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호, 사연
팍팍한 일상에 촉촉한 윤기를 내어주는, 신촌문예는 잔치가 제공하는 북 큐-레이션 서-비스…이지만 이번엔 영화를 함께 감상해 볼까요?
2026
신촌문예
4월호
<사연>
덜컹…
덜컹..
삐리리리-
여기는 흔들거리는 2호선입니다. 당신은 문득 핸드폰에 빠져 있던 고개를 들었습니다. 앞자리에는 모퉁이에 기대어 잠이 든 할아버지, 어딘가 화가 난 표정으로 전화기에 속삭이는 아주머니, 부랴부랴 노트북을 열어 작업을 시작한 청년까지. 뜨는 해를 바라보며 술을 걸치신 걸까요? 말 안 듣는 아이에게 꾸지람을 하고 계신 걸까요? 처음 겪는 직장 살이에 잔뜩 겁먹은 걸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신촌역에 다다릅니다. 열차의 문이 열리자 형형색색의 과잠 무리가 쏟아집니다. 두꺼운 전공책을 든 사람, 아이패드를 쳐다보며 길을 걷는 사람, 다크서클이 소매까지 내려온 사람까지… 모두가 자신의 하루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내 곁을 스쳐간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되지요.
바야흐로 중간고사의 계절. 이제는 텍스트에 지쳤을 여러분을 위해, 신촌문예 4월호는 영화 특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구하지 않아도, 우주에서 온 외계인을 만나는 것만큼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눈여겨보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자그마한 이야기도 등골이 오싹한 서스펜스 만큼이나 여운을 남기니까요.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시간입니다.
여기 폴, 호두, 필립, 빈정이 모여 영화 이야기를 나눕니다. 잔치의 네 에디터가 속살거리는 비밀스런 사연을 만나보아요.
큭큭. 역시 우린 한 편의 영화야!
함께 할 에디터
폴
시간이 더디게 흐르길 바라는 스물넷.
그러나 지난겨울에는 추위가 어서 걷히길 바랐고, 마침내 봄이 도래하자 기다렸다는 듯 두툼한 패딩을 옷장 속에 처박아버린 일희일비의 명수이기도 하다.
영화에 있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하나를 보면서도 자꾸만 다른 영화에 손이 가는 탓에, 결국 멜로와 호러와 서스펜스와 코미디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고난을 기꺼이 무릅쓰기 일쑤다.
호두
평소 무던한 편이지만 영화 한정으로 꽤 쉽게 서사에 잠식되는 울보. 아무 영화나 감동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기준은 은근히 까다롭다.
볼수록 숨은 의미가 드러나는 세계관을 사랑하며 모든 요소가 하나로 맞물려 메시지를 만들어낼 때 영화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결국 영화는 서술이 아니라 설득이라고 믿는 쪽. 그런 설득에 당해주기 위해 영화를 본다.
필립
영화에는 자고로 ‘감상’이 어울리건만, 제 입맛대로 장면들을 해석하는 탓에 정작 영화 자체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
이러한 ‘분석의 본능’을 깨뜨리는 압도적인 영화를 사랑한다. 여기서 압도란 스케일이 아닌 몰입도 측면에서의 압도를 뜻한다.
그런 영화를 보고 나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맴돈다. 감독 진짜 ****다.
빈정
“왓챠피디아 친구 하실래요?” 한마디에 오만가지 경계를 풀곤 하는, 자칭 <애매필>.
영화관, 영화제, 영화 잡지, 포스터, 팟캐스트 등등… 영화와 관련된 오만가지 것들을 좋아한다.
최근 OTT에서 한 편을 채 집중하지 못해 슬퍼하고 있다. (자꾸만 핸드폰을 보게 되니!)
애니메이션도 영화라고 주장하는 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재미있는 작품이 취향.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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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호두 ☠️필립 ⛲️빈정

(내용 없음)▸『남쪽』(1983)
대개는 모르는 게 약인 법이지만, 약을 삼킬지 말지는 엄연한 개인의 선택.
누군가의 행동을 감히 이해하기 힘들 때 우리는 대개 ‘사연’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인다. 그것이 기행처럼 기이하고 돌출적인 행위일 때는 더욱 그렇다. 이 단어는 막강한 힘을 가졌기에, 차라리 모르는 편이 속 편한 일들을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 두는 데에도 역시 효과적이다.
세상에는 상식의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수많은 삶이 존재한다. 영화 <남쪽>의 아버지가 그렇다. 금속 추 하나에 의지해 스페인의 산과 들을 헤매며 수맥을 찾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그의 과거에 대한 궁금증에 몸부림친다. 수맥에서 한 방울씩 샘솟는 물이 종국에 온 땅을 흠뻑 적시듯이, 미지의 사연에 대한 집착은 ‘나’의 일상을 온통 휘감아버린다. 반면 어머니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그녀는 남편의 과거를 어렴풋이 짐작하는 듯하면서도 구태여 꺼내 보려 하지 않는다. 기억의 뒤안을 낱낱이 직면하는 것보다 ‘사연’이라는 말로 덮어 두는 것이 안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데 더욱 유리한 전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영화의 끝에서 ‘나’는 좀처럼 가늠할 수 없던 아버지의 세계, ‘남쪽’으로 떠난다. 그러나 관객은 결코 숨겨진 사연을 온전히 알 수 없다. 마치 서랍 속에 넣어둔 채로 영영 잊어버린 그날의 편지처럼…
“어느 남쪽에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일로 인해 아버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나도 머지않아 그 남쪽을 알게 될 터였다.”

