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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1 · 12 · 01

168. 신촌 여행 스케치북

Editor 신나우

*여행준비물: 설렘, 추억, 신촌의 색을 담을 팔레트 

*여행 코스:   472번 버스 – 맨도롱 식당 – (여우사이카페) – 신촌브루스 – 대한민국 플스방 – 연세대학교 노천극장 – 백양로~연세로

 

*여행 일기

 

 

2021 년 11 월 17 일

날씨: 흐림

 

 

여행,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다. 코로나로 바뀌어 버린 일상 속에서 우리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 위드코로나 시행으로 해외여행도 조금씩 재개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큰 제약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꼭 머나먼 곳으로 장기간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남태평양의 에메랄드빛 바다 위 휴양지나 유럽의 웅장한 궁전이 아니면 어떤가. 

요즘은 가까운 곳으로 가볍게 떠나는 여행이 트렌드다. 코로나 유행 이후 사람들은 국내 곳곳의 아름다운 여행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짧고 가볍더라도 찾아간 장소에서 내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이미 성공적인 여행인 것이다. 마지막 글을 앞두고 고민하던 나도 오랜만에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일상의 공간인 신촌을 찾아가는 걸 여행이라 부르기엔 민망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달리하면 신촌으로의 여행이라는 게 꼭 이상할 이유도 없었다. 신촌 여행을 떠올렸을 때 나는 충분히 설렜으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바로 버스정류장으로 달려나가 신촌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의 신촌 여행은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수백 번도 더 앉았던 472번 버스 뒷자리지만, 마음속 설렘은 오늘도 여전하다. 살짝 흐린 날씨가 마음에 걸렸지만, 여행을 즐길 마음가짐은 준비 완료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에 넋 놓고 있다 보니 순식간에 신촌에 도착했다. 50분 정도 걸렸지만, 정말 금방이라고 느껴졌다. 오늘의 여행지 신촌, 연세로에 내렸다. 신촌이라는 목적지만 정하고 출발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신촌의 랜드마크인 빨간 잠망경 앞에 서서 다음 코스를 생각해 보았다. 

 

 

 

신촌 여행 지도

 

고민하던 중에 추억여행 컨셉으로 하루를 보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촌에서의 일상 속 자주 가던 식당과 카페도 찾아가 보고, 오랜만에 학교 산책도 즐기면 알찬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즐기기만 하면 좋겠지만은 그래도 마지막 글을 쓰기 위한 여행이기도 하니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신촌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왜 그런 의미로 느껴지는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여행 중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오늘 여행이 끝났을 때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신촌은 추억이다]

 

 

 

점심시간이라 슬슬 배도 고프고, 배부터 든든하게 채워야겠다. 메뉴를 좀 고민하다가 날씨도 으슬으슬 추운 게, 오랜만에 맨도롱식당 생각이 났다. 맨도롱식당은 신촌에서 손에 꼽는 제주 음식 전문점으로, 내가 2학년 때 자주 다니던 식당이다. ‘맨도롱’이라는 말 자체가 제주 방언으로 ‘따뜻한’이라는 뜻이라 쌀쌀한 날씨에 꼭 생각이 난다. 메뉴판을 보면 다양한 음식이 있지만, 사람들은 보통 고기 국수 아니면 고기 국밥을 시킨다. 나 역시도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를 주문하고, 친구들과 돔베 고기나 모둠 순대를 추가로 시켜서 나눠 먹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멸치국수나 비빔국수 등 다른 국수류도 선택 가능하며, 순대 종류도 청양백순대부터 야채 피순대까지 다양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고민 없이 고기 국수와 청양 백순대 한 접시를 시켰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깍두기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그리고 입에 넣자마자 3년여 전 그때 그 맛 그대로라는 게 느껴졌다. 변하지 않은 깍두기 맛이 이렇게나 반가운 일일까. 이어서 나온 고기 국수를 한 입 먹자마자, 3년 전 이곳을 함께 드나들던 친구들과 스물한 살의 내가 떠올랐다. 

