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130년 전통 맛집
대학가 주변은 항상 학생들로 번잡했다. 백화점, 영화관, 술집, 식당, 카페, 노래방, 버스킹 등 갈 곳도 할 것도 많은 신촌은 젊은이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시대, 집에서 온라인으로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식사도 배달시키는 언택트 시대가 되었다. 매일같이 신촌거리를 채워주던 젊은이들은 이제 저마다 비좁은 하나의 공간에서만 지내니, 수많은 가게들은 버티지 못하고 떠나면서 신촌은 임대의 나라가 되었다.
텅 빈 신촌 주위에는 이보다 더욱 황량해진 곳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가’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게 해주는 곳, 바로 ‘대학교’다. 대부분의 강의가 화상수업으로 바뀌고 강의실을 빌려 모임을 가지던 동아리도 활동이 어려워진 지금, 학생들이 학교를 찾아갈 일은 거의 없어졌다.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이것만 설명할게요”를 시전해도 다음 수업에 늦는 일은 없도록 도와준 캠퍼스 곳곳의 지름길들은 다닐 사람이 없어 버려진 길이 된지 오래다. 빈틈 없이 찹쌀떡마냥 밀착해서 겨우 탈 수 있었던 작은 셔틀버스에는 이제 VIP고객이라도 된 듯 두 자리씩 걸쳐 앉으니 달콤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런 상태의 학교에서 나는 현재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괜히 더 애틋해져서 그런지, 나의 20대초반을 쏟아 부은 이 곳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감동적인 에세이를 쓰자니 예비백수의 눈물이 앞을 가려 도저히 못할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유쾌하게 변형해보기로 했다. 요새 트렌드에 맞추어 소위 말하는 ‘유투-바 갬성’으로…

졸업이 싫은 한 사람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가상의 설정입니다
☆ 당황하지 말아요 요상한 컨셉 가이드 ☆
대학교 캠퍼스 = 먹자촌 / 단과대 건물 = 식당 / 교육(전공,학과,강의 등) = 식사메뉴 / 공부 = 식사
안녕하세요 신촌러들, 잔치꾼입니다!
오늘 준비한 콘텐츠는 우리 신촌러들이 댓글로 꾸준히 요청했던 그 곳! 특히 벚꽃이 예쁘기로 소문난 그 곳! 134년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인문계열, 이과계열, 공과계열, 사범계열 등 다양한 전공먹거리가 모여있는 유명한 먹자촌, 이화여대에 대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신촌 부근에는 이와 같은 먹자촌이 여러 개가 있죠? 연세대도 있고, 서강대도 있고, 또 합정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홍익대도 있겠네요. 그 말고도 훌륭한 먹자촌이 참 많지만, 오늘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화여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특히 여기 먹자촌 내에 위치한 여러 가게들 중, 제가 근 4년간 정말 자주 찾아갔던 가게 “학관”에 대해 샅샅이 보여드릴 테니, 시작해볼까요?

GO GO ZANCHIGGUN!!
우선 이곳의 역사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1886년 미국의 메리 F. 스크랜튼 선생님이 서울 정동에 오직 여성 손님을 대상으로 차린 작은 가게 “이화학당”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남성에게만 허용되는 귀한 메뉴였기에, 여성만을 위한 이화학당은 매우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었죠. 하지만 단 한 명의 손님을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운영되었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스크랜튼 선생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단골 손님도 늘고 ‘교육’의 종류와 질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성장해온 이화여대는 여전히 전국의 여성들을 위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먹자촌 전용 회원권을 구매하기 위한 경쟁이 상당하답니다. 그야말로 130년 전통의 ‘교육 맛집’이 된 것이죠!

