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푸른 굴뚝: 이 글은 여느 기억처럼 선명한 사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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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분 정도 지났을까, 끼익.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고동색 재킷을 입은 사람이 혼자 머뭇거리며 들어 왔다. 검은 머리칼이 유난히 밤을 머금은 것처럼 까맸다. 바지 위에 치마를 겹쳐 입은 패션이 마치 사장님 같다고 느꼈다. 사장님은 나를 보았을 때보단 조금은 놀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이번에는 바닥에 앉으면 안 된다는 농담 없이, 메뉴판을 찾아오셨다.
그 사람은 내 옆 원탁에 앉았다. 이쯤 되면 창문 자리가 명당이라는 이야기는 거짓이 아닌가 싶었다. 그 사람은 큰 고민 없이 아사히 맥주를 시켰다. 아 저거 맛있지, 괜히 입맛을 다셨다.
때마침, 소주인지 대화거리인지 하여튼 둘 중 하나가 떨어졌는지 친구분이 사장님과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찾아온 요란한 고요함, 노랫소리가 가득 찬 바에서 괜한 어색함이 못지않게 채워지고 있었다.
“어떻게 혼자 온 손님 두 분만 이렇게 있네. 신기하네! 두 분 다 처음인가? 그럼 또 라이브 하나 해 드려야지.”
사장님이 나섰다. 사실 어색함은 모르겠고, 노래가 하고 싶어 조금 근질거리셨던 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5.
기타를 무릎 위에 올리며 시작된 곡은 산울림의 회상이었다. 다만 좀 거친 회상.
잊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나느냐고…. 우~ 떠나버린 그 사람…. 우…. 생각나네….
완전히 사장님 스타일의 회상이었다. 기타는 부드러운 선율보다는 쥐어뜯듯 한 소리를 냈고, 마치 말이 달리는 것처럼 리듬감 있었다. 사장님이 작은 말을 안고, 그 말이 난동 부리는 것을 말리는 것으로 보였다.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한음 한음 찍어 누르듯 가사를 읽어 내고 있었다. 산울림 원곡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운 느낌. 산 지진이면 몰라도.
그러나 환상적이었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사장님의 회상이었다. 어떤 삶을 살아 오셨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후반부에는 목소리 대신 기타가 마지막 요동을 치며 끝이 났다. 몰아치는 연주 끝에 잠깐의 정적. 그 정적에서, 나는 새파랗게 빛나는 사장님의 눈을 보았다. 정말 새파래서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다.
술과 노래, 사람, 미치지 않고서야 즐거운 조합에 우리는 급격하게 친해졌다. 기타를 내려놓으신 사장님은 마치 또 다른 손님 같았다.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본래 홍대에서 라이브 펍을 20년을 하다가, 세월과 유행의 등살에 밀려 이곳까지 밀려났다는 이야기. 가게는 조금씩 작아져도, 이 느낌을 유지하고 싶어 늘 비슷한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한다는 이야기. 라이브바 바로 앞쪽 벽에 걸려 있는 기타가 당신 첫 번째 마누라 라는 이야기. 악기는 가만히만 있으면 못쓴다고, 계속 만져주고 닦아주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 벽에 붙어있는 김광석 포스터에 싸인은 술 취한 외국인이 멋대로 해 버린 거라는 이야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는 이어졌고, 이내 벽에 걸려있는 것들이 그냥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쯤, 아사히의 그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악기 하세요?”
“저요? 전 음악 쪽은 전혀 몰라요. 제 마지막 로망이에요.”
“음 그럼 6개월 뒤에 여기서 쳐 보는 건 어때요? 180일 뒤니까, 한 곡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쵸 사장님?”
사장님은 그럼 그럼 하는 눈빛으로 끄덕이셨다. 아니, 사장님 잠시만요. 그 사람은 말을 이어갔다.
“ 음, 그럼 내년 3월 4일이겠어요. 어때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 그러나 동시에 묘한 기분이었다.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 어릴 적 학교에 가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듯이, 습관적인 맹목이 나를 대답하게 했다.
“그럼 곡은 제가 고를 게요. 그때 꼭 오셔야 해요.”
그 사람은 웃으며 당연하다 말하며, 자기 이름이 정원이라 했다. 그러고선 오늘 즐거웠다며 내 위스키 콕까지 계산했다. 9천 원, 고작 9천 원으로 내 공연비를 퉁치려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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