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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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ATEGORIZED 2025 · 04 · 09

461. 마주치는 세계들의 해상도를 높이면

Editor 왕 잔치

 

봄이 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의 옷차림이 제법 가벼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눈이 왔다는 사실을 모두가 잊은 것 같았다. 언제 앙상했냐는 듯 저마다 꽃을 피우기 시작한 가로수들을 바라보며 지난겨울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어떻게 무언가를 미워하냐는 누군가의 말이 무색하게도 참 많은 것들을 미워한 겨울이었다. 살갗을 매섭게 파고드는 바람이 아팠고, 매달 우편함에 꽂혀있는 가스비 고지서는 무서웠다. 두꺼워진 옷차림에 느려진 걸음걸이도 싫었고, 얼음이 껴 미끄러운 보도블록은 최악이었다. 가로수 아래, 검은 발자국이 오고 간 탓에 탁한 회색이 되어버린 눈 뭉치를 노려봤다. 지금 내 마음을 꺼내어 본다면 딱 저런 색일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대 농협 앞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빨간불인 탓이었다. 때마침 불어온 봄바람이 겨울의 끝을 실감하게끔 했다. 그래. 어찌 됐든 봄은 도래했고 그토록 미웠던 겨울은 지나갔다. 영상 17도를 웃도는 따뜻한 기온. 게다가 미세먼지 농도까지 ‘좋음’. 기분 전환을 하기에 딱 좋은 날씨가 아닌가. 이런 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지! 다행히도 이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듯했다. 타이밍 좋게도 오랜 친구로부터 오늘 신촌에서 저녁을 먹자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으니까. 이런 날씨에는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신촌 곳곳에 늘어선 맛집들을 떠올렸다.

 

초록불이다.
신호등 아래 멈춰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나 또한 공상을 잠시 멈추고 그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내 한 발짝 앞에는 나와 비슷한 초록색 과잠을 입은 이가 있었는데, 그녀가 어깨에 걸쳐 맨 가방 끝에 하얀색 인형이 제법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저러다 떨어지겠는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찰나에 툭. 작은 인형이 결국에는 까만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너무 가벼웠기 때문일까, 슬프게도 주인은 제 하얀 솜뭉치가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음을 모르는 듯했다.

 

저기요. 인형 떨어뜨리셨어요!
세상에. 감사합니다. 힘들게 구한 인형인데, 큰일 날 뻔했네요.

아니에요. 그런데 이건 무슨 동물이에요?
아. 호랑이예요. 귀엽지 않나요?

 

(그렇다. 곰돌이 내지는 강아지라고 생각했던 그것의 정체는 호랑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머리통에 검은 줄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알고 보니 제법 호랑이를 닮은 듯했다.)

 

지금 어디 가시는 길이에요?
신촌에 가고 있어요. 약속이 있어서요.

 

신촌까지는 보통 걸어가시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그렇죠. 지하철로 한 정거장, 버스로는 두세 정거장 거리라 대중교통을 타기에는 애매하더라고요. 걸어가면 십 오 분 남짓이니까요. 더군다나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걷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나요? (웃음)

 

어떤 약속이에요?
친구들 만나서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같이 밥 먹으려고요. 집에만 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으니까요.

 

이렇게 좋은 날 공부라니, 벌써 시험기간이던가요?
시험까지는 아직 몇 주 남았어요. 그렇지만 교수님께서 과제를 쉬지 않고 내주시더라고요. 덕분에 마음 편하게 놀지도 못 하고, 결국은 노트북을 챙겨서 나왔네요.

 

역시 대학생과 과제는 뗄 수 없는 사이인가 봐요.
그렇죠.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서 과제나 공부를 하는 시간은 삼십 분도 안 될 거예요. 사실 그런 건 다 양심의 가책을 조금 덜어내기 위한 핑계니까요. 아마 노트북을 조금 두드린 후에 ‘하기 싫어!’를 난발하다가 결국은 다 함께 일어나서 맥주를 먹으러 가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마감 당일이 되어서야 울면서 과제를 해치우겠죠. (웃음)

 

맞아요. 자고로 대학생이 24시간 안에 끝내지 못하는 과제는 없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어느 카페에 가시는 거예요?
신촌 브루스라는 카페에 가요. 시끄럽지 않아서 공부나 작업을 하기에 딱 좋거든요. 음악도 분위기도 잔잔해서 창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어도 좋고요.

