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 향은 음악과 시간의 용매
프루스트 효과 (Proust Effect): 이전에 맡았던 냄새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현상. 마르셀 프루스트의 프랑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분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이었다.”
1920년의 문학적 직관이 과학적 현상으로서 변증되었다. 후각은 실제로 오감 중 유일하게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 과학은 프루스트 효과를 음악으로까지 확장했다.
음악은 후각과 다른 메커니즘으로 기억을 불러온다. 우리는 특정 경험을 한 순간의 냄새, 장면, 감정 등을 통합해 하나의 ‘기억’으로 저장하는데, 이때 음악을 듣고 있었다면 함께 기억의 요소가 된다. 그래서 우리가 한때 듣던 음악을 다시 들으면 감각들이 활성화되며 예전 기억이 불러일으켜지는 것이었다. 개그콘서트 엔딩곡을 듣고 반응하지 않을 00년대생이 몇 명이나 있을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께 신촌 잔치에서 온누리상품권을 드립니다.
향과 음악은 우리를 과거로 데려간다.
신촌 향수 공방 ‘악센트’는 그러한 프루스트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나를 이해하기 위한 향과 음악이 이곳에 존재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기 위해 음악을 듣고, 향을 맡으며 내 취향을 발견한다. 음악과 향으로 나를 써 내려가는 것이다. 조향 공간 내 미디어아트와 조향 후 체험하는 청음 공간은 덤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는 플레이스팀이 즐기고 와보았다.

수요일 밤 7시에 신촌 악센트에서 모인 네 명. 송학과 바플라이 사이 건물, 간판을 따라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니 LP 카페인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등장한다. 향을 만드는 공간이지만 이렇게 노래로 꾸며진 이유는, 예약 확정 안내 속 ‘예약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하라’는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바로 우리가 직접 노래 세 곡을 선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THEME 01 [ 누군가의 기억 속의 나 ]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곡이 떠오르나요?’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합니다. 어떤 이미지는 당신이 의도한 것이고, 어떤 이미지는 당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곡이 떠오르나요?
THEME 02 [ 나만 알고 있는 나]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 알고 있는 ‘나’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곡이 떠오르나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내 안에는 나만 아는 모습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는 가장 잘 알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나’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곡이 떠오르나요?
THEME 03 [ 언젠가 닿고 싶은 나 ] ‘앞으로 그려가고 싶은 ‘나’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곡이 떠오르나요?’ 아직은 닿지 않았지만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미래에 닮아가고 싶은 나의 모습이 마음 속에 하나씩은 있을 겁니다. 지금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 방향을 향해 걷고 있다는 걸 느끼기도 하죠. 앞으로 그려가고 싶은 ‘나’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곡이 떠오르나요?
향수를 조금 찾아보면 접하는 숫자는 우연인지 몰라도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분류와 그리고 악센트의 체험 테마와 일치한다. 보통 산뜻한 첫인상을 남긴 채 곧 희미해지는 것이 탑 노트, 향의 중추이자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한다는 미들 노트, 그리고 가장 늦게까지 살갗에 남는 것을 베이스 노트라 한다. 백화점에서 받은 시향지의 향이 몇 시간 뒤 집에서 맡아보니 다르다고 생각했다면 노트 변화를 정확하게 변화를 감지한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향도 변한다. 지금의 나 또한 내일 돌이켜보면 어느새 과거의 존재이다.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는 이 순간, 악센트에서 고민의 흔적을 향으로 써 내려 써 내려갈 준비를 해 보자. 집에 돌아가 만든 향수를 칙칙 뿌릴 때마다 마들렌 조각과 홍차처럼 ‘그때 내가 그래서 이 노래를 골랐지’ 하는 추억이 생각날 수도 있다.

선곡 시간인 10분이 지나도록 고민한 것이 분명하지만, 마침내 선택을 마쳤다. 이제 서로가 고른 노래들을 배경 음악 삼아 후각적 탐구를 시작하러 커튼을 걷고 첫 번째 공간으로 발을 딛는다. 향수 만들기 프로그램은 보통 시간에 쫓겨 향을 고르기 마련이지만, 다음에 나올 노래가 누가 고른 곡일지 두근거리는 기대와 함께하다 보면 시간을 잊게 될 수도. 게다가 방마다 주어진 10가지 향들은 이미 각 노트에 어울리는 향료끼리 조합된 것이라 맨땅에 헤딩하는 듯한 선택 부담을 덜어준다.



