에 목적성이 있다는 거였어요. 여태까지는 그냥 취미로 혼자 글을 썼다면, 분명한 목적을 가진 채로 글을 쓰고 남들에게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는 경험이 개인적으로 정말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피드백은 때로는 응원이나 좋은 질책이 되기도 하고, 자극으로 다가와요. 피드백을 듣고 글을 고치면서 제 스타일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활동에서 아쉬운 점이 많이는 없는데요, 저는 잔치가 정말 많은 것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하나의 글을 준비하는 데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다는 점,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에디터의 체력이 떨어지는 감이 있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한 학기 동안 정말 많은 것들을 느끼신 것 같아요. 팬지는 현재 플레이스 팀에서 활동 중이잖아요. 원래부터 지망했던 팀인가요?

아니요. 제1지망은 원래 ‘아트 팀’이었어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나의 서재’라는 메일링 서비스를 하면서 장르나 내용의 구분 없이 글을 써왔다 보니, ‘감성’을 바탕으로 신촌을 소개하는 아트 팀이 매력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잔치에 들어오기 전에 구상했던 글들도 어떠한 소리나 냄새와 같이 특정되지 않은 것들에 관한 얘기였고요. 아무튼 이런 종류의 얘기를 하고 싶어서 아트 팀에 지원했는데, 결국 여기(플레이스 팀)에 오게 됐네요. (웃음)

 

그렇게 2지망이었던 플레이스 팀에 배정되셨는데요,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처음 와서 보니까 너무 조용한 거예요. 이 인간들이 전부 다 엠비티아이 I여서, 숨 막혀 죽을 뻔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게 너무 힘들었는데, 이 친구들의 특징이 친해지면 또 할 말 다 한다는 거예요. 요즘은 더 편한 분위기가 돼서 좋기도 하고, 사실 I라고 해서 표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조용한 성격에서 나오는 그 말도 안 되는 글들을 볼 때마다 “대박이다.”, “많이 배운다.” 이런 생각을 해요.

 

플레이스 팀에서 한 학기 동안 활동하신 소감이 있다면요.

저는 원래 어떤 장소를 소개한다고 하면 ‘시끄럽게’, 그리고 ‘예쁘게’ 소개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앞섰는데,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찾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글을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점은 저도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죠.

 

‘신촌문예’에서 디자이너 ‘지평’이 그려준 캐리커처. AI가 판치는 세상에서 펜의 온기가 남아있는 그림이라니!

 

캐리커처의 레퍼런스가 된 사진. 머리 스타일만 약간 다르다.

 

에디터의 작업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피드백이잖아요. 피드백 과정을 통해 변화한 점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말씀하신 대로 글에는 성향이 있어요. 그리고 성향의 선호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멀리서 보면 ‘누가 보아도 좋은 글’은 티가 날 때가 있거든요. 저는 그 지점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좋은 글과 나쁜 글이 구분되는 지점이요. 저도 그것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또 피드백을 받으면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맞춤법을 너무 많이 틀려서 미안하기도 하고 스스로 짜증도 났죠. 틀렸으니까 지적을 받는 거지만 아무튼 피드백을 받을 때 느껴지는 그 오묘한 감정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감정들이 모여서 결국 더 꼼꼼한 글을 쓰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한 학기 동안 많은 글을 쓰셨는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아쉬웠던 글이 있나요?

물론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웹진 글이지만, 아쉬운 글로는 곧 종이 잡지에 실릴 ‘엉덩이 투어’ 글을 꼽고 싶어요. 왜냐하면 조금 더 정성을 들일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당시에 제가 너무 바쁘기도 했고, 엉덩이 투어의 콘셉트 자체가 ‘신촌의 앉을 곳’을 소개하며 ‘촉각’에 대한 글을 쓰자는 거였는데, 일단 장소가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구조화가 좀 덜 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쉬움과 동시에 가장 애착이 가는 글 중 하나기도 해요.

 

웹진 글을 쓰면서 겪은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요?

저는 평소에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글을 많이 쓰는 편인데, 무언가를 소개한다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러한 부분들이 방해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번 말했지만 제 최애 에디터는 ‘세계’인데, 글에 비유를 엄청 많이 쓰거든요. 그래서 그런 비유들을 보면서 감탄을 하고는 하지만 동시에 약간의 피로도 역시 느껴진단 말이죠. 그런 점들을 잘 잡아주는 글이 에디터 ‘3호’의 글이었던 것 같아요. 글이 담백하면서도 존재하는 것들을 보기 쉽게 잘 나열하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언가를 소개하는 글을 쓸 때에는 이런 방식이 좋은 무기, 좋은 말투가 되겠다고 생각했죠. 결론적으로 글을 쓰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비유’와 ‘담백함’이라는 두 가지를 잘 조화시키는 것, 그리고 글의 방향성을 잘 정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해보자”라는 말이 팬지를 잘 나타내는 듯하다.

(아이폰 기본 설정 언어가 español인 점도 눈에 띈다)

 

플레이스 팀으로서 다양한 장소를 취재하며 겪은 에피소드나 비하인드 스토리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가게의 사장님들과 친해지고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제가 사장님과 말을 잘 못하더라고요. 항상 고민인 점은 ‘취재 허가’와 ‘식사’ 중에 무엇을 먼저 할 거냐는 거예요. 다 먹고 사진도 다 찍고 난 다음에 취재해도 되냐고 여쭤보기는 애매하니까요. 그래서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시간이 된다면 두 번 정도 답사를 하는 게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제가 군대에 다녀오기 전과 후가 많이 달라진 가게들이 있어서, 그런 점들을 글에서 많이 다루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네요.

