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처음 추락하는 날개는 들큼, 시큼
ㄹ.
쫙쫙쫙. 빤히. 흔들흔들. 멍. 째깍.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다졌던 야심도 현실에 순응하며 빛바랜 건 한순간이었다. 퇴색되어 이제 질릴 대로 질려버린 학원가의 일상이 나는 힘에 부쳤다. 정작 학교에서 학원 숙제를 하다가 숙제를 학교 선생님께 뺏겨 도로 달라고 앙탈 부린 적도, 어젯밤 실컷 놀다가 새벽에 비척비척 깨서 해석 숙제를 휘갈기는 것도.
수학 문제를 풀고 선생님에게 제출하면, 빨간색 크레용으로 채점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온다. 마침 그것은 얄궂은 선물 상자 같다. 반송된 문제집을 펼칠 때, 동그라미가 연달아 나오면 오만해졌다. 빗금이 쫙쫙. 무심하게 그어지면 거기에 맞춰 내 콩닥거리는 심장도 흠집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같이 수업을 듣는 또래들에게 어떠한 열패감 같은 것도 느껴서 주변 친구들보다 내가 확연히 못할 때면 가슴이 정말이지 한순간에 꼬부랑대서 타오르는 머리카락처럼 쭈글쭈글해졌다. 그때부터는 그런 매 순간의 미세한 추락이 나에게 거듭 밀려왔던 것 같다.
그럴 때면 나는 시트지가 발린 – 닫혀있으면 아예 바깥을 내다볼 수 없는 – 학원 창문이 열어놓은 틈새를 응시했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는 학생들, 느긋한 포물선을 그리는 플라타너스, 줄지은 노란 셔틀버스들과 비집고 들려오는 빵빵대는 경적, 그리고 개미 같은 친구들을 태워 데려다주는 마을버스…… 그렇게 선생님이 뭐라 뭐라 떠드는 것을 풍경 삼아 어쨌거나 수업이 끝나길, 시곗바늘이 빨리 달려서 그 시간을 떨쳐내 주기를 바랐다.
서강빌딩의 학원들의 창문도 그렇게 시트지가 잘 정돈되어 발려있다. 5층을 제외하고 층마다 한 개씩 학원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면 그 할당된 학원의 창문들은 9개 정도로, 그 9개의 창문에 한 글자씩 학원 이름이 딱딱하고 의연하고 두꺼운 고딕체로 새겨져 있다. 최/선/어/학/원, 대/치/명/인/학/원, 1:1/맞/춤/수/업, 수/학, 고/등/전/문.
창/문/이/제/기/능/을/못/하/면/창/문/은/간/판/이/되/고 학원들의 보편적 창문 문법엔 창문을 학원 홍보를 위해 쓰리라는 기대가 들어가 있나 보다. 아니면 블라인드를 맞추기 싫었거나. (높은 확률로 아닐 것이다) 창문들이 희고 빨갛고 파란 껍질에 둘러싸여 있고, 그런 은밀한 폐쇄성은 어딘가를 갑갑하게 한다. 가끔은 열심히 샤프 뒤꽁지를 눌러댈 아이들이 그 창문 사이 틈새를 멍때리고 있을 순간을 상상하면서. 그리고 이제는 그 허공을 향한 응시 대상이 대학 근처를 떠도는, 행인 14쯤으로 변해버린 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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