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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문예] 4월호, <거짓말>

Editor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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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다시 돌아온,
신촌문예잔치가 제공하는 북-큐레이션 서-비스입니다.

 

new! 2025

신촌문예

4월호

<거짓말>


4월은 유쾌한 기념일로 포문을 연다. 학창 시절에는 교탁 대신 뒷문 보고 앉기, 대학생이 되어서는 교복 입고 등교하기 같은 깜찍한 반항도 허용되는 날, 만우절이다. 

 

거짓말의 스펙트럼은 넓다. 유머 코드로 사용되는 과장이나 엉뚱함, 방어 기제가 되는 이런저런 ‘척,’ 선의의 거짓말… 일부는 모른 체 속아넘어갈 수 있지만 현실과 밀접한 거짓말은 거북하고, 믿고 싶고, 여파가 상당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만우절을 즐거운 날로 남기고자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가. 

 

공휴일이 되지 못한 거짓말의 날을 위해 잔치꾼들이 다양한 거짓말들을 채집해 왔다. 우리와 비슷해 다소 불편할 수도, 또는 연극 같아 피식피식 웃을 수도 있다. 다행히 모두 활자 속에 가두어 독자 여러분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으니 안심하라. 그래야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으니까. 비록 4월 1일은 하루뿐이지만, 아래 8권의 책들을 통해 떨리고 즐거운 마음만은 4월 내내 안고 가도 되지 않을까?

 

함께 할 에디터

이도

자칭 통합인재랍시고 독일어문학과 화공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잡종 대학생.

언제나 마감에 잡아먹히지만 정신머리가 없어 과분하게 즐거운 대상을 좇는다.

이처럼 도파민에 절여진 뇌를 소유하는 만큼 독서와 영상 취향은 흡인력이 대단한 소설 혹은 해외 시트콤에 편중되어 있는 편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고상한 취향을 가질 수 있을 것을 희망한다.

 

 

 

초록

책 읽는 일은 산책과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거닐다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한 사람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빙빙 맴돈다.

말들을 꼭꼭 씹어보고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려본다.

문장이 그리는 이미지를 상상하고 머리 꼭대기 공기 다발 위에 수채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버릇 때문에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다.

다독가라 할 순 없지만 애독가라 할 순 있겠다.

형태가 단순한 듯 보여도 꼭꼭 씹어 삼켜야 하는 시집 읽기를 좋아한다.

 

 

 

정원

전공도 취업 순으로 고르는 사회에서 인문학, 특히 비교문학 전공을 택한 것에 프라이드가 있다. (사실 책보다 영화 분석하는 수업 때문에 전공을 골랐다.)

그래서 비교문학이 뭐냐면… 더보기

사회의 면면에 대해 알고 싶고, 이를 정확히 전달하면서도 공감가는 글을 쓰고 싶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사랑했던 판타지 탐독가 어린이는 자라서 문학이 세상을 그리는 법과 사회과학 도서의 지식을 흡수하고자 책을 읽고 있다.

 

 

 

혜성

문학이 좋아서 국문과를 선택했다.

어릴 적 도서관 최다대출상을 받을 만큼 책을 달고 살던 시절도 있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뒤로 책과 점점 멀어지는 중이라고.

은근히 호불호의 기준이 확실한 탓에 독서 편식이 심한 편이다.

비문학보다는 문학을 좋아하며, 그중에서도 한국 현대소설이 주 종목.

여유를 찾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문학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기계화되지 않은 존재들로 살아간다는 말을 굳게 믿으며 꾸준히 읽는다.

 

 

4월의 서가

궁금한 책을 눌러 바로 확인해보세요!

🦊이도 🌱초록  🐰정원  💫혜성

 

 

이도’s Pick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조반니노 과레스키

📚 선동과 날조, 그리고 사상의 충돌이 만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화목한 한 작은 마을을 비추는 코미디 각본.

 어디보다도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이탈리아 뽀 강변의 바싸 마을. 이 조용한 마을에서도 전후 사상의 전투는 멈추지 않는다. 공산당원이자 대장장이, 철저한 스탈린주의자로 마을의 읍장을 맡고 있는 뻬뽀네와, 하나뿐인 마을 교회의 신부로 열성적인 기독교민주당의 지지자인 돈 까밀로는 어느 누가 보아도 앙숙이다. 신부는 교회의 권위, 읍장은 당의 원칙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허구한 날 쌈박질을 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음에도 거짓말을 쏟아내며 위선을 연기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상대를 끔찍이도 생각하기에  그 이면에는 셀 수 없는 배려와 공동체를 위한 따뜻한 마음이 있다.