막상 체험이 시작되면 ‘너는 뭐 골랐어?’ 하고 대화를 시작하기에는 코에 온 신경이 쏠려 정신없을 수도 있다. 미처 못다 한 대화를 풀어내어 플레이스팀 에디터들이 직접 고른 향과 노래를 아래 숨겨두었다. 직접 만든 향수 목록 중 마음에 드는 조합으로 오늘의 가이드를 골라보시라.
* 하단 목록의 [+] 기호를 누르면 각 향수를 만든 에디터의 선곡과 설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Theme 01. 🎵La La Lost You (Acoustic Version) – NIKI(니키) / 🧴10. 튤립, 프리지아
다저스에 있던 시절 이야기하는 박찬호 된 기분이 들어서 교환학생 이야기를 그만해야겠다는 자각이 들면서도, 인생에서 제일 큰 변곡점이 되었던 시기라 그런지 여러 상황에서 당시 경험이 연상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더라고요.
움츠러 들었던 나를 처음으로 세상에 던졌던 때라 더 강렬하게 각인된 경험인 것 같아요. 미술관 다니기, 빈티지 의류 쇼핑처럼 취향이 생기기도 했고, 외모나 언어에서 틀을 내려놓고 편안해진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좀 살쪄도, 연예인처럼 생기지 않아도 모두가 괜찮아 같은 외침이 실효성이 있나 싶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 그러니 절로 믿게 되더라고요. 영어 실력도 해외파 친구들과 스스로를 비교했는데, 오히려 외국인 입장이 되니 ‘틀려도 알 바야?’ 하면서 더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아요.
라라랜드처럼 La La Lost You라는 노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서울로 치면 서강대교, 여의도한강공원, 망원동 같은 장소들을 엮어 낸 노래입니다.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직관적으로 제가 경험한 도시와 연결되는 가사인 노래가 있다는 게 재밌고, 2023년의 나에 대한 그리움과 약간의 질투 같은 감정도 투영이 돼서 얼마 전에 저장했던 노래입니다. 마침 LA와 뉴욕 두 도시도 제가 갔던, 그리고 앞으로 가게 될 지역과 어느 정도 비슷하기도 하고요. 남들에게 저는 어떻게 보일지, 교환 시절에 저를 알게 된 사람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지도 궁금하고 그러네요. +매장에서 어쿠스틱 말고 원곡 버전을 틀어줘서 조금 아쉬웠어요.
막 향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프리지아가 유명하다고 해서 시향해봤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생화 프리지아 향이 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비누 향에 가까워서 ‘이게 왜 프리지아이지? 그런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주고 싶다는 건가?’ 하고 이해하려 시도했던 것 같습니다. 실망은 기대랑 달라서 한 것일 뿐, 향이 나쁘다는 게 아니니까요. 이번에는 10번 향을 맡았을 때 덜 놀랐던 것 같아요.
Theme 02. 🎵People Watching – Conan Gray / 🧴19. 바다소금
사실 2번 공간에서 이 노래가 나왔을 때 ‘아 이걸 1번 공간에서 틀 노래로 고를걸!’ 하고 후회가 약간 됐어요. 2~3년 전에 이 노래 포함 코난 그레이 노래를 많이 들었었거든요. 나만 알고 있는 나라면, 나의 못생긴 내면을 드러내는 그런 가사가 어울리지 않을까 해서 고른 노래입니다. 사랑에 대한 노래이긴 한데, 사랑을 넘어 화려하지는 않아도 단단한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조바심이나 부러움 같은 감정을 포괄할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해요.
