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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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5 · 11 · 18

251. 푸른 굴뚝: 이 글은 여느 기억처럼 선명한 사진이 없습니다.

Editor 팬지

7.

그날 그렇게 정원과 공연을 기약한 뒤로, 우리는 누구도 먼저 말한 적 없지만 매주 수요일마다 푸른 굴뚝에서 만났다. 나는 위스키 콕을, 정원은 늘 아사히 맥주를 시켰다. 둘 다 한 잔을 넘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늘 한 시간 정도 되는 시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거웠다.

정원은 차분한 사람이었다. 보통의 사람들보다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을 언제나 듣고 다녔다. 소중히 여기는 것은 도무지 잘 바꾸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만든 네이버 계정을 20살이 넘어서도 여전히 쓰고 있다고 했다. Garden_fall, 정원이 태어났을 때 사주를 본 아버지가, 사주에 물이 부족하다며 연못 원자를 이름에 넣었다고 했다. 정원은, 정원에 연못 따위가 있는 것은 너무 어울리고 좋지 않냐면서, 연못 대신 정원의 작은 폭포라는 뜻으로 그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Fall은 또 ‘fall in love’ 의 빠진다는 의미도 있으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빠져도 좋다는 의미를 넣었다고, 어린 나이에 그런 센스를 지닌 자신이 자랑스러워 계속 쓰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수요일마다 만나는 것도 본인에게 소중한 일이 된 것일지 생각했다. 매주 만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도통 한 테이블을 쓰지 않았고, 말씨는 늘 존댓말이었다. 더 친해지지 못하는 것일지 아쉬우면서도, 나중에는 그 거리감이 싫지 않았다. 기울기가 다른 두 선은 언젠가 만나지만 다시 멀어진다. 우리는 같은 기울기였다. 매주 수요일, 술은 딱 한잔, 떨어진 테이블, 그 일들이 모두 두 평행한 일직의 만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늘은 높디높게 푸르다가, 정말 언제 그랬냐는 듯 뽀얀 눈을 뿌려 댔다. 곧 3월이었다.

 

8.

푸른 손가락이 어느새 뽀얀 물집이 되었다가, 다시 새살이 돋아났다. 그렇게 세 번 정도 반복했을까. 3월 3일이었다. 3월이라지만 기타를 치기엔 꽤나 쌀쌀했다. 

3월 4일에 보자고 했지만, 우리의 문법대로라면 3일 밤에 만나자는 말이 틀림없었다. 첫날도 그렇게 약속을 정했으니까. 큰 상현달이 뜨는 밤 아무 의심 없이 기타 가방을 메고 푸른 굴뚝으로 올라갔다. 작은 앞치마를 두른 사장님이 인사를 주시고, 슬쩍 위스키 콕? 이라고 물으셨다. 나는 뒤에 매던 기타를 슬쩍 앞으로 보이며 대답, 조금만 이따가요.

가만히 앉아 정원을 기다렸다. 혹시나 내 멋대로 정해놓은 내 규칙이었을까, 3월 4일 밤, 그러니까  내일 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을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온 김에 위스키 콕이나 마시고 갈지 한참을 고민하던 찰나, 응답하듯 문이 열렸다. 정원이었다. 밤을 머금은 머리칼은 여전히 멋지게 휘날렸다. 정원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아사히 한 병을 시켰다. 나는 웃으며 일어나 라이브 무대 가운데 의자로 걸어갔다. 

의자에 앉았다. 수도 없이 온 것 같은데 이런 뷰는 처음이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의자가 그렇게 많아 보였다. 그래도 멤버는 늘 같았다. 사장님, 나, 정원.

숨을 고르고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올겨울 눈보다 많이 쌓인 굳은살의 위력을 보일 때였다. 전주만 넘기자, 전주만 넘기자, 전주만 넘기자, 

 

그 사-람 나는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충분하지 않은 실력이 고개를 드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마치 사과하듯 혹은 고백하듯 고개를 푹 숙이며 노래를 이어 나갔다. 정말이지 미끄러운 철길을 비틀거리며 걷는 기분이었다.

 

사랑이, 지나가면… 사랑이, 지나~ 가면

 

노래는 끝이 났고 마지막 몇 마디는 기타의 몫이었다. 180일의 마지막이었다. 기타, 노래가 정말 끝나갈 때쯤, 기타에 눈을 떼고 앞을 바라보았다. 푸르다. 이 촌스러운 빛 장식의 천장도, 내 멍든 손가락도, 지금, 이 순간도 그리도 나는 볼 수 없지만 분명 내 두 눈도, 참 푸르렀다.

노래를 마치자, 사장님은 큰 박수로 기타가 멈춘 정적을 채워 주셨다. 정원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손뼉을 쳤다. 그 잠깐이 감동인지, 실망인지 애타는 내 마음을 증폭시켰다는 사실은 알 이유 없다는 듯해 보여 괜히 심술이 났다.

사장님은 칭찬을 이어 갔다. 

“이야 이게 반년 만에 되는 건가? 너무 멋있네! 역시 사람은 뭐든 하고 봐야 해. 삶을 즐기려면 역시 악기를 배워야 해.”

 나는 머쓱해서 한참 뜸을 들이다 자리로 돌아갔다. 고생했다는 말을 누구에게든 하고 싶었지만, 그 둘에게는 아니었다. 그 순간만은 내가 그들에게 노래를 제공해 준 공연자라는 것을 앞세우고 싶었다.

정원은 내가 자리에 앉자 슬며시 일어났다. 나는 내 옆자리로 오는가 싶어 기대했지만 반대였다. 정원은 사장님께 아사히 맥주를 계산하고, 위스키 콕을 하나 더 시켜 내 앞으로 부탁했다. 내 공연은 18,000원인 것인가. 계산을 다하고는 머리칼보단 옅은 갈색 재킷을 들고 나를 돌아보았다.

 

“생일 축하해줘서 고마워요.”

 

그 뒤로 나는 정원을 볼 수 없었다. 그곳에 몇 번이고 찾아갔을 때도, 그 사람 많은 신촌 길거리에서도 나는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지금 오늘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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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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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지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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