* 잡지에 실린 연작 소설을 책으로 가공한 것으로, 판에 따라 다르지만 서교 출판사의 최신판 기준 10권에 달한다. 하지만 시트콤을 보는 것과 같이 가볍게 읽을 수 있어 부담이 적다.

 

 “보시게나, 동지.”

돈 까밀로는 낄낄거리며 말했다. 

“손으로 쓴 원본과 사본 두 개 모두 봉투 안에 들어있네. 틀린 단어도 있더군. ‘도외시’를 ‘도왜시’로 잘못 쓰면 안 되지. 그런데 말이야, 자넨 감사 인사를 할 줄도 모르나?”

뻬뽀네는 천천히 봉투 속으로 그 연설문을 집어넣더니 힘겹게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돈 까밀로를 쳐다보다가 거칠게 말했다.

“악질 신부에게 감사하느니 차라리 지옥에 가고 말지!”

뻬뽀네의 손은 솥뚜껑만 했다. 그는 그 큰 손으로 봉투와 원고를 발기발기 찢어서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 ‘역사적인 연설’ 부분

 “예수님.”

돈 까밀로가 다시 예수님 앞에 가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는 속으로 대단히 근심스러웠습니다.”

“왜? 1,000점이 나오지 못할까 봐서?”

“아닙니다, 그자가 1,000점을 내지 못할까 봐서요.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제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도운 것이다.”

예수님이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그래, 뻬뽀네도 너와 같은 마음이었다. 네가 952점을 치지 못할까 봐 걱정을 하더구나.”

“그럴 리가요?”

때때로 회의론자가 되곤 하는 돈 까밀로가 놀라며 중얼거렸다.

― ‘주먹 자랑’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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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s Pick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데이비드 세다리스

😄 거짓말과 허풍의 매력. 그리고 유쾌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기 위한 마음가짐.

 이 책은 진실과 거짓, 허풍과 자기고백이 절묘하게 뒤섞인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삼아, 독자들이 “정말 이런 일이 있었을까?” 라고 의심하게 만들 만큼 과장과 농담, 그리고 뻔뻔한 허풍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작가는 IQ 테스트에서 고양이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털어놓거나, 프랑스어를 배우며 겪는 굴욕을 한없이 과장해서 그려낸다. 이런 이야기들은 생각해보면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작가가 만들어내는 “실패한 나”의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가 세상과 부딪히며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이 진짜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이는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일부러 흐릿하게 만들며, 우리는 어느새 작가의 거짓말에 기꺼이 속아 넘어가고 만다.

더 나아가, 작가는 자기중심적이고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까지도 솔직하게, 혹은 솔직한 척하며 고백한다. 만약 현실에서 누군가 이런 고백을 한다면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오히려 그 허풍과 거짓, 자기비하가 유머와 공감으로 승화된다. 즉, 작가는 “부도덕한 인물”이 아닌 “허풍이 심한 이야기꾼”의 방식으로, 독자에게 자신만의 세계를 덧씌우는 것이다.

진실과 거짓, 허세와 자기고백이 뒤섞인 이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진위보다 “이야기” 자체의 힘에 매혹되어 작가가 펼치는 허풍의 세계에 기꺼이 동참하게 될 것이다.

물론, 다른 문화권의 유머이기에 쉬이 웃는 것이 불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뻔뻔한 서술자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편승한다면, 별 생각없이도 실소를 짓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아버지의 그 말이 정반대의 뜻임을 깨달았다. 

“어이, 똑똑한 놈. 벌레 퇴치 연고를 못 찾아서 마요네즈를 얼굴에 발랐다고?”

“어이, 똑똑한 놈. 방 안에서 마시멜로를 구울 생각이었다고?”

그런 식이었다. 

나는 껌에 선크림을 발라서 씹으면 당뇨를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시프루트(껌 상표)에는 시앤드스카이(선크림 상표), 빅레드(껌)에는 코퍼톤(선크림). 재료와 시험할 환자도 한지붕 밑에 있었다.