성취나 성공에 대한 압박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 능력이나 성향에 대한 불안함을 더 느낍니다. 누구나 살갑고 편안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 능숙하게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부러워요. 제가 아직까지도 부족한 영역이라서요. 막상 교수님한테 감사 메일 하나 보내는 것도 미루고 미루는 걸 보면 아직까지도 사람이나 연락이 그리 편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요. 잘 하고 싶으면 많이 해 봐야 하는데 부담에 회피하니 성장할 리가 없죠. 노래 속 화자도 완벽한 것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옷 가격표를 잘라버리듯 사람들을 쳐내는 모순된 태도를 다루고 있어요. 이런 모습이 공감이 갔습니다.
또 남들은 어떻게들 그렇게 멋진 음악 취향이나 패션 센스, 말솜씨, 센스를 갖췄는지 항상 부러운 것 같아요. 항상 스테레오타입에서 어긋난 조금은 독특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발버둥치는데, 조금씩 깔짝대는 정도로 쌓은 취향은 깊이가 좀처럼 생기지는 않더라고요. 해외 인디도, 락도, 20세기 대중가요도 다 좋은데 결국에는 뭐랄까…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 수준, 아니면 뭔가 말랑말랑한 노래를 안 들을 수 없는 것 같아요. People Watching은 멜로디나 분위기 상 제가 숨기고 싶었던, 평범한 취향에 걸맞는 분위기를 가진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역에서는 향과 노래가 연관성이 있을 것 같네요. 제가 고른 19번은 조말론의 ‘우드 세이지 앤 씨솔트’ 가 떠오르는 향입니다. 그만큼 처음 향수를 접할 때는 독특한 조합이지만, 이제는 잘 알려지고 무난한 향인 것 같아요. 다른 향과의 조화를 위해서 고른 향이긴 한데, 노래도 향도 무난한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Theme 03. 🎵Keep Driving – Harry Styles / 🧴27. 차이니즈 페퍼, 샌달우드
닮아가고 싶은 나의 모습이라기보단, 앞으로 내가 살아가려면 이런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고른 노래입니다. 미래가 순도 100% 희망은 아닐 테고 꽤 험난한 일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가끔 여유도 즐기고 잘 굴러가는 듯하다 계획이 와르르 무너지고, 엔진 소음처럼 작은 문제를 경시하다가 큰일이 돼 버리기도 하고. 새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나라에 가고… 노래 가사를 완전히 이해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어요. 장밋빛 인생인 줄 알고 달리다 보니 삐걱대지만 어쨌든 계속 ‘shall we just keep driving’이라고 물어보는 반복이 저렴한 표현으로는 no sibal keep going, 좀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겪지만 어쨌든 계속 살아가는 태도라고 생각하네요.
사실 아직도 5년 뒤의 제가 뭘 하고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일단 눈앞의 것부터 처리하고, 어떻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잘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같아요. 최선책이 아닐 수는 있지만 내가 너무 힘들지만 않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네요.
원래 우디 계열, 스파이스, 허브 같은 향을 선호하는데 이번 체험에서는 최대한 그런 계열을 피하자! 라고 목표했어요. 그런데 27번은 설명이 매력적이고 향도 너무 독특하지는 않지만, 너무 뻔하지도 않은 것 같아서 골랐습니다.
Theme 01. 🎵 Season Sayonara – Tokyo Incident (東京事変) /🧴 2. 사과, 작약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의, 가장 좋아하는 앨범의, 가장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투메이저한 앨범이긴 하지만요. 노래 가사 자체는 평범하게 볼 수 있는 타인과의 이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당신’과 함께 하던 시기를 하나의 계절에 빗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특정한 시기가 아니라 계절이라는 전체적인 이미지 자체에 빗대어서요. 화자는 당신과 함께한 지금이 무슨 계절인지도 잘 몰라요. 그래서 노래는 ‘계절도 모른 채로 안녕’이라는 가사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전반적인 가사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함께 했던 이 계절이 실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정하는 가사라서, 계절은 돌고 돈다는 당연한 사실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노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계절이 무슨 계절인지도 모른 채 계절과 당신과 이별하게 되는 거죠….이 노래는 거의 2~3년 동안 프로필 뮤직으로 설정해 둔 노래인데요. 그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췄으면 좋겠는지 스스로 의도하는 노래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가사에서 말하는 “단 한 번뿐이었던 소중한 시간을 추억할게“라는 태도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지나간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제 모토 같은 것이라 이렇게 골라보았습니다.