(TMI 1. “WOMANS”라는 영어표기는 단 한 명의 여학생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함)
여느 먹자촌이 그렇듯 이화여대도 회원제로 운영되며, 4년 또는 2년 이용권을 신청하게 됩니다. 특히 2년권은 ‘대학원’이라는 프리미엄 회원 단계로 더욱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이제는 회원권을 구하기도 어려울 만큼 유명해진 곳이라, 저도 몇 년 전에 겨우 구할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가게들이 영업을 중단하면서, 회원들에게 온라인 이용권으로 바꿔주더라고요. 오늘은 신촌러들 덕분에 오랜만에 방문해볼 기회가 생겼네요!
다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워낙 넓고 이런저런 가게들이 많은 곳이라 오늘은 이화여대 내 인문학 먹거리로 유명한 “학관”을 집중적으로 소개해드릴게요! 우선 먹자촌 정문 입구를 지나 오른쪽의 잔디밭 방향으로 걸어가보면 회원전용 셔틀버스가 있습니다. 셔틀버스는 10분의 배차간격으로 오고, 추가로 급행버스까지 있어서 조금만 기다려도 금방 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에요. 걷기 귀찮아하는 저는 항상 셔틀버스를 애용했답니다. 지금 버스가 오고 있으니, 함께 타볼까요?
<움짤 클릭!>
(TMI 2. 이대 셔틀버스는 일반 시내버스보다 작은데, 이는 정문 쪽의 지반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함)
“포스코관” 식당 앞에서 내리면 도로 건너편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여기로 내려가면 바로 학관이라는 말씀! 포스코관과 학관 모두 메인 코스 외에 교양메뉴도 많기로 유명한 가게라 그런지, 두 건물을 오가기 편하게 이렇게 지름길이 있답니다. 위치가 편리해서 이 쪽문은 학관 정문입구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너비지만 훨씬 더 많은 손님들이 사용하고 있어요. 물론 그렇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도록 특히 더 조심해야 하기도 하죠.
하지만 지금은 인파에 휩쓸려 발이라도 밟힐까 걱정하기보다는 수두룩하게 쌓인 은행열매나 밟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우선이겠네요. 잘못 밟았다가는 하루 종일 발에서 방귀냄새가 나는 낭패를 겪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러니 이쪽 계단을 내려갈 때에는 잘 살펴보면서 걷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바닥만 바라보며 요리조리 은행을 피하다 보니 어느샌가 쪽문이 눈앞에 있네요.

(TMI 3. 포스코관에서 학관으로 내려갈 때 계단과 경사로가 있는데, 계단이 조금 더 빠르다고 함)
드디어 도착한 학관의 쪽문으로 들어가면 조금 특이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가장 먼저 보이는 계단의 안내판을 자세히 읽어보면, 어째서 4층 위에 6층인지 의문이 들 수 있어요. ‘보통 4층이 죽을 사(死)와 발음이 비슷하다고 빼는데, 여기는 왜 5층이 없는 건가요?’라고 물으신다면, 사실 5층은 존재합니다! 다만 쪽문의 계단으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안내판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을 뿐이에요. 이상한 점은 이게 다가 아니에요. 계단 끝에 ‘올라가면 4층, 내려가면 3층’이라고 알려주고 있죠? 하지만 여기서 아무 생각 없이 내려가보면 갑자기 1층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3층이라 해놓고 내려와보니 1층이 되는 매직! 이 말도 안 되는 구조에 대해 설명해볼게요.

(TMI 4. 6층의 레코레이션홀은 거창한 이름과 달리 들어가보면 중고등학교 실내 운동장처럼 생겼음 )
쪽문으로 들어와서 바로 계단 하나 내려가면 두 가지의 길을 마주하게 되는데, 여기서 어느 길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1층이 될 수도 있고 3층이 될 수도 있어요. 아래로 경사진 길을 내려가면 110호 강의실을 찾을 수 있고, 옆 길로 화장실을 통과해서 나가면 뜬금없이 317호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죠. 2층은 어디 갔냐고요? 5층과 손잡고 모습을 감추었을 뿐, 2층도 존재는 합니다.
매년 초가 되면 학관에 처음 와보는 손님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제법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럴 때면 저 같은 단골손님들이 관광지 가이드라도 된 것처럼 당차게 안내해드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이런 소소한 기쁨마저 빼앗긴 것 같아 슬프네요.
<움짤 클릭!>
(TMI 5. 독특한 구조로 이대 호그와트라는 별명을 가지며, 작가 이상이 직접 설계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함)
화장실을 통과하여 3층에 도착해보니 위아래 층으로 이어진 경사로가 또 보이네요. 이 경사로를 통해 아까 잃어버린 2층과 5층으로 갈 수 있답니다. 작년에 건물이 새롭게 리모델링 되면서 5층에는 ‘루체테 하늘 라운지’라는 휴식 공간도 생겼어요. 루체테는 “밝게 빛나라”라는 뜻으로, 이곳의 인문학사업재단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교육 맛집답게 공부가 더 소화 잘 되도록 각 층마다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지만, 5층의 이 라운지는 특히 따스한 빛깔의 조명과 방처럼 편하게 나뉘어 있어서 아주 좋아요. 저는 몇 년 전부터 영문과 코스를 먹기 위해 학관을 거의 매일 왔었는데, 루체테 하늘 라운지가 생기고 나서는 여기서 낮잠을 자거나 과제 디저트를 먹으며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하지만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서둘러 짐을 챙기고 나와야 할 이유도 있습니다. 예전부터 학관은 “음기로 가득 찼다”, “귀신을 여러 번 봤다”, “이상하게 너무 춥다” 등 으시시한 소문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죠. 예쁘게 리모델링이 되기 전에는 여기 5층이 그 소문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5층 화장실에 상주한다는 귀신은 이미 여러 목격담이 나왔으며, 누군가는 밤 늦게 학관 건물 앞에 서 있다가 우연히 5층을 바라보니 불이 꺼진 강의실 창문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형상을 발견했다고 하네요. 저는 한 번도 귀신을 본 적이 없지만, 앞으로도 볼 생각은 없답니다.