아버지가 말하곤 했다.

“어이, 똑똑한 놈. 할머니에게 그 껌을 한 번만 더 주면, 네 이가 모두 틀니가 될 줄 알아.”

아버지에게 뭘 기대하겠나. p.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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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s Pick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 직소 수록

🎭 가면을 쓰고 살아온 인간이 끝내 스스로를 부정하며 내뱉는 처절한 고백

 읽는 동안 마음이 썩 유쾌하진 않다. 우리의 삶과 마냥 유리된 이야기가 아니기에.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고백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세 편의 수기를 통해 기술된다.

주인공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과 진실되게 어울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유쾌한 농담과 겉치레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속은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환멸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은 철저히 숨긴 채 유쾌한 척, 괜찮은 척,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척 그는 부단히 노력하고 연기한다. 세상은 하나의 무대이며 인간은 그 무대 위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요조는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세상이 자신에게 요구한다고 생각되는 역할을 본인에게 부여하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언제나 두려움 속에서 몸부림친다.

솔직해지기란 종종 고통스러움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용기는 삶을 뒤흔들 만큼 무거워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거짓말이 삶을 살아가는 데 유용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지나고 보면 솔직한 것보다 강한 마음은 없음을 깨닫지 않는가. 거짓을 한껏 두르고, 크고 작은 거짓으로 얼기설기 쌓아 올린 삶은 엉터리로 엮인 나무 블록과도 같아 언제고 무너지기 십상이다. 위태로이 흔들리던 블록은 결국 무너지고, 요조는 자신의 삶을 ‘인간 실격’이라 선언하며 주저앉는다. 거짓과 위선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가 쉬이 무너진 까닭은 누구보다도 진실되고 싶었던 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요조의 이야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지나온 삶의 궤적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나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 가면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진정한 나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것입니다. p.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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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s Pick

『아사코의 거짓말』, 박은정

삶의 풍경에서 발견한 빛의 조각들

 일차원적인 발상이지만, ‘거짓말’이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이 시집이 떠올랐다. 이런 직선적이고도 단순한 이유로 선정된 책도 하나쯤은 있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며 꺼내보았다.

시인은 작고 연약한 존재들인 우리가 삶 속에서 경험하는 사랑과 상실, 진실과 거짓의 경계, 기억과 환상, 경이와 불행에 시선을 둔다. 오래도록, 누구보다도 다정하게. 그리고 그것들을 자신의 감각을 통해 문장으로 가만히 펼쳐 보인다. 여름의 벤치에서, 텅 빈 운동장에서, 숲에서, 광화문에서, 눈보라에서, 혹은 공간으로 정의되지 않는 어딘가에서 그는 상처 입고 흔들리는 존재들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빛을 잃지 않는 생명들을. 그 존재의 발견만으로도 ‘우리’는 힘을 얻는다.

 

 기적이라는 건 만년설이 쌓인 미래 같은 것. 그 속에 맥락 없이 존재하는 벼랑은 신의 장난질이지. 무언가 빠르게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손끝에서 분명한 통증이 인다. 애인은 갈증이 나는지 침 마른 소리로 중얼거린다. 그 소리는 허공을 지우는 담배 연기처럼 아스라이 멀어진다. 이제 아사코는 물 잔을 건네며 말한다. 일어나. 반세기가 지났어. 애인의 따듯한 손이 아사코의 손을 잡는다.

― 박은정, 「아사코의 거짓말」 부분

 밤 목련이 어여뻐서 전화를 했지

오늘 저녁엔 사랑 없이 산책이나 하자고

그렇게 천천히 걷다가 운동 삼아 뛰어 보자고

뛰다가 지치면 나무 뒤에 숨어 사람도 아니다가

다람쥐처럼 날쌘 표정의 아이도 되었다가

재미없으면 풀 죽어 돌아와

왜 나를 잡으러 오지 않냐고 투정도 부리는

꿈에도 본 적 없는 그런 밤이 될 거라고

― 박은정, 「사랑 없이 산책」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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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s Pick