향은 달콤한 과일 향을 좋아해서 선택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조향사분께 들었는데 달콤한 향을 좋아하는 여성분은 보통 2, 3번 향을 가장 좋은 향으로 꼽곤 한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투메이저하네요. 포근한 코코넛 향을 좋아하는데 코코넛 향과도 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공방에서 고른 세 가지 향 중에 제일 좋아하는 향입니다. 탑 노트라서 30분 안에 날아간다는 게 서글프긴 하지만요.
Theme 02.🎵te wo futte – my dead girlfriend / 🧴17. 인센스, 솔잎
일본 슈게이징 밴드 ‘my dead girlfriend’의 정규 앨범 ‘Hades (the nine stage of change at the deceased remains)’ 중 2번 트랙입니다. 밴드 이름처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앨범입니다. 제목 뜻은 ‘손을 흔들고’입니다.
왜 이 노래가 나만 알고 있는 나인가 한다면, 가장 제 취향의 앨범이라서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과 진지하게 음악 얘기를 하는 걸 꺼리는 편인데, 제 밑천이 드러날까 봐…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완벽히 알지 못하는데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조금 부끄럽다고 스스로 생각해요. 그래도 제 취향을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분위기의 노래들일까요. 한 번은 친구가 제 애플 뮤직을 보고 ”너는 암울한 노래만 듣는구나“ 하고 평을 내려준 적 있는데 그때 ‘내가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선곡은 제가 남몰래 간직하고 있던 취향에 관한 고백 같은 것입니다.
향은 사실 제일 포근하다고 느껴지는 17번 향: 인센스, 솔잎을 골랐습니다. 다들 19번을 고르셨는데 저는 왜인지 좀 머리 아프게 느껴지더라고요. 2번 방에서 향을 고르는 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전반적으로 시원한 향들이었는데 1번 방에서 고른 달콤한 향과 어울릴 걸 찾기가 힘들었거든요. 17번이 그나마 가장 어울릴 것 같아서 골랐습니다. 인센스와 솔잎 향이었어요. 인센스라서 그런지 맡을 때 포근하다고 느꼈습니다.
Theme 03. 🎵Disintegration – The Cure / 🧴28. 가죽, 아몬드, 화이트우드
고딕 락 앨범으로 유명한 80년대 영국 밴드, 큐어의 노래입니다. 동명의 앨범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제 음악 취향을 바꾸게 된 첫 곡이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동경의 대상을 몇 명 만나게 되지 않나요? 저도 물론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해본 적이 있는데요. 저는 그중 한 분의 음악 취향을 흡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큐어의 disintegration은 추천곡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닿고 싶은 ‘나’ 한다면 따라 듣게 된 이 노래가 무조건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무조건 따라 한 건 아니고 들으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이 노래 덕분에 음악 취향이 비슷한 결로 옮겨 가기도 했습니다.
향은 28번을 골랐습니다. 가죽, 아몬드, 화이트 우드로 이루어진 향인데 저한테는 어딘가 상큼하게 느껴졌습니다. 3번 방에 있는 향들은 베이스 노트라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무겁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상큼한 향으로 맞추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사실 가죽 향 향수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향이 별로여서 한 번도 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큼하고 괜찮아서 다른 가죽 향인가 보다~ 했었는데 집에 와서 다시 맡아보니 좋네요. 취향이 바뀌었나 봅니다… 노래와 향 모두 바뀌어버린 취향과 관련이 있네요.
Theme 01. 🎵청춘- 원호 / 🧴6. 자몽, 아이리스
저 자신이 조금 많이 내성적인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면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하루 일과가 끝나고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생각나더라고요. 웬만해서는 자정이 지나서 운동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는데, 그렇게 피곤한 상태로 소파에 반쯤 걸쳐서 참 많이 들은 노래거든요. 나름 비슷한 무드의 노래로 유재하의 노래나 카더가든의 노래 같은 것도 있지만 홍대병이 도져서 덜 유명한 것으로 택했습니다.