 

저도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휘낭시에가 정말 맛있거든요!
아시는군요! 잘 알려지지 않은 카페라고 생각했는데, 인기가 정말 많더라고요. 사실 친구들은 이미 도착해서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오랜만에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니 늦어졌거든요. 그러다 자리가 없으니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나온 참이에요. (웃음)

 

만나는 친구들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 궁금해요.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친해졌어요. 아무래도 매주 만나서 회의를 하다 보니 친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게다가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다 보니 비슷한 점도 많은 것 같고요. 운이 좋게도 동아리를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어떤 동아리에서 만나셨나요?
밴드 동아리에서 만났어요. (웃음)

 

헉. 제 대학 로망 중 하나가 밴드 동아리인데, 부러워요. 그나저나 이제 정말 봄이잖아요. 그렇지만 금방 여름이 오겠죠. 더워지기 전, 이 계절을 어떻게 즐길 예정이세요?
다들 봄의 묘미는 벚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저는 벚꽃놀이에 큰 감흥이 없어요.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봐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본가가 지방인데, 해안도로에 벚나무를 엄청나게 심어놓은 곳이 있어요. 그래서 매년 봄이 되면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꼭 그곳에 가곤 했죠. 푸른 바다 옆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정말 예쁘거든요. 시골이다 보니 서울의 벚꽃 명소들과 비교하면 사람도 많이 없고요. 그래서인지 사람이 바글거리는 벚꽃 명소는 싫더라고요.

 

저도 내로라 하는 명소들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안 가게 되더라고요. 그렇다면 벚꽃 놀이 말고 봄을 즐기는 다른 방법이 있나요?
창이 큰 카페에 가서 책을 읽어요. 아니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한적한 동네 산책을 하기도 하죠. 기분 전환이 필요한 날이라면 한강 공원에 가서 맥주를 한 캔 먹어도 좋을 것 같네요. 저는 봄이나 가을이 되면 그 날씨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필사적으로 외출을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미래에 대한 고민이죠. 저는 아직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리저리 방황하는데, 또 주변을 둘러보면 남들은 알아서 척척 무언가를 하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혼자 멈춰 있는 느낌이 들곤 하죠. 그래서 뭐든 해보려고 하는데 그게 또 마음처럼 쉽지가 않아요. 뭔가를 시작하려 하다가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요즘 하는 고민과 비슷하네요. 저희 또래라면 한 번쯤은 하는 고민이 아닐까 싶어요.
며칠 전에 이런 고민을 엄마한테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하시는 말이, 일단 걸어가야 길이 보인대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 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다고 뭐가 보이겠냐고 말하시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엄마는 제가 뭘 하든 응원하니까, 겁먹지 말고, 다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정말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
.
.

 

그렇게 신촌역에서 등을 돌려 카페로 걸어가는 동안, 조금 전까지 이름 모를 타인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곱씹었다. 지나간 대화 속에서 내가 뱉었던 문장들을 되새기는 건 오래된 버릇이다. 봄에 대해 이야기했던가. 때마침 기분 좋은 살랑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친구들을 만나면 오늘 한강에 가서 맥주를 먹자고 해야겠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노트북과 밀린 과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지만, 적당한 도수의 레몬 맥주 한 캔이면 다 잊을 수 있을 만큼의 무게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신촌 브루스에 도착했다. 카페는 4층이지만 이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이렇게 계단을 오른 게 얼마 만인지. 고작 4층을 오르는 데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꾸준히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딸랑- 가벼운 문을 밀고 들어가니 잔잔한 음악과 은은한 커피 향이 나를 반겼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적당히 들어오는 햇살에 기분 좋은 나른함을 느끼다가, 반가운 얼굴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이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는다. 여기야!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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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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