『더 스팸 북』, 주혜린

👀 스팸 연구에 가까운 거짓말 수집함 구경하기

 스팸 메일은 우리를 낚으려 들지만 다소 엉성하다. 플라스틱 지렁이를 무는 붕어처럼, 허섭스러운 미끼를 덥석 무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스팸은 모자라 보이지만 우리의 마음만큼은 정확히 관통한다. ‘어디선가 깨끗한 출처의 세후 500억만 떨어졌으면’ 하는 허무맹랑한 소망을 이루어주겠다는 나이지리아 고위공직자(사칭)의 메일에 답장해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있다. 그러고 나서 3년간 약 708통의 스팸 메일을 수집하고 분석했다. 궁금해도 내가 공들여 하지는 못할 종류의 수집을 대신 해 준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사연형, 해킹형, 사칭형, 포르노 그리고 텍스트 복합형까지 5가지 대분류가 있다고 한다. 책의 4장에서는 스팸 메일을 친절히 번역하고, 사기꾼에게 가명을 달아주고, 유형에 따른 설명까지 덧붙인 사례를 80개나 만날 수 있다. 위트 있는 소제목과 설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이 작업을 즐기면서 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플라스틱 미끼 중에서도 형광색 반짝이 미끼처럼 대놓고 모자란 메일들을 읽다 보면 어이없음 반, 웃김 반을 담은 미소에 입가를 씰룩일 것이다. 신촌문예에 걸맞는 문학 책은 아니지만, 만우절 기념이니 아마추어 단편 문학(메일) 모음으로 간주해 주길 바란다.

 

 당신이 만약 한 줄의 텍스트만으로 누군가의 시선을 붙잡아 두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수백 통의 메일들 가운데 가장 먼저 조회되어야 한다면? 어느 날 내가 본 이메일은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당신의 거친 도움이 필요해.” p. 8

38. 빅토리아 벤슨 시리즈 1

“빅토리아 벤슨”이라는 동일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연작 스팸. 첫 번째 메일은 전형적인 부모 잃은 상속녀의 스팸이다. 이것만 보면 특별할 것 없으나, 수신자가 답장하지 않는 경우 한 달 뒤 이 메일의 속편이 도착한다. p.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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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s Pick

『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자들의 날것은 거짓말일 수도

 유년기 불쑥 나온 답변처럼 불쑥 병원에서 재회한 첫사랑은 능소화를 닮았다. 아름다운 비유라기보다,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어떤 예감 같다는 점에서. 

왜 의사가 되고 싶냐는 담임의 돌발 질문에 영빈은 “숨돌릴 것 없이 얻어맞은 것처럼 참담한 기분으로” 유명한 의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겠다고 답했다. 다른 친구가 이미 고귀한 답변을 선수쳐 뺏어서라 하지만, 당황했을 때 진심이 불쑥 나온 것일 수도 있다. 말은 씨가 되었고 영빈은 중산층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작가에 의하면 소설의 동력은 환자의 알 권리를 지키려는 의사와 다가오는 죽음을 당사자에게 숨기려는 가족들, 그리고 사회 통념과의 갈등이다. 얼핏 들으면 의사 영빈이 선한 역할을 도맡을 듯하다. ‘슬의생’에 나올 법하게 평판도 실력도 좋고, 괜찮게 가정을 꾸린 중년의 남성이 사명까지 있으니까. 누군가가 죽었을 때 누가 잘못했는지, 첫사랑이 밀회가 되었을 때 얼마나 잘못이고 귀책 사유는 누구에게 있는지는 직접 읽고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 나름의 스포일러이자 후기는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이다. 

극적인 전개는 없지만, 안온함이 회피하는 인간의 원초적 반응과 그 세속적 근원까지 간파해 담았다. 돈이 1번은 아니지만 숨은 전제가 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솔직함이 있다. 무엇보다 애쓰지 않아도 묵직한 문장들을 읽어내려가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다.

