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 로그인
PLACE 2025 · 11 · 18

251. 푸른 굴뚝: 이 글은 여느 기억처럼 선명한 사진이 없습니다.

Editor 팬지

3.

정원과 처음 만난 날은 2011년 9월 7일, 어느 가을날이었다. 14년 전 날짜를 분명히 기억하는 건 그로부터 180일 후를 셀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9월 7일 수요일, 아르바이트는 유난히 손님이 없었고, 체력이 넘치는 탓에 돌아오는 길에 오랜 궁금증을 풀어내기로 했다. 신촌오거리·현대백화점(중)에서 내려 서강대역 방향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정이 다 되어 가도록 시끄러운 신촌 한복판과 달리 로터리를 벗어난 동네는 마치 큰 문을 열고 클럽에서 나온 것처럼 조용했다. 얼마 걷지 않아 푸른 굴뚝이 보였다. 나무판자로 덧붙여진 외벽과 흰색 창문이 나 있어 찾기 어렵지 않았다. 들어가기엔 조금 겁이 났을지언정.

가게는 생각보다 어두웠다. 천장엔 푸른 줄 조명이 모퉁이를 따라 뻗어 있었고, 군데군데 조명이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뿔테 안경의 나이 든 사장님이 카운터에서 친구로 보이는 남자분과 떠들고 있었다. 옆에는 소주가 겸상 중이었다. 저놈은 어딜 가나 빠지질 않는구먼. 생각했다. 친구분 외에 손님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본 사장님이 번뜩 일어났다. 빳빳한 청재킷에 빵모자를 쓴 사장님은 에스닉한 무늬의 작은 앞치마를 허리에 묶고 있었다. 음악을 하시는 듯 보였다.

“어서 오세요.”

“네~ 아무 데나 앉으면 될까요?”

“바닥에만 앉지 않으면 뭐 상관없어요.”

둥근 모양의 원탁이 네 개. 의자는 각각 여섯 개 씩이나 있어 어디에든 앉기에 부담스러웠지만, 손님이 없는 관계로 카운터 옆쪽이자 라이브 무대 바로 앞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창문 앞이 명당이라며 이전 손님이 놓고 간 산미구엘 9병을 치워준다 하셨지만 만류했다. 고맙다고 슬쩍 웃은 사장님은 메뉴판을 찾아오셨다. 술은 맥주와, 위스키 콕 정도, 안주는 쥐포, 황도 따위의 간단한 것들이었지만, ‘푸른 굴뚝 즨장 맘’, ‘비 오는 날 전해요’(가격 예측 불가), ‘먹태는 고래급’ 같은 이름에 김새게 웃겼다. ‘즨장 맘’… 26,000원? 무슨 마음이 이리 비싼가 하면서 9000원짜리 위스키 콕을 시켰다. 사장님은 친구와 음악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괜히 벙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설레는 눈빛으로 이것저것 이야기하던 사장님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있었지만, 내 시선을 느낀 듯 이내 고개를 돌려 주문을 받으셨다.

“위스키 콕? 잭 콕 아니고 위스키죠? 네~”

사장님은 무언가 괜히 주섬주섬하며 주방으로 들어가시더니 곧 내 위스키 콕을 테이블에 내려놓으셨다. 주방이 어색한 모습조차 꼭 음악가 같다고 생각했다. 

위스키 콕은 그냥 위스키 콕이었다. 달콤하면서 쌉싸름한 한 모금과 함께 가게를 구경하고, 노래를 들었다. 어두운 실내, 입구 옆쪽에는 흡연실이 있었다. 예상컨데 창문을 뚫어 놓은 작은 방 같은 공간일 것이었다. 바로 맞은편, 그러니까 가게 가장 안쪽에 있는 라이브 무대는 작았지만, 꽤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몇 종류의 기타, 건반, 이름 모르는 드럼 사촌 격의 악기, 스피커나 앰프로 보이는  검은 네모들이 무대를 채우고 있었다. 라이브 무대 가운데 쓰여 있는 ‘푸른 굴뚝’. 그 위로 초록 파랑 조명들이 벽을 타고 천장까지 비추고 있었다. 마치 향이 피어나는 듯한 구불구불하고 오묘한 조명이었다. 

노래는 대부분 옛날 노래들이었지만, 아직도 나는 음악을 찾아 듣는다는 듯 최신곡 몇 개가 섞여 있었다. 귀는 반갑다가 다시 낯설기를 되풀이하며, 손은 잔을 들었다가 놨다 되풀이했다.

3/9
팬지
AUTHOR PROFILE
팬지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1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