최근의 노래이지만 사운드 자체가 올드한 느낌이 드는 노래이기 때문에 일부러 흠집을 낸 가짜 앤티크 가구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리움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 같은 비교적 유명한 다른 노래에서도 항상 비슷한 무드를 다루는 가수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가사가 한 번쯤은 생각해 보기 좋아서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향은 사실 노래와는 별로 관련이 없었어요. 피죤, 다우니에서 날 것 같은 인위적인 향들이 10가지 중에 많아서, 그리고 무거운 향을 최대한 빼고 만들고 싶어 적당히 밝으며 인위적인 느낌이 나지 않는 향을 찾다 보니 6번 향밖에 남지 않더라고요.
Theme 02. 🎵HYMN TO LOVE – GUMX / 🧴19. 바다소금
지금은 친해진 사람들과 첫인상 토크를 할 때마다 듣는 말이 있어요. 너무 무섭게 생겼고 농담도 전혀 못 받을 것 같아 어려웠다고요. 그럴 때마다 너무 딱딱하게 대했나 싶어 후회가 될 때도 있지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 저도 무서워서 그랬던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앞으로 잘 바꿔 보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저도 정말 편하고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는 장난도 많이 치고 나름 시끄러운 편이라고 생각해요. 펑크락의 경우도 친구들과 운전해서 여행가는 도중, 열심히 떠들면서 서로 플레이리스트를 까다 보니 친구에게 물들어서 입문하게 되었거든요. 워낙 유명한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을 제외하고 처음 알게 된 펑크밴드가 초록불꽃소년단이라는, 다소 시끄럽고 경박스럽다고도 느껴지는 밴드였지만, 제 속에도 원시적이고 흥이 많은 모습이 존재하는 만큼 펑크락을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GUMX는 초록불꽃소년단과 비슷한 무드의 즐거운 노래를 만드는 밴드를 찾다가 알게 된 밴드예요. 한국 밴드임에도 현재는 일본에서 더욱 많은 활동을 하는 중이라 다소 아쉽긴 합니다만, 이 노래를 포함한 앨범 등에서 항상 좋은 퀄리티의 신나는 곡들을 내더라고요. 그래서 노래를 듣고 향을 고를 때는 청춘의 열기를 노래하는 펑크밴드인 만큼, 바다소금이란 향에서 햇살이 내리쬐는 바삭한 모래사장이 생각나서 19번 향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Theme 03. 🎵고양이, 선인장 그리고… – 극동아시아타이거즈 / 🧴24. 암브레트, 샌달우드, 엠버우드
이 곡은 사실 이번 년을 시작하며 처음으로 들은 노래인데요, 항상 뒤돌아보며 후회하고 자책하는 제 모습이 보였고, 새롭게 시작하는 2025년에는 그것을 털고 날아가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이 노래를 골랐었습니다. 하지만 약 4개월 정도 지난 지금 들어도 앞으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으로서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앞으로의 나’에 담아 보았어요.
극동아시아타이거즈도 앞서 나온 GUMX와 마찬가지로 펑크락 밴드이기 때문에, 가사가 상당히 단순하고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노래에요. 그렇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고, 뒤돌아보기만 한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도 담겨있어 생각해 볼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머스크같이 너무 무거운 향보다는 가벼운 향이 좋지 않을까 했습니다. 제가 머스크 특유의 분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요. 24번은 정확히 그런 향이었어요. 우드 계열이지만 무겁지 않은 느낌이었거든요.
Theme 01. 🎵스물셋 – IU / 🧴7. 다마스커스 장미
제 나이 제목보다 떡국 한 그릇 덜 먹은 나이이지만, 그럼에도 인생에서 한 살 차이 별거 없길래 고른 곡입니다. 한 떨기 스물셋 좀 어른인가 태가 나는가 싶다가도 세상만사 다 깨달은 척 다 큰 척하는 게 보이지 않을까요. 또 얄미운 스물셋 알 거 다 아는데도 덜 자란 척하는 게 뻔히 보이는 그런 나이겠죠. 어렴풋이 다 아는 것 같다가도 하나도 모르겠는 그런 나이가 바로 제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는 남들도 다 거쳐 갈 수 있는 계단이니까요, 언젠가는 남들 눈에는 이런 두 면모가 한 번에 보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부모님 눈에는 혼자 과외하고 알바하는 게 저이도 사회인이라도 기특하다 싶지만, 또 그냥 애쓰는 꼬맹이로만 보이겠죠. 교수님 눈에도 그럴 듯 학자인 체하게 질문하려 시도하지만 제 나이 혹은 그 이상 펜대를 잡아 오신 분 눈에는 제가 얼마나 조그맣게 보이겠습니까.