 

 

 

뜨끈한 고기 국수 한 그릇

 

맨도롱식당은 나에게 그런 추억이었다. 화요일, 목요일 수업이 10시 50분에 끝나던 우리가 학교를 걸어 나와 식당으로 향하면, 오픈 시간인 11시에 맞추어 도착하곤 했다. 고기 국수나 국밥을 한 그릇씩 시키고, 모둠 순대를 하나 시키면 남김없이 다 먹곤 했다. 소중했던 2시간의 공강 시간 중 처음 30분을 자주 이곳에서 보내곤 했었지.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이곳을 찾았고. 

신촌은 나에게 추억이 만들어낸 궤적이었다. 파릇파릇했던 순간들을 친구들과 함께 보낸 곳. 돌아보면 별것 아닌 일에도 담소를 나누며 마냥 행복했던 곳. 서로의 기쁨과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던 곳. 서로 다른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던 곳. 서러움을 안고도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안식처였다. 

 

 

 

[신촌은 새로움이다]

 

 

 

배부르게 먹었지만, 디저트 배는 또 따로 있는 법이지. 기분 좋은 포만감을 가지고 어느 카페로 갈지 고민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던 디저트 카페 ‘여우사이’로 주저 없이 향했을 텐데 말이야…

최근 코로나로 무기한 휴업에 들어간 걸 알면서도, 무의식중에 가장 먼저 ‘여우사이카페’를 떠올렸다. 신촌에서 학교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간 곳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2018년 한 해 동안은 정말 그곳을 집처럼 드나들곤 했다. 문을 열 때 들리는 종소리부터 특유의 밀크티 향 풍기는 아늑한 공기. “불편하셔도 소파나 테이블은 옮기지 말아 주세요”라는 사장님의 다소 깐깐한 당부와 나의 최애 ‘런던의 안개 밀크티’. 벽면을 채우는 감성 가득한 흑백 사진과 비니 모자를 씌운 귀여운 조명까지. 모든 게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살아 있었다. 

 

 

 

추억 속에 잠들어 있는 여우사이카페

 

마음속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여우사이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했던 대로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불 꺼진 계단 위에는 사장님의 편지와 임시 휴업 공지뿐이었다. 

 

 

 

[잠시] 쉬어갈까 합니다.

 

[잠시]라는 표현이 뭔가 위로가 되는 것 같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어딘가 더 슬펐다. 앞에 ‘기약 없이’라는 단어가 왠지 그 잠시를 정말 생략해버려도 그만인 말처럼 만들었다. 어쩌면 사장님도 이 모든 걸 염두에 두고 ‘잠시’를 괄호 안에 넣어버리신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여우사이카페도 영원할 수는 없다. 그동안의 오랜 추억이 담겨있는 이곳도 변화하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겨울바람처럼 조금은 시리게 느껴졌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 보면, 내가 지켜본 신촌은 늘 소멸과 탄생이 반복되는 변화의 공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명 자체도 새로운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것처럼, 결국 ‘새로움’ 없는 신촌은 팥 없는 찐빵이라는 거다. 식당과 카페, 술집이 넘쳐 나고 경쟁에서 도태되면 사라지는 곳. 프랜차이즈 상점이 수두룩하고 세련된 번화가의 이미지가 있는 곳. 매일 같이 수많은 인파가 오가며 바쁘게 움직이는 곳. 그렇게 ‘새로움’이 반복되는 곳이기에, 더더욱 아늑한 공기를 간직한 채 이 자리를 지켜온 ‘여우사이 카페’의 휴업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 건 아닐까. 

여우사이도 결국 ‘신촌’이었던 것이다. 코로나라는 안타까운 현실이 몰고 온 휴업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변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게 아닐까. 소중한 추억이 넘치는 곳이기에, 하루빨리 여우사이가 다시 문을 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한편으로는 새로움이 신촌의 동력이기에, 새로운 모습으로 재정비해, 짠- 하고 나타날 여우사이를 마음속으로 그려 본다.  

