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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6 · 03 · 11

494. 사람, 연희

Editor 폴

안산도시자연공원에서 출발해 연희맛로에 이르는 긴 여정이 끝났다. 길과 골목이 보행자에게 마냥 호의적으로 생겨 먹지만은 않은 동네에 자꾸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에 대하여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이 땅에 ‘연희’라는 이름이 붙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고지대로부터 깨끗하고 맑은 물이 흘러들어 한데 모이는 곳에 자연스럽게 인간의 거주지가 형성된 것이다. 때로는 산자락 탓에 외부와의 소통이 어려울 때도, 고즈넉한 조망 이면에 자리한 가파른 비탈이 강제로 걸음을 에돌게 할 때도 있었지만 연희의 사람들은 조금 느릴지언정 그렇게 삶을 한 걸음씩 고스란히 가늠하며 살아왔다.

 

 

도시 곳곳에 지하철이 들어설 때는 좀처럼 지하를 허락하지 않는 무악의 단단한 지반이 못내 원망스러울 적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그 안온과 느림에 맞추어 연희는 지금까지 나름의 모습으로 변화해 왔다.

 

 

완강한 바위와 굽이진 능선으로 이루어진 연희의 지형은 외부의 소란을 막아주는 대신 한 가지 숙제를 던졌는데, 그것은 바로 ‘불편함’이었다. 필자는 ‘연희’ 특유의 정취를 빚어낸 원동력과 사람들이 마음을 사로잡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골목이 좁고 경사가 가파르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보폭을 줄여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구릉지*에 고층 건물을 세울 수 없었던 까닭에 담벼락은 낮아졌고, 그로써 연희의 하늘은 다른 어느 곳보다 넓어지게 되었다. 지하철이 지나가지 않는 탓에 조금 더 걸어야 했던 불편함은 결국 ‘일부러’ 연희를 찾는 이들의 달뜬 발걸음으로 고스란히 채워졌다.

*산이 풍화작용을 받아 나타나는 지형으로, 경사와 골짜기가 특징이다.

 

결국 공간을 완성하는 존재는 그곳의 사람들이다. 효율이 최고의 미덕인 시대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구태여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헤매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연희의 주민들. 이들은 ‘불편함’으로 규정하면 간편할 특성을 ‘매력’이라는 단어로 능히 치환해 낼 만큼 성숙하다. 지하철 역 대신 버스 창밖으로 느리게 흐르는 계절의 변화를 목격하고, 다회용 컵을 수거함에 반납하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껴안으며, 타인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으려 도심 속에서도 발소리를 죽이는 사려 깊은 마음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연희의 풍경이 완성된다. 각자의 섬으로만 존재하던 이들이 공통의 문법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가닿는 곳 ‘연희’. 비정한 도심 한복판에서 이곳이 고유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불편과 다름을 기꺼이 사랑이라 부르기로 한 이들의 정성스러운 마음 덕분일 테다.

 

‘연희’

 어느덧 눈에 익은 두 글자를 나직하게 소리 내어 발음해 본다. 봄밤처럼 단아한 비음과 여여한 모음을 느낀다. 이름의 끝을 늘여 발음할 때마다 입꼬리에 절로 고이는 다정한 미소를 뺨의 근육으로 온전히 감각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연희로 모여들고 있다.

그리고 이미 연희를 찾아와 버린 이상, 나는 쉽사리 이곳을 벗어날 재간이 없다.

7/7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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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준다

COMMENTS

댓글 2

  1. nimo
    nimo 2026.03.11 22:4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에디터님의 연희동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글이라 더 즐겁게 읽었네요. 속도에 치여 살기 바쁜 요즘 연희동 같은 곳이 더 절실해지는 것 같아요. 느림의 미학이 그리워질 때쯤 찾아가 봐야겠어요 ㅎㅎ

  2. 챌라또
    챌라또 2026.03.12 07:40

    관통하는 주제, 쓰이는 단어들에 대한 깊은 사유가 느껴짐과 동시에 물흐르듯 진행되는 잔잔하고 가벼운 템포의 인터뷰들이 연희 그자체를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정말 오랜만에 제가 잔치에 있을 때 행복하고 치열하게(아무도 치열하라고 하진 않았으나) 글을 쓰던 모습이 생각나게 하는 글을 만난것 같아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글 정말 정말 좋아요…. 취향저격… 오래오래 잔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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