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 로그인
PEOPLE 2026 · 05 · 13

501. 변하는 신촌이 서글픈 당신에게

Editor 폴

 

하나 다행인 사실이 있다면 변화를 마냥 우울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과거의 파괴는 비극이라기보다 되레 긍정적인 양상을 띠는데, 기존의 정체성을 부정해야만 비로소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마따나 실존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규정된 본질을 파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실률과 일평균 이용객 수 등으로 대표되는 신촌 쇠락의 지표들은 역설적으로 신촌이 과거라는 감옥을 부수고 나와 새로운 형태의 실존을 향해 기투*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고인 물은 언젠가 썩는다는 자명한 이치와도 같이, 발전이 경색되기 시작하는 순간은 과거의 영광에 천착해 자리에 주저앉았을 때다. 투썸플레이스와 훼드라처럼, 그렇게 신촌의 숱한 것들은 자리를 지키다가도 홀연히 사라지기 일쑤다. 그리고 사라진 것들로 인한 결핍은 십중팔구 짙은 그리움을 남긴다. 

 

 *인간이 현재 상황을 넘어 미래에 스스로를 던지는 능동적 존재 방식.

 

서울역사아카이브 변형 – 1970년대 초창기 연대 앞 다방

 

그리움은 현재를 잠식한 불안에서 기인한다. 옛날이 그리운 이유는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고,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까닭은 그가 없는 날을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라는 무기로 과거를 깨부수고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던지지만, 미래가 항상 장밋빛인 건 아니다. 먼 앞날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가 부지기수다. “자유의 민낯은 불안이다”라는 옛말이 체감되는 순간이다. 필자도 다르지 않다. 실존이니 변혁이니 하는 허울 좋은 말로 범벅된 “청년이여, 내일을 향해 쏴라” 따위의 구호를 습관처럼 뇌까리지만, 정작 머릿속에 가득한 건 어제의 선택에 대한 지극한 불안이다.

 

 

사르트르의 시각에서 그리움을 느낀다는 건 저만치 앞서가는 미래의 꽁무니에 대고 죽어버린 이름을 연신 부르짖는 짓일지도 모른다. 실존적 기투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해야 하는 인간에게, 과거에 매달리는 행위는 일견 성장을 막는 걸림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움은 단순한 지체 현상이 아니다. 그건 결핍에 의미를 부여해 사라진 것들을 되살리고, 때로 상실에 아파하는 준엄한 사람의 행위다. 공실이 되어버린 공간에 해사한 웃음을 채우고, 상실의 통증을 기꺼이 감내하며 부재하는 것들에 존재의 숨결을 불어넣는 의식이다. 어쩌면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하는 건 우리네 실존을 가장 아름답게 증명하는 일이요, 차가운 ‘수(數)의 시대’조차 감히 환산할 수 없는 지극히 인간다운 일일지도 모른다.

10/10
폴
AUTHOR PROFILE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준다

COMMENTS

댓글 2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