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 예술이란: 삶, 사랑, 그리고 사람
# 제1장. 공연의 시작
휑-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단출한 무대다. 중앙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의자와 그 사이 작은 탁자가 이 넓은 무대에 놓인 소품의 전부다. ‘덩그러니’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다갈색 탁자의 귀퉁이에는 언제 칠해진 것인지도 모를 오래된 물감 자국이 말라붙어 있고, 의자 다리에는 수많은 생채기가 나 있다. 소품 곳곳에 누군가의 반질거리는 손때와 정성이 묻어있다.
객석과 무대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흐른다. 의자 뒤편으로는 검은 가벽이 육중한 그림자처럼 세워져 있고, 조명 오퍼*는 땀에 젖은 두 손을 매만지며 때를 기다린다. 무심하게 자리를 지키고서 바투 앉아 있는 객석의 관객들이지만, 그 사이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기대와 불안과도 같은 떨림이 감돈다. 이내 배우가 가벽 뒤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와 객석을 등지고 의자에 앉는다. 낡은 극장의 검은 바닥 위에 구두 굽이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사위가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배우의 뒷모습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쯤은 눈치가 빠른 관객이라면 무리 없이 알아챌 법도 하다.
*오퍼(Operator) : 자막, 조명, 음향 등 무대 효과를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기술 스태프의 총칭.
[Fade-in, 조명 서서히 들어온다]
[조명 서서히 무대를 훑다가 이내 무대 전체를 비춘다]
한 줄기 희미한 미색 조명이 부드러운 양감으로 무대를 감싸안는다. 검은 가벽이 장막처럼 버티고 서 있는 가운데 군청색 발마칸 코트를 입은 배우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관객의 시야 안으로 들어온다. 코트의 봉제선을 따라 내려온 차분한 어깨선과 투박한 손등의 굴곡이 빛과 어둠의 틈에서 선연하게 부각된다. 그러나 여전히 배우는 가만히 앉은 채로 미동조차 없다. 어떤 소리도, 어떤 몸짓도 내지 않는다. 칠십 평 남짓의 극장 안을 채우는 것은 오로지 소슬한 정적뿐. 관객들은 저마다 숨죽여 생각한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공연은 언제 시작되는 걸까.’
극한까지 곤두서있는 정적의 표면을 가르는 미묘한 긴장감. 지금 극장은 바람 한 줄기 통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과도 같다. 객석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호흡으로 숨을 가다듬는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인 공간 안에서 겨우 눈에 들어오는 움직임이라곤 유유히 빛을 발하는 조명 아래, 희붐히 부유하는 먼지의 느릿한 춤사위뿐이다. 아직까지 무대 위의 배우는 먼지만큼이나, 아니 외려 먼지보다도 더 움직임이 없다. 어찌 할 도리 없는 저마다의 무거운 정적들이 켜켜이 쌓여가자 오히려 극장 안에는 안정감마저 감돈다. 꽤나 묘하고, 또 이상한 일이다.
[이어지는 극장 안의 침묵]
조금 더 시간이 지난다. 고요 속을 흘러가는 시간의 무게가 평소보다 썩 둔중하다. 관객의 시선이 점차 무대 중앙으로 모여든다. 이제 막 정신을 차렸다는 듯이, 배우 이제야 조금씩 움직인다.
[Fade-in, 핀 조명*이 배우를 비춘다]
*핀 조명 :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처럼 특정 부분을 비추는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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