한편으로는 눈치 없는 척 어물쩍 골치 아픈 일을 넘어간 적도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제가 되게 그럴 듯 상황을 잘 무마해 나간 줄 알았는데, 되돌아보니까 그냥 속내가 빤히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기분 안 좋으면 말투랑 표정이랑 아무튼 티가 되게 난다나. 투명하다는 건 좋은 건가. 이래서 나이 들면서 포커페이스 좀 배우자고 또 다짐합니다. 아무렴 그런 나이가 스물셋 그 언저리 아니겠습니까.
이에 맞춰 고른 향은 no. 7 다마스커스 장미입니다. 처음 톡 쏘는 도입을 하면서도 나중에는 은은한 장미의 향이 부드럽게 퍼지는 향기입니다. 처음에는 내향적인 성격 탓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남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게 톡 쏘는 새침데기 같은 면모라고도 생각합니다. 사실 한편으로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푸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넉살을 가지고 싶긴 해요. 그런 아쉬움은 일단 뒤로 하고, 그 끝에는 장미의 달콤한 향이 모든 것을 은은하게 덮으며 향을 피워냅니다. 처음에는 속내를 안 보이나 싶지만, 나중에는 너무 투명해져 버려서 제 속을 들여다볼 수도 있겠죠. 아무렴 처음과 달리 끝으로 갈수록 그 자체로 따뜻하게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도 담으며 이 향을 골랐어요.
Theme 02. 🎵향기 – 샘김 / 🧴19. 바다소금
저는 제가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고독을 즐기는 편입니다. 슬픔을 누군가에게 나눈다고 무 자르듯 반이 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은 그것을 받기 싫을 수도 있고, 딱히 나도 명쾌한 해결을 바로 얻는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서 이겨냅니다. (이겨내죠?) 그래서 남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나만 간직하는 내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 노래는 제가 이런 감정이 들 때 저를 많이 위로해 줬던 비인격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 감미로우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피아노 선율과, 샘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저를 어루만진달까요. 이 노래 고르고 나서 샘김 딩고 킬링벌스 다시 들었는데, 이 영상을 국가 문화재 보물로 지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뜬금없긴 한데, 제가 그 정도로 이 노래와 그 안에 담긴 목소리 그리고 그걸 들었던 나의 과거까지도 사랑하는 건가 봐요.
이 곡에 맞춰 고른 향기는 no. 19 바다소금 향입니다. 한번 저를 앞질러 왔다가 다시 뒤로 물러나는 바다의 파도같이 이 향은 다른 것과 다르게 은은하게 묻어났어요. 그리고 소금의 짭짤한 향이 들어왔죠. 짠 맛났던 제 눈물도 이 소금처럼 짭짤하게 바다랑 같이 파도가 되었길 빌면서 이 향을 골랐어요. 다른 향들은 다 한 번씩 맡아봤던 향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향만 유일하게 제가 처음 느낀 향이기도 했어요.
Theme 03. 🎵일종의 고백 – 곽진언 / 🧴25. 호박바닐라
제가 제일 재밌게 봤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나오는 제일 좋아하는 OST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제 마음대로 되지가 않죠. 또 가끔은 누군가가 순간의 진심 같은 말이라도 저를 사랑한다고 꼭 안아줬으면 하는 날도 있었어요. 자신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이해타산의 관계없이 그냥 안아줬으면 하는, 그런 존재가 필요할 때가 다들 있잖아요. 그게 바로 그 존재를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꼭 안아줄 수 있는 마음 아닐까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사랑은 언제나 마음대로 되지 않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고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또 누군가에게 안기는 존재가 아닌 제가 먼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존재를 끌어안아 주고 싶고요. 사랑한다는 말의 무게를 조금 내려놓고 나와 같은 공간을 점유하는 이들에게 그걸 기꺼이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죠. 지금 이걸 쓰는데도 와 얘 또 지키지도 못할 말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렴 어때요. 그냥 이상향이라고요. 일단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어서 이 노래를 골랐어요.
