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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0 · 09 · 23

138. 초콜릿책방

Editor 조밀

연희동은 지리가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비슷한 듯, 다른 듯, 결국엔 비슷한 카페와 가게들이 즐비하다. 길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작년 이맘때, 갓 들어선 가을을 만끽하고자 연희동과 경의선숲길 일대를 산책하던 나는 길을 잃고 말았다. 이상하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 앞에 보이는건 카페와 가게들 뿐이었는데. 생뚱맞게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길을 잃었다/빱빱빠 빠라라/어딜 가야 할까, 나지막히 아이유의 분홍신을 부르며 나가는 길을 찾으려 아파트 단지 내를 뱅글뱅글 돌다가 의외의 장소, ‘초콜릿책방’을 발견했다. 아파트 사이에 웬 카페람? 하는 찰나의 신기함을 끝으로 이 곳의 존재를 잊고 살다가,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가을 공기에 문득 그 날의 생경한 기억이 떠올라 (이번에는 길을 잃지 않고) 다시 방문해보았다. 

 

숨은 그림 찾기

 

또 책이 소재냐, 싶겠지만 이전에 소개한 ‘책바’와는 다른 감성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책바가 ‘독서’ 행위에 집중하는 공간이었다면, 초콜릿 책방은 책과 연관된 ‘활동’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모임, 글쓰기 공모전, 그림책 만들기 등 책 관련 이벤트를 알리는 포스터가 책방 곳곳에 붙어 있고, 한켠에는 이 곳에서 만든 그림책도 전시되어 있다. 마침 방문한 날에도 행사가 있었는지 몇몇 아이들이 한데 모여 공예 활동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인테리어도 달랐는데, 은은하고 비밀스러운 책바와 달리 초콜릿 책방은 밝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연희동을 떠돌다 수많은 ‘인스타 감성’ 카페의 차가운 콘크리트 벽, 그리고 낮은 의자와 더 낮은 테이블에 진절머리가 난다면 발길을 돌려 초콜릿 책방에서 재충전을 하는 것도 좋겠다. 트렌디한 소품, 포토제닉한 인테리어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무난하고 친숙한 분위기가 이 곳의 아늑함을 조성하는 듯 하다. 이 곳에서 제작한 그림책과 공예품들, 그리고 초콜릿을 닮은 책장들이 온기를 더해주었다. 

친숙한 분위기, 다양한 행사, 그리고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해있다는 점 때문에 초콜릿 책방은 동네 사람들의 단골 가게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아이들, 공부하는 사람들, 엄마들과 대화하는 사장님. 말 그대로 ‘동네책방’인 셈이다. 인정이 느껴지지만 복작거리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 가운데 나와 같은 뉴커머도 덕분에 편하게 머무를 수 있었다.

 


사장님이 수줍게 ‘술도 있어요’라며 메뉴판을 건네셨다.

 

‘초콜릿 책방’이라는 가게 이름에 걸맞게 초콜릿 음료가 무려 네 가지 맛이나 있다. 게다가 하이볼까지 있다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초콜릿 하이볼…. 대체 무슨 맛일까…?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아, 낮에 방문하지만 않았어도 바로 먹어보는건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진달’맛 초콜릿 음료를 주문해 보았다. 얼죽아는 아니어도 얼직아라서 (얼어죽기 직전까지는 아이스 네 제가 방금 급조한 단어입니다) 아이스초코를 시켰는데, 따뜻하게 마셨으면 초콜릿의 풍미가 더 진했을 것이라는 후회가 들었다.

 

사실 나는 초코 음료를 잘 먹지 않는다. 이유는 너무 달아서. 학창시절에 친구들이 우유에 제티를 타먹을 때도, 허쉬가 맛있네, 네스퀵이 맛있네, 아냐 꿀단지가 최고야 등 초코 드링크계의 일인자를 겨룰 때도, ‘너무 달아’ 한 마디에 ‘까다로운 입맛’이라고 맹렬한 비난을 받곤 했다. 왜 다크 초콜릿 음료는 잘 팔지 않는걸까? 그런 면에서 이 곳의 메뉴가 흥미로웠다. 진한 초콜릿은 고디바에나 가야 맛볼 수 있었는데. 맛을 네 가지나 준비하다니, 초콜릿에 대한 진심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 중에서도 ‘진달’은 내돈내산이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진달, 초콜릿의 진한 향과 달콤함까지 담은 맛. 보통 ‘달콤씁쓸한 맛’, 또는 ‘bittersweet’ 이라고 표기하던데, 이곳만의 언어가 재미있었다. 충분히 달면서도 진하고 씁쓸한 맛까지 잡았으니, 덜 달콤한 초콜릿 드링크를 찾고 있었다면 추천한다. 

 

 

[Bit·​ter·​sweet | \ ˈbi-tər-ˌswēt  \  씁쓸하면서 달콤한;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Bitter과 Sweet의 합성어.] 

긍정적인 속성으로 통용되는 ‘단 맛’과 부정적인 것으로 통용되는 ‘쓴 맛’을 모두 함축하는 점에서 입체적이고, 맛은 물론 느낌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단어다. 다크 초콜릿을 먹기 전에는 겉에 써있는 56%, 80% 등의 카카오 함유율을 보고 씁쓸할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지만, 먹으면 의외로 달달한 매력이 있다. 밀크 초콜릿은 달다, 달아서 맛있다. 하지만 일관된 달콤함은 결국 물리고 만다. 뭐든 적당히 먹어야 제일 맛있는 법이다. 약간의 쌉싸름함이 단 맛을 배가시켜주는 것은 아닐까? 마치 어릴 때 코 쥐어잡고 약을 먹은 후에 먹는 텐텐이 유달리 맛있었던 것처럼.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 한 영화에서는 인생의 예측불허함을 초콜릿 골라 먹는 묘미에 비유했다. 내가 집는 초콜릿이 달콤할지 씁쓸할지, 카라멜이 들었을지 럼이 들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날은 무지 달 수도, 또 어느 날은 한약만큼 쓸 수도 있다. 그래도 끝에 입을 다시면 달콤씁쓸한 맛이 남았으면 좋겠다. 너무 달면 무뎌지고, 너무 쓰면 괴롭지 않은가. 

 

 

계절에도 맛이 있다면 가을은 달콤씁쓸한 다크 초콜릿 맛일거다. 끝도 없이 푸른 하늘과 알록달록 단풍, 그리고 선선한 바람이 달콤한 맛이라면, 앙상해지는 나뭇가지들과 환절기 오한은 쌉싸레하다. 세 달도 안 되서 끝나버리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감질나는 가을의 풍미를 좀 더 음미하고플 땐 초콜릿책방을 방문해 진달을 마시는 것도 좋겠다. 아, 물론 아이스 말고 핫으로.

 


안내판에 초콜릿을 입혀보았다. (photoshopped by editor 분홍이글루)

 


[초콜릿책방]

서대문구 연희로5길 46-11

월-금 10:00~22:00

토 10:00~19:00

일 휴무

조밀
AUTHOR PROFILE
조밀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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