 

성인이 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신촌에서 보내셨잖아요. 신촌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신촌의 분위기 속에서는 확실히 젊음의 수혈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무리 몰락했다거나 상권이 무너졌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무너진 판자 위에서 뛰어노는 건 또다시 이십 대들이고요. 끊임없이 젊음이 수혈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어떠한 것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망원이나 합정과 같은 공간도 분명 젊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유행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신촌이라는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유입되는 젊은 사람들 때문에 분위기가 어쩔 수 없이 젊게 되는 것 같아요. 트렌디한 게 아니라 정말 그냥 젊기만 한 애들이 무너졌거나 말거나, 좋은 집이 있거나 말거나 다 같이 춤추고 술 먹고 하는 느낌이 좋죠.

 

어쩔 수 없이 유입된 사람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젊어진 분위기라, 신촌에서 이십 대를 보내고 있는 저로서도 정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그래서 화장실은 더럽고, 테이블은 끈적거리지만 그럼에도 밤새 술 먹으면서 좋다고 노는 애들이 항상 널려 있다는 것이 어쩌면 제일 큰 장점인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신촌의 가장 큰 원동력이고, 에너지고요. 순수한 젊음이나 열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더럽게 생고생하면서 느껴지는 야생의 젊음이 여기 있지 않은가?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가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덕분에 낙엽이 꽃으로 보이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제 완연한 겨울이에요. 이 계절을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요?

아직은 저에게 1년 정도의 시간이 더 남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들을 찾는 시간을 조금은 더 갖지 않을까요? 제가 경영학과 학생이기도 하고, 나이도 먹었으니, 돈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해야겠지만요.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돈이 되는 것’과 ‘돈이 안 되더라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모두에 대해 고민해서, 앞으로 나이를 더 먹고 살아가더라도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소재나 취미를 몇 개 더 찾아놔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서순라길의 바(Bar) 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얻은 것은 네 개의 잔을 한번에 들어 올리는 능력뿐. (에디터의 솔직한 소감: 약간 부러운데?)

 

이제 겨울이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구잔으로서 어김없이 새로운 글을 쓰시게 될 텐데요. 꼭 써보고 싶은 글의 방향성이 있다면요.

저는 ‘소리’와 ‘공간’을 엮는 작업을 항상 해보고 싶었어요. 신촌에 있는 맛도리 술집에 가서 그곳의 분위기나 대화를 담고, 그 위에 실제로 녹음한 북적거리는 소리를 오디오로 넣고 싶어요. 예를 들어서 르 라보(le labo) 향수에서 하는 프로젝트 중, 향수 매장에서 나누는 대화들을 기록해 놓은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어요. “너는 원래도 완벽했는데 이걸 뿌리니 이젠 진짜가 됐어.”, “도저히 내가 원하는 향수를 못 찾겠어.”와 같은 대화들을 스크랩해서 올리는데, 저는 그런 삶의 가장 작은 부분들이 글의 특별함이나 개성을 더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조명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어요. 사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서 방학을 활용해 보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overheardlelabo

 

말씀을 듣다 보니 다음 학기 플레이스 팀에서 정말 재미있는 글들이 많이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사실 저는 신촌의 장소를 큐레이팅한다는 것이 꼭 추천할 만한 장소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누군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장소에 대한 ‘감상’을 엮어낼 수 있는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감상에 대한 장소’와 ‘장소에 대한 감상’이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고요. 얘기를 하다 보니까 아예 감상 같은 것들을 배제하고 장소에 대해 좀 더 전문성 있게 다루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 학기 운영진께서 잘 회의하시겠지만요. (웃음)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자 공통 질문인데요, 이번 학기 종이잡지의 주제는 오감이었죠. 최근 팬지를 지배하고 있는 오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촉각이요. 아, 요새 뒤지게 추워요. 저는 알바하면서 손을 되게 자주 씻는 편이거든요? 그때마다 손이 아려오는 느낌이 “아, 겨울이 왔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해요. 그리고 저는 평소 뭐가 되었든 온도감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요. 음식이 됐든, 술이 됐든 따뜻하게 먹고 싶을 때와 차갑게 먹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육회나 회 같은 음식도 차가운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차갑지는 않잖아요. 저는 신촌에서 보낸 이번 학기 동안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그런 온도감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저는 너무 뜨거운 음식도 싫어하고*, 어느 순간부터적절한 시기적절한 온도적절한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추운 겨울날에 애인의 손을 잡으면 따뜻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 저를 지배하고 있는 건 촉감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나눈 날은 영하 10도의 겨울이었지만, 팬지는 꿋꿋하게 냉우동을 주문했다.

 

1월 1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함께 책을 구경하다가 애인이 밝은 눈을 하고서 들어 올린 책.

 

영하 10도 이하를 오가는 추위가 매섭다.

‘따뜻한 겨울’이라는 말에는 다소 어폐가 있지만, 자타공인 잔치의 분위기 메이커 팬지의 겨울이 그에게만은 적절한 온도이기를.

거센 눈발도 차마 식힐 수 없는 그의 뜨거운 열정이 신촌을 지배하는 야생의 젊음과 만나 맹렬하게 생동하기를 바란다.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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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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