(내용 없음)▸『거꾸로 된 파테마』(2013)
가장 위험한 것이, 동시에 서로를 살리는 조건이 되는 순간.
세상이 거꾸로 보인다?
중력이 서로 반대인 세계에 사는 소년과 소녀. 에이지와 파테마는 180도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당연했던 세계가 상대에게는 위험이 되는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단순히 서로에게 끌리는 것을 넘어 각자가 믿어온 세계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파테마는 처음 보는 ‘하늘 아래의 세상’에 당황하면서도 점차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게 되고, 에이지는 자신이 당연하게 여겼던 질서가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결코 가볍지 않다.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일은 곧 금기이자 위협. 두 사람은 각자의 세계로부터 쫓기게 된다. 결국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함께 살아남기 위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사연이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각자가 지금의 선택을 하게 만든 이유이자 쉽게 바뀌지 않는 시선의 방향이다. 영화 속에서 중력은 단순한 물리적 장치를 넘어 각자가 가진 기준과 믿음을 상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너무나 다른 세계를 살아온 두 사람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으려 한다. 중력은 그들의 가장 큰 장애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꼭 붙들어야만 생존할 수 있게 하는 공고한 접착제가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기준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며 살아가지만 그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그렇기에 서로의 사연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공감을 넘어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기 위한 연마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익숙하다고 믿어온 기준이 완전히 뒤집힌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리고 그때도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네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어.”
“무섭지만… 그래도 알고 싶어.”

(내용 없음)▸『괴물』(2023)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우선 눈높이를 맞춰라.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 고통, 실패 등 많은 것들이 후보가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제치고 무지를 답으로 내세울 것이다. 우리는 사후 세계를 알지 못하기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고통과 실패의 끝을 알 수 없기에 이들을 거부한다. 그렇기에 무지는 두려움의 근원인 것이다. 이 영화는 각자의 무지에서 시작한다. 엄마는 자기 아들을 알지 못하고, 선생님은 자신의 학생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한 명의 남자아이는 또 다른 남자아이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사연을 알고자 한다. 아는 것을 넘어서 기꺼이 그의 사연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눈높이가 맞는 이들, 그래서 기꺼이 서로의 사연이 되어준 이들은 오직 연약한 아이들뿐이었다. 왜 우리는 그들과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일까. 그전에, 과연 우리는 진정 눈높이를 맞추고자 했을까. 그렇다면 당신의 시선은 왜 여전히 아이들의 뒤통수를 향하고 있는가.
“말할거야? 아니, 남이 알면 아깝잖아.”

(내용 없음)▸『기억의 밤』(2017)
행동의 이유로 사연을 덧붙여도 되는 것일까.
오늘은 우리 가족의 이삿날. 그런데 왜일까. 분명 처음 보는 집일 텐데 너무나 익숙하다. 꼭 내가 와봤던 것처럼.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어제 잠을 설쳐서 그런 거겠지. 잠이나 자자. 아침이 되자 형이 나를 부른다. 형은 우리 집의 자랑이다. 불의의 사고로 다리 한쪽을 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박사 과정에 입문한 수재이자 노력의 화신이다. 나는 그런 형을 존경한다. 약속이라도 있는지 형이 길을 나선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형이 걸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19일 전, 그러니까 이삿날 저녁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형을 납치한 뒤부터 생긴 습관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형의 저는 다리가 바뀌었다. 내가 잘못 봤을 리가 없다. 몇 년 동안 본 건데. 엄마, 형이 이상한 것… 엄마 지금 누구랑 통화하는 거예요? 아빠. 아빠는 왜 제가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해요? 진석아,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질문은 내가 너한테 해야지. 왜 그랬니? 모르겠다고? 그럼 이렇게 말해주마. 그 사람들, 왜 죽였어?
“하나부터 백까지 열 번 세면 엄마 데려온다고 했잖아.”

(내용 없음)▸『김씨표류기』(2009)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일…까?
여기 한강에 뛰어들었으나 밤섬에서 깨어난 남자가 있다. 세상살이 죽는 것도 쉽지 않다니, 이렇게 된 김에 땅바닥에 “HELP”나 썼는데… 아뿔싸, 살아만 남으려 했더니 하루하루가 조금씩 달콤해진다. 한편, 망원경 너머로 무인도에 조난된 그를 포착한 여자가 있다. 방 한 칸이 세상의 전부인 그녀. 여자는 용기를 내어 남자의 말풍선에 리플을 달아주기로 결심한다. “HELLO?”
두 주인공은 각자의 섬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이 망할 놈의 도시는 우리네 인생사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를 느낄 때 우리는 철저히 고립된다. 군중 속 무인도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북적이는 한강대교 아래 무인도에 갇힌 승근과 굳게 잠근 방문 속에 닫힌 정연. 도심 속에 표류한 두 조난자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단순히 조난자를 구조하는 재난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떠한 구원이나 판타지도 담지 않는 이 이야기는 다만 한 줄기의 희망을 그린다.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작은 연대, 짜장면 한 그릇만큼의 다정함이다.
혹여 당신도 사연 품은 도심 속 표류자로 살아가고 있다면…
포스터에 도망치지 말고 한 번만 틀어보시라.
갓 만든 짜장면만큼의 온기는 보장할 수 있으니.
“어류보다 조류가 맛있습니다. 진화라는 건 어쩌면 맛있어지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러면 우리는 5월에 또 만나요, 안녕!
참여한 잔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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