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신촌 비밀작전 가이드북
“수고하셨어요~”
드디어 긴 시간동안의 어색한 시간이 끝났다. 모두들 자신보다 커보이는 기타 가방을 메고 집에 갈 준비를 한다.
“다들 어디로 가세요?”
연례행사처럼 같이 있던 이들과 작별할 때마다 하는 멘트다. 딱히 궁금한 건 아니지만 헤어지기 전에 어색하니 꼭 하는 말. 이미 합주하는 데 모든 사회성을 다 쓴 터라 제발 집에 가는 길만은 겹치지 않기를 바라며 물어보는 말이기도 하다.
“아, 저 신촌역으로 가요.”
.. 젠장, 가는 길이 같다. 그래도 지하철 방향은 다를 수 있으니 한 번 더 물어본다.
“어느 방향으로 가세요?”
“홍대입구역 쪽이요!”
아~ 젠장. 방향마저 같다.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라도 따로 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싶어진다.
“아.. 저는 갈 데가 있어서요..”
“어디 가시는데요?”
어디에 간다고 해야하지..? 어디에 뭘하러 간다고 하는 게 제일 자연스러울까..?
[보름 pick!]
피신할 곳이 필요한 연대 서문, 연희동 주민들은 어쩌면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연희동에는 잠시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는 곳들이 골목골목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아! 저 친구 생일 선물을 사러 가야 해서요…”라는 핑계로 아직은 어색한 이들과 떨어질 수 있는 곳이 참 많은데, 그중에서도 추천할 만한 곳이 있다.
바로 ‘ODOM‘이다. ‘그린디자인웍스‘라는 문구 브랜드에서 오픈한 곳으로, 그린디자인웍스의 제품과 다양한 국내외 문구 아이템들이 모여있다. ODOM의 알록달록한 아이템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색한 이와 동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마조마하던 마음도 어느새 잔잔해질 것이다. 그러니 찬찬히 구경해보자.
잠시 피신 겸 구경하러 ODOM을 방문할 수도 있지만 정말 나 자신 혹은 다른 이를 위한 선물을 구매하기도 좋다. 책갈피와 노트부터 스티커, 필기구, 수많은 편지지까지. 선물할 만한 것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에디터도 좋아하는 선수에게 선물할 책갈피를 이곳에서 구매했다. 소중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곳에서 선물부터 편지지까지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물망초 pick!]
이 순간만큼은 중간고사 시험을 보고 있을 때보다 더욱 빠르게 머리를 굴려야 한다. 1초만에 적절한 대답을 내놓아야 하니까. 그리고 꺼낼 수 있는 최선의 답은,
“저… 옷 사야해서…! 먼저 가세요!”일 듯하다. 눈치가 쥐뿔도 없거나 나와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아닌 이상, 혼자 옷구경 할 수 있게 내버려두겠지.

핑계를 댄 김에 옷구경도 잠깐 하고 가는 건 어떨까? 잔치가 추전하는 옷가게는 ‘블루벨트’. 신촌역 2번 출구에서 나와 1분만 직진하면 바로 있다. 신촌역까지 함께 걸어가다가 블루벨트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며 실제로 옷 산다는 것을 어필해보자.
(입구가 좁아서 잘 안 보이니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서 신촌역까지 가지 않도록 하자)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핑계거리로 들어온 것을 잊어버리고 옷구경을 신나게 하고 나올 정도로 다양한 옷과 악세서리, 가방, 모자 등이 즐비해있다.
이번엔 가짜로 옷을 사러 온 거지만, 다음에는 진짜로 옷을 사러 와도 괜찮을 것 같다. 핑계거리로 이용된 가게지만 조용히 지도 즐겨찾기에 추가되는 빈티지 옷가게, ‘블루벨트’다.
[이지 pick!]
“아~ 저 내일 아침에 먹을 빵 사러 갑니다.”
이왕 바로 지하철로 향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맛있는 빵이나 사러가자. 한 입 베어물면 감탄이 터져나오는 빵집, 뺑드에떼는 연희동 초입에 위치해있다. 간식으로 먹을 빵도 아니고, 내일 아침으로 먹을 빵이라고 하면 굳이 이 사적인 식량 선택 시간까지 따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아직 프라이버시도 지켜주는 덜 친한 사이가 아닌가…!

또, 신촌에서부터 연희동의 뺑드에떼로 향하는 길은 상당히 아름답다. 녹음이 진 담벼락과 신촌 메인 거리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한적한 여유. 이 거리를 걷다보면 사람들에게 치여 닳아버린 그대의 마음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다.

여유를 되찾은 마음으로 도착한 빵집. 유럽풍의 포근한 가게의 외관이 당신을 맞이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건강한 빵부터 디저트 빵까지 사랑스러운 빵들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빵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고 어떤 맛이 날지 행복한 상상을 하다보면, 그 달콤함에 젖어 하늘을 날아갈지도 모른다.

*뺑드에떼는 바게트, 포카치아 등의 식사 대용 빵이 유명하다. 그러나, 에디터가 직접 먹어본 결과, 디저트용 빵까지 모든 빵이 맛있으니 자유로이 빵의 단꿈을 펼쳐보시길!
[팬지 pick!]
어디 가냐고 물어보지 좀 말아라. 간다면 가는거고, 온다면 오는거지.
라고 할 순없으니까. 나도 그렇듯 우리는 온갖 핑계를 찾는다. 그치만, 옷을 좋아하는 취향도 아니고, 책을 읽지도 않으며, 소품샵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혼자 술집에 들어 갔다간 따라 들어올 테고, 둘러댈 친구도 생각나지 않고, 아까 삐진 애인이 이젠 애인이 아니게 된다면? 그럼 써보자. 엄마 찬스.
저 본가 갑니다. 이 한마디에 가지 말라는 사람이 있을까. 귀소본능까지 막을 거라면 친구 안하면 된다. 지하철 방향을 반대로 타든, 버스를 타겠다고 연세대학교 앞 대로변으로 방향을 틀든, 중간에 다른 골목으로 빠지든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말. 저 오늘 본가 가야 해서요.
그러곤 자유를 만끽하자. 홍대와 반대로 갈 것이라면, 서강대 쪽은 어떠신지? 은근히 한산한 경의선 숲길이 낯설면서 반갑다. 천천히 걷다보면, 골목골목 귀여운 가게들이 들어선다. 마치 어디든 잠깐 와서 피신하라는 듯.
혹시 그것이 못내 부담스러워 다시 피신을 해야할 것만 같다면. 그땐 정말 본가를 가자. 그만큼 쓸모없지만 정당한 귀소본능이 또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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