맞춰 고른 향은 no. 25 호박 바닐라입니다. 처음 이 이름을 보고 호박이랑 바닐라가 공존할 수 있는 단어인가 했어요. 그런데 제가 향수 쪽에는 문외한이다 보니, 아무튼 향수 산업에서 이 호박은 우리가 먹는 호박이랑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호박의 향긋한 향이 훅 올라오고 끝에는 바닐라의 부드러운 달콤함이 느껴지는 향이에요. 한마디로 한약방 냄새기도 했어요. 저도 두 개의 이질적인 향을 한아름에 와구 안아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그 자체로 처음에는 한약방의 쓴 냄새가 났더라도 무언의 기다림 끝에 그것만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이 독특하고 요상한 그래서 끌릴 수밖에 없는 놈을 골랐습니다.
자, 여기까지 왔다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세 가지의 향이 요동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다. 고른 탑, 미들, 베이스 노트의 향을 합쳐 하나의 향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앞서 전체적인 향의 밸런스를 조금이라도 고민하지 않고 향을 골랐다면 파멸적인 결과를 마주할 수도 있다. 모두 좋은 향인데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면 되물어보겠다. 가령 잘 익은 김치의 군침 도는 향과 농익은 바나나의 향이 있다고 하자. 각각의 향은 한국인들에겐 아주 훌륭한 향이지만, 두 향이 섞이게 된다면 쓰레기통에서나 날 법한 끔찍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향의 조화 또한 어느 정도는 고려해야 함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킁킁대며 맡은 30가지의 향들이 진열된 이곳 조향실에서는, 조향사님의 지도에 따라 고른 향들을 혼합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향료 조합 공식>
조향 비율: 일반적인 경우 향수베이스 40ml+ 향료 5ml 4:3:3 비 (2g:1.5g:1.5g). 산뜻하게 강조하고 싶은 향을 4의 비율로 넣는다.
특정 향에 Ac’scent를 주고 싶다면, 향료 5ml를 6:2:2 비 (3g:1g:1g)으로 첨가한다.
또한, 앞서 말한 극단적인 예시처럼 서로 맞지 않는 향이 있다면 조향사님께 여쭤보고 조합을 변경할 수도 있다. 사실, 필자는 베이스 노트를 고르는 단계에서 계피향과 아주 약간의 머스크향이 느껴지는 29번 향을 골랐었다. 하지만 조향 단계에서 다른 향들과 함께 시향하니 화장실에서나 날 듯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조향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향을 변경하기로 했다.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만 sometimes 있는 일이라고 하니, 본인의 향이 끔찍하다. 라는 확신이 든다면 후순위로 점찍어놓았던 향으로 바꾸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알아가던 시간은, 그리고 ‘나’를 닮은, 혹은 닮을 것으로 보이는 향들은, 40ml의 변성 알코올과 프로필렌글리콜 액에 희석되어 물리 법칙을 따르게 된다. 침대 옆의 선반이나, 헐레벌떡 뛰어나가며 더듬은 바지 주머니에서 찾을 수 있는, 슬레이트 색깔의 작은 병에서 우리는 2025년 신촌의 어떤 기억과 그때의 나를 발견한다. 고작 5ml 밖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시간의 땀방울은 그만큼 강력하다.
계량해 베이스와 섞은 향수가 조향사님에 의해 다시 한번 조정되는 동안, 이곳을 방문해 보아야 할 이유에 한 줄 정도는 추가할 수 있는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LP판과 CD, 그리고 카세트테이프까지. 평화로웠던 세기말과 00년대의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청음실은 우드톤으로 벽난로 근처의 따뜻함이 구현되어 있다. 모두의 취향을 어느 정도는 맞출 수 있도록, 장르도 다양하다.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김광석, 유재하와 같은 위대한 가수부터 악동뮤지션, 신지훈, 아이유와 같은 현재의 스타들, 그리고 Green Day, Cigarettes After Sex 같은 해외 락, 팝 가수의 LP까지 있다. CD로는 이문세, 이소라, 변진섭, 이승철과 같은 가수의 명곡부터 찬송가까지, 이게 왜 있지? 싶은 음악들 또한 있다.
