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Sing into my mouth !
2. 밥먹자

오늘 점심으로 먹을 메뉴는 디저트 전문점 성무의 첫 요리, 완두콩 카다멈 감자 수프다. 어젯밤 들이킨 술의 울렁임을 잠재워줄 따뜻하고 묵직한 완두콩 카다멈 감자 수프. 성무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새로운 메뉴가 시작되었다는 공지를 보고 참을 수 없어 당장에 달려왔다. 메뉴를 주문하기 위해 전시된 작품 옆으로난 문으로 들어간다. 지하의 한기를 피부로 느끼고 나면, 먼저 제각기 매력을 가진 나무 가구들이 보인다.
성무 인스타그램
카운터로 향하는 길에 여러 식기가 쌓여있는 찬장을 구경한다. 원하는 식기가 있다면 사장님 따로 요청하여 음식을 담아 먹을 수도 있다. 사장님께서는 손님들의 눈과 손이 닿을 기물들을 손수 고르셨다고 한다. 접시와 잔에 담긴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매대 뒤쪽에서는 성무의 모든 메뉴가 만들어진다. 철로 된 기다란 작업대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식재료들이 선반, 냉장고, 보관함 등에 담겨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손님들이 음식을 향유하는 따뜻한 공간과 그 음식이 엄정하게 만들어지는 차가운 작업 공간이 대비를 이룬다.

메인 메뉴는 완두콩 카다멈 감자 수프로 내정되었다. 그럼 이제 수프에 곁들일 음료를 고르자. 사장님께서 자칫 입안에 남을 수 있는 묵직함을 산미와 청량감으로 씼어줄 수 있는 음료(1. 자몽 쑥 로즈마리 2. 사과 매실 타임)를 추천하신다. 에디터는 사과 매실 타임을 고른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면 곧 메뉴가 나올 것이다. 이곳은 성무의 구석 공간. 공간은 이쪽과 저쪽으로 분명히 나뉘어 있고, 저 편의 넓은 주방에서는 사장님이 혼자 분주히 움직이며 수많은 조합의 음식을 만들어낸다. 마치 잘 설계된 실험실의 괴짜 과학자를 몰래 훔쳐보는 듯하다. 숨을 죽이고.

분주한 실험이 조금씩 익숙해질 즈음, 문득 이 공간의 또 다른 연출자를 발견하게 된다. 천장 위에서 반짝이고 있는 조명이다. 직선적으로 뻗은 구조처럼 보이면서도 수많은 원형 조각들이 층층이 얽혀 있어 묘한 입체감을 만든다. 알록달록한 색들이 빛과 섞이며 벽 위에 부드럽게 퍼지고, 덕분에 공간 전체가 하나의 설치미술처럼 느껴진다. 넋을 놓고 한참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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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밥 먹자!
완두콩 카다멈 감자 수프의 첫술을 조심스레 떠 올린다. 그대로 입안에 넣는다.
먼저 감자의 포슬포슬한 질감이 입안을 부드럽고 묵직하게 채운다.
따뜻한 온기가 천천히 퍼지며 속을 눌러주는 느낌이 든다.
뒤이어 완두콩의 은은한 단맛과 카다멈 특유의 향이 천천히 따라온다.

다소 무거워진, 감자와 완두콩과 카다멈이 남아 있는 입안을 사과 매실 타임으로 환기한다.
입안 가득 남아 있던 묵직한 황홀함을 상쾌히 환기해 주는
사과와 매실의 시간! 아니 사과와 매실과 타임.
한 모금을 꿀꺽 삼킨 뒤에도 사과와 매실과 타임의 조각들이 혀에 얇게 달라붙어 있는 기분이다. 맛이 오래오래 남아있다.
이 상쾌함을 입 안에 품고 다시 수프로 돌아가자.

이번엔 따뜻한 수프를 한술 뜨고 빠삭하게 구운 샤워도우를 한 입 베어문다.
와사삭.
따뜻한 빵의 겉면이 부스러기 조각이 되어 떨어지고, 안쪽의 찰기 있는 부드러운 속이 들어와 수프와 어우러진다. 모든 호흡이 완벽하다.
수프와 빵.
이 당연한 조합이 이렇게 정당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나.
수프 한 입, 빵 한 입, 음료 한 모금.
이 리듬을 반복하다 보면, 맛과 온도가 미리 합을 맞춰온 악장처럼 질서 있게 이어진다.
그 안정된 리듬 속에 몸을 오래 두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은근히 들뜨기 시작한다.
괜히 발끝으로 작은 박자라도 새기고 싶어진다.

점점 바닥을 드러내가는 수프.
그 사이, 갑자기 완두콩 몇 알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 완두콩 들어간 수프야. 잊지 마. 라고 말하는 듯 존재하는 완두콩.
이 완두콩을 씹으면 ‘톡’ 하고 터지며 본래 자신의 맛을 또렷이 드러낸다.
이제 완두콩이 이 수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실히 이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이 나비 모양의 잎은 완두콩 잎이다.
완두콩 카다멈 감자 수프는 이름값을 끝까지 해낸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쓰인 문장이 없다.

빵 추가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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