 

 

 

[신촌은 용기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올해 가장 많이 방문한 카페 ‘신촌브루스’로 향했다. 현대백화점 옆 골목, ‘마포 만두’ 건물 4층으로 올라가면 신촌브루스가 있다. 엘리베이터도 없이 4층을 오른다는 것이 처음엔 꺼려질 수도 있지만,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나무로 된 문을 열자마자 마치 과학 실험실 같은 느낌의 넓은 원룸형 공간이 펼쳐진다. 탁 트인 창밖의 풍경과 어딘가 어두운데 따뜻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신촌로터리 풍경은 사색에 빠지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평소에는 맑은 날씨에 주로 찾던 곳인데, 흐린 날씨가 오히려 생각에 잠기기엔 더 제격인듯싶다. 언뜻 보기엔 콘센트를 찾기 힘들 수 있는데, 테이블 아래쪽을 잘 찾아보면 콘센트도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다. 노트북을 충전기에 꽂아두고 주문을 하러 카운터로 향했다. 

 

 

 

신촌브루스로 향하는 문

 

너무나 친절하신 사장님이 오늘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고민하는 척하다가 평소처럼 창천크림라떼 한 잔을 주문했다. 창천크림라떼는 두유와 헤이즐넛, 그리고 크림의 조화가 돋보이는 이곳의 시그니처 라떼로 아이스로만 주문이 가능하다. 평소 아이스커피만 즐기는 나에겐 더욱이 안성맞춤 메뉴인 셈이다. 바닐라라떼나 리필이 가능한 아메리카노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게 이곳의 매력 포인트다. 음료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크로플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으니, 배가 고프다면 주저할 필요가 없다. 

자리로 돌아와 이어폰을 꽂고 앉았다. 흐린 하늘 아래 신촌로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올해 초 나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2년여간 국가의 부름을 받고 신촌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가장 정을 붙인 카페였기에, 올해 1학기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정말 자주 이곳에 와서 수업을 들었다. 수업 시작 전에 한두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미리 신촌브루스에 자리를 잡곤 했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창밖을 보며 생각의 바다를 헤엄치는 게 참 좋았다. 2년간 수없이 반복했던 인생에 대한 고민이나 추억 팔이까지도, 이 자리에 앉아 많이도 되새김질했었다. 신촌으로 돌아온 코로나 시국 복학생으로서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풀어낼 수 있던 곳. 휘발성 고민들을 글로 남기고 마음으로 내면화했던 곳. 그 과정에서 위로와 용기를 발견했던 곳이었다.

 

 

창천크림라떼와 신촌로터리 뷰의 환상적인 콜라보

 

나에게 ‘신촌브루스’는, 또 신촌은 그런 용기였다. 그 어느 카페보다 유독 혼자 많이 찾았던 이곳에서, 나는 온전히 나를 마주 앉아 돌아볼 수 있었다. 때로는 불안과 소모적인 고민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 알갱이를 곱게 걸러내고 글로 정리하면서 나를 건강하게 채워가는 걸 배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것,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덜어내는 것- 용기가 필요하다고만 막연히 생각했던 일들이었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얻은 믿음과 확신이 나에게 몇 배 큰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용기의 퇴적층은 어느새 단단히 쌓여서 어느 정도의 여유라는 결정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용기를 갖춘 나는 쫓기지 않는 휴학생의 신분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다. 

 

 

 

[신촌은 해맑은 소년이다]

 

 

 

카페를 나와서 학교 쪽으로 걸었다. 걷던 중에 한동안 잊고 지낸 추억의 장소가 떠올랐다. 코로나 사태 이후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방문해 보기로 했다. 대학약국 골목으로 들어가 잠깐 걷다 보면, 지하에 ‘대한민국 플스방’이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벽면에 붙어있는 축구팀 로고가 벌써 심장박동을 재촉한다. 계단을 내려가면 대한민국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 선수의 뒷모습이 나를 반겨준다. 최애 음료인 닥터 페퍼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자리에 앉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늘도 나는 축구 게임을 골랐다. 