파일철과 같이 거대한 LP 케이스에서, 구시대의 산물이자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까끌한 디스크를 꺼내본다.
한 면에 고작 5개 남짓의 곡만이 들어간다니,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생각해 볼 수가 없는 일이다. 작금의 시대는 새끼손톱만 한 sd카드에도 적게 잡아 10,000곡의 음악은 거뜬히 들어가는 시대가 아니던가.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LP 플레이어에 긁힐까 조심히 판을 끼워 넣고, 바늘을 듣고 싶은 곡의 홈에 올려본다. 재생 버튼은 누르는 것이 아니라 다이얼을 돌리는 방식이다.
🎵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모습
역시나, 음악은 향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훌륭한 용매이다. 엄청난 잡음과 함께 익숙하고 그리운 그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가장 큰 위로였던 시절로 회귀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지직거리고 긁히는 LP의 소리 또한 시간에 따라 견딜 수 있게 된다. 마치 타닥거리는 장작 옆에서 라이브 연주를 듣는 것과 같은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좋아하는 가수들의 목소리를 벽난로에서 즐기다 보면, 시간은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지나있기 마련이다. 45ml의 냄새 덩어리가 준비되었다.
이제는 얼기설기 엮인 실타래가 흩날리는 병 속의 빈 부피 5ml에, 오늘의 시간을 눌러 담고 가야 할 때이다.
2주의 숙성 기간 동안, 우리의 시간과 기억이 조화롭게 용융되길 기원하며.
음악과 향의 연결, 청각과 후각의 연결, 취향과 삶과의 연결, 내 삶의 커다란 뿌리와 미세한 파편까지 연결. 연결연결연결연결 그렇게 연결에 연결을 거듭 잇다 보면 결국 하나로 뭉쳐질 수 있을까. 각자의 노래를 귀로 듣고 그 이어진 곡선은 코로 흘러 들어가 입을 통해 이산화탄소의 숨으로 나온다. 서로의 감각과 취향에 한 번쯤 눈독도 들여보고 귀도 기울여보고 거기에 담긴 향까지 킁킁 맡아보면서.
더불어 감각을 통해 과거를 끄집어내면서 다시 기억을 현재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되돌려진 기억은 미래를 구성하는 재료가 된다. 그렇게 과거-현재-미래의 한 흐름 속에 모든 것은 재배치된다.
신촌의 한 지하공간에서 경험한 이러한 연결의 흐름은 마치 2호선 순환선과 닮아있다. 신촌에서 출발해 을지로4가-잠실-사당-영등포구청 이렇게 서로 다른 이름의 역들을 거쳐 오지만 그 흐름의 선로는 하나의 길에 놓여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알, 훌쩍대는 코, 쫑긋거리는 귀, 만지작거리는 손가락, 날름거리는 혀의 감각과 삶의 요소 간의 연결은 특별하다. 그렇게 아무거나의 접합을 끝없이 더 하다 보면 소중한 가치를 지닌 채 고유한 형태로 움직인다. 또 지금, 이 순간마저도 곧 과거와 미래가 되며 저마다의 향기를 품고 시간이라는 한 흐름 안에서 순환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이형적인 것들은 서로 다른 옷을 입은 채로 있다. 하지만 사실 연결-연결 해나가다 보면 결국에는 ‘우리’라는 한 파동에 같이 몸을 맡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보면 그렇게 만들어진 서로와 서로 간의 연결은 꽤 느껴볼 만하다. 그 연결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붙어나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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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센트 (AC’SCENT) 신촌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9길 16, 지하1층
전화번호: 02-336-3368
운영시간: 매일 13:00 – 22:00
*네이버 예약을 통해 체험 예약 후 방문 가능



본문에는 못 넣었지만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두었답니다
https://open.spotify.com/playlist/2DHGaAuqxqpxqkPT5SN5Fz?si=cj3mTXmNT0-8RLV5QS7UdQ&pi=UowBVDOOQt-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