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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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19 · 09 · 30

신촌의 가을

Editor 왕 잔치

    가을은 떠나보내는 계절이다. 서늘하고 가벼운 공기가 모든 걸 날아오르게 할 것만 같다. 오랜만에 돌아온 신촌은 그렇게 모든 것이 씻겨져 내려간 느낌이었다. 잠시 떠난 사이 새내기 시절부터 쌓아온 시간이 신촌에서 사라져 버린 것만 같다. 이렇게 말해도 막상 지하철역에서 나와 신촌 거리에 서면 신촌은 변한 게 없어 보이긴 한다. 커다란 건물들이 골목을 두르고, 그 사이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지나간다. 그렇지만, 내가 기억하는 가게들은 간판을 바꿔 끼웠고, 어떤 가게는 자리를 옮겨 옛날의 정취를 잃어버린 가게도 있다. 물 빠진 수채화처럼 얼룩덜룩 나의 신촌은 색채가 사라졌다.  

 

신촌 거리는 어디 하나 변한 곳 없어 보인다 

 

    신촌에서 떠나 버린 것들에는 나의 기억이 담겨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복잡한 거리에서 갈피 못 잡던 어리숙한 시절부터, 신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소소한 행복을 느꼈던 때까지, 짧은 시간 동안 신촌은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이제는 기억이었던 곳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떠난 것들은 결국에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것들이 되어버린다. ‘떠나는 것들이 어찌 아름답기만 하랴’, 마음속에서 이 구절이 맴돈다. 그냥 조금 변했을 뿐인데, 떠난 곳들의 마지막을 보며 위로를 건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떠나는 것들이 어찌 아름답기만 하랴

슬픔은 흘러 짙푸른 강물이 되고

가벼운 위안의 말들은 흔적도 없어

가을은 그대로 아픔인 것을

그렇게 아픈 것이 사람인 것을

그것이 사람의 사랑인 것을

 <사람의 사랑 1> 중에서

 

    신촌은 유난히 유행에 민감하고, 빠르게 변한다. 쉽게 변하는 만큼 뭐든 남기는 게 적고, 관심 없으면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를 수도 있다. 떠나버린 장소들을 생각하면 지금 눈앞에 있는 곳들도 곧 사라질 것만 같다. 구석구석 이쁜 곳이 많았던 신촌인데, 점점 떠나도 아쉽지만은 않을 것만 같은 가게들이 들어선다. 그래서 어디 한 곳 쉽게 마음을 내려놓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여전히 굳건히 신촌을 지키고 있는 곳 들도 많다. 몇 년이 지나고 다시 찾아와도 여전할 것만 같은 곳들이 작은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 떠난 것이 만든 빈공간은 새로운 기억들로 채워질 것이다. 떠나간 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닿을지도 모를 작은 위로를 건네는 것뿐 이기에, 기억 속의 신촌을 더듬더듬 찾아 사진으로 저장해 보았다.

 

신촌역 바로 앞 맥도날드가 있던 자리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신촌역 맥도날드다. 신촌에는 맥도날드가 두 개나 있었지만, 나는 연세로 안의 아담한 맥도날드보다는 신촌역 앞 개방감 있는 맥도날드가 더 좋았다. 누군가와 만날 때 ‘신촌역 맥날 앞에서 만나’라고 할 수 있는 정겨운 공간이기도 했고, 나에게는 매일 아침 저렴하면서도 어느 카페보다도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신촌에서 나의 만남의 광장이자 아침을 열던 곳이 사라져 아쉽기만 하다.

 

파이홀이 있던 자리와, 옮긴 가게의 모습

 

    개인적으로 파이홀이 자리를 옮긴 게 가장 아쉬웠다. 조그마하고 만화 같은 느낌의 가게였는데 자리를 옮기면서 그런 느낌을 두고 온 것 같다. 가게가 더 커지면서 이용하기 편해졌지만, 그 아늑하고 따스한 동화 같은 느낌을 또 어디에서 느낄 수 있을까? 

 

명물거리 뒷편에 있는 김다락방, 지금은 폐업한 것 같다 

 

    조금 구석진데 있어서 아는 사람이 많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다락방의 토마토 해물 스튜는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김다락방은 낮보다 밤이 어울리는 가게였다. 북적거리지 않는 분위기와 적은 테이블, 따뜻하면서도 얼큰한 국물, 이곳에서 술 한잔하면 하루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 지금은 가게를 이전하기 위해 잠시 비어있지만, 명물거리 뒷골목에 위치한 가게의 따뜻했던 느낌을 간직 할 수 있을까?  밝은 신촌 거리에 홀로 불이 꺼진 모습을 보니 씁쓸했다. 

 

신촌 골목, 건물 사이에 자리 잡은 할머님이 하시던 작은 꽃집

 

    이 조그마한 꽃집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꽃을 살 일이 있을 때마다 여기서 사고는 했었는데, 포장이 조금 엉성했지만 꽃이 싸고 예뻤기에 이해되었다.저렇게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 꽃을 팔았나 싶기도 하고, 가게가 좁아 꽃을 포장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렸었지만, 그런 점들이 이 가게의 매력이었던 것 같다. 투박하지만 마음만은 챙겨 주었던 가게, 여기서 꽃을 파시던 할머니는 지금은 철로 주변 조금 더 넓은 곳으로 가게를 옮겨서 장사하시는 것 같다. 

 

원래는 흰색 빛이지만 파랑고래라는 이름에 맞게 편집해봤다.

 

    같은 건물에 간판만 바뀌는 신촌에도 못 보던 건물이 생겼다. 파랑고래, 주변과 잘 어울리는 것 같진 않지만, 이름처럼 역동적이고 웅장한 마치 고래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서 들어오라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전에는 어둡고 으슥한 분위기 공원이었는데, 이제는 편히 앉아 조용히 쉴 수 있는 신촌의 작은 쉼터가 되어준다. 어떤 공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빨잠처럼 신촌을 대표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을에는 많은 것들이 떠나는 걸 준비하는 시기이다. 졸업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푸른 나뭇잎도 떨어지고, 한 해도 지나간다.  글을 쓰기 위해 돌아다닌 신촌은 생각보다 더 많이 변해 있었다. 신촌만의 분위기가 어디로 가지는 않았지만, 위치를 옮긴 가게들과 지금은 비어있는 가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신촌은 가게가 많고 복잡하게 얽혀있다 보니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사라져가는 것을 놓치고 만다. 무심히 지나가면 떠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나중에서야 아쉬워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 “신촌” 하면 떠오르는 것들에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담겨 있을까?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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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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