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 사람, 연희
일부러 소리를 내어 발음하고 싶은 단어가 있다.
‘연’
혀끝이 윗잇몸을 가볍게 두드리자, 단아한 비음이 허공에 부드럽게 울려 퍼진다.
‘희’
성대를 타고 그윽하게 흐르는 기음(氣音)*이 투명한 모음으로 사방에 흩어진다.
*소리에서 가장 낮은 진동수를 가진 성분.

이렇듯 발음하기에 조금의 힘도 들지 않는 이름을 가진 동네지만, 그 지형이 결코 거닐기에 수월한 건 아니다. 연희동의 동북쪽과 연세대의 머리맡을 지키고 있는 ‘무악산*’은 예로부터 산세가 험준하고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가 자주 출몰해 혼자서는 지나다니기 어려웠다고 한다. 산의 이름에 얽힌 가설 중 하나가 사람들이 ‘모여’ 지나다녔기에 ‘모아재’로 불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음운 변화가 일어나 ‘무악재’가 되었다는 것일 정도다.
*무악산의 다른 이름은 ‘안산’이다.
탄탄한 화강암 능선으로 이뤄진 무악의 자락은 마치 어머니가 너른 두 팔로 아이를 품에 안은 모양을 하고서 연희동을 감싸고 있다. 고지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한데 모이는 분지*에는 기름진 토양만큼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늑한 문화와 정이 쉼 없이 쟁글거린다. 물론 이러한 지형적 특징을 ‘폐쇄성’이라 부른대도 반박의 여지는 없다. 서쪽으로는 안산도시자연공원을 끼고, 동쪽과 북쪽으로는 높직한 무악을 끼고 있어 외부로 트인 곳이라곤 고작 연남과 창천으로 나가는 길목뿐인 동네니까 말이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심부가 평평한 지형.
동북으로 넓게 펼쳐진 녹지가 편안함을 자아낸다.
그뿐인가. 원체 가공이 힘든 화강암 위에 지어졌기에 지하철이 다니기 어려워 동네의 주민들은 버스와 자가용에 의존한다. 중심부에서 벗어날수록 가파른 경사와 좁은 골목이라는 약점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한다. 이것이 아늑함의 대가일까. 오죽하면 “대학 다닐 때의 기억이 좋아서 연희동에 눌러앉았지만,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니 도무지 동네를 떠나지 않을 재간이 없다”라는 말이 이곳 주민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나돌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고깝지만은 않다. 불편과 애로가 눈에 선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연희를 사랑한다. 그리고 연희를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연희는 모든 면에서 ‘대체 불가’하다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에디터님의 연희동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글이라 더 즐겁게 읽었네요. 속도에 치여 살기 바쁜 요즘 연희동 같은 곳이 더 절실해지는 것 같아요. 느림의 미학이 그리워질 때쯤 찾아가 봐야겠어요 ㅎㅎ
관통하는 주제, 쓰이는 단어들에 대한 깊은 사유가 느껴짐과 동시에 물흐르듯 진행되는 잔잔하고 가벼운 템포의 인터뷰들이 연희 그자체를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정말 오랜만에 제가 잔치에 있을 때 행복하고 치열하게(아무도 치열하라고 하진 않았으나) 글을 쓰던 모습이 생각나게 하는 글을 만난것 같아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글 정말 정말 좋아요…. 취향저격… 오래오래 잔꾼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