(TMI 6. 학관 말고 학문관의 수면실 귀신은 조용히 귓속에 “넌 00가 될 거야”라고 장래를 알려주기로 유명함)
라운지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메인 코스를 즐기던 강의실도 오랜만에 들어가보기로 했어요. 아래 층으로 내려가면 굉장히 넓고 마치 작은 연극장과 같은 414호 강의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곳은 400백여명의 손님도 수용 가능하기 때문에 단체 회식으로도 끄떡없죠. 의자도 리모델링 기간에 모두 새 것으로 교체되어 영화관 의자처럼 폭신폭신해졌어요. 그래서 식사 도중에 꾸벅 졸기도 했지만, 그만큼 편하다는 것 아니겠어요!
414호 강의실은 제게 남다른 추억이 있는 강의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공간이 넓고 강단도 무대처럼 크게 있어서 연극 동아리에서 대관하여 연습을 많이 했던 곳이에요. 이화여대 내의 대부분의 가게들은 회원에 한하여 무료 대관이 가능하다는 혜택이 있어서, 저희 동아리는 공연기간이 되면 414호를 예약하기 위해 애를 썼던 기억이 있어요. 다른 동아리들도 모두 이 강의실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서 경쟁률이 꽤 있었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넓은 공간뿐만 아니라 조명도 주황기가 도는 전구에서부터 푸른 빛의 형광등까지 은근히 다양하게 있어서 연극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매우 유용했답니다.

(TMI 7. 학관 강의실은 너무너무 추워서 알고 보면 빙룡 거주지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
손님으로 꽉 차던 강의실이, 그렇게나 탐내는 동아리가 많아 예약하기 어려웠던 공간이 지금은 아무도 없는 것을 보니 울컥한 기분을 참기 어려운 것 같아요. 게다가 이 강의실뿐만 아니라 학관 자체가 어쩌면 제가 성인이 되어서 가장 자주 갔던 곳일 텐데, 이제는 갈 필요도 명분도 없어진 곳이 되어버렸네요.
사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제가 학관을 향한 발길이 줄어든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구입해놨던 회원권의 유효기간이 곧 만료되기 때문이거든요. 만료가 되면 이렇게 단순히 방문할 기회조차 없어지겠죠. 오랜 세월 영업하면서 건물이 낡기도 하고 사건사고도 여럿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정이 들었던 학관이었어요.
물탱크가 터져서 윗층이 워터파크가 된 사건도 있었고, 악덕 교수님을 잘못 만나 맛은 하나도 없으면서 비싸기만 했던 강의를 받아온 적도 있었고, 여름에 강의실에서 공연 연습을 하던 중 창문 닫는 것을 까먹고 산모기들한테 신나게 뜯겨나간 일도 있었어요. 삶에 지쳐 우울할 때면 언제든 응원해 줄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고, 영원히 기억에 남을 전공코스 만찬을 선물해주신 교수님도 만나고, 알게 모르게 손님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식사를 위해 힘써주신 경비원, 청소부 선생님들도 만나기도 했죠.
회원권은 유효기간이 끝날지라도, 추억들은 항상 간직하고 있을거예요!

(TMI 8. 수평적 문화를 조성하고자 온오프라인, 학번, 졸업여부 무관하고 서로를 “벗”이라 부름.)
(TTMI.실제로 친구를 벗이라 부른 적은 없음)
오늘 우리 신촌러들 덕분에 제대로 학관을 탐방해볼 수 있었습니다. 티는 안 내려고 했는데, 역시 오랜만에 와보니 옛 애인이라도 마주친 듯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괜히 코 끝이 찡해지게 되네요. 신촌러 여러분들에게도 인상 깊은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아직 보여주지 못한 이화여대의 수많은 맛집들이 있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콘텐츠를 준비해볼까 해요. 특별히 궁금한 가게가 있거나 추천해주고 싶은 메뉴가 있다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오늘 콘텐츠도 즐거우셨다면 좋아요, 구독, 알림설정까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잔치꾼이었습니다.
☆당황하지 말아요 요상한 건물 가이드☆

[이화여자대학교 // 학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02-3277-2134 (학관 관리부서실)
05:00 ~ 22:00 (외부인 출입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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