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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6 · 03 · 11

494. 사람, 연희

Editor 폴

#1. 안산도시자연공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은 <섬>이라는 시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인간이 되어버린 이상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결코 건널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널따란 바다에서 물장구도 치고, 가끔 소리도 지르다 보면 언젠가는 그 불가해의 영역 위에 둥실, 떠 있는 섬에 이르게 된다고 말이다.

조그만 동네의 작은 빌라에 살면서 고작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의 얼굴조차 모르는 필자 역시 이 같은 ‘섬’ 담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매한가지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무심코 걷다 도착한 곳은 도심 속의 작은 녹지 ‘안산도시자연공원’.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사이에 마치 처럼 자리 잡은 이곳에서 필자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소음은 어느새 간데없고, 마른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는 햇살만이 오롯했다. 손때 묻은 운동 기구가 즐비한 공터에 놓인 벤치에는 한 어르신이 앉아 계셨다. 가벼운 기능성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숨을 고르며, 동네 전경을 굽어보는 뒷모습에서 어쩐지 이곳의 일부가 되어버린 존재만이 풍길 수 있는 여유가 느껴졌다. 필자는 이끌리듯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날이 참 좋네요. 운동 나오신 건가요?

네. 운동 삼아 공원 한 바퀴 돌고 잠시 숨 좀 고르는 중입니다.

 

연희동에 오래 사셨나 봐요. 동네 자랑 좀 해주세요.

말도 마세요. 나 서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에요. 어릴 때는 홍제동 살다가, 북가좌동 거쳐서 연희동에 정착했어요. 서대문구 변천사를 내가 다 보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웃음) 연희동 자랑이라…여기가 참 묘해요. 서울 한복판인데도 산줄기가 내려와서 공기가 달고, 동네가 참 점잖아요.

 

정말 서대문의 산증인이시네요. 요즘 인터넷과 SNS에서 연희동이 화젯거리인데요, 동네의 변화를 오래 지켜보신 입장에서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사람들이 ‘연희동’ 하면 카페나 맛집만 생각하는데, 진짜는 이 골목이에요. 저도 이 동네에서 평생을 보냈지만, 아직도 산책을 나와서 걸어 다니다 보면 “여기 이런 가게가 있었나?” 싶은 곳들이 많아요. 여기 처음 오는 젊은 사람들은 오죽하겠어요. 처음 왔을 적하고, 두 번째 왔을 적하고 느낌이 또 다르니까요. 우리 아들도 여기서 자라서 지금 저 밑에 연세대 졸업했는데, 안 그래도 요즘 친구들이 자꾸 연희동에서 약속을 잡는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는 저기 종로나 성수처럼 다른 곳 좀 가고 싶은데. (웃음)

 

아드님이 연세대를 졸업하셨군요. 제가 후배네요.

아이고 그래요? 어쩐지 학생 인상이 참 바르다 했어. 학교 다니기 힘들진 않아요?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고?

 

동네에 워낙 맛있는 게 많아서 잘 먹고 다녀요. 선배님 아버님을 여기서 뵙다니 영광입니다.

 

 

연희동 골목이 워낙 좁고 경사가 급한데, 생활하시는 데에 불편함은 없으신가요?

저도 익숙해져서 그렇지, 처음에는 엄청 불편했어요. 지금이야 열선이 잘 깔려서 눈이 와도 금방 녹지만, 예전에는 상당히 곤란했죠. 차도 잘 못 다니지, 동네가 워낙 높이 있어서 걸어 다니기에도 쉽지가 않으니까. 겨울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자비라고는 없는 연희의 눈길.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다는 점도 불편함에 한몫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여기서 가장 가까운 역이 홍대에 있잖아요. 그런데 제일 가깝다고 해도 걸어가기는 좀 그래. 저는 그래도 차를 끌고 다니지만, 출퇴근 시간대에 버스를 보면 장난 아니에요.

 

갑작스럽게 질문을 드렸는데,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해요. 올해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있잖아요, 저는 이것도 다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집에 가서 아들한테 동문 만났다고 자랑 좀 해야겠어요. 학생, 나중에 공부하다 답답하면 여기 공원 자주 올라와요. 머리 식히기엔 여기만 한 명당이 없어요.

 

도시의 소음을 한 꺼풀 벗겨내고 적요한 자연의 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어쩌면 빌딩 숲속에 사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사치가 아닐까. 지난했던 겨울이 가고 마침내 날이 풀리는 3월이다. 얼었던 흙이 서서히 녹으면서 내뱉는 숨결이 사람들 사이의 온기만큼이나 향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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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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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준다

COMMENTS

댓글 2

  1. nimo
    nimo 2026.03.11 22:4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에디터님의 연희동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글이라 더 즐겁게 읽었네요. 속도에 치여 살기 바쁜 요즘 연희동 같은 곳이 더 절실해지는 것 같아요. 느림의 미학이 그리워질 때쯤 찾아가 봐야겠어요 ㅎㅎ

  2. 챌라또
    챌라또 2026.03.12 07:40

    관통하는 주제, 쓰이는 단어들에 대한 깊은 사유가 느껴짐과 동시에 물흐르듯 진행되는 잔잔하고 가벼운 템포의 인터뷰들이 연희 그자체를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정말 오랜만에 제가 잔치에 있을 때 행복하고 치열하게(아무도 치열하라고 하진 않았으나) 글을 쓰던 모습이 생각나게 하는 글을 만난것 같아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글 정말 정말 좋아요…. 취향저격… 오래오래 잔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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