 

 여름이면 2층 베란다를 받치고 있는 기둥을 타고 능소화가 극성맞게 기어올라가 난간을 온통 노을 빛깔의 꽃으로 뒤덮었다. 그 꽃은 지나치게 대담하고, 눈부시게 요염하여 쟁쟁한 여름날에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괜히 슬퍼지려고 했다. 처음 느껴본 어렴풋한 허무의 예감이었다. p. 12

 살아있는 채로 생기는 야금야금 증발하고 꺼풀만 반듯하게 보존되는 과정이, 영묘가 느끼는 오늘이 어제와 다른 유일한 변화였다. 이 젊은 나이에 자신이 박제가 돼버리도록 내버려두는 거야말로 정말 바보 짓이 아닐까. 어떤 게 진짜 바보 짓인지 알아야 한다. p.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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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s Pick

『눈부신 안부』, 백수린

때때로 거짓말은 하얀색 옷을 입기도 한다.

 당신은 선의의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는가?

불의의 사고로 언니를 잃은 해미가 독일로 떠나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곳에서 해미는 파독 간호사였던 이모들과 지내면서 병든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주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거짓말을 하게 되더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을 속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해미는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되더라도, 선자 이모를 기쁘게 해주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러니까 이건, 어린아이의 거짓말이 빚어낸 삶의 가능성과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불완전한 것이 완전을 향해 내딛는 힘겨운 발걸음이 좋다. 그 무거운 걸음 끝에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된 이들의 이야기가 좋다. 이 책은 남을 사랑하는 것 보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더 어려운 나에게 스스로 안부를 물을 수 있게끔 해주었다.

해미와 이모들의 이야기가 여성 성장 소설의 결말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한국 사회의 여성임과 동시에 타국의 이방인이 되어, 또 한 번 소외된 사람들이 감내해야 했던 삶을 이 책이 아니었다면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그야말로 비주류의 생. 우리는 이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채로 살아가고 있나. 그들을 향한 얄팍한 동정과 연민과 관심 그리고 함께 동반되는 비겁한 안주를 반성한다. 비록 타자가 되어 수많은 것을 상실했음에도 그녀들이 끝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은 강인한 정신과 눈부신 용기 그리고 남겨진 어떤 마음들. 그 모든 것들이 아직 세상의 온도는 따뜻하다고, 그러니 조금 더 인간을, 그들의 선함을 믿어보자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 선자 이모의 말마따나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나를 괴롭게 하던 무기력과 열패감이 조금이나마 내게서 멀어진 것을 깨닫게 됐다.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영원히 간직할 것처럼 착각하지만 대개 그것들은 서글플 만큼 빨리 옅어진다. p.166

희망이 있는 자리엔 뜻밖의 기적들이 일어나기도 하잖니. 그래서 나는 유리병에 담아 대서양에 띄우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네게 보낸다. 나를 위해 너의 편지를 전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며칠 더 살 수 있게 했듯이,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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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s Pick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 그들이 거짓이 만들고자 했던 건 재난인가 재건인가

 만약 절대적으로 생존을 보장받으면서 재난을 경험할 수 있는 여행 상품이 있다면, 당신은 선뜻 거액을 지불하며 여행을 떠날 것인가?

재난 관광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의 프로그래머 요나가 퇴사를 앞두고 재난 여행지 ‘무이’로 떠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재난 여행이라니. 누군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이 책을 읽어본다면 그건 제법 있을 법한, 머지않아 도래할 세상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섬뜩하면서도 흥미로운 소재 덕분인지, 몰입력이 상당한 소설이다. 자본 앞에서 처절할 만큼 저급해지는 세상의 이면이 담긴 문장을 읽을 때면 어딘가 서늘하고 찝찝한 기분을 느끼다가도, 한편으로는 재난을 여행으로 치환할 만큼 독특한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인간의 상상력에 감탄한다.

요나가 무이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거짓과 불의는 독자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본다면 그것들은 이미 우리 곁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 우리네 세상과 닮은 듯 다른 무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인간의 탐욕은 어디까지 지독해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언젠가 우리도 재난과 관광을 함께 나열하는 세상에 살게 될까.


 따지고 보면 재난이 없는 도시는 없었다. 재난은 우울증 같은 거라 어디에든 잠재했다. 자극이 임계점을 넘으면 그 우울증이 곪아 터지기도 하지만, 용케 숨어 한평생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다. p. 12

 재난이 벌어진 후에 사람들이 신문을 뒤적이는 건, 재난의 끔찍함을 보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 만신창이 속에서 피어난 감동 스토리를 찾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죠. 그건 우리가 자주 잊고 사는 거거든요. p.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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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우리는 5월에 또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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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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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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