게임기를 손에 쥐니까 한없이 어린 소년이 된 것만 같았다. 잡생각이라고는 전혀 없이 오로지 게임에만 몰입했다. TV 화면 너머로 흘러나오는 생생한 게임 소리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와 나의 게임 메이트는 신촌에서의 대학생활이 확정된 순간부터 이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2016년 겨울 대학 합격 발표 이후, 우리는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첫 신촌 나들이를 함께 했다. 서로의 학교 구경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자연스레 이곳 플스방으로 이끌려 들어왔다. 그날 이후 우리는 ‘대한민국 플스방’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이곳에 투자한 긴 시간을 빨간색 할인쿠폰 뭉텅이로 보상받고는 했다.  

 

 

이름부터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한민국 플스방

 

대한민국 플스방은, 또 신촌은 나에게 해맑은 소년이었다. 힘들고 지치는 현실 속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 들어선 순간부터 순도 100%의 즐거움만 누리다 가는 놀이공원 같은 곳.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마냥 설레고 들뜨는 곳. 나에게 신촌은 늘 해맑은 모습 그대로의 소년이었다. 

 

 

 

[신촌은 열정을 바친 청춘이다]

 

 

 

플스방을 나오니까 벌써 밤공기가 차가웠다. 당일치기 추억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해 줄 장소가 떠올랐다. 자연스레 학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문을 지나 백양로를 따라,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계속 걸었다. 백양로 끝 삼거리가 나오자 우측 방향으로 언덕을 올라갔다. 벌써 해가 져 버리고 어둠만 남은 가운데에서도 전파 천문대는 선명히 시야에 들어왔고, 나는 그렇게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 도착했다. 

생각해 보니 여기만큼 학교에서 많은 추억이 있는 곳도 없었다. 새내기 시절 멋모르고 들어간 학교 응원단체인 기수단 활동의 흔적도 전부 이곳에 남아있다. 동기들과 다 같이 뛰고 땀 흘리며 얼마나 이곳을 누볐던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때의 추억들이 생생하다. 돌아보면 더더욱 빛나는 학교생활의 순간들은 다 이곳 노천에서 펼쳐졌었던 것 같다. 학교 축제나 응원전 같은 행사도 다 이곳에서 열렸으니 말이다. 대학 축제 특유의 설레는 분위기, 휴대폰 플래시가 밤하늘 별처럼 빛나던 풍경, 5월의 시원한 밤공기까지. 그래서인지 노천극장은 낮보다 밤이랑 잘 어울렸다.

 

 

 

뜨거웠던 그 시절, 5월의 노천극장과 파란 물결

 

노천극장은 나의 열정과 청춘 그 자체였다. 가장 열심히 땀 흘린 기수단 활동 때문이어서 그런지, 여기가 나의 열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넓게 보면 신촌이 나에겐 그런 곳이 아닐까. 뜨거운 열정이고 푸릇푸릇한 청춘이라 부를 수 있는 곳.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재거나 따지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그 순간 내달렸던 곳. 어쩌면 나이를 더 먹은 뒤에는 더욱이 이렇게 느낄 것만 같다. 신촌은 나에게 열정이고 청춘이었다고. 시간이 아득히 흘러 정말 나의 20대가 기억 속 희미한 추억이 될 때면, 눈물 나게 신촌을 그리워할 게 뻔하다. 나중에 청춘을 돌아봤을 때 후회가 덜 남도록, 지금이라도 더 신촌에서의 생활에 열정을 바쳐야겠다. 이 가을과 겨울 사이 추운 밤, 노천극장 객석 상단에 앉아 있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둑한 노천극장 객석 상단에 홀로 앉은 나

 

 

 

[신촌은 소중함을 잊고 지낸 일상이다]

 

 

 

노천극장을 나와서 백양로를 따라 걸었다. 백양로 끝에 서서 뒤를 바라보니 학교 설립자인 언더우드 선교사의 동상이 보였다. 친구들의 졸업 사진 촬영으로 요즘 부쩍 저 앞에서 사진 찍을 일이 많았는데, 나는 두 팔을 뻗고 있는 저 모습이 항상 마음에 들었다. 학교로 들어올 때 보는 것과 학교에서 나갈 때 뒤를 돌아 바라보는 느낌이 참 다르다는 게 마냥 신기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학교로 향할 때면 항상 이 동상만을 보고 직진하곤 했다. 내가 수업을 듣는 강의실은 보통 다 이 동상을 지나야 했기에, 언더우드 동상이 나의 1차 목표지점 같은 역할이었다. 정문에서부터 길고 긴 백양로를 힘들게 10분 정도 걸어올라와야 이 동상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여기까지도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어찌 됐건 학교로 들어오면서 보는 그 모습은 두 팔 벌려 나를 환영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 이와 같은 인상을 받아서인지, 이런 생각이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반면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 동상을 보면, 넓게 벌린 두 팔은 뭔가 나를 보내주는 듯한 손동작처럼 느껴졌다. 마치 학교를 떠나 더 큰 사회로, 세상으로 보내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곤 했었다. 오늘도 이 느낌은 예전에 학교 캠퍼스를 거닐던 그때 느꼈던 그대로였다. 

 

 

두 팔 벌려 인사해 주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동상

 

백양로를 따라 쭉 걸어 내려와 학교 밖으로 나왔다. 횡단보도에 서서 연세로를 바라보며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고개를 드는 순간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신촌 풍경이 더 예쁘게 느껴졌다. 다리 위로 기차가 지나고 있었고, 불 켜진 창천교회는 중세 유럽 느낌을 물씬 풍겼다. 크리스마스 느낌의 조명이 들어온 다리는 파리의 개선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신촌로터리까지 곧게 뻗은 연세로와 그 위에 사람들이 마치 구도를 정하고 예쁘게 찍은 풍경 사진 같았다. 그동안 길다고 불평을 하며 걷던 백양로와 연세로였는데, 갑자기 잊고 지내던 소중함을 깨달은 느낌이었다. 

 

 

 

크리스마스 색깔의 신촌 개선문과 창천교회

 

 


[나에게 신촌은, 신촌은 나에게]

 

 

 

복학생이 되어 돌아온 신촌은 기억 속 신촌과는 사뭇 달랐다. 코로나로 인해 활기를 잃어버렸고, 수업이 열리지 않는 캠퍼스는 한적했다. 익숙한 신촌이었지만 뭔가 낯설었고, 익숙했던 신촌을 함께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가끔 추억을 회상하며 학교를 놀러 가긴 했지만, 올해 가장 많이 학교를 방문하게 된 이유는 친구들의 졸업 사진 촬영 때문이었다. 그동안 2년간 신촌을 떠나 있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졸업 사진 촬영 현장에서 나는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정성스레 꽃다발을 사서 진심으로 졸업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어딘가 마음속이 허전했다. 점점 구멍이 뚫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신촌은 내 곁을 지켜주었다. 모습은 자주 바뀌었어도, 신촌은 신촌이었다. 길가의 가게들이 하나 둘 바뀌어도 연세로는 연세로였고, 한적해졌다 한들 백양로는 백양로였다. 골목 곳곳에 여전히 추억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학교 내 곳곳에서 잊고 지내던 나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라 낯선 느낌도 잠시뿐, 금세 적응할 수 있는 신촌이 내 마음의 고향이라는 걸 가슴으로 느꼈다.  

 

나에게 신촌은, 신촌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코로나로 그 어느 때보다 차분히 보낸 올해, 내가 부단히 답을 찾았던 질문이지 않을까.

잔치 에디터가 된 것도 어찌 보면 비슷한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신촌에 대해 다시금 생각도 해보고, 신촌과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해가는 것. 다시 돌아온 낯선 신촌에서 ‘마음속 신촌’을 그리워하며 쓴 <서른 즈음에>, 일상 속 예측 가능한 행복을 찾았던 신촌행 <472번 버스>, 인생을 돌아보고 쉬어가는 용기를 찾은 <통인동커피공방-신촌로스팅라이브러리>,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성찰하고 부끄러워하는 자세를 배운 <신촌 인용집: 일곱 개의 조각들(下)> 中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人 윤동주-in 2021’까지. 이 모든 글도 다 신촌과의 추억을 돌아보고 앞으로를 기약하는 노력이었을 거다. 

 

 

나에게 신촌은… 신촌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당일치기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글을 쓰기 전,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한참을 찾다 보니 올해 초 잔치에 지원할 때 작성했던 지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이 남아있었다. 질문 중 나에게 신촌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저에게 신촌은 색칠공부입니다. 신촌 곳곳의 장소라는 형태의 스케치북 위에 제가 어떤 색으로 칠하는지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린 아이도 쉽게 할 수 있는 색칠공부처럼 신촌은 누구나 편하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놀이터입니다. 홀로 창천공원에 앉아 비둘기 떼를 보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고, 친구들과 거리를 활보하며 쇼핑을 즐길 수도 있는 곳이 제가 아는 신촌입니다. 신촌이야말로 저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며, 저의 젊음을 꽃피워준 또 다른 고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년을 더 신촌을 누비며 신촌의 장소를 소개하는 글을 썼지만, 지금도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색칠하는 데 있어서 약간의 노련함과 색을 섬세하게 구분하는 안목 정도만 생겼을 뿐이다. 누군가 내게 신촌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나는 여전히 색칠공부라고 말할 것이다. 신촌을 하나로 정의 내리는 건 물론 쉽지가 않다. 각자가 생각하는 신촌의 범위가 상이할 수도 있고, 신촌에서의 우리의 경험은 다 다를 거니까. 

 

신촌은 추억이고, 새로움이고, 용기고, 해맑은 소년이고, 열정을 바친 청춘이고, 소중함을 잊고 지낸 일상이고…

 

다 맞는 말이다.

 

 

내가 찾은 이 모든 색깔을 스케치북에 칠할 수 있는 색칠공부가

신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아닐까.

 

 

 

 

편협했던 내 비좁은 마음

무엇을 찾아 헤매인걸까

내옆에 있어준 소중한 것들을 잊은채

현실이란 이유(그것만으로)

이기적인 삶 걸어왔지

고민하지마

좀 잘못되면 어때(처음)부터(다시)

지우개로 지우면 되잖니

걱정하지는마 좀서투르면 어때(그런) 너의(모습)

아름답기만 한걸

                                                                                    -토이, ‘스케치북’ 가사 中-

 

 

 

 

그동안은 내 옆에 있어준 소중한 신촌을 당연하게만 여기며 살았다. 나의 바쁜 하루하루를 살면서 신촌은 그저 일상을 보내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익숙함에 속아 그 소중함은 점차 희미해졌다고 고백해 본다. 

이제는 신촌에 대한 글을 쓸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신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넬 때는 아니다. 졸업은 멀었고 여전히 신촌은 나의 생활 터전일 것이다. 그리고 신촌과의 이해가 더 깊어진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신촌 곳곳의 색깔을 찾을 것이다. 일상이 완전히 회복된 신촌에서 새롭게 칠해갈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철학자 볼테르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확실히 있기는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집을 찾아 헤매는 주정뱅이처럼 우리도 그렇게 행복을 찾아 헤맨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그 어디가 신촌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나도 볼테르의 말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행복의 색을 찾아 신촌을 헤매지 않을까. 수많은 친구들이 신촌을 떠나가도, 신촌에 남아있는 내가 두렵지 않은 이유다. 

 

 

 

2021 년 11 월 17 일

날씨: 흐림 

                                                          맑음                                                         

 

 

여행 

신나우
AUTHOR